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33화 (133/210)

# 133화.

만약에(1)

-배리 본즈의 코치 그렉 앤더슨 깜짝 고백. ‘나의 고객이던 배리 본즈 99년 이후 금지된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

-배리 본즈 ‘언급할 가치 조차 없는 이야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코치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나는 언제든지 도핑 테스트에 응할 수 있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단독 보도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국내의 반향은 크지 않았다. 9.11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미국을 휩쓰는 중이다. 캘리포니아 일개 지역 신문의, 그것도 배리 본즈 본인도 아닌 그 코치의 이야기 따위가 힘을 발휘하긴 조금 힘들었다.

-강진호의 가장 큰 MVP 경쟁 상대. 배리 본즈. 금지 약물 복용 의혹!!-

-강진호 선수 99년에 이어 올해도 MVP를 수상할까?-

-배리 본즈가 복용한 PED(경기력 향상 약물)에 대해 알아보자.-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9.11 덕분에 난리가 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미국과 달리 대부분의 한국 국민에게 9.11은 경제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초반에는 혹시 그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유례없이 빨랐던 북한의 범행부인 성명과 이후 이어진 미국의 움직임에 그 불안감은 곧 해소됐다.

즉 대부분 한국인에게 9,11이란 옆집에 난 불에 불과했다. 반면 박찬호의 시즌 아웃 이후 스포츠 신문의 지분을 모조리 흡수해버린 강진호의 MVP경쟁에 관한 이야기는 옆집의 불 수준이 아닌 자기 일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진호 전문가 형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그가 가장 재밌게 하는 일은 다름 아닌 진호의 MVP수상 가능성에 관한 토론이었다.

<진지하게 강진호 MVP 가능성 어떻게 생각하나요?>

<에이, 저도 강진호 팬이긴 한데 솔직히 좀 어렵죠. 지금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작성하느니 마느니 하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이전에 마크 맥과이어도 전무후무한 70홈런 달성할 때 새미 소사한테 MVP 뺏겼잖아요.>

<그거야 빅맥은 그래도 홈런 빼고 다른 스탯은 인간적이기라도 했었잖아요, 그런데 배리 본즈 얜······.>

<졸지에 98 빅맥 인간적 스탯 돼버렸네. ㅋㅋ>

<근데 솔직히 올 시즌 배리 본즈 스탯이 좀 미치기는 했어요. 빅맥 홈런 신기록 때는 0.299/0.467/0.730이었잖아요. 근데 지금 배리 본즈는 0.319/0.500/0.843임. 게다가 빅맥은 폐급 일루수였는데 배리 본즈는 골글급 좌익수고요>

<전 그것도 그건데, 98년 새미 소사랑 우리 진호랑 스탯 차이도 좀 상당하다고 봅니다. 당장 새미 소사는 본즈랑 시즌 막판까지 홈런 경쟁했고, 타점이랑 득점은 둘 다 리그 1위였잖아요. 게다가 그 해에 세인트루이스는 포스트시즌에 못 나갔고 시카고 컵스는 포스트시즌에 나간 게 좀 컸죠.>

물론 일단 자국 선수를 띄우고 보는 스포츠 일간지와 다르게 메이저리그에 관해서 준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서는 강진호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대부분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래도 배리 본즈가 약이라던데 영향이 좀 있지 않을까요?>

<에이, 그거 그냥 배리 본즈한테 짤린 트레이너의 일방적인 주장이잖아요. 녹취록이라는 것도 트레이너만 등장하지 배리 본즈는 나오지도 않고요. 뭐, 우리 진호랑 배리 본즈랑 비슷비슷이라도 하면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두 사람은 스탯 차이가 좀 크죠.>

형석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물론 그도 역시 진호의 수상 확률이 극히 낮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의 재미는 역시 IF를 붙이는 것부터가 아니겠는가.

