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61화 (161/210)

# 161화.

오직 야구(1)

-충격!! 뉴욕 메츠, 바비 발렌타인 전격 경질?-

-바비 발렌타인 ‘지난 9년동안 팀을 위해 헌신했고 그 사이 네 번이나 반지를 가지고 왔던 나에게 이번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모욕적이다.’-

-뉴욕 메츠 코치진 연달아 사의를 표명.-

-메츠의 벤치 코치 톰 롭슨 ‘이번 일은 야구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책상물림 프런트들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기록될 사건이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은 9년 간 4개의 반지를 가지고 온 위대한 감독이며, 올해 역시 프런트들이 충분한 협조만 해주었다면 다섯 번째 반지를 가지고 오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완벽한 계획이 있었다. 단지 그 계획에 없던 것은 무능한 프런트들 뿐이었다.’-

-호세 레예스 ‘타이슨이 뭐라고 했더라? 누구나 완벽한 계획은 있다고 했던가?’-

-앤드루 프리드먼 ‘팀에 지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다.’-

-메츠 새로운 감독으로 ‘조 매든’ 선임. 조 매든 그는 과연 누구인가? 76년부터 4년간 79년 에인절스 구단에서 싱글 A선수로 커리어를 마감. 이후 스카우트, 타격 인스트럭터, 마이너리그 감독을 거쳐 지난 96년 마르셸 라만의 대행으로 선임된 존 맥나마라의 대행으로 22경기 감독을 수행. 이후 99년 테리 콜린스를 대신해 또다시 29경기 감독을 수행. 이후 마이크 소시아 밑에서 04년까지 벤치코치를 역임.-

-남은 기간, 메츠의 전력 보강에 관한 조 매든 신인 감독의 답변 ‘지금 몇가지 삐거덕 거리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메츠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다. 이 팀은 그 페이롤 규모로 믿기 힘든 놀라운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베테랑들과 유망주들의 조화 역시 훌륭하다. 내가 해야되는 일은 단지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일 뿐이다.’-

제프 윌폰의 반응은 생각보다 즉각적이었다. 시즌 중반, 몇몇 선수와의 불화설이 나돌기는 했다지만 기본적으로 9시즌동안 4번의 우승을 차지한 감독의 즉각적인 경질. 심지어 우리는 지구 2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됨은 물론이거니와 주장을 맡고있는 나에게 이번 감독의 경질에 대해 묻는 귀찮은 인터뷰들이 쇄도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강진호 선수!! 이번 발표에 대해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강진호 선수!! 지금 심경은 어떠신가요?”

“강진호 선수!! 강진호 선수!!”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를 둘러 싼 기자들의 관심, 아니 극성맞은 뉴욕의 언론 전체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우리 팀 감독의 교체 소식이 아닌 나의 약혼 발표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기습적인 프로포즈를 내가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얼떨결에 YES를 말하고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파트 관리인은 묘한 미소를 띄며 나에게 축하를 건넸고, 뉴스와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는 나의 약혼에 관해 떠들고 있었다. 뭐 그 프로포즈를 목격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몇 명이고 식당의 종업원들이 몇 명이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약혼 소식이 퍼져 나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바비 발렌타인이 명장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의 언론플레이 능력 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라고 해도 나와 재키의 결혼이라는 초대형폭풍을 이겨낼 방법은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난 뉴욕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타 중 하나다. 배리 본즈가 몰락하고 90년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투수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 아시아인이라는 패널티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패널티를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성적으로 데릭 지터 그리고 A-ROD와 함께 메이저리그사무국에서 밀어주고 있는 메이저 리그의 새로운 전국구 스타였다.

게다가 유명세로 따지자면 재키 역시 나에게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유명세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했다. 데뷔작에서 복잡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해내며 호평을 받았던 그녀는 이후 그런 류의 영화에만 출연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고 하이틴 로맨스에 얼굴을 비추며 소녀들의 열광을 이끌었으며, 또 그 이후에는 매력적인 악역을 선택하며 헐리웃의 가장 뜨거운 여자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전성기 파멜라 앤더슨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에 버금갈만큼 대단한 인지도. 게다가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보다는 진보적이라고 해도 미국 역시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관해서는 한국 못지않게 보수적인 국가다. 여자가 건네는 프로포즈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진호. 기사 잘 봤어. 약혼 축하한다.”

“선배님, 약혼 축하드립니다.”

“결혼식은 시즌 끝나고 하는 거야? 하게되면 어디서 하는 거야? 외국에서 할 꺼면 휴가기간은 좀 피해달라고.”

축하를 해주는 동료들 사이에 프레스톤 녀석이 눈을 번쩍인다.

‘저 자식.’

“진호, 그나저나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하다니. 거기는 안녕 하시지?”

“궁금하면 이따가 샤워실에서 엉덩이 잘 씻고 내밀어 보던지. 내가 제대로 꽂아줄테니까.”

나의 대꾸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낄낄거리던 피아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약혼 축하한다. 근데 나중에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기 싫으면 프로포즈는 네가 다시 제대로 해두라고. 남녀평등이니 뭐니 해도 여자는 어찌됐건 여자야. 무릎 꿇고 반지 안내밀고 결혼한 놈들 치고 나중에 바가지 안긁힌 놈 내가 못봤다.”

“안그래도 반지 하나는 선물 할 생각이에요.”

“오, 그래?”

