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8월 그리고...(6)
-강진호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시즌 38호 홈런 기록!!-
-0.321/0.431/0.667. 38홈런 42도루. 역대급으로 향해가는 강진호의 놀라운 페이스-
-강진호!! 팀 동료 프레스톤 윌슨과 함께 홈런 리그 공동 3위-
-배리 본즈의 50번째 홈런을 훔쳐내는 강진호의 화려한 수비!!-
-배리 본즈 ‘그것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천재다.’-
-올 시즌 팀 내에서 유일하게 결장이 없는 강진호의 대활약!! 메츠는 지구 2위 팀 브레이브스와 1승 차이를 유지 중-
‘요즘 조금 잠잠하나 싶더니만.’
파멜라와의 결별 이후 급증했던 파파라치는 일 년 간의 시즌을 치르는 동안 차츰차츰 떨어져 나갔고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뉴욕, 나의 집 근처에서 가끔 보이는 정도였다.
“프레스톤. 저기.”
“뭔데? 아, 또 파파라치야?”
“어, 그런 것 같아.”
나름대로 잘 숨긴다고 숨긴 것 같았지만 뉴욕의 지독한 파파라치 놈들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어설픈 모양새였다. 기껏해야 장당 100달러도 되지 않는 잔챙이 놈들이 분명했다.
‘너 지금 LA쪽 아니야? 설마 여기도 하나 또 만든 거야?’
“목소리는 갑자기 왜 낮추고 그래.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생각 없이 들러붙는 것 같네. 뭐 그냥 조용히 밥이나 먹고 들어가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하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더 끈질겼다. 어설픈 주제에 묘하게 끈기는 있다고 해야 할까? 프레스톤, 그리고 가리비아와 함께 이동한 체육관까지 녀석들이 따라붙었다. 뭐 간단하게 밥먹는 것을 따라다니는거야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운동하는 장면은 다르다. 게다가 운동 중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효율적으로도 좋지 못했다.
“후, 내가 처리하고 올게.”
“아니지. 얼굴 알려진 너희들이 나서는 것보다 내가 나서는 편이 훨씬 나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가리비아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어째 파파라치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보통 파파라치 놈들은 뻔뻔하기 이를데가 없어서 자신들의 도촬을 사람들의 알권리 충족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녀석들 뭔가 쭈뻣쭈뻣 가리비아를 피하려고 한다.
‘파파라치가 아닌 건가?’
***
“아, 오해입니다. 저희 그런 사람 아니고. 여기. 명함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아 지역지 기자시구나. 그런데 크로니클의 기자시라면 구단 쪽에 인터뷰 요청 하시면 알아서 일정 조정해줄 텐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따라다니시는 건 곤란하죠.”
“아, 그게 사실 저 선수들이 아니라 당신을 따라다닌 겁니다.”
“네? 저를요?”
가리비아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올 시즌 메츠에서 가장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두 선수의 개인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인터뷰 가능할가요?”
예상치 못한 제안. 하지만 가리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양합니다. 저 친구들이야 유명세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전 유명해지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가리비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대학 생활, 그리고 대학원 생활. 자신의 플랜에 따라 몸을 만든 두 스포츠 선수의 성공적인 1년까지. 그는 자신이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이렇게 쥐새끼처럼 몰래 찾아온 기자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가리비아의 거절에 랜스와 마크는 확신했다.
‘역시 수상하다.’
‘드러그 디자이너가 분명해.’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트레이너가 자신을 홍보할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한다?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미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경기력향상 약물을 공급하는 발코와의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다. 랜스와 마크가 조금 더 치밀하게 그를 추적하겠다 결심하던 그 순간.
“안녕하세요.”
진호가 말을 건네왔다.
***
가리비아와 말을 섞고 있는 두 파파라치가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2년 간 지독하게 많은 파파라치들이 나를 따라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찝찝했다. 대체 왜.
‘아!!’
저들은 마크 파이나와 랜스 윌리엄스였다. 발코 스캔들의 시작. 모두가 쉬쉬하던 이야기를 표면으로 끌어올렸던 기자들. Game of Shadow의 저자들이다. 그들이 나와 프레스톤을 추적한다면 그 이유는?
‘맙소사. 설마 우리를 약물 복용자로 의심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빅터 콘테를 가장 열심히 추적하고 있어야 할 이 두 사람이 우리를 추적하는 것은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구체적으로 누가 약물을 복용했는지, 혹은 누가 어떤식으로 무얼 했는지를 이야기 해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저들이 원하는 것 역시 그런 것이 아니다. 약물 복용에 관한 것은 너무나도 뻔했고 중요한 것은 증거, 그리고 증인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그것을 밝히기란 지독하게 힘들었다.
‘분명 저들이 처음 유명해진 것은 CJ헌터를 통해서 매리언 존스의 약물복용에 관한 이슈를 터트리는 것 부터였지?’
이대로 둔다면 배리 본즈의 스캔들이 터지는 것은 앞으로 3년 후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주 약간의 흐름만 조작한다면? 야구계의 약물 스캔들 증거를 찾지 못한 저들이 육상영웅으로 선회하기 전에 야구쪽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면?
