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시즌 투(2)
제프 윌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발렌타인 감독? 지금 잘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게, 팀의 형태가 바뀌면 바뀌는 것에 맞춰서 적절한 운용을 해야 하는데 지금 발렌타인 감독은 팀의 운영 자체를 자신에게 맞추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도 4번이나 우승한 감독인데 그냥 좀 맞춰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거 맞춰만 주면 우승 한다는 이야기잖아.”
프리드먼의 머릿속이 대략 멍해졌다.
‘저 멍청한 자식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지난 00시즌부터 아버지인 프레드 윌폰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구단을 운영해온 제프 윌폰은 부임 초기 의욕적이었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버나드 메이도프라는 유대계 금융인과 함께 벌이는 금융 사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요 몇 년 구단에 대한 운영은 아주 뒷전으로 내팽개친 지 오래다. 물론 평소라면 저 머저리가 구단에 상관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9년간 4번의 우승을 가지고 온 감독의 거취에 관한 일이라면 1년 차 단장 혼자서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일이다.
‘오마 단장님이 해주신 말씀을 생각하자고.’
프리드먼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머저리가 멍청한 소리를 할 때는 그냥 웃으면서 대꾸해줘. 아, 그런데 너무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를 하면 뇌가 폭발해버리니깐 그런 건 하면 안 된다. 대충 욕심만 잔뜩 있는 멍청한 사촌 동생 놈들 대하듯이 대하면 되니까 딱 그렇게만 하라고.’
전임 단장인 오마 미나야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프리드먼이 빵긋 웃었다.
“발렌타인 감독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려면 너무 비쌉니다. 게다가 감독들이 다 그렇듯 장기적으로 팀을 보는 게 아니라 당장 올해 성적만 보고 달려버려요.”
“비싸? 얼마나?”
“대충 한 1억 달러는 더 필요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허, 그 미친 영감이 아주 노망이 제대로 났군. 그래서 어쩌자고?”
역시 돈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프리드먼이 재빨리 답했다.
“1년 남은 계약 200만 달러 정도인데 이거 매몰 비용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감독을 데리고 왔으면 합니다.”
“새로운 감독? 누구를 데리고 오고 싶은 건데?”
미리 준비해온 명단을 들이민다.
“마침 좋은 사람들이 많이 시장에 나왔습니다.”
“뭐야, 이 사람들 전부 못 들어본 이름들인데? 감독 맞아?”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능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제프 윌폰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망할, 확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벌써부터 뒷골이 당겨옴을 느꼈다.
“그게, 그러니까 마이크 소시아 감독 밑에서 있던 코치진들인데, 최근에 에인절스가 성적부진을 이유로 대대적으로 코치진을 쇄신하면서 나온 코치들입니다.”
“흠, 그러니까 에인절스에서 해고당했던 코치들이라 이거네? 게다가 짤리고 아직까지 취업도 안 된?”
제프 윌폰이 고개를 젓는다.
“일단 이번 시즌 지켜보고, 이름 있는 감독으로 데리고 오자고.”
“하지만!!”
“지금 성적도 나쁘지 않잖아? 발렌타인 감독도 9년간 네 번이나 우승했는데 계약 기간 동안은 기회를 줘보자고.”
***
‘오 마이 갓.’
지금 덕아웃에는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7회 말 점수는 7:2. 뭐 야구가 항상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니 어쩌다 이렇게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덕아웃은 단순한 점수를 넘어 총체적으로 삐그덕 거리는 우리 팀의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작은 6일 전. 마이크 햄튼이 5.1이닝 4실점으로 강판 된 직후부터였다.
-메츠의 에이스, 마이크 햄튼 5.1이닝 4실점 부진!!-
-바비 발렌타인. ‘오늘 전체적으로 마이크 햄튼의 공이 좋지 못했다. 휴식일에 조금 더 휴식에 집중하는 프로다운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이크 햄튼. ‘나는 사생활까지 관리를 받아야 하는 유치원생이 아니다. 휴식일의 루틴은 평소대로였으며 내 컨디션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내야 땅볼을 유도했고 실제로 내야 땅볼이 됐는데 그것이 안타로 이어지는 점이다.’-
마이크 햄튼은 상당히 직설적인 친구였다. 평소 그는 바비 발렌타인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공공연하게 늘어놨는데, 팀 곳곳에 손을 뻗치고 있는 바비 발렌타인에게 그 불평이 들어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몇 년 전의 나쁘지 않았던 바비 발렌타인이라면 그런 소리 정도는 알아서 걸러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 권위적이 되고 더 신경질적이 된 바비 발렌타인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마이크 햄튼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저 언론의 인터뷰였다.
물론 마이크는 휴식일에 맥주를 즐겨 마셨고 그것은 그의 몸을 생각할 때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00년 투수 최고액을 경신했던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다. 그의 사생활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설사 그의 사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저렇게 외부에 내보내서는 안 됐다.
발렌타인 감독의 인터뷰를 본 마이크를 길길이 날뛰는 것을 말리고 말린 끝에 나온 인터뷰가 저 정도였다. 아마 내가 마이크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인터뷰의 끝은 메츠의 라커룸이 막장이라는 기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은 바비 발렌타인의 옹졸함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싹쓸이 이루타!! 7회 초, 원아웃 만루. 마이크 햄튼이 싹쓸이 삼루타를 허용하며 석 점을 헌납합니다.]
