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37화 (137/210)

# 137화.

만약에(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점 차 아쉬운 패배!!-

-8회 말 프레스톤 윌슨의 역전 2점 홈런.-

-리키 헨더슨 2볼넷 멀티 출루 대활약!!-

-MVP는 나의 것!! 배리 본즈.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갱신!! 외야 담장 상단 추가 관중석을 직격 하는 대형 홈런!!-

-빈공에 시달리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3:1 패배. 뉴욕 메츠 포스트시즌 진출 매직넘버 2-

-강진호 시즌 48호 홈런 기록!! 이제 50-50까지는 2홈런 2도루뿐-

가리비아의 입에서 안도의 말이 흘러나왔다.

“다행이네.”

물론 진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즌이 정지되기 전 몇 경기에서 진호가 부진할 때에도 가리비아는 진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할 때 진호의 성공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가리비아가 볼 때 진호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재능보다 더 대단한 것은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지 않는 그 탐욕스럽고 단단한 정신이었다. 98년 봄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3시즌. 그는 단 한 순간도 가리비아 자신이 정해준 메뉴를 어긴 적이 없었다.

가리비아가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프레스톤의 활약이었다.

“겉으로 보기보다 여리고 약했지. 악착같이 훈련을 따라오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성공에 대한 욕심과 의욕보다는 남들을 더 신경 쓰는 타입이야.”

진호라는 라이벌을 동력으로 달려가는 열차. 그것이 프레스톤에 대한 가리비아의 평가였다. 시즌 중반 그의 페이스가 느려진 것은 진호와 비교해 자신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 막판 진호가 또다시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한 것은 진호 자신뿐 아니라 프레스톤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따르릉

시즌 막판 진호와 프레스톤의 마무리운동을 구상하던 가리비아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메츠의 단장 특별 보좌 프리드먼이라고 합니다. 가리비아 씨 맞으시죠? 혹시 오늘 시간 좀 괜찮으신가요?”

몇 번의 원정을 따라가는 동안 얼굴을 몇 번 부딪힌것에 불과한 젊은 청년. 프리드먼이 그 주인공이었다.

***

가리비아의 집 근처 작은 커피 하우스. 앞자리에 앉아있던 프리드먼의 질문에 가리비아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리그의 다른 선수들을 생각해보면.”

“비정상적인 형태입니다. 애초에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근력을 비롯한 각종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30대가 넘어가면 사람은 연평균 1%가량의 근손실이 발생하는 게 정상이에요. 그걸 막으려면 그 이상의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프로 선수에게, 그것도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야구 선수에게 그런 운동량은 무리입니다.”

공감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프리드먼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30대 중후반을 넘어서도, 심지어 마흔이 다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기량이 꺾이지 않는 선수들. 애초에 타자에게 절정의 시기는 30대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30 후반 40이 다 돼서도 쌩쌩한 선수들도 충분히 많지 않습니까.”

“그건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둘 중 하나요?”

“그 강해지는 운동강도를 감당할 만큼 터무니없이 강하게 타고 났던지, 아니면 젊었을 적 자신의 포텐셜을 최대치로 발휘하지 못한 선수겠죠.”

물론 두 가지 모두 흔치 않다. 애초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재능을 타고나 그것을 극한까지 갈고 닦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 가운데서 특별히 더 튼튼한 몸을 갖추는 것도, 혹은 자신의 포텐셜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메이저에 발을 붙이는 것도 모두 한 세대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사람들은 현대의 수많은 선수를 바라보며 현대 의학과 스포츠과학의 발전으로 선수들의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사실이 아니다. 발달 된 과학은 선수들을 한층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줬지만, 노화를 이겨낼 힘을 주지는 못한다.

‘100% 아나볼릭이야.’

스포츠계에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마법의 약. 테스트가 허술한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비교적 엄정한 테스트를 거치는 종목들까지 PED가 침투해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하여 검증을 피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대규모의 부정이 발각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선수가 마지막 실낱같은 동앗줄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미 영광스러운 이름을 갖고,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만한 선수가 커리어 연장을 위해 그런 멍청한 짓을 하도록 만들 생각은 없었다.

***

“빌어먹을!! 대체 그 망할 새끼는 무슨 생각으로.”

“자자, 일단 진정 하자고.”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젠장. 분명 입단속 철저하게 시키고 있다고 그랬잖아.”

“어차피 쓰레기 같은 트레이너 하나의 이야기야. 그런 류의 헛소문따위 이 바닥에 널리고 널렸다는 거 잘 알잖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애당초 사무국에서도 리그의 흥행을 위해 공공연하게 묵인하고 있는 것 잘 알잖아.”

배리 본즈는 최근 돌아가는 상황의 불합리함에 치가 떨렸다. 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던 시절, 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는 바로 배리 본즈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전 몇 년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오직 홈런, 그리고 홈런. 또 홈런뿐이었다. 얼마나 좋은 수비를 하는지, 혹은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스윙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보여주마. 너희들이 가장 보고 싶은 것을.’