‘가능할지도.’
물론 스캔들이 터진다고 당장 약물 복용자들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맥과이어를 비롯한 선수들은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들을 믿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영향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티나지 않게.’
“안녕하세요.”
“어? 진호, 이 사람들 파파라치는 아니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기자분들이라는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그러네?”
“오, 가리비아씨 성공했네요.”
“성공은 무슨. 일단 거절했으니까 가서 운동이나 하자고.”
“응? 왜요. 모처럼 유명해질 기회인데. 어차피 20~30분 정도 천천히 운동 시작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기자님들 인터뷰 혹시 오래 걸리나요?”
나의 질문에 마크와 랜스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안색을 바로 한 랜스 윌리엄스가 답했다.
“아뇨, 1, 20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러면 뭐 인터뷰 좀 해드리자고. 가리비아씨도 이제 좀 유명해져야죠. 아, 기자님들 혹시 저랑 프레스톤의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으세요?”
“무, 물론 저희야 그래 주시면 고맙죠.”
“음, 그러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저기 카페로 가시죠.”
***
“이봐, 어쩔 생각이야. 인터뷰라니.”
“어쩔 수 없잖아. 저렇게 대담하게 나와버리는데. 인터뷰 하러 따라다닌다고 해놓고 인터뷰 해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하는 건 더 웃기잖아.”
“젠장, 설마 메츠에까지 소문이 퍼진건가?”
“그럴 리가. 아무리 이 바닥이 좁다고 해도 약물 하는 걸 그렇게 공공연하게 공유하진 않겠지. 그냥 오지랖이 넓은 성격인 거 아닐까?”
“그러려나? 그럼 이제 어쩌지? 슬쩍 건드려 볼까?”
“그랬다가 괜히 움츠러들면 어떻게 해. 아예 접촉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이미 기자들이 근처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아. 차라리 발코놈들이 메츠에도 손을 뻗고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젠장, 골치 아프게 됐네.”
***
카페로 가는 길, 가리비아가 나지막하게 물어왔다.
“무슨 생각이야.”
“뭐가요.”
“능청 떨지 말고. 훈련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인터뷰라니. 그것도 이런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인터뷰를.”
“에이, 가리비아 씨 유명해지는 인터뷰인데 내가 도와야죠.”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과연 가리비아답달까? 벌써부터 기자들과 떠들고 있는 프레스톤 녀석과는 다르다.
“그냥요. 뭐 저렇게 정열적으로 가리비아씨를 인터뷰하겠다는데 기특하잖아요.”
그 순간 앞서가는 기자들을 한번 흘겨본 가리비아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 녀석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어쩌면 정말 뭔가 다른 걸 노리는 걸지도 몰라.’
가리비아의 말에 내가 그냥 웃었다. 가리비아가 말한 그 다른 것이야 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우선 맥시코 UNAM 대학 출신이시던데 미국에 오시게 된 계기가 뭔가요?”
의례적인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들. 그들이 진짜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이미 짐작하고 있던 나였기에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중간 슬쩍 지나가는 듯 그들의 본론이 새어나왔다.
“스포츠 생리학과 영양학이라고 하시니 말인데, 저희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도 빅터 콘테라고 굉장히 유명한 분이 계신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거 제가 알아요. BALCO를 운영 중인 빅터 콘테씨 맞죠?”
갑작스러운 나의 대답에 마크 파이나가 눈을 번쩍인다.
“아, 알고 계신가 보군요.”
“네, 뭐 이름 정도는요. 이전에 오브리라고 그 분 전부인과 만나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재미난 이야기들을 좀 들었거든요.”
“재미난 이야기라면?”
“아, 뭐 별 건 아니에요. 그냥 이전까지는 양육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 허덕였는데 최근에는 제법 큰 돈을 번 것 같다는 이야기라던지, 아, 그 두 사람 사이에 잭이라고 귀여운 아이가 하나 있는데 양육권을 가지고 싶어 한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 별반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죠.”
대단한 이야기다. 물론 그들도 빅터 콘테가 경기력 향상 약물을 판매하는 것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 모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혼한 전처와 양육권에 관한 다툼이 있고, 양육권을 뺏기고 싶지 않은 전처는 빅터 콘테의 어떠한 약점이라도 불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다툼은 현재 시점에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빅터 콘테는 양육권을 되찾을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전처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법원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내년 말은 돼야 벌어질 일이다.
“아! 그렇군요. 그 사람에게 그런 가정사가 있었군요.”
별것 아닌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하는 마크 피아나. 하지만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그리고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랜스 윌리엄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여기서 달려나가고 싶은 기색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됐어.’
역시 오랜 시간 BALCO를 추적하고 마침내 그 결실을 맺는 기자들 답게 나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빅터 콘테의 전처인 오브리는 단순한 가정주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93년까지 BALCO를 함께 운영했던 사업가였다. 그녀만큼 BALCO의 사정과 빅터 콘테라는 인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 우리 가리비아씨가 잘되는 건 저도 환영할 일이죠. 언제든지 도움 필요하시면 구단 통해서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마크 피아나와 랜스 윌리엄스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지금부터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닐 것이 분명했다. 뭐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언제 결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