[아!! 최근 들어 컨디션이 좋지 못한 햄튼 선수. 오늘 그래도 6.1이닝 2실점으로 나쁘지 않았는데요. 한순간 급격하게 무너져버리네요.]
[이건 아까 1실점 했을 때 교체를 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은데요. 덕아웃의 판단이 조금 아쉽습니다.]
[괜찮습니다. 메츠. 7회 초 5:2. 3점 차가 큰 것 같지만 충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강진호 피아자 프레스톤 윌슨으로 이어지는 타선의 강력함은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최강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어? 그런데 덕아웃이랑 불펜이 조용한데요? 설마 이대로 계속 가는 건가요?]
[이런, 투구수도 이제 106개째고 교체 하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요.]
[원아웃 주자 2루. 마이크 햄튼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딱!!
앤드루 존스가 마이크의 공을 그대로 잡아 당겼다. 올 시즌 41경기 13홈런으로 내셔널리그 홈런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존스의 스윙이 강력했다.
‘이런 망할!!’
좌중간 강하게 떠오른 타구. 공의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건 무난하게 담장을 넘어갈 타구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담장을 넘어갔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나의 몸이 빠르게 펜스를 향해 움직였다.
[좌중간!! 좌중간!! 넘어갔습니다.]
[앤드루 존스. 시즌 14번째 홈런!! 앤드루 존스가 2점 포를 쏘아올립니다.]
[7회 초, 브레이브스가 무려 5점을 뽑아내며 점수를 7:2까지 벌립니다.]
[아, 5점 차. 이건 조금 큰데요. 마이크 햄튼 선수. 6.1이닝을 정말 잘 막았는데 한순간에 5점을 헌납하네요.]
[메츠, 덕아웃 드디어 움직입니다. 아, 마운드의 마이크 햄튼 선수. 고개를 흔드네요.]
[주자도 일소됐겠다 이번 이닝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의사표시인 것 같은데요.]
[원래 선발 투수라는 게 마운드에 올라가면 몇점을 내주건 자기 마운드를 내주고 싶어하지 않는 습성이 있거든요. 저건 에이스급 투수로 가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투수가 하고 싶다고 다 오케이 해주면 덕아웃이 있을 필요가 없죠. 지금 마이크 햄튼 선수, 멘탈이 흔들렸거든요. 저럴 때는 내려 줘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뛰어봤지만 이건 야수가 어떻게 건드릴 수도 없는 공이다. 외야 깊숙한 곳까지 날아간 타구.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나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자기 기분 나쁘다고 설마 중요한 경기에 감정적으로 움직이겠어?’
고개를 저어 나쁜 생각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사이 벤치 코치인 톰 롭슨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습관처럼 고개를 젓는 마이크. 톰 롭슨이 뭐라 몇 마디를 더 건넸지만,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여기서 투수를 내리지 않는 것은 아무리 바비 발렌타인이 막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마이크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뒤를 이어 올라온 대니 그레이브스가 추가 실점없이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난장판이야?”
돌아온 덕아웃. 내부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어지럽다. 뒤에 쌓여있던 주전부리가 바닥을 뒤구르고 몇몇 박스들은 처참하게 부셔져 있다.
‘마이크가 어지간히 열받았나보네.’
뭐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가끔 화가 나면 저렇게 가끔 헬멧을 집어던지곤 했다. 물론 이정도로 심각하게 난장판을 만드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자자, 아직 5점 차이야. 집중하면 역전할 수 있어. 힘내자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선수들을 격려했다. 수비이닝을 끝내고 돌아온 동료들이 애써 손뼉을 치며 나의 목소리에 호응해준다. 하지만 덕아웃에 대기하던 동료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지?’
어지럽혀진 덕아웃에 가려 보이지 않던 덕아웃 동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얼굴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감돈다. 처음에는 단순히 경기에서 갑자기 뒤지게 된 상황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묘한 느낌. 녀석들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 왠지 그라운드가 아닌 덕아웃 가장 앞자리 거만하게 앉아있는 발렌타인 감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종운아 무슨 일 있었어?’
사흘 전 선발로 등판하고 오늘 덕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종운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이를 악물고 있던 종운이 나지막하게 답한다.
‘나이스 이닝, 키드 라고 했어요.’
‘응?’
설마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은 답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문에 종운이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답했다.
‘저 개자식이 마이크한테 나이스 이닝, 키드라고 했다고요.’
나이스 이닝이라니. 아니 애초에 키드라는 말 자체도 마이크의 유치원생 발언을 겨냥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비 발렌타인이 옹졸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크게 넘어섰다.
‘마이크는, 마이크는 그냥 참았어?’
‘네, 경기 중에 감독이랑 싸우는 영상 잡힐 수는 없다고 뒤에 저것만 내려치고 바로 밖으로 나갔어요.’
그 뒤로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리고 걱정. 피아자는 대체 저 미친 감독과 선수들 사이를 어떻게 조율해온 것일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뉴욕 메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시리즈 1차전 7:2 패배.-
-바비 발렌타인 ‘감독에게 조금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 현 메이저리그는 야구를 모르는 사업가들의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