커리어 통산 7번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 3번의 MVP. 8번의 올스타. 13년 통산 411홈런 445도루. 0.290/0.311/0.556. 호타준족의 화신. 윌리 메이스 이후 가장 완벽했던 야구선수 배리 본즈는 그렇게 약의 힘을 빌려 홈런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일단 약물검사는 걸릴 일이 없을 거야. 그 자식이 입을 함부로 놀리기는 했지만 발코에서 만든 이 연고는 기존의 검사는 확실히 피해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올림픽처럼 깐깐하게 테스트하는 곳도 통과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어쨌든 불안한 일은 불안한 일이니 당분간 중지하자고.”

“젠장.”

이미 수년간 득을 본 자식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만 문제가 되는 현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무국으로서도 밝혀져 봐야 좋을 건 없을 거야. 애초에 아나볼릭이 없었다면 94년 총파업 이후 망해가던 리그가 지금처럼 살아나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것 정도는 녀석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지금 관련된 선수들을 죄다 뽑아낸다면 아마 리그가 통째로 마비될걸?”

***

“내년 시즌부터 헨더슨씨의 몸관리를 담당하기로 했다고요?”

“어, 프리드먼인가? 그 너희 팀에 직원이 처음에는 메츠의 트레이닝코치 자리를 제안하더라고.”

“지금 나랑 프레스톤을 담당하고 있으니 마이너 코치 자리를 제안한 건 아닐 테고, 엄청 좋은 제안 아니에요? 그거?”

“그렇기는 한데, 아직 그렇게 많은 숫자를 동시에 담당하는 건 해본 적도 없고, 좀 부담스러워서. 그리고 그렇게 되면 올해처럼 너희들을 꼼꼼히 살피기도 힘들어질 테고 말이야.”

“음, 그렇군요. 그런데 헨더슨 씨의 개인 트레이너는 어떻게?”

“구단의 트레이닝 코치 자리를 거절했더니 갑자기 리키 헨더슨씨의 몸을 올해 너나 프레스톤처럼 확 좋게 만들어 줄 수 없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솔직하게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지. 그랬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어느 정도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요?”

가리비아가 잠시 뜸을 들이고 답했다.

“그가 너희들처럼 나의 지도를 완벽하게 따라온다면 98년, 그리고 99년 시즌 수준의 몸 상태는 가능하다고 했지. 그랬더니 바로 리키 헨더슨 선수와 연결해주더라고.”

“98년, 99년? 그런 게 가능해요?”

“솔직히 후년 시즌은 잘 모르겠는데, 내년 시즌 정도는 가능할 거야. 보니까 트레이너가 과도하게 몸을 콤팩트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더라고. 마흔이 넘은 타자에게 그런 몸은 조금 힘들지. 어차피 162경기 전부 출장하는 게 아닌 이상에서야 굳이 그런 몸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좋은 소식이었다. 98년 99년의 리키 헨더슨이라면 평균을 웃도는 좌익수임과 동시에 리그에서 손꼽을만한 1번 타자다.

‘아, 그런데 잠깐만.’

가리비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쩐지 나와 이야기 할 때는 헨더슨 씨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다음 날 반응은 나쁘지 않았던 것이 조금 이상했는데, 이거 설마 날 미끼로 던지고 따로 움직인 건가?’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프리드먼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팀의 직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보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 팀의 직원이라는 점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꼭두각시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바보로 보이는 건 곤란하지.’

자이언츠와의 2차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오늘 선발출장하는 투수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간단한 연습을 하고 속이 부대끼지 않을 간략한 식사까지 끝냈다. 원정 팀이 그라운드에서 연습을 하는 시간. 나의 눈에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프리드먼이 들어왔다.

“프리드먼 씨?”

“아, Jin-ho 선수. 고맙습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것 같아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프리드먼.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넘어가 주는 건 이번만입니다. 앞으로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세요.”

나의 말이 너무 기습적이었던 것일까? 프리드먼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멍청한 녀석이었다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제스쳐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현명했다. 그가 고개를 조금 더 깊숙하게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시리즈 2차전. 이곳은 셰이 스타디움입니다.]

[지난 1차전에 패배했던 자이언츠로서는 정말 단두대 매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다행스럽게 카디널스 역시 어제 경기에서 패배하며 승차는 1승 차를 유지 중입니다만 그래도 5경기 남은 상황에서 1경기 차이는 아슬아슬하거든요. 자이언츠가 오늘 경기를 패배하고 카디널스가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이제 포스트시즌 진출은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봐야합니다.]

[반면 메츠는 이제 브레이브스와 3경기의 승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은 자이언츠의 시리즈를 모두 승리한다면 브레이브스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포스트시즌 진출이 결정나는거에요.]

[다음 시리즈가 플로리다로의 원정인 만큼 메츠도 이왕이면 홈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짓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오늘 메츠의 선발은 릭 리드 올해를 끝으로 세 번째 FA죠? 올 시즌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발 투수입니다. 메츠가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최소 3선발, 어쩌면 2선발도 가능할 투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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