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46화 (146/210)

# 146화.

싹쓸이(7)

잘 맞은 타구가 시원하게 쉐인 스펜서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아, 강진호 선수. 아쉽습니다.]

[쭉 뻗는 타구였는데 너무 우익수 정면이었어요.]

[강진호 선수의 플라이 아웃으로 이닝 종료됩니다. 점수는 여전히 0:0]

[아. 메츠 오늘 경기 참 답답하게 흘러가네요.]

6회 초 2아웃. 조지 포사다의 적시타에 알폰소 소리아노와 척 노블락이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안타를 제법 내주기는 했지만 꿋꿋하게 버티던 알 라이터였기에 아쉬운 실점이었다.

[메츠 결국 점수를 내주고 맙니다.]

[지금 불펜이 움직이는 것 같죠.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선택입니다. 알 라이터 선수가 잘 버티고는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구위는 그리 좋지 못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 2점밖에 내주지 않은 것도 여러 가지로 행운이 따른 결과라고 봐야 할 겁니다.]

6회 초, 알 라이터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5.2이닝 2실점.

[6회 초, 2아웃 주자는 1루. 마운드에 옥타비오 도텔이 올라옵니다.]

[올 시즌 셋업맨으로 팀의 8회를 든든하게 지켜줬던 옥타비오 도텔 선수. 본래 메츠에서 선발로 키우려던 자원이었는데 사실 마이너 시절 기대치에 비하면 성장이 매우 더뎠거든요. 하지만 불펜으로의 전환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알 라이터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이는 옥타비오 도텔. 올 시즌 우리 팀의 마무리인 아르만도 베니테즈와 함께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준 친구였다. 다른 팀이었다면 충분히 마무리투수로도 활용 가능했을 수준의 성적. 옥타비오의 97마일 포심과 78마일 체인지업이 양키스의 5번 타자 쉐인 스펜서를 돌려 세웠다.

그리고 6회 말. 마운드에는 여전히 로저 클레멘스가 올라왔다. 이미 80개가 넘는 공을 뿌렸음에도 구속과 구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뻐엉

97마일의 막강한 포심 패스트볼이 미트를 꿰뚫었다.

“스트라잌!! 아웃!!”

[아, 타석에 9번 타자 옥타비오 도텔이 올라옵니다.]

[1점 차이인데 여기서 대타를 쓰지를 않네요. 대타카드를 써먹는 것보다 도텔 선수에게 1이닝을 더 맡기겠다는 판단이겠죠?]

[지금 조금 고전 중이긴 합니다만 메츠의 타선과 불펜 중에서 더 믿을만한 건 역시 타선 쪽이니깐요. 불펜의 핵심에게 조금 더 긴 이닝을 맡기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6회 말, 옥타비오가 타석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글러브를 챙겨 들었다.

‘다음 이닝, 헨더슨씨가 선두 타자로 나갈 때가 기회야.’

2:1 상황. 다음 이닝부터는 네 번째 타순이다. 비록 로저 클레멘스에게 고전하고 있지만 우리 팀의 타선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로저 클레멘스가 지난 경기에서는 두 번째 타순부터 보여줬던 슬라이더를 1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간간이 출루에 성공하며 1점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다음 이닝만 제대로 잘 막아 낸다.......면?

딱!!

[쳤습니다!! 옥타비오 도텔!! 로저 클레멘스의 몸쪽 포심을 그대로 잡아 당깁니다.]

[좌중간 외야 한복판에 떨어지는 안타!! 옥타비오 도텔 선수 무난하게 1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와, 대단합니다. 도텔 선수. 여기서 안타를 기록하네요.]

[이 선수 올 시즌 12번 타석에 들어가서 안타가 없었거든요. 지금 이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기록한 안타가 2001년 첫 안타입니다.]

