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23화 (123/210)

# 123화.

8월 그리고...(1)

“하, 우리 진호 진짜 엄청나게 잘하고 있는데······.”

형석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내셔널리그 타자들의 성적을 살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유례없는 괴물들을 마주했다. 물론 진호 역시 그 괴물 중 하나였다.

올 시즌 지금까지 진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아마 메이저 역사에 남을 만큼 대단한 몬스터급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즌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88경기 88선발. 371타석 321타수 105안타 53볼넷 0.327/0.429/0.648. 103안타. 커리어 최초 200안타 페이스였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것은 안타의 개수가 아니었다.

26홈런 그리고 27도루.

물론 아직 시즌의 절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설레발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 대로라면 진호는 메이저 120년 역사상 누구도 밟아보지 못했던 전입 미답의 경지에 발을 디디게 될지도 몰랐다.

50-50

30-30, 40-40 몹시 대단한 기록들이다. 어떻게 본다면 50-50은 단순히 그 기록들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연장선이라고 말하기에 50-50은 느낌부터가 달랐다. 50개의 홈런과 50개의 도루는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아닌 둘 중 하나만 달성한다고 해도 그 해에 홈런왕, 그리고 도루왕을 노려볼 만큼 대단한 기록들이다. 실제 메이저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당해 최다 홈런이 50개가 안 되는 시즌과 최다 도루가 50개가 안 되는 시즌은 상당했다. 그리고 올 시즌 진호가 보여주고 있는 페이스는 그 50-50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바라보는 페이스였다.

하지만

“잘하는 티가 확 안나네 망할. 이게 대체 사람이냐 진짜?”

형석의 시선이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에게 향했다.

배리 본즈

81경기 79선발 355타석 259타수 79안타 88볼넷. 그리고 39홈런. 0.305/0.487/0.826. 지금 그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이 기록은 메이저 역사상 유일한 70홈런 기록보유자인 마크 맥과이어의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올해의 배리 본즈는 단일 시즌 가장 강력했던 타자 중 하나인 98년의 빅맥보다 더 많이 지켜봤고 더 자주 두들겼으며 더 멀리 날려 보냈다. 형석이 단언하건대 만약 배리 본즈가 이 비율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면 2001년의 배리 본즈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록될 것이다.

“얘도 그래. 뭐 그냥 성적만 보면 우리 진호가 압살인데 이게 하필 신인이네······.”

알버트 푸홀스

85경기 82선발 359타석 313타수 101안타 33볼넷 21홈런. 0.323/0.391/0.594. 시즌 초반 테드 윌리엄스를 소환하던 성적에서는 제법 내려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성적이었다. 덕분에 카디널스에서는 자기 팀에 대한 홍보로 ‘여러분들의 할아버지는 스탠 뮤지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알버트 푸홀스를 보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내밀 정도였다. 진호도 98년의 신인왕 출신인 만큼 데뷔성적이 결코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올 시즌 알버트 푸홀스의 성적에는 들이밀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미 소사 역시 0.312/0.435/0.691에 29홈런으로 여전히 MVP 경쟁권에 위치해 있었고 99년 진호와의 MVP 경쟁에서 아쉽게 밀려난 치퍼 존스, 그리고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와 휴스턴의 랜스 버크만, 콜로라도의 토드 헬튼과 래리 워커까지. 3/4/6의 비율 스탯을 기록 중인 선수만 무려 다섯이었다.

“타율은 조금 나쁘지만 프레스톤 윌슨도 올 해 아주 미쳤고.”

새미 소사와 함께 29의 홈런으로 리그 홈런 2위를 기록 중인 프레스톤 윌슨의 타격 성적 역시 진호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타율은 0.282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금 부족하지만 0.381의 출루율과 0.649의 장타율은 그가 생산성에서 진호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진짜 얘들 중 아무나 AL가도 MVP 딸 것 같은데 말이지.”

