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캡틴(2)
작년 오랜 부상을 이겨내고 메츠의 선발진으로 합류했던 신종운이 팔짱을 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리고 강진호.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종운의 곁으로 데이비드 라이트가 다가왔다. 종운과는 상당한 나이 차이가 있는 데이비드 라이트였지만 초고속으로 콜업을 거듭했던 덕분에 부상으로 인해 콜업이 늦었졌던 종운과는 제법 긴 시간 같은 팀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다.
“몇 개나 칠 것 같냐?”
“여섯 개?”
종운이 지체 없이 답했다.
“우아, 너무 많이 잡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일주일이나 꾸준히 몸을 푼 선수랑 이제 막 캠프에 합류한 선수인데. 같은 데서 온 선수라고 너무 편드는 거 아니야?”
“편은 무슨. 그래서 넌 어떤데.”
“글쎄, 한, 세 개?”
종운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가 그러니까 아직도 마이너에서 빌빌거리는 거야.”
“어쭈, 나보다 고작 1년 먼저 빅리그 물 좀 마셨다고 너무 거만해진 거 아니야?”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는 거야?”
누군가가 둘 사이로 끼어 들어왔다. 재작년 확장 로스터로 데뷔해서 작년 내야 백업으로 빅리그에서 뛰었던 호세 레예스다. 데이비드보다 10개월 가깝게 어린 나이였지만 국제유망주로 입단한 덕분에 마이너 데뷔 자체는 데이비드보다 1년 빨랐던 내야 유망주. 스티브 필립스의 최고 작품이 강진호라면 오마 미야나의 최고 작품은 호세 레예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유지 중인 유망주. 올해 대거 물갈이된 내야의 한 자리를 노리는 녀석의 몸이 단단했다.
“너도 낄래? 저기 저거. 지금 난 세 개, 저기 종운은 여섯 개 불렀어.”
“그래? 그러면 제일 안목이 형편없는 머저리가 제시네에서 근사하게 저녁 쏘는 걸로 하자고.”
“아니, 내기는 좀.”
“아, 이럴 게 아니라. 저 친구도 데리고 와야겠네. 어이 제이슨!!”
방금 캠프에 합류한 주제에 대체 언제 친해진 것인지 호세 레예스가 제이슨 바틀렛을 불러왔다. 물론 바른 생활 사나이 데이비드 라이트는 내기라는 이야기에 난색을 표했지만 이미 기호지세다.
“흠 여섯 개와 세 개라. 아무리 봐도 여섯 개 쪽이 더 합리적이군.”
“그래? 잘됐네. 그러면 제이슨 너랑 데이빗이 세 개, 나와 종운이 여섯 개로 가자고. 지는 쪽이 제시네에서 제대로 한 턱 쏘는 거야.”
“끄응. 그래, 단 캠프도 시작됐으니 맥주는 한 잔씩만이야.”
“데이빗 넌 다 좋은데 남자가 참 쪼잔한게 탈이란 말이지.”
레예스가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비는 정위치를 가정하자고. 피차간에 우기는 건 없기로 하고.”
“O.K.”
안전망 뒤편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속구 슬라이더 체인지업 다양한 구종들을 상대로 오늘이 스프링 트레이닝 첫날이 아닌 것처럼 방망이를 휘두르는 강진호. 그의 배트가 연신 페드로의 공들을 뻥뻥 쳐낸다.
“저건 솔직히 내가 저자리 있었으면 잡는 공이지.”
“에이, 그건 아니지. 저건 전성기 오지 스미스가 서 있어도 안타야.”
“저 정도면 그래도 잡을만하지 않나?”
내야 유망주들인 세 선수가 티격거리는 사이 20개의 라이브 배팅이 끝났다. 하나의 홈런을 포함한 9개의 타격. 파울을 포함해 스트라이크는 오직 8개뿐이었다. 페드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의 첫날. 언제나처럼 마무리는 제시네에서 마시는 한 잔의 맥주였다. 펍의 마스터가 직접 만든 시원한 밀맥주를 벌컥이던 프레스톤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호. 저기 우리 애송이들 아니야?”