맙소사, 기대도 하지 않았던 옥타비오의 안타. 유일하게 침착한 것은 마치 내가 다 예상하고 옥타비오를 마운드에 올린 것 이라 표정으로 주장하고 있는 발렌타인 감독뿐. 안타를 쳐낸 옥타비오도 타석에서 대기하던 헨더슨도 공을 던진 로저 클레멘스도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역시 로저 클레멘스는 노련했다. 잠깐 흔들렸던 자신을 추스르고 리키 헨더슨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우악스럽게 리키 헨더슨을 몰아붙이는 강속구. 나이 차이는 고작 3년 6개월이었지만 약물을 통해 전성기의 기량을 강제로 유지 중인 로저 클레멘스와 자연스럽게 늙어간 리키 헨더슨의 차이는 컸다. 헨더슨의 배트 스피드가 로켓맨의 속구를 감당하지 못했다.

딱!!

하지만 그럼에도 리키는 리키였다. 무려 9개. 끈질기게 로저 클레멘스를 물고 늘어진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와도 같은 승부. 파울이 조금만 높게 떠올라도 그대로 플라이아웃이 될 것 같은 상황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로저 클레멘스가 존 복판으로 공을 뿌렸다. 깊숙하게 몸을 숙이고 있던 리키 헨더슨이 반쯤 돌리던 배트를 멈춰 세웠다.

뻐엉!!

슬라이더다. 아슬아슬하게 라인에 걸치는 슬라이더. 심판이 어떻게 판정을 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공이었다. 리키 헨더슨이 배트를 쥐고 타석에 가만히 서 있는다. 약 1초 가량의 정적. 심판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볼넷!! 볼넷입니다!! 리키 헨더슨 6회 말 2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볼넷을 얻어냅니다.]

[6회 말 2:1 상황. 2아웃에 주자 1, 2루. 타석에는 우리 강진호 선수가 들어옵니다.]

[오늘 경기 3타수 1안타. 강진호 선수. 지금까지는 항상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강진호가 뭔가를 보여줬었거든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그런 모습이 조금 부족했습니다만 그 모든 것이 바로 지금을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강진호 선수가 언제나 찬스에 강했거든요. 여기서 큰 거 한방이면 그대로 경기를 결정짓는 한방이 될 수 있어요.]

이미 몸은 충분히 풀린 상태. 타석에 들어가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양키스의 덕아웃이 조금 부산스럽다.

[아, 양키스. 지금 벤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 같은데요? 투수 교체 인가요?]

[중요한 경기에 상대는 지금 강진호거든요. 충분히 교체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마운드의 로켓맨이 강하게 고개를 휘젓는다. 안 그래도 험상궂은 인상이 한층 더 험상궂어 보인다. 약 20초의 시간. 마운드로 올라갔던 양키스의 코치가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마운드 위에는 여전히 로저 클레멘스가 남아있다.

[아, 일단 투수 교체 없이 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군요. 사실 지금 예비되어 있는 투수 누구를 투입하더라도 로저 클레멘스 선수보다 좋다고 확언하긴 힘들거든요. 로저 클레멘스 선수가 아직 지치질 않았어요. 구속이 여전히 98마일이 나오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이었다. 지금 나의 타이밍은 완벽하게 로저 클레멘스에게 맞춰져 있다. 앞선 세 번의 타석에서 안타는 하나뿐이었지만 삼진은 하나도 없었고 타구의 질은 모두 괜찮았다.

‘온다.’

마운드의 로저 클레멘스가 정지 자세에 들어갔다. 2루 주자인 옥타비오의 발은 그리 빠르지 않다. 단타로는 점수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후속 타자를 믿는 것도 좋지만 여기서는 전력을 다해 배트를 휘두른다.

딱!!

묵직한 무게감. 98마일짜리 무거운 속구가 나의 배트를 직격했다. 하지만 나의 배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천, 수만 번 연습했던 그대로 이상적인 궤적을 그리는 배트가 누런 공을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쳤습니다!! 강진호!! 로저 클레멘스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 칩니다!!]

[큼지막한 타구, 홈런!! 홈런입니다. 6회 말 2아웃, 2:1 상황을 뒤집는 역전 쓰리런!! 우리 강진호가 월드 시리즈 6차전 역전포를 쏘아올립니다.]

[이겁니다. 이게 바로 강진호거든요. 언제나 가장 극적인 순간에 꼭 이렇게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로 앞까지 당겨오는 강진호의 큼지막한 석 점 포. 지금 강진호 선수가 홈플레이트로 들어옵니다.]