형석의 이야기처럼 현재 아메리칸리그에서 이들에 비견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타자는 제이슨 지암비, 그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 정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진짜 꾸준하네. 오늘 또 스즈키 이치로 찬양 글을 올린 거야?”

뭐 화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스즈키 이치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최근 오클랜드의 성공과 그 성공에 감춰진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학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몇몇 코어팬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팬들은 여전히 타율, 그리고 홈런에 열광했고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리그의 스즈키 이치로는 대중의 환호를 받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의 타자였으니 말이다.

“어휴, 이 자식은 진짜. 이치로가 강진호보다 안타 몇 개 더 쳤다고 해봤자 장타율이랑 출루율에서 비교가 안되는 구만, 뭐 야알못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런 사이트에 이런 똥글 싸질러봤자 호응도 없는데. 대체 정체가 뭐야.”

형석이 입으로 쉴새없이 투덜거리며 이치로를 찬향하는 녀석의 말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했다. 뭐 형석도 이치로가 대단한 선수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애초에 타율은 모든 스탯의 기초라고 볼 수 있었다. 가장 직관적인 스탯이랄까? 문제는 간단하고 직관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타율 역시 예외가 되는 상황이 매우 많다는 점이었다.

“이치로의 경우는 타율에 비해 출루율과 장타율이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제 득점에 더 크게 관여하는 것은 출루율과 장타율, 그중에서도 장타율 쪽입니다.”

형석의 댓글 밑으로 출루율과 장타율 간의 가치, OPS에서 과대 평가되는 장타율의 허상 등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매우 수준 높은 이야기들이었다. 역시 MLB Town쪽이 MLB Mania보다 세이버매트릭스를 이해하는 수준이 높았다. 뭐 이유는 간단했다. 박찬화는 클래식으로 보나 세이버 매트릭스적으로 보나 비슷하게 훌륭한 선수였지만 강진호는 클래식으로도 훌륭한 선수였지만 세이버 매트릭스적 계산으로 넣어 봤을 때는 몹시 훌륭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조금이라도 더 칭찬하고 싶은 마음. 오늘도 그 순수한 팬심이 MLB Town의 토론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

“확실히 듣던 대로 공이 괜찮네.”

“어? 뭐야. 진호 너 저 선수 알아?”

“어. 좀 건너건너 들었어.”

“쟤 네가 빅리그 올라오고 마이너에서 뛰기 시작했을 텐데, 그전에는 대학리그에서 잠깐 뛰었고. 우리 팀에 쟤랑 같이 마이너에서 뛰었던 녀석이 있었나?”

“아니, 그런건 아니고. 고향 애들이 좀 이야기 해주더라고.”

“고향 애들? 한국? 걔들이 대학에서 뛰던 애를 어떻게 알아?”

휴스턴과의 경기. 마운드에 로이 오스왈트가 몸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 휴스턴의 스카우트팀이 찾아낸 또 하나의 에이스. 비록 90년대의 가장 찬란했던 전설들과 이후 떠오르는 위대한 투수들 사이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00년대 가장 꾸준하고 가장 강력했던 투수들을 꼽는다면 무조건 거론됨이 마땅한 투수였다.

“쟤 작년에 올림픽 나갔잖아.”

“아!! 올림픽.”

“근데 프레스톤 너는 저 친구를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야?”

“나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코치님이 쟤 고등학교 감독이었어. 뭐 아직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인데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만한 재능이라고 매일 자랑했었거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안타깝게도 나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차원의 올림픽 불참 결정 때문이었다. 뭐, 한국 사람의 경우 병역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만약 나나 찬화 선배,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뛰고 있는 병규 중 하나라도 군 문제 해결이 안 됐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셋 모두 지난 98년 아시안 게임을 통해 병역 면제 혜택을 받고 있었고 사무국의 태도는 완강했다. 게다가 구단들로서도 굳이 사무국과 마찰을 해가면서까지 우리를 올림픽에 내보낼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나저나 올림픽이라니. 쟤가 드래프트 & 팔로워라서 하위 라운더이긴 한데 대학리그에서 터진 케이스니까. 솔직히 빅리거들 죄다 불참한 대회에 저런 녀석이 참가하는 건 좀 반칙이긴 했지.”

