# 121화.
삶의 부채(3)
찬화 선배와는 평소 그리 살갑게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전화를 한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용무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이유는 왠지 무척이나 중요한 이유이며, 지금 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크게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전화 받으세요.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아, 네. 그 며칠 전에 이야기 했던 부상당한 선배 전화라서요. 잠깐 실례 좀 할게요.”
휴대전화에서 찬화선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진호니?”
“네. 선배 어쩐 일이세요.”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지금 뭐하니? 잠깐 이야기 좀 하기에 시간 좀 괜찮아?”
괜찮다고 답하려던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찬화 선배의 잠깐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잠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은 누굴 만나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조금 뒤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래? 알겠어. 기다릴게.”
보통 진짜 1~2분의 잠깐이라면 조금 뒤에 다시 전화하기 보다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말텐데 기다리겠다니. 역시 내가 생각했던 잠깐과 찬화 선배의 잠깐은 달랐다.
“통화하셔도 괜찮은데.”
“그게, 이 선배랑 제대로 통화 하려면 좀 시간이 걸려서요. 보니깐 당장 급한 일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만약 이대로 좋은 일까지 갈 것 같았다면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외출했던 여자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난 나에게는 조금 무리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여자의 성공적일 미래가 나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집이요? 집에 엄마랑 오빠가 있을 텐데.”
“이 음흉한 아가씨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이 근처 동네가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해서 바래다 주려는 거에요.”
“별로 위험할 것도 없어요. 어차피 집도 큰길가에 있고요.”
“그러면 그냥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로 해두죠.”
“윽, 이거 영화 같은 데서 보거나 들을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현실에서 들으니 엄청 느끼하네요.”
“네, 저도 말해놓고 후회 중이에요.”
그녀가 가볍게 웃는다. 역시 매력적인 여자다. 괜찮다는 그녀를 굳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찬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배 저예요.”
“어, 진호야.”
진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선배가 바로 전화를 받는다.
“DL에 올라갈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으세요?”
“하하, 그게 말이지. 조금 고민 중이야.”
“고민이요?”
“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짊어진 게 좀 많잖아.”
선배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만약 나의 짐작이 맞다면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말리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미 큰돈을 가져본 내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야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연 찬화 선배도 마찬가지일까? 수천만 달러라는 돈은 매우 큰 금액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과 재능을 걸고 추구할만한 가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장 찬화 선배가 몸을 추스르고 짧은 계약, 혹은 FA 재수를 택한다고 했을 때, 그보다 큰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몸을 사리고 다음을 기약하라는 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간 머리가 엄청 복잡했어. 학교 그만두고 메이저 택할 때도 이렇게 심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선배······.”
찬화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60일 DL에 이름 올리기로 했어.”
“네?”
예상치 못한 이야기. 맥락도 뜬금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반가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저런 식의 허리 부상을 치료하는 방식은 주변 코어 근육을 강화해 보조하는 형태가 가장 유효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휴식과 운동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60일 DL이라는 것은 결국 시즌 아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것은 근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몸을 다듬겠다는 말이었다.
“하하, 놀랐나 보네.”
“네, 분명 내년에 FA고 그러니까 올해 성적이 엄청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전 올해 그냥 꾹 참고 던지겠다고 하실 줄 알았거든요.”
“뭐, 사실 그럴까 하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야. 햄튼이랑 비교해서 내가 딱히 부족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거든. 1억 달러라니. 상상하기도 힘든 큰 금액이잖아.”
“네, 그건 그렇죠.”
올해 콜로라도와 계약을 맺은 작년 우리의 에이스 마이크 햄튼과 비교했을 때 나이나 커리어 장래성 모든 면에서 찬화 선배는 크게 뒤지지 않았다. 분명 건강한 찬화 선배라면 7년 1억정도 되는 초거대 계약도 노려볼 만했다.
“뭐 돈이 중요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야. 그런데 FA 재수를 한다고 해도 내가 건강만 하다면 돈이야 어디 가는 거 아니니깐. 그보다 내가 고민한 건 조금 다른 이유였어.”
“다른 이유요?”
“어. 다른 사람한테 이런 말 하면 좀 웃길 수도 있는데 넌 나랑 비슷 하니깐 아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 뭐 혹시 넌 이런 생각 안 했더라도 비웃진 말고.”
“비웃기는요.”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래 1993년 세계선수권 대회부터 시작하자. 당시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메이저리그의 제안을 받고 메이저리그행을 선택했을 때는 사실 그냥 돈 많이 주고 세계에서 야구 제일 잘하는 곳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LA행 비행기를 타고 올 때 난 정말 백억을 벌어 올 생각이었지. 아, 물론 그 백억은 이미 이뤘지만. 하여간 그렇게 그냥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거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전부였어. 뭐 열심히 하긴 했지. 솔직히 좀 자존심 상했거든. 세계 대회에서 활약할 때만 하더라도 메이저가 가까워 보였는데 두 경기 그렇게 완전히 두들겨 맞고 마이너로 내려갔으니까. 뭐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야구는 똑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완벽하게 박살 난 거지. 그렇게 더블A 산 안토니오에서······.”