홈플레이트 근처는 이미 덕아웃에서 뛰어나온 동료들로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이미 월드시리즈 반지라도 손에 낀 것 같은 분위기. 뭐 여기서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옥타비오는 이미 덕아웃 구석에서 조용히 어깨를 데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 메츠 이제 침착해야 합니다. 남은 3이닝 침착하게 잘 막아내기만 하면 그대로 이기는 거예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올 시즌 옥타비오 도텔 선수와 아르만도 베니테즈 선수 모두 평균자책점이 3점대 초반이거든요. 게다가 여차하면 메츠는 내일 선발로 예정된 케빈 어피어 선수까지 당겨쓸 수 있습니다.]

[뉴욕 메츠 이제 뜻밖의 변수만 조심하면 됩니다.]

양키스의 덕아웃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투수가 교체되고, 자신들의 공격 타이밍에 대타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옥타비오는 좋은 투수였고 아르만도는 그보다 조금 더 좋은 투수였다.

월드시리즈 6차전 4:2. 마침내 두 번째 반지가 나의 손가락에 끼워졌다.

***

-강진호 5타수 2안타 1홈런 대활약. 6회 말 상황을 뒤집는 석 점 포.-

-강진호 월드 시리즈 MVP 수상!!-

-리그 최고의 수비수 강진호!! 4년 연속 골드 글러브!!-

-커리어 최초의 실버 슬러거!! 올 시즌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였음을 증명한 강진호!!-

-74홈런 배리 본즈 ‘냉정하게 올 시즌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라.’-

“어떻게 생각해?”

“뭘?”

“MVP 말이야.”

“그거야 당연히 내 몫이지. 빌어먹을. 50-50이 대단하네, 뭐네 해도 74홈런이야. 74홈런. 도루 따위 홈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거 너도 잘 알잖아.”

배리 본즈의 날카로운 이야기에 버튼이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홈런갯수의 문제가 아닌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 그리고 약물 복용에 관한 구설수등이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에 지금 배리 본즈의 상태는 너무 예민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내가 400-400을 달성했을 때에는 아무도 신경도 안쓰더니, 그깟 50-50이 뭐라고.”

잠시 들고있던 덤벨을 내려놓은 배리 본즈가 중얼거렸다. 이제 MVP 발표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미 지난 90년 92년 93년 3번의 MVP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이 쓰일 대로 쓰여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 배리 본즈가 다시 묵직한 덤벨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전부 다 먹는 약이야. 그리고 약만 먹는다고 효과가 나오는것도 아니잖아. 이건 그냥 성능이 조금 좋은 보조제에 불과해.’

따르릉

그 순간 구석에 둔 배리 본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진호 1위 표 15장 2위 표 17장 363점으로 커리어 두 번째 MVP 수상.-

-배리 본즈 1위 표 17장 2위 표 13장. 352점. 아쉬운 MVP 2위.-

-배리 본즈에게 10위 표 한 장도 주지 않은 2명의 기자는?-

-텍사스 지역 기자 셸든 리 ‘정당하지 않은 선수에게 투표하고 싶지 않았다.’-

-배리 본즈 ‘이번 MVP 투표는 루머에 휘둘리는 머저리로 인해 생긴 메이저리그 최악의 실수.’-

-강진호 162경기 722타석 612타수 201안타(2루타 41개, 3루타 7개) 51홈런 50도루(13실패) 98볼넷 5사구 7희생플라이 141득점 124타점. 0.328/0.425/0.668.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WS MVP, NL MVP.-

***

“배리 본즈 선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러나주세요.”

“지난 01년 처음 의혹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꾸준히 관련 의혹을 부인해오셨는데,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이미 앤디 페티트 선수는 복용 사실을 인정했는데 여전히 사실을 인정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트레이너인 그렉 앤더슨 선수의 기록물도 발견됐습니다!!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번쩍거리는 사진기들 앞. 정장을 차려입은 배리 본즈가 입을 열었다.

“청문회를 통해 성실하게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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