<근데 꼭 그렇게만 보기 힘든 것이 메츠는 이번 브레이브스랑 맞대결에서 승리해서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엄청 올라 간 데 반해서 자이언츠는 다이아몬드백스 못 이기면 답이 없는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와일드카드 기대하기에도 중부에 휴스턴이랑 카디널스가 워낙 무섭고요.>

<하긴 그건 그렇죠. 솔직히 본즈도 본즈인데 올 시즌은 랜디 존슨에 커트 실링. 그리고 우리 병규까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진짜 대단하죠.>

<뭐, 말씀하신 것처럼 메츠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자이언츠는 실패한다면 조금 가능성이 생기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email protected]홈런이랑 41홈런을 비비기는 좀 힘들죠. 전 올 시즌 본즈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고 해도 MVP 무조건 수상 할 거라고 봅니다.>

메츠의 포스트시즌 진출, 그리고 자이언츠의 실패라는 IF를 붙였음에도 반응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흠, 그렇다 이거지.”

형석이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

<에이, 본즈는 67호, 그리고 우리 진호는 41호인데 본즈만 [email protected]고 우리 진호는 41홈런으로 끝난다고 하는 건 좀 그렇죠. 게다가 본즈가 홈런 신기록이라면 우리 진호는 메이저에 유일한 두 번째 40-40 가입이잖아요. 그리고 본즈가 골글급 좌익수라고는 하지만 골글‘급’인거고 진호는 데뷔 이후 꾸준히 골글을 수상 중인 중견수고요.>

<뭐 경기 비율로 따지면 본즈는 남은 경기 전부 출장할 때 74홈런 페이스고, 진호는 45홈런 페이스이긴 하네요. 그래도 74홈런이랑 45홈런은 좀 차이가 있죠. 40-40이야 임팩트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74홈런에 비교하기엔 좀······. 게다가 알잖아요. 올 시즌 배리 본즈 포스. 내가 살아생전에 만루에 고의사구 받아내는 타자를 볼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진호가 이번 경기 이전까지 좀 빌빌거리다가 일주일 푹 쉬고 또 날아다니잖아요. 만약에 혹시라도 50홈런쯤 쳐서 50-50을 해버린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배리 본즈가 74홈런을 치더라도 좀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흠, 50-50이라.>

<네, 거기에 메츠는 포스트시즌 진출, 그리고 자이언츠는 실패한다면요.>

<전 윗분 말씀하신 대로 간다면 우리 진호가 MVP를 수상할 확률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저 정도면 배리 본즈의 찝찝한 추문도 좀 영향을 발휘하지 싶어요. 근데 솔직히 20경기도 안 남았는데 홈런을 9개나 더 치는 건······.>

<하긴 야구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요. 뭐 진호가 50홈런을 치지 못하더라도 배리 본즈가 70홈런 갱신만 못 해도 포스트시즌이 저렇게 되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고 봅니다.>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 작성 못 하고 포스트시즌도 진출 못 하고, 메츠는 포스트시즌 진출하면 전 진호 쪽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드디어 형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만약으로 범벅이 된 가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응원하는 타자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휴, 그나저나 진짜 진호가 이렇게 잘 해주면 좋겠는데.’

***

“마이크 오래간만이야.”

“오, 진호. 너 요즘 엄청 잘나가더라.”

콜로라도로의 원정경기. 작년 우리 팀에서 공을 던졌던 마이크 햄튼이 나를 반겼다. 함께 뛴 기간은 고작 1년이었지만 햄튼과 나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뭐, 장타를 몇 개씩 플라이아웃으로 둔갑시켜주는 외야수와 친해지기 싫어하는 투수는 드문 법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조금 그런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

“크, 이 잘난 척. 하지만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네. 네가 이렇게 좀 길게 쉬기 전에 비실비실 할 때 만났어야 하는 건데.”

“이거 누가 들으면 네가 오늘 당장 등판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어차피 이틀 후에 등판이면서.”