“어디?”
프레스톤이 가리킨 곳에는 상당히 기묘한 조합의 4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데이비드 라이트, 호세 레예스, 제이슨 바틀렛, 그리고 신종운. 뭐 종운이의 경우 애송이라고 하기에는 나와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네 사람 모두가 우리의 핵심유망주들임은 분명했다.
“내가 가서 여기로 합류하라고 할까?”
프레스톤이 반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프레스톤을 마이크 햄튼이 말렸다.
“지들 끼리 왔는데 그냥 내버려 둬. 지금 가서 끼어들면 눈치없다고 욕 먹는다.”
“아니, 그래도 같은 팀으로 단합을 해야지.”
“그 단합, 갈 때 계산이나 해주면 잘 될 테니 그냥 조용히 우리끼리 놀다 가자고.”
그러고 보니 프레스톤도 마이크도 그리고 옥타비오도 어느새 한국 나이로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들어온 저 친구들과는 10살 가까운 나이 차. 나와 피아자씨 이상의 나이 차. 충분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차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구석에 앉아있던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상당히 떨어진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제이슨, 솔직히 그건 누가 봐도 내야 안타였지.”
“아니. 누가 봐도 내야 땅볼이었다.”
“와, 이 자식 정말 우기는 것 하나는 세계 최고네. 이봐 종운. 네가 보기에도 그게 땅볼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무조건 내야 안타야. 뭐 발이 느린 선수면 모르겠는데, 우리 선배님 발이면 무조건 안타지.”
“아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건 100번 와도 100번 내야 땅볼이었다.”
“그건 네가 그 양반 달리는 걸 직접 못 봐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고.”
제이슨 바틀렛의 단언에 호세 레예스가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프레스톤이 입을 열었다.
“야, 쟤들 아까 너랑 페드로 승부했던 거 이야기 하는 것 맞지?”
“승부는 무슨 승부야. 그냥 라이브 배팅 좀 한 거 가지고.”
“대충 들어봐도 그 여덟 번째 내야로 흐른 공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네가 봤을 땐 어땠냐?”
“어떻긴 뭘 어때. 그냥 반반 정도 되는 거지.”
“반반? 누구 기준으로?”
나의 시선이 저 떨어진 곳에서 떠들어대는 애송이들에게 향했다.
“뭐야, 쟤들 기준으로 반반이라고? 흠, 뭐 하긴 레예스 저 녀석 수비가 가끔 불안해서 그렇지 괜찮기는 괜찮지.”
“거기다가 우리 1루에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왔잖아. 그 양반도 여기저기 삐그덕 대기는 해도 내야에서 나쁘지 않으니깐.”
옥타비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작년 삐거덕거리는 내야로 인해 제법 고생이 많았던 옥타비오에게 올해 구성될 우리의 내야진은 그야말로 축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올해는 좀 어떻게 생각해? 또 도전해볼 만한 것 같아?”
프레스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통산 다섯 번째 반지.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번에도 같았다.
“뭐야, 너 쟤들 어지간히 마음에 드나 보네?”
“뭐, 나쁘지 않잖아. 혹시 알아? 쟤들이 양키네 코어4처럼 우리들의 코어4가 되어줄지.”
“코어4는 개뿔. 솔직히 우리가 걔들보다 낫지 않냐? 뭐 여기 옥타비오가 좀 후달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후달리기는 누가 후달린다고 그래. 내가 기회가 좀 적어서 그랬지. 그리고 솔직히 뭐 여기 진호야 데릭보다 낫다고 쳐도 네가 포사다보다 괜찮은 타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모르긴 뭘 몰라. 연봉만 보더라도 내가 확실히 나은게 딱 증명되는구만.”
“어이고, 그 16년짜리 연봉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어느 선수가 8년 계약을 하면서 16년 분할로 받냐?”
“그 분할된 1년 금액이 네 녀석 2년 치거든?”
프레스톤과 옥타비오의 투닥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커져서일까? 저 멀리 있던 녀석들이 우릴 발견했다.
