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청문회 그 이후(1)
“나는 과거에 대해 말하고자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업고 있던 영웅 마크 맥과이어가 청문회에서 약물 복용에 관해 답하는 것을 거부했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그리고 그 순간 이미 청문회 질답에서 약물 복용을 강하게 부정한 새미 소사, 그리고 앞으로 질답이 남아있는 배리 본즈, 제이슨 지암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지금 저 자리에 서 있는 마크 맥과이어였다. 그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었고 거기에 대형 FA를 앞두고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디스카운트를 몸소 단행했던 과거가 더해졌다. 게다가 맥과이어는 마지막까지도 아름다웠다. 1년 1,500만 달러의 계약을 남기고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상황이 아니라며 흔쾌히 은퇴를 선택하며 말 했던 ‘내가 은퇴함으로서 남는 그 연봉으로 제이슨 지암비 같은 훌륭한 선수를 영입해 세인트루이스가 우승하기를 바란다.’라는 이야기는 세인트루이스 팬을 넘어 모든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지금 그랬던 미국의 영웅이 약물에 관해 답변을 거부했다. 앞서 약물 복용을 적극적으로 부인한 새미 소사,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청문회 자리에 올라올 배리 본즈나 제이슨 지암비의 말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과 FBI의 수사보고서가 단순한 헛소리가 아닌 신빙성 넘치는 증거자료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
-새미 소사, 배리 본즈, 제이슨 지암비 약물 복용 사실 적극 부인.-
-마크 맥과이어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다.’ 대답 회피? 사실상 복용 시인!!-
-모이세스 알루 ‘빌어먹을 약쟁이 놈들이 훔쳐간 내 MVP를 되찾고 싶다.’-
-제프 켄트 ‘난 배리 본즈 그 빌어먹을 자식의 얼굴 생긴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조명되는 강진호의 기록들!! 그가 없었다면 벌어졌을 일에 관하여-
-2002년의 MVP도 강진호여야 했다!!-
-재조명되는 강진호의 대기록. 98년 이후 약물 복용자들이 없었다면 실버슬러거 2개 이상 더 가능했을 것!!-
<솔직히, 저기서 조사받은 선수들만 약물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거 아님? 강진호도 뭐 약물 아니라고 확정된 건 아니잖아. 솔직히 강진호도 예전엔 비실비실했다는데 지금 몸 커져 있는 거 보면 약 엄청 빨았을 것 같은데,>
<근데 이 말도 좀 공감은 가는게 솔직히 동양인이 저렇게 몸 키우는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지. 여기 강진호 학창시절 사진보면 엄청 말랐음. 대충봐도 배리 본즈처럼 약으로 몸 불린 느낌임.>
<저거 빨면 발기부전이에요. 근데 강진호는 소문난 카사노바고요. 이정도면 논쟁 종결 아닌가요?>
<에이, 강진호 카사노바도 옛날이야기죠. 파멜라랑 결별하고 꽤 오래 여자 안 만난 기간 있었잖아요. 그리고 그 시기에 성적 대폭발했고요. 저건 누가 봐도 딱 그때 약물 시작한 거죠.>
<하지만 호세 칸세코도 강진호랑 데릭 지터는 절대 약물을 복용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거야 그 사람 생각이죠. 증거가 없잖아요.>
<아니, 잠깐 연애 안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앤 해서웨이랑 연애 시작했고 아직도 잘 만나고 있잖아요.>
<그거야, 걔가 무명일 때 만나기 시작해서 뭐 계약연애? 그런 거 하는 거 아니겠어요?>
<계약 연애라니, 진짜 소설도 너무 나간 거 아니에요?>
형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최근 들어 사이트에 점점 이상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툭툭 내뱉고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이들. 게다가 오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강진호 전문가인 형석이 보기에 정말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형석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 출간된 Game of Shadows 혹시 읽어 보신 분?>
<그게 뭔가요?>
<그게 뭐죠?>
<마크 파이나랑 랜스 윌리엄스 기억하시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배리 본즈 약물 복용 최초로 보도한 기자들. 그 기자들이 이번에 낸 책인데 거기 보면 강진호가 2001년 한참 잘하던 시기에 약물검사에 기꺼이 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난리난 선수들도 나름대로 다 테스트 했는데 통과되서 난리 난 거잖음. 기존 테스트로 검출이 잘 안 되는 방식들 썼다고 그러고.>
<그 책에 보면 당시 MLB 사무국이나 IOC쪽의 검사보다 더 엄격한 방식으로 했었고, 이번에 화제가 된 BALCO의 신약이 완벽하게 검출되는 형태로 검사를 진행했다고 해요. 미리 말하자면 최상위권 선수 중에서 프랭크 토마스랑 강진호 선수만 기꺼이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형석의 이야기에 드디어 녀석이 ‘아 몰랑. 내 말만 맞고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양 빼애액!!’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늘어난 유형의 인간들이다. 어차피 이정도 되면 이 녀석 말에 선동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올해 메츠가 좀 걱정인데.”