“오늘이 내 등판일이었으면 너랑 말도 안 섞었지.”

마이크 햄튼이 너스레를 떨었다. 작년 그가 보여줬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기본적으로 땅볼 유도형 투수인 그는 우리 메츠와 제법 잘 맞았다. 작년 레이 오도네즈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탓에 팀의 내야가 조금 느슨했음에도 말이다. 아마 오도네즈가 건재했다면 그의 평균자책점은 0.5점은 더 떨어지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작년 우리 팀에서 혁혁한 활약을 보였던 그는 올해 FA자격을 얻어 콜로라도 로키스와 8년 1억 2,100만 달러라는 크고 아름다운 계약을 맺었다. 솔직히 우리 팀에서 그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뭐 마이크 햄튼 자신도 우리 팀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정도 디퍼를 감수할 생각도 있다고 이야기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로키스가 제시한 8년 1억 2,100만 달러라는 금액은 너무나도 크고 아름다웠다. 우리 메츠의 경우 나와 피아자, 알 라이터 등의 고액연봉자로 인해 페이롤이 조금 빡빡한 편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 괜히 여기로 왔나 하는 생각도 좀 들더라.”

“메이저리그 최고액 FA 투수님이 갑자기 웬 약한 소리?”

“너도 알잖냐. 요즘 내 성적, 솔직히 내가 던지는 건 딱히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진짜 미치겠다. 땅볼을 유도하는데 죄다 장타로 연결되고. 하아, 게다가 로키스 외야가 좀 넓냐. 진짜 셰어 스타디움에 널 등지고 던지던 거랑 여기서 던지는 거랑 너무 차이 나더라.”

“뭐,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충분히 이해할만한 고민이었다. 재작년 휴스턴에서 2.90, 작년 메츠에서 2.97을 기록했던 햄튼이다. 하지만 그의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무려 5.11. 쿠어스 필드가 지극히 타자 친화적인 구장임을 고려하더라도 1억 2,100만 달러를 받는 투수의 성적으로는 확실히 초라한 성적이었다.

“진짜, 요즘 같아서는 그 최고액 투수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러워 미치겠다.”

“그래도 6월까진 괜찮았잖아. 솔직히 쿠어스 홈으로 쓰면서 2점대 투수가 나올 거라고는 너한테 1억 2,100만 달러 내준 콜로라도도 생각하지 못했을걸.”

“그러면 뭐하냐. 지금 5점대인데.”

불안감,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연신 토로하는 햄튼이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의 기량 자체는 건재했다. 6월 중순까지 쿠어스를 무대로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뭐, 6월 이후 급격히 무너진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크게 나쁘다고 보긴 힘들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너무 징징거리기만 했나?”

“징징은 무슨. 뭐 그게 미안하면 밥이나 제대로 사던지.”

“그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이래 봬도 메이저리그에서 제일 돈을 많이 받는 투수 아니냐.”

***

[놀랍습니다!! Kang, 본래 쿠어스에서 강한 타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놀랍네요.]

[시즌 43호 홈런. 두 경기 연속 홈런입니다.]

[이건 정말 승리를 확정 짓는 쐐기포 같습니다, 8회 초 7:5로 앞서던 메츠가 10:5까지 달아납니다.]

[방금은 정말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거든요. 그런데 이게 저렇게 넘어가네요.]

[어퍼 스윙으로 공을 높게 띄우는 Kang의 매커니즘 상 쿠어스처럼 공기저항이 낮은 곳이 아무래도 많이 유리하죠.]

[그것도 그렇지만 지난 일주일간의 휴식이 정말 보약이 된 것 같습니다. 애틀랜타와의 2차전 이후 오늘 경기까지 4경기. 20타석 18타수 9안타 3홈런 1이루타 7득점 13타점. 0.500/0.550/1.056. 그야말로 메츠를 강제로 승리시키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오늘까지 승리한다면 리그가 재개된 이후 4연승이다. 덕아웃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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