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이름 값(2)
경기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이제 막 메이저에 발을 디딘 애송이들이 몇가지 부분에서 어버버하는 모습은 있었지만, 고작 그런 실수들이 승부를 가를 만큼 우리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뻥!!
“스트라잌!!”
[페드로!! 페드로 마르티네즈. 벌써 여덟 번째 삼진입니다.]
[작년에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즈. 하지만 역시 사이영 3회 수상자 다운 모습입니다.]
[사실 뉴욕 메츠가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4년 5,00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할 때는 정말 많은 비판이 있었거든요.]
[그렇습니다. 당장 작년 그렇게 혁혁한 활약을 했던 에드가르도 알폰조 선수를 미네소타로 보낸것도 연봉 절약을 위해서라는 평가가 있는 상황에서, 기량이 쇠퇴하는 것이 저렇게 뚜렷하게 보이는 투수에게 그런 거액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 페드로 선수의 공을 보면 그런 비판들은 전부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4월 초에 91마일이라뇨. 이 정도면 거의 전성기의 구속 아닌가요?]
[하하, 그건 조금 과장이 심한 것 같군요. 하지만 확실히 90마일도 채 나오지 않아 힘들어하던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히 나아진 모습입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정도 되는 선수가 이정도 구속만 나와준다면 메츠로서는 4년 5,000만 달러가 아까울것이 없죠. 사실 생각해보면 나이도 이제 막 33살. 우리 나라 나이로 35살에 불과하거든요.]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막강한 위력을 보이며 워싱턴의 타자들을 연신 돌려 세웠다. 보스턴에서 뚜렷하게 하향세를 보이던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놀라운 반전이었다. 뭐, 페드로의 나이가 이제 고작(?) 만 33세인 만큼 이런 반전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았다. 애초에 좀 던진다 하는 투수들이 죄다 40살까지 전성기의 강속구를 뻥뻥 던져대는 것이 요즘 세태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념해야될 사실은 그렇게 던진 투수들은 대부분 약빨 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정 투수인 페드로가 올 시즌 이렇게 반등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올해 비슷하게 2년만 던져 줘도 우리한텐 이득일 텐데 말이지.’
아마 에이징 커브 증세가 뚜렷한 선수에게 이런 큰 금액의 계약을 주는 것도 이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약물에 대한 감시와 징계가 철저해질수록 에이징 커브를 거슬러 반등하는 기적(?)은 점점 사그라들 테니 말이다.
“흐음.”
바비 발렌타인이 불편한 신음을 냈다. 지금 타석에 선 타자는 제이슨 바틀렛.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녀석이다.
‘이 인간은 정말 초지일관 쪼잔하네.’
과거 내가 처음 마이너에서 올라왔을 때, 자기 마음에 들던 선수가 아닌 나를 올렸다는 이유로 스티브와 대립하면서 그것을 단장인 스티브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나를 기용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던 바비 발렌타인이다. 지금 그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에드가르도라는 괜찮은 삼루수를 보내고 제이슨을 데리고 왔다는 점이었다. 그런 관계로 그가 두 번째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녀석은 에드가르도의 자리를 대신 하고 있는 데이비드 라이트였다.
물론 데이비드의 자리인 삼루수는 마땅히 데이비드와 경쟁할만한 선수가 없었기에 그것을 심각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았다. 미구엘 카이로가 괜찮은 내야 백업이기는 했지만 어깨가 약했던 만큼 3루를 보기엔 많이 부족했고, 마쓰이 카즈오의 경우 어깨나 수비는 괜찮았지만, 삼루수로 활용하기에는 타석에서의 활약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관계로 바비 발렌타인이 주목표로 삼은 것은 제이슨 바틀렛이었다. 뭐 시범경기에서 제이슨 바틀렛에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현재 주전 유격수로 써먹고 있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트집거리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마쓰이나 미구엘을 투입하겠다는 각오가 충만해 보였다.