“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
그리고 그 중 나와 1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이상할 정도로 깍듯한 종운이 녀석이 재빨리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나머지 세 명이 다가왔다.
“Kang. 오늘 마르티네즈와의 라이브 배팅. 몇 할이나 쳤다고 생각합니까?”
“야!!”
데이비드 라이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호세 레예스.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건방지다기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다.
“어디 보자. 확실한 건 담장 넘어간 게 하나. 그리고 안타는 네 개정도 되겠네.”
나의 답변에 네 명의 애송이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타만 다섯 개는 될 텐데.”
“내야로 굴린 거 두 개. 그리고 외야로 뽑은 거 두 개. 합이 네 개 맞는데?”
“외야로 뽑은 게 왜 두 갭니까. Kang 지금 술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 혼란 온 거 아니에요?”
“야!! 레예스!! 선배한테 말이 너무 심하잖아.”
종운이가 레예스를 제지했다. 옥타비오와 프레스톤이 그 광경을 재밌게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비드 라이트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처럼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이슨 바틀렛이 입을 열었다.
“외야에 Kang 본인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하는 거군요.”
그의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으로 답했다.
***
“빌어먹을 꼰대 같으니.”
단장실. 프리드먼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그와 함께 있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향한 욕설이었다. 지난 스티브 필립스 시절부터 오마 미야나를 거쳐 올해까지 무려 10년째 감독을 연임하고 있는 발렌타인이다. 지난 오마 미야나때만 하더라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어려서 뭘 모르는 것 같다고?”
하지만 어린 프리드먼을 보는 그의 태도는 자신보다 한참 못한 애송이를 가르치는 태도였다. 뭐 그런 태도정도는 늙은이의 꼬장으로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명백하게 월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선수단의 구성.
그것은 오직 단장만의 오롯한 권리였다. 그리고 프리드먼은 자신이 그 역할을 제법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빌어먹을 꼰대는 그런 프리드먼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오마 단장님도 그렇지. 가실꺼면 저것까지 좀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가시지. 에휴. 정말 골치아프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발렌타인 감독의 계약이 올해로 만료되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인지도다. 지난 9년간 무려 네 번의 월드 시리즈를 들어 올린 감독. 그것이 대중이 바라보는 바비 발렌타인이었다. 프리드먼이 신뢰하는 자료에 따르면 감독이 팀의 승리에 미치는 영향은 플러스 마이너스 2승 정도. 물론 상당한 수치였다. 하지만 저 말은 아주 쓰레기같은 감독만 아니라면 리그 최고의 명장과 최대 2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바비 발렌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팀에 10승 이상의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요구였다.
“게다가 발렌타인 저 영감 요즘 영 맛이 간 것 같단 말이지.”
프리드먼이 생각할 때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공부였다. 명장의 감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현대의 감독에게 요구되는 것은 최신의 이론을 학습하고 그것을 현장에 적용시킬 수 있는 현명함이다. 하지만 바비 발렌타인은 지난 몇 번의 성공 속에서 새로운 이론을 학습하는 대신 자신의 경험을 더 신뢰하는 좋지 않은 형태로 발전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작년까지의 단장인 오마 미야나의 방식에는 딱 들어맞는 형태의 감독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변화에 맞춰갈 수 있는 관리자가 필요해.’
선수단의 구성을 얼추 끝낸 프리드먼의 시야가 감독, 그리고 코치진에게 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
라커룸, 가장 좋은 자리, 가장 넓은 라커. 피아자가 나를 부른다.
“진호, 올해는 네가 여길 써라.”
“네? 하지만 여긴.”
“감독님께는 따로 이야기 드릴 생각이다. 난 올해가 어쩌면 메츠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일지도 몰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야구에만 전념해보고 싶어.”
피아자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주장자리의 승계. 사실 지난 몇 년 피아자가 부상 혹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마다 그 비슷한 역할을 나눠받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피아자가 멀쩡히 팀에서 뛰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주장이라니. 이것은 매우 당황스러운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