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25화 (125/210)

# 125화.

8월 그리고...(3)

로이 오스왈트는 좋은 투수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를 상대하는 우리들은 매우 좋은 타자들이었다.

‘밋밋해.’

3회 초. 나의 두 번째 타석. 오스왈트의 커브가 날아들었다. 나쁘지 않은 공이다. 하지만 마음이 꺾인 탓일까? 1회 초 보여주던 그 자신만만함과 날카로움은 보이지 않았다. 홈플레이트에 당도하기 한참 전부터 변화를 보이는 밋밋한 커브를 향해 내가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딱!!

묵직한 느낌. 누런 공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볼 것도 없다. 홈런이다.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공!! 홈런!! 홈런입니다.]

[3회 초, 노아웃, 주자 1루. 3:0으로 앞서가는 상황. 메츠의 Kang이 2점 포를 쏘아 올립니다.]

[1회 석점을 내주며 비틀거렸던 오스왈트 선수. 2회를 삼자범퇴로 틀어막으며 다시 잘 추스르나 싶었는데, 3회 곧바로 2점 홈런을 내주는군요.]

[딱히 공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나쁜 게 있었다면 지금 타석에 선 타자가 Kang이라는 점이죠.]

[솔직히 저 선수 우투수로는 정말 견적이 안 나오는 타자 중 하나입니다. 같은 지구에 애틀랜타라는 터무니없는 선발진을 보유한 팀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타격 스탯에서 조금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올 시즌 타율이 0.327로 내셔널리그 4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내셔널리그 투수 중에서 자기 평균성적보다 좋은 상대전적을 기록하고 있는 투수가 몇 되지가 않아요.]

[아, 버트 후튼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올라갑니다.]

마운드의 오스왈트가 고개를 젓는다. 두들겨 맞고 두려워하고 위축됐지만, 그는 여전히 마운드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녀석이네.’

미래는 똑같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녀석이 페드로 같은 괴물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녀석은 본래의 역사처럼 메이저에서 끝까지 버티는 투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들을 가호하는 성격 나쁜 신은 욕심 많고 자기애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자들을 좋아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따악!!

[프레스톤 윌슨!! 연타석 홈런!! 1회 초에 이어 두 번째 2점포입니다. 점수는 7:0.]

[시즌 31호 홈런입니다. 와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이 선수도 이 추세대로라면 어쩌면 60홈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글쎄요, 단순 계산으로도 시즌 56홈런 페이스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더운 여름 하반기를 거치다 보면 페이스는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윌슨선수같은 경우도 이번 시즌 1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에 출장했거든요. 이제 풀타임 3년 차 선수인만큼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긴 조금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아, 휴스턴, 버트 후튼 투수코치가 두 번째로 마운드에 올라갑니다. 이건 강판이네요.]

[사실 조금 강판 시점이 늦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Kang에게 홈런을 허용했을 때는 둘째치고 피아자에게 단타를 허용한 시점에서 빨리 움직였어야 했어요. 물론 투수야 당연히 고개를 젓습니다만 애초에 마운드에서 내려올래? 물어봤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선발투수는 드물거든요.]

마침내 오스왈트가 마운드를 내려왔다. 자괴감, 좌절, 실망 복잡한 감정들이 녀석의 얼굴에 가득하다. 뭐 자신만만한 루키라면 저런 감정은 한 번씩 맛보는 법이다. 나 역시 98년 애틀랜타의 투수들에게 몹시 충분하게 맛봤던 감정들이다.

‘호, 저 놈 봐라?’

그리고 그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나를 보는 녀석의 눈에는 패배감과 좌절감 이상의 호승심이 감돌고 있다. 재밌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향해 웃어 주었다. 이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진짜 메이저리그를 알게 된 루키에게 보내는 축하였다.

‘아!!’

그리고 그 순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98년 나를 바라보며 웃어줬던 투수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말이다.

***

이리저리 헝크러진 머리. 시뻘겋게 핏발 선 눈동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기자 랜스 윌리엄스의 이마에 굵은 세로 주름이 잡혔다.

“이 개자식들!! 또 이 지랄이야.”

“참아. 어디 하루 이틀이야? 자기들 업계 내부의 일이라 이거겠지.”

마크 페이나루가 분통을 터트리는 동료를 말린다. 벌써 삼 년째였다. 처음에는 솔깃했던 편집장 콩테조차도 이제는 그들을 회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반칙은 광범위했고 그것은 특정 분야를 넘어 미국의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있었다.

하지만 그림자 속 감춰진 그들의 적은 강력했고 고작 지역 신문의 기자에 불과한 랜스와 마크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일단 후보군을 다시 정리해보자고. 그리고 밀착취재를 하다보면 분명 걸려들거야.”

“휴, 하지만 자이언츠의 보안은 너무 철저해. 이건 도무지 뚫을 수가 없는걸.”

“그렇다면 자이언츠 다음으로 의심이 가는 팀은 어때?”

“메츠?”

“어, 거긴 자이언츠보다 더 광범위하잖아. 조금 더 방만하게 하고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하지만 무슨 수로 우리가 뉴욕까지 가서 취재하겠어.”

마크의 이야기에 랜스가 웃었다.

“이번에 3일간 원정 경기를 오잖아. 거기서 한 번 잡아보는 거지.”

“걔들이 잘도 원정에서 약을 빨겠다. 알잖아 주기가 우리 생각보다 긴 거. 그런 위험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아니야. 솔직히 지금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하는 짓을 보면 사실상 방조에 가까워. 의외로 공공연하게 빨지도 몰라.”

랜스의 이야기에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몰릴대로 몰려있다는 사실을.