[앞선 타석에서는 아쉬운 내야 땅볼로 물러났던 제이슨 바틀렛 선수. 이 선수가 미네소타 출신의 유망주죠?]
[네, 이번 윈터시즌에 에드가르도 선수를 보내고 받아온 선수입니다. 작년 확장 로스터 때 메이저에 데뷔해서 8경기 14타석 12타수 2안타 1볼넷 1삼진 희생번트 1개을 기록했군요.]
[샘플이 매우 적긴 합니다만 기록만 봐서는 에드가르도 선수와 맞트레이드할만한 선수는 아니라고 보입니다만.]
[아 물론 1:1 교환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트레이드는 메츠에서 페이롤을 확보하기 위한 트레이드였다는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아낀 돈이 프레스톤 윌슨 선수와 저 페드로 마르티네즈 선수를 영입하는 데 쓰였거든요. 물론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걸 보면 아시겠지만, 바틀렛 선수도 그리 나쁜 선수는 아닙니다.]
[하긴 작년 전천후 백업으로 활약한 미구엘 카이로 선수나 주전 유격수와 2루수를 오갔던 마쓰이 카즈오 선수를 벤치에 앉혀둔 걸 보면 메츠에서도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 제이슨 바틀렛 헛스윙 삼진!! 리반 에르난데스의 슬라이더에 방망이가 헛돌아갔습니다.]
[저 선수, 작년 AAA 성적이 0.331/0.415/0.472로 매우 훌륭한 선수인데 빅리그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군요.]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인 만큼 리그에 적응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세 번째 타석. 발렌타인이 움직였다.
[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아, 대타, 대타입니다. 유격수 제이슨 바틀렛을 대신해서 마쓰이 카즈오 선수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NPB의 영웅. 양키스로 간 고지라 마쓰이 히데키와 구분하기 위해 작은 마쓰이라고 불리는 선수죠? 작년 114경기 509타석 0.272/0.331/0.396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마쓰이 카즈오 선수입니다.]
[하지만 유격수 수비 부분에서는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이니만큼 이번 윈터 시즌을 통해 어떻게 보강이 됐을지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쓰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제2의 강진호. 역대급 5툴 플레이어라고까지 칭송받던 MLB 진출 시점의 기대치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마쓰이였다.
딱!!
[어?]
[너, 넘어갔습니다!! 마쓰이 가즈오. 솔로 홈런!! 7회 초, 6:2 상황 마쓰이 가즈오가 달아나는 솔로 홈런포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NPB 역사상 가장 뛰어난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던 마쓰이다. 이런 뜬금포가 터져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덕아웃에서 동료들이 달려나가 그를 축하했다.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마쓰이를 향해 바비 발렌타인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발렌타인이 경기 중에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이것 참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리고 7회 말, 워싱턴 내셔널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제이슨 버틀렛의 자리에 마쓰이가 섰다. 모자를 고쳐쓰며 살짝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마쓰이. 발렌타인이 하는 짓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쓰이가 짠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분명 메이저에서 뛸만한 재능을 타고 난 선수였다. 그가 잘못한 것이라면 단지 일본 고교야구와 NPB를 거치며 잘못된 수비 습관이 몸에 완벽하게 익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 잘못된 수비 습관이, 그 온화한 알 라이터가 인상을 쓸 만큼 개떡같다는 점 정도였다.
‘그래도 연습에서는 종종 그 개떡 같은 버릇을 버린 것 같던데. 실전에서는 어떨지.’
마운드의 페드로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작은 몸, 역동적인 자세. 하지만 다르다.
뻥!!
“스트라잌!!”
시원한 스트라이크. 전광판을 힐끔 바라봤다.
‘88.’
6회 말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구속이 이제는 88마일까지 내려왔다. 투수치고는 매우 작은 사이즈. 몸을 쥐어 짜내며 만드는 그 강속구를 100구 이상 던지기에 만 33세는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나의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딱!!