“진짜 미국이 넓긴 넓어. 저런 녀석이 하위 라운더라니 말이야.”

실제로 준결승에서 로이 오스왈트를 경험한 한국의 프로 구단들은 휴스턴에 오스왈드의 구매를 요청했었다. 낮은 순번으로 지명되어 무려 4년이나 메이저 무대를 밟지 못했고 작년까지도 AA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뭐, 오스왈트가 작은 사이즈 때문에 휴스턴이 내구성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계획적으로 성장시켜온 유망주였다는 점은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에이, 그냥 저 녀석이 피아자 씨처럼 조금 이레귤러인 거지. 평범한 하위 라운더들은 너도 잘 알잖아. 그냥저냥 굴러먹다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거. 게다가 저 녀석 투수 치고는 사이즈에 문제가 좀 있었으니까 실력에 비해 포텐셜에서 저평가를 받기도 했었겠지. 너도 잘 알잖아. 여기 꼰대들 오버 사이즈 좋아하는 거. 너도 그래서 살 좀 붙기 전에는 타격 포텐셜에서 점수 많이 깎아 먹었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어쨌거나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네. 얼핏 보면 페드로 마르티네즈랑 비슷한 것 같은데?”

“뭐, 저 몸으로 평균 94마일에 저 정도 구위면 확실히 속구는 페드로 씨랑 비교할만하겠네.”

“근데 속구도 속구인데 커브가 진짜 엄청나다고 하던데.”

“글쎄, 영상으로 봤을 때는 좀 괜찮은 편이긴 했는데 네가 그렇게 엄청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휴스턴 애스트로스 대 뉴욕 메츠의 시리즈 1차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와 중부지구 1위팀들간의 맞대결입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1위라고는 해도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메츠의 경우 브레이브스가 고작 2승 차이로 뒤를 바짝 쫓고 있고, 애스트로스 역시 카디널스와는 1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양 팀 모두 이번 시리즈로 지구 내에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자, 오늘 경기 특히 주목해야 될 선수들의 얼굴이 나오는군요. 메츠의 경우 이제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Kang, 마이크 피아자, 그리고 최근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프레스톤 윌슨입니다.]

[휴스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제프 배그웰, 크레이그 비지오, 그리고 랜스 버크만입니다.]

[자, 마운드에 휴스턴의 투수 로이 오스왈트 선수가 올라가는군요.]

[카디널스의 알버트 푸홀스 선수가 워낙에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는 탓에 조금 가려진 감이 있습니다만 올 시즌 웨이드 밀러에 이어 휴스턴의 2선발로 맹활약 중인 선수입니다. 남은 시즌에 따라서는 여전히 신인왕의 수상 가능성도 남아 있는 선수예요.]

[맞습니다. 14경기 9승 5패. 2.26의 평균자책점은 신인이라고 보기엔 너무 대단한 기록이거든요. 물론 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기용된 만큼 선발승은 아직 5승뿐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대단한 기록이에요.]

[몇몇 선수들 사이에서는 리그 최고의 커브라고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케빈 타파니 해설위원도 몇 년 전까지 리그에서 손꼽히는 커브볼러였는데 저 로이 오스왈트 선수의 커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몹시 훌륭한 커브입니다. 궤적, 낙폭 어느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어요. 다만······.]

[다만?]

[제가 상대해본 메츠의 타자들은 어지간한 공으로는 봉쇄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습니다만 그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에 약해지기 보다는 더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은 타자들이거든요. 로이 오스왈트 선수도 오늘은 조금 많이 긴장해야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프로에서 뛰고 있는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혀를 내둘렀던 로이 오스왈트의 초구가 리키 헨더슨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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