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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52화 (152/210)

# 152화.

캡틴(3)

하지만 피아자의 나이와 계약 기간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내가 메츠라는 팀에서 쌓아 올리고 있는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내게 돌아올 직책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고맙긴요, 고맙기로 말하자면 애송이 시절부터 피아자 씨가 저에게 신경 써준 것들이 훨씬 고맙죠.”

“신경은 무슨. 내가 아니라 누구였더라도 그 정도는 다 해줬을 거야.”

나의 이야기에 피아자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누구나라고? 물론 그럴 리 없었다. 그는 경기 내적으로도 그리고 경기 외적으로도 정말 근사한 리더였다. 그런 리더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선수 인생에 매우 큰 행운이었다.

‘이제 내 차례야.’

그리고 05시즌. 이제 내가 받았던 그 행운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수혜자 중에 마이크 피아자 본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이었다.

***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편한 일이었다. 당장 금전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로울뿐더러 혹시 닥칠지도 모를 큼지막한 사건들을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듯 좋은 점들이 있다면 나쁜 점도 있는 법. 타석에서 맹타를 휘두르는 래스팅스 밀리지를 바라보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NPB에서 선수 생활을 끝냈던 그의 미래를 떠올렸다.

‘이런 망할,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내 마음대로 결정 내리지 않기로 해놓고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는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특히나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특히 선수의 성장은 물론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 외의 요소가 정말 크게 작용한다. 당장 저 래스팅스 밀리지만 하더라도 현재 데이비드 라이트보다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유망주였다. 다만 데이비드 라이트와 달리 워크 에씩에 문제가 있었던 탓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원인에는 피아자가 올해를 끝으로 팀을 떠나고 혼란에 빠졌던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크게 한몫을 했다. 만약 내가 곁에서 그를 다잡아준다면 우리는 리키 헨더슨의 뒤를 이어 외야를 지켜줄 훌륭한 타자를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불펜 구석에서 묵묵히 몸을 풀고 있는 마이크 펠프리처럼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던 선수도 나의 개입에 따라 충분히 더 좋은 커리어를 쌓게 될 확률이 있었다. 마치 오늘 3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칼같이 퇴근한 마이크 햄튼처럼 말이다.

물론 나의 개입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선수의 미래가 저런 사소한 일들로 좋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런 사소한 변화로 나빠질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어떤가.”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선수단 운영이나 경기 운용에 있어서 비교적 최신의 이론을 수용하는 그였지만 클럽하우스 위계나 감독의 권위에서만큼은 올드스쿨의 그것을 철저하게 따르는 타입이다. 그런 발렌타인이 내가 주장을 맡은 이후 부쩍 말을 자주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 내야에 나와 있는 선수들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팀의 가장 이상적인 내야진이었다. 1루에 노마 가르시아파라, 2루에 호세 레예스. 3루에 데이비드 라이트, 그리고 유격수로 제이슨 바틀렛까지. 나의 입에서 당연히 호의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펀치력은 작년만 못하겠지만, 내야의 수비의 단단함은 작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글쎄.”

발렌타인 감독이 턱을 매만진다.

“이제 막 컨버전한 일루수, 그리고 메이저 풀타임 1년 차의 애송이 내야수들이 지금 가장 유력한 주전 후보지? 물론 내야 수비가 운동능력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안정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되지 않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발렌타인 감독의 시선이 향한 곳은 라커룸이었다.

‘이런.’

의미는 뻔했다. 오늘 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던 미구엘 카이로와 마쓰이 가즈오. 작년 팀의 전천후 백업과 주전 이루수를 역임했던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미구엘 카이로의 경우 수비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타격이 상당히 부족하고 어깨가 조금 약하다는 흠이 있긴 했지만, 유격수까지도 그럭저럭 해낼 만큼 괜찮은 순발력을 갖췄다. 문제는 마쓰이 가즈오였다. 일본야구 역사상 전에 없는 수준의 유격수. 96년부터 03년까지의 NPB 기록은 유격수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대단한 기록이었다. 시애틀의 스즈키 이치로가 대성공을 거두는 것을 목격한 MLB의 전 구단이 침을 질질 흘리고 달려 들만한 유격수인 것이다.

우리 메츠 역시 연이은 부상으로 운동능력이 저하된 레이 오도네즈를 대신할 유격수로 그를 점찍었고 연평균 600만 달러라는 메이저 경험이 없는 타자에게 주는 것 치고는 커다란 금액으로 그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1년. 주전 유격수로 시즌을 시작했던 마쓰이 가즈오는 결국 레이 오도네즈에게 다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건네주고 이루수와 백업 유격수를 오가며 04시즌을 마감했다.

‘설마 마쓰이가 반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 마쓰이 가즈오의 04년 성적은 부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그의 실력이었다. 물론 그의 실링은 부족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그 실링을 채워 넣은 일본식의 수비방식이었다. 유격수를 볼만한 어깨와 운동능력은 타고났지만, 수비의 방식이 너무나도 일본야구의 방식이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백핸드로 커버하며 빠르게 아웃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정면으로 처리하는 포구습관은 0.1초가 다급한 내야에서 치명적인 악습관이었다. 그나마 그가 이루수로라도 뛸 수 있었던 것은 그 안 좋은 포구습관마저도 가려버릴 만큼 좋은 어깨 덕분이었다. 하지만 호세 레예스와 제이슨 바틀렛을 한 팀에 모아둔 상황에서 그를 굳이 이루수로 활용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보험에 불과했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보시죠. 어차피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은 많이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마쓰이가 갑자기 수비 습관을 바꿀 수도, 혹은 제이슨과 호세가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해 자신의 실링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의 대답에 발렌타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끝까지 보고 갈 생각인가?”