찬화 선배의 마이너 시절 이야기가 길게 흘러나왔다. 난 대체 어디서 내가 비웃을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기다렸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찬화 선배는 94년 샌 안토니오를 거쳐 95년 스프링 트레이닝과 AAA리그인 앨버커키 듀크스를 지났고 마침내 9월 확장 로스터를 통해 메이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비웃을지도 모르는 부분에 대한 힌트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7회 말 11:1 상황에서 내가 마운드를 이어 받았어. 정말 떨렸지. 근 2년 만의 메이저였으니까. 내가 신중하게 몸쪽으로 공을 넣었는데······.”
약 십여 분의 시간 끝에 마침내 95년의 두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96년이 시작됐고 그해 4월 여섯 번째 애틀랜타와의 경기. 볼카운트 2-0에서 바깥쪽으로 살짝 빠진 포심에 치퍼 존스가 내야 땅볼로 물러났을 때에야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가 나왔다.
“정말 깜짝 놀랐어. 난 그냥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야구를 했을 뿐인데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시다니 말이야. 솔직히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빼면 그 분들이 딱히 나를 응원할 이유는 없었잖아.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메이저리그의 LA다저스라는 팀에서 뛰는 1년차 투수일 뿐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 응원은 내가 공을 더 잘 던지면 잘 던질수록 커졌어. 솔직히 내가 성적이 좋아지면 나나 우리 부모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니까. 저 물 건너 LA다저스라는 팀을 제대로 모르는 분들 중에서 말이야. 처음에는 그냥 좋았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했을 뿐인데 이렇게 응원까지 받다니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다 보니 묘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 게다가 우리나라 사정이 좀 나빴냐. IMF로 건국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내가 한 경기 잘 던지는 걸 보면 거기서 힘을 얻는다고 하잖아. 그럴 때마다 생각했지. 아 난 이제 LA다저스의 그냥 선발투수 박찬화가 아니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리거 박찬화구나. 이렇게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웃기기는 한데 내가 잘 하는 거 내가 돈 벌려고 하는 건데 이상하게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뭐 야구 좀 하는 게 마치 민주화운동이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장해지더라니까. 웃기지 않냐? 하여간 그래서 고민이 됐어. 내가 좀 힘들다고 이렇게 쉬어도 될까? 내가 큰돈을 받는 건 나 개인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이곳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 말이야.”
멍청한 생각이었다. 야구는 그저 공놀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 가지만 그것은 그저 공놀이다. 고작 그런 공놀이에 국민의 희망이니, 국가의 자부심이니 멍청한 소리였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멍청함이다. 그렇기에 이 박찬화라는 사람은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너한테 참 고마워.”
“네? 뭐가요?”
“그냥 참 잘해줘서. 99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네가 없었으면 아마 쉬겠다고 결정하기도 힘들었을 거야. 나한테 힘을 얻는다고 해주는 많은 분은 너를 보고도 힘을 얻고 있으니까.”
“선배······.”
“아, 이거 좀 머쓱하고 부끄럽다 야. 하여간 그냥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스포츠, 그리고 내셔널리즘.
21세기 국가와 인종 성별이라는 구분이 얼마나 후진 것인지 강조하는 세상에서 살았던 나에게 저 두 가지를 연결 짓는 건 너무나도 촌스러웠다. 하지만 스물셋, 스물네 살의 청년이 수천만이라는 사람의 응원 속에서 그들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이 스토리는 절대 촌스럽지 않았다.
“진호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한다.”
“네. 선배.”
나의 등장이 찬화 선배 개인에게도 절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본인에게 듣는 이 순간은 항상 박찬화라는 국민적 영웅의 업적을 약탈해가는 느낌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건 그렇고,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맞다 치퍼 존스. 그러니까 너도 같은 지구라서 잘 알겠지만 치퍼 존스 그 친구가 말이지······.”
***
[뉴욕 메츠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시리즈 2차전 경기. 오늘 양 팀 선발은 글렌든 러쉬 선수와 브릿 림스 선수의 맞대결입니다.]
[두 선수 모두 젊은 선수입니다. 글렌든 러쉬 선수같은 경우 지난 99년 로얄스와의 트레이드로 메츠에 건너와 작년 11승 11패 4.21의 준수한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메츠의 새로운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브릿 림스 선수같은 경우 작년 하반기 콜업되어 총 7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2.88.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며 메이저에 데뷔했습니다.]
[작년만큼은 아닙니다만 올 시즌 역시 8경기 42.2이닝 4.75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몬트리올에서 하비에르 바스케스 바로 다음 가는 선발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찬화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상쾌한 기분이었다. 촌스럽지만 오늘부터 당분간 나는 대한민국 4,800만 국민들의 자부심이 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