“네, 이왕이면 아주 뜻깊은 반지를 선물하려고요.”

“뜻 깊은 반지라고?”

“네, 그냥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반지보다 훨씬 뜻 깊은 반지를 선물하려고요.”

***

“메츠는 제가 밖에서 본 것 이상으로 훌륭한 팀이로군요. 충분히 좋은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력 보강에 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둔 적이 있습니다만, 감독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신지요?”

프리드먼의 질문에 조 매든이 잠시 골똘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현재 팀 전체를 살펴보면 타격 보다는 주루, 그리고 수비에 중점을 둔 구성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프리드먼이 가볍게 감탄했다. 별것 아닌 이야기 같았지만 복잡한 트레이드와 재계약들 속에서 프리드먼이 추구하는 경향성을 이렇게 캐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프리드먼이 제공한 자료가 일반적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디테일한 자료라는 점은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조 매든의 판단력과 분석력은 평범을 웃도는 것이었다.

“맞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승리에 기여하는 스탯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스탯들이 그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나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가지 부분에서 걱정이 되는군요. 스탯의 정교함.”

잠시 뜸을 들이는 조 매든의 이야기를 프리드먼이 낚아챘다.

“그리고 부상이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걱정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대안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물론이죠. 우선 스탯의 정교함에 관해서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전력분석팀에서 지난 십수년간의 자료를 통해 충분히 검토했고 이건 기존까지의 어떤 수비스탯보다 더 정교한 형태라고 확신할만 합니다.”

“HTS(Hit Tracking System)기반의 시스템인가요?”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부상에 관해서는 어떻죠? 아무래도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는 부상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즌 중 주전 선수의 부상만큼 팀을 힘들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두터운 백업과 정밀한 의료진을 통해 보완할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앞서 자신의 말을 낚아챘던 것을 복수라도 하듯 조 매든이 프리드먼의 말을 받는다.

“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겠군요. 조금이라도 부상 위험이 있는 것 같은 선수는 진료를 받게 하고 눈앞의 1승 때문에 며칠간의 치료가 필요한 선수를 쓰지 않는 참을성도 필요하겠고요.”

“맞습니다.”

프리드먼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조 매든은 확실히 말이 통하지 않던 발렌타인과는 달랐다. 나이는 그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았지만 눈 앞의 이 남자는 기본적으로 개방적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두 가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우선 피아자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십쇼. 시장가격까지는 아니더라도 홈디스카운트 10%정도면 잡아주셨으면합니다.”

피아자를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낸 조 매든의 이야기에 프리드먼의 표정에 살짝 감탄이 묻어났다.

“알겠습니다. 확언드리기는 힘들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번째는요?”

“Kang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Kang이요?”

***

활짝 열려진 사무실. 노크는 필요 없었다.

“오!! Jin-ho 이쪽으로 앉으세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백발의 통통한 백인 남성이 문 앞까지 달려나와 어설픈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환대했다. 조 매든. 우리의 새로운 감독이었다.

“메츠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Jin-ho가 제 부임소식을 완벽하게 묻어버리셨죠?”

“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오, 아뇨. 아닙니다. 덕분에 수월하게 부임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참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아직 안했군요. 약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조 매든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선수단 역시 그래도 바비 발렌타인 보다는 낫겠지 하는 여론이었지만 그래도 조 매든이라는 감독 자체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는 선수는 전무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조 매든이 에인절스에서 감독 대행으로 있하던 시절 그의 성적은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96년과 99년 총 51번의 시합에서 감독을 대행하던 당시 그가 이룬 성적은 27승 24패. 뭐, 시즌 중반 감독이 경질된 팀을 이끌고 5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한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99년 이후 6년간 4번의 반지를 가지고 오면서 그야말로 21세기 초반 새로운 왕조를 건설중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우리 뉴욕 메츠라는 이름값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팀에서 유일하게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프리드먼이 조 매든을 감독에 선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약간의 전율을 느꼈었다.

‘프리드먼의 페르소나.’

본래의 역사에서 조 매든은 프리드먼과 영혼의 단짝을 이루며 스몰마켓의 대명사인 템파베이를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이끌었다. 물론 거기서 그쳤다면 조 매든이라는 감독은 단순히 프리드먼이 만들어준 팀을 그럭저럭 운용한 괜찮은 감독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프리드먼이 다저스로 떠난 이후 컵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무려 108년을 내려온 컵스의 저주를 끊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그를 컵스로 불러낸 것이 우리 프리드먼, 그리고 빌리 빈과 함께 메이저리그 3대 단장으로 통하던 테오 앱스타인이었다는 것이 그가 가진 감독으로서의 기량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스타일을 이야기하자면 전임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에게 뒤지지 않는 언론 장악력을 먼저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바비와 다른 점은 그가 디스하는 것이 같은 팀의 선수가 아닌 같은 지구 라이벌 팀의 선수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그런 비난을 통해 팀의 결속을 강화시켰고, 팀 내적으로는 선수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권위를 내려놓고 각종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는 그런 감독이었다. 바비 발렌타인이라는 권위적이고 고집 쎈 감독과 갈등했던 현재 우리 팀의 선수단에게 가장 적절한 감독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탈권위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팀에 가장 적절한 감독이 나에게 처음 내민 이야기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통보였다.

“Jin-ho. 미안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허락했던 전면적인 그린 라이트를 철회해야겠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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