***
오마 미야나는 전임 단장인 스티브 필립스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더 능력 있는 남자였다. 99년 우승 이후 섣부른 움직임으로 팀의 케미를 완벽하게 망가트렸던 스티브와 다르게 그는 팀의 전체적인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약간의 자극만을 주는 형태로 팀을 운용했다. 그 결과 우리는 2002년과 2003년 연달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뉴욕 양키스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만이 기록해본 월드시리즈 3연패. 명실상부한 왕조의 건설이었다.
그리고 2004년.
오마 미야나 단장은 고령의 선수에게는 짧지만 제법 높은 금액의 재계약을 그리고 FA까지 1년이 남은 선수들 조차 유출시키지 않은 채 끝까지 않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선수들의 몸값은 올라갈 만큼 올라간 상황이었기에 시즌이 끝나고 그들을 모조리 잡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럼에도 월드시리즈 4연패라는 기록은 그런 자금적인 문제 정도는 일단 뒤로 미뤄둘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봐 프리드먼. 자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나도 충분히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게 최선이야.”
“물론 우리가 탱킹을 할 수 있는 구단이 아니란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강진호라는 터무니없는 선수가 있는 한 우리는 꾸준히 달려야 하는 구단이죠.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닙니다. 이렇게 어영부영 올해를 넘겨버리면 내년부터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이야기인가. 프리드먼, 4연패야. 4연패. 우린 지금 전설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단장님, 우린 양키스나 다저스가 아닙니다. 리빌딩 없이 달릴 수 있는 구단이 아니에요. 아니 심지어 저 양키스나 다저스조차도 현대 야구에서는 리빌딩 없이 달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04시즌 중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는 유례없는 극심한 혼란기를 맞이했다. 2002년 이후 29개 구단의 공동출자로 운영되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구단. 필리스와 마린스가 폭발했다. 30개 구단 전체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던 두 팀이 몇 년에 걸쳐 모아온 유망주들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메츠의 경우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만큼 작은 구단은 아니었지만, 양키스라는 전통의 강호가 뉴욕 마켓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리 크게 돈을 버는 구단은 아니었다. 월드 시리즈 3연패라는 전에 없는 업적을 일궜음에도 평균 관중 숫자는 리그 14위에 불과했다. 그것은 즉 기존의 고액연봉자들을 유지하고, 연봉협상자격을 얻는 선수들에게 섭섭하지 않은 수준의 연봉을 지불하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었지만 새롭게 시장에 나오는 괜찮은 선수를 수급하기에는 턱도 없는 규모라는 의미였다.
“지금에라도 리빌딩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답이 없어집니다.”
“브레이브스와 승차가 고작 3승에 불과해. 충분히 역전할 수 있어. 게다가 우리 선수들은 후반기로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는 것 잘 알고 있잖아.”
“단장님!!”
오마 미야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라고 해서 프리드먼의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야기가 항상 옳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그가 생각할 때 지금은 도박을 걸어볼 때였다. 항상 위대한 업적은 이런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만들어지는 법이었다.
‘끝이야.’
오마 미야나의 눈에 가득한 기이한 열기. 마침내 프리드먼이 그를 포기했다.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지난 몇 년간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그 현명한 단장이 아니었다. 같은 방식으로 거듭된 성공이 그를 경직된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마 4년 전, 그가 처음 만났던 오마 미야나라면 지금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팀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자.’
프리드먼이 04시즌 이후의 메츠를 그리기 시작했다.
***
“젠장, 역시 진즉에 은퇴했어야 해.”
“그 말도 이제 슬슬 지겹지 않으십니까?”
리키 헨더슨이 또 다시 투덜거린다. 지난 01년 은퇴를 입에 담았던 이후 어느새 햇수로 3년. 2년의 계약이 끝난 작년 말에도 헨더슨은 은퇴하지 않았다. 1년 150만 달러. 이제 한국 나이로 46살이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달리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한 손 가득히 반지를 끼고 은퇴하려는데 거기다가 하나를 더 끼워줘 버렸으니 이왕 낀 거 양손 가득히 껴볼 생각이었지.”
“아직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포기하기에는 많이 이릅니다.”
“어휴, 누가 캡틴 아니랄까봐. 아주 교과서 읽는 말을 하고 계시네. 그래도 어릴 땐 조금 더 귀여웠는데, 빌어먹을 피아자 자식. 그 자식이 물을 너무 들여놨어.”
리키 헨더슨이 연신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확실히 어렵긴 어려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충분히 해볼만한 시즌이었기에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조금만 더 전력보강이 있었더라면.’
팀에 여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8월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4연패. 1위 팀인 브레이브스와의 승차는 어느새 8승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시즌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이크가 부상으로 나가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작년 콜로라도에게 연봉보조를 받아가며 데리고 온 우리의 에이스 마이크 햄튼. 쿠어스에서 여러모로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녀석이었지만 클래스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고지대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며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녀석은 상당한 수준의 인저리 프론이 되어 있었다. 툭하면 생겨나는 부상. 올해도 녀석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해볼만하지 않았을까? 에이스라는 녀석은 단순히 중간중간 마운드에 올라와주는 것만으로도 팀의 기세를 북돋는 법이니 말이다.
-뉴욕 메츠, 04시즌 82승 60패.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