볼카운트 1-2 상황에서 나온 안타. 이루수의 키를 살짝 넘긴 안타에 선두 타자 크리스티안 구즈만이 1루를 밟았다. 그리고 구즈만의 뒤를 이어 타석에 호세 비드로. 작년 내셔널리그 이루수 실버 슬러거가 타석에 올라왔다. 매년 두 자릿수 홈런까지는 기대할만한 펀치력을 가진 교타자.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피칭이 신중해졌다.
[호세 비드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일곱 번째 공을 골라내며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노아웃에 주자 1,2루. 페드로 마르티네즈 선수 위기입니다.]
[지난 이닝부터 구속이 눈에 띄게 떨어졌거든요. 점수 차이가 제법 나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슬슬 투수교체를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 타석에는 호세 길렌 선수. 호세 길렌 선수가 들어섭니다.]
[저 선수도 이번에 유출됐던 03년의 실태 조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던 선수인데요. 앞으로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어쩌면 지난 기록이 말소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난 97년 데뷔 이후 02년까지 6년 동안 614경기 52홈런 0.260/0.305/0.398을 기록한 선수인데요. 03년과 04년 2년간 기록이 284경기 58홈런 0.302/0.355/0.530입니다. 뭐 타격에 갑자기 눈을 떴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확실히 찜찜한 구석이 있는 선수예요.]
[자, 페드로 마르티네즈 초구!!]
딱!!
[초구 빠른 타구!! 유격수 방향!!]
바닥을 강하게 찍은 타구가 2, 3루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3루 쪽에 살짝 가까운 위치. 마쓰이 가즈오가 빠르게 움직인다.
‘저 멍청한 자식이?’
하지만 그 움직임이 멍청했다. 백핸드로 공을 받아 그대로 3루와 1루 병살을 노릴 만한 강습타구를 굳이 더 뒤로 빠져가면서까지 정면으로 받으려던 마쓰이. 하지만 그것은 최악이 아니었다. 최악은 가즈오의 타구가 마쓰이가 정면으로 처리 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빠졌습니다!! 3루 주자!! 그대로 홈까지!! 홈에서!! 홈에서!!]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7회 말 노 아웃 주자 1, 3루. 점수는 이제 7:3 워싱턴 내셔널스가 1점을 따라붙습니다.]
[마쓰이 가즈오의 결정적인 실수. 아, 저 수비는 작년에도 몇몇 선수들에게 여러 차례 지적됐던 부분인데요. 특히 마이크 햄튼 선수 같은 경우는 공개적으로 비난까지 했던 부분이에요.]
[그대로 공을 잡으면 되는 상황에서 굳이 정면으로 공을 처리하려고 했거든요. 이게 공을 너무 안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다 보니 나오는 실수입니다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저런 수비는 곤란합니다.]
[맞습니다. 땅볼 타구라고 해도 타구 속도 자체가 다르거든요. 마쓰이 가즈오의 결정적인 실책. 2아웃 주자 2루가 될 것을 1실점 그리고 노 아웃 주자 1, 3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운드 페드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마쓰이 역시 좋지 않다. 나라도 나서서 진정을 시켜야될까 고민하는 찰나, 덕아웃에서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 메츠 투수 교체입니다. 아론 하일맨. 아론 하일맨이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작년과 재작년 메츠의 추격조로 활용됐던 선수인데요,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이 굉장히 좋습니다.]
[자, 메츠 아직 4점을 이기고 있거든요. 1점 정도 더 내준다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막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워싱턴 닉 존슨의 싹쓸이 2루타가 터졌다. 7:2의 점수가 7:5가 되는 동안 여전히 아웃 카운트는 0개. 득점권에는 주자가 서 있었다.
“자자, 괜찮아. 아직 우리가 이기고 있어.”
내가 애써 동료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명백히 기세가 붙은 쪽은 워싱턴이었다. 이 모든 것이 마쓰이 가즈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 바비 발렌타인의 교체는 명백히 실수다. 어차피 4점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1점을 더 내겠다고 안정적인 유격수를 빼고 저런 불안한 유격수를 집어넣다니.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