“네.”

그라운드 위 치열하기 짝이 없는 경기를 지켜본다. 조금 부족하지만, 정규시즌 메이저리거들의 경기보다 더 치열해 보이는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어떻게든 감독의 눈에 들어 40인에 혹은 25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 98년 웨인 커비의 부상으로 메이저에 콜업되고 깜짝 활약으로 메이저 25인을 보장받다시피 한 상황에서 첫 스프링 트레이닝을 치렀던 이번 인생의 강진호는 이해하기 힘든 사투였다. 하지만 이전 생애, 20대 후반까지 AAA리그에서 머무르며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감독의 눈에 띄어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강진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사투였다.

그리고 그런 사투 속에서 사투와는 무관한 한 사나이가 타석에 올라왔다. 데뷔 5년 차. 단 한 번도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가장 정상에 가까운 사나이라 평가받고 있는 카디널스의 중심선수. 알버트 푸홀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알버트 푸홀스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카디널스의 중심선수들이 모두 교체된 가운데 유일하게 세 번째 타석에 들어오는 알버트 푸홀스 선수입니다.]

01년 센세이션한 데뷔 이래 꾸준히 MVP에 필적하는 활약을 보였지만 나와 배리 본즈에게 막혀 단 한 번도 MVP를 획득하지 못했던 푸홀스는 2004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나와 약물 파동에 휩싸인 배리 본즈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MVP 획득에 실패했다.

‘저 자식도 참 운이 없긴 없어.’

시즌 중반 한창 기세를 올릴 때 심각해진 족저근막염의 통증. 그리고 역대급 플루크 시즌을 만들어낸 아드리안 벨트레의 활약 덕분이었다.

딱!!

타석의 푸홀스가 멋지게 배트를 휘둘렀다. 한껏 당겨친 타구가 2, 3루 간을 쏜살처럼 갈랐다. 빗맞은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하게 빠른 타구 속도. 모두가 안타를 확신하는 그 순간 21살의 유격수 제이슨 바틀렛이 몸을 날렸다. 바닥을 한번 강하게 찍고 날아드는 타구를 완벽하게 잡아낸 제이슨.

[메츠!! 메츠의 유격수 제이슨 바틀렛이 푸홀스의 타구를 잡아냅니다.]

[움직임이 굉장히 좋습니다. 훌륭한 다이빙 캐치!!]

푸홀스의 느린 발을 고려해도 2루까지 허용할지도 모르는 타구를 잡아낸 제이슨.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완벽하게 무너진 자세. 반쯤 드러누운 그 자세에서 그대로 상체만 반 바퀴 회전시킨 바틀렛이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제이슨 바틀렛!! 1루로!!]

[마이크 제이콥스!! 마이크 제이콥스!! 공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푸홀스 그대로 1루 돌아 2루로!! 2루에서!!]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아, 다이빙 캐치까지는 참 좋았는데 송구가 좋지 못했어요. 너무 높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도였어요. 제이슨 바틀렛, 멋진 수비. 그리고 멋진 어깨였습니다. 작년까지 메츠의 2, 3루 간을 지켜줬던 레이 오도네즈 선수의 전성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수비였어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무리가 아쉽기는 했지만, 저것은 매우 좋은 모습이었다. 저기서 송구를 포기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좋은 플레이를 하려고 하다 보면 실패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일종의 세금과 같다. 세금이 두려워 소득을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쯧.”

하지만 발렌타인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저래서 내야진은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걸세. 단타로 끝낼 것을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는 것으로 끝내다니.”

못마땅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 이상하다. 분명 발렌타인은 권위주의적이고 꼰대 정신이 가득하긴 하지만 그래도 야구를 보는 눈 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저런 적극적인 플레이에서 나오는 실수 한 두 번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인간은 아니다.

“아직 어린 친구라서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반사신경과 운동능력 그리고 어깨까지 모두 괜찮은 것 같은데요?”

“뭐 툴이야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하지만 아직 한참 더 다듬어야 할 친구야. 이럴 때일수록 베테랑들이 팀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 애송이는 도무지 베테랑의 중요성을 모르니 쯧쯧.”

애송이? 아, 설마? 그 순간 98년 내가 처음 메이저에 콜업됐을 때가 오버랩 됐다. 스티브 필립스와 바비 발렌타인의 힘 싸움 덕분에 며칠간 경기에 나가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

‘젠장.’

일단 분명한 것은 내가 그들의 싸움에 관여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나의 경기력, 그리고 선수단 내부의 화합에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프런트간의 다툼까지 끼어들 여력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다툼이 정당한 선수단 구성과 선수 개개인의 성장 방향에까지 영향을 주는 꼴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제이슨, 좋은 플레이였어.”

수비이닝을 끝내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제이슨 버틀렛. 바비 발렌타인이 그에게 헛소리하기 전 내가 먼저 그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제이슨 버틀렛이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의 빨개진 귀가 그가 나의 칭찬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

등 뒤, 발렌타인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상당히 못마땅한 눈빛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05년의 나는 98년의 나처럼 그가 못마땅하다고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7년의 세월. 단단하게 쌓아 올린 커리어가 굳건한 성벽처럼 나의 행동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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