“휴,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힘 내라고 친구!! 우리는 이제 거의 다 온거야. 정말 마지막 하나. 딱 그 하나만 잡아내면 끝나.”

“그 마지막 하나가 문제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누굴 생각하고 있어?”

랜스가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친구 그리고 이 친구. 이 친구는 다른 선수들이랑 다르게 언론에 노출도 자주 되고 행적도 비교적 뚜렷해. 그러니까 잡아내기 비교적 수월할 거야. 게다가 전국적으로 인지도도 최상급이라서 후폭풍도 어마어마할 테고. 이 친구 하나만 터트리면 이건 무조건 연쇄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어. 아마 연방 정부에서도 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걸?”

“이쪽은?”

“너무 명확하게 몸이 커졌어. 솔직히 이쪽은 진짜 약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는데 이 녀석은 분명해. 무조건 약이야.”

책상 위에는 진호와 프레스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

농구에 마이클 조던이 있다면 야구에는 베이브 루스가 있었다. 1920년대 야구의 역사를 바꿔버린 야구의 신. 그리고 2001년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신을 목격하고 있었다.

배리 본즈.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경이로운 기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떨쳐오던 천재가 오직 타격에만 집중했을 때 만들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록.

8월, 지금까지 102번의 경기에 출전한 그는 105개의 안타와 11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안타보다 많은 볼넷. 투수들이 그에게 1루를 그냥 내주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만든 105개의 안타 중 절반에 가까운 48개는 홈런이었으니 말이다.

0.313/0.490/0.824.

시즌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페이스. 리그에서 두 번째로 홈런을 많이 친 왕년의 홈런왕 새미 소사보다 무려 11개나 많은 홈런을 기록한 놀라운 타자가 자신들을 환호하는 수많은 관중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아저씨는 지치지도 않는 건가?”

“그러게나 말이다.”

그를 보는 나의 눈빛이 싸했다. 만약 그가 약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 환호가 향할 곳은 프레스톤, 혹은 나였을 것이다. 야구는 약 6개월 162경기를 치르는 매우 터프한 종목이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배리 본즈의 몸은 아마 시즌 초반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약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반칙이지만 그 중 가장 큰 반칙은 바로 저 회복력에 있었으니 말이다.

단일 시즌을 기준으로 가장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준 타자는 1921년의 베이브 루스, 1923년의 베이브 루스, 그리고 1920년의 베이브 루스 순이다. 그나마 그 꽁무니라도 따라가는 타자는 1927년의 루 게릭, 그리고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올해 저 야구의 천재는 약의 힘을 빌려 야구의 신이 기록한 가장 위대한 기록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대 뉴욕 메츠의 1차전 경기. 올 시즌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는 두 팀의 경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기대가 되는 경기입니다. 올시즌 두 팀의 맞대결은 처음이죠?]

[네, 같은 내셔널리그인 만큼 그래도 여섯 번의 경기가 잡혀있는데 신기하리만큼 시합이 하반기에 몰려있어요.]

[오늘 경기, 그리고 이번 시리즈는 어떻게 보십니까?]

[음, 두 팀 모두 최근 10경기에서 8승 2패로 대단한 기세를 타고 있습니다. 특히 배리 본즈 선수의 경우 너무 대단해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평생의 자랑으로 생각하신 것이 1921년의 베이브 루스를 직접 본 일이셨는데 저도 비슷한 자랑거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2001년의 배리 본즈를 보고 있습니다.]

[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배리 본즈 선수의 기세가 대단하긴 대단합니다. 아, 지금 화면 나가고 있네요. 지금 AT&T 파크 우측 담장 너머 맥코비 만에 가득한 요트들이 보이십니까? 저게 모두 배리 본즈 선수의 스플래시 히트를 건지기 위한 팬들이에요.]

[솔직히 저도 지금 당장 저기 요트를 몰고 나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올해의 배리 본즈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역사 그 자체에요.]

[워워, 두 분 모두 진정하시죠. 물론 배리 본즈 선수가 대단하긴 합니다만 사실 뉴욕 메츠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 저기 Kang 선수를 보고 있자면 젊은 시절 배리 본즈 선수, 아니 그 이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시즌 110번째 경기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36홈런 42도루를 기록 중입니다. 배리 본즈 선수의 홈런 신기록도 신기록이지만 어쩌면 Kang선수도 지금까지 아무도 기록하지 못했던 50-50을 기록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프레스톤 윌슨 선수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새미 소사 선수와 홈런 숫자가 고작 1개 차이에요.]

[맞습니다. 솔직히 배리 본즈 선수의 압도적인 홈런 쇼에 조금 가려진 감이 있긴 합니다만 지금 Kang 선수가 만들어가고 있는 기록도 정말 어마어마한 기록이에요. 다만 아쉬운 점은 최근 몇 경기 조금 부진하고 있다는 점인데, 사실 배리 본즈 선수와 다르게 Kang 선수 같은 경우 올 시즌 결장한 경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8월이에요. 선수도 슬슬 지칠 시기죠.]

[게다가 팀과 팀의 전력으로 보자면 사실 메츠가 자이언츠에 비해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타선의 힘이야 엇비슷하다고 치더라도 투수진이 메츠쪽이 압도적으로 좋거든요. 제이슨 슈미트, 알 라이터, 케빈 어피어로 이어지는 메츠의 트로이카는 내셔널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선발 라인업입니다. 반면 자이언츠의 경우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러스 오르티즈 선수도 3점 중반대에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평균자책점 5점 전후의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 마운드에 커크 루이터 선수가 올라오는군요. 경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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