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죽음, 세금. 그리고(1)
전 세계를 통틀어 단순히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을 넘어 운영자와 주주들에게 배당까지 돌아가는 진정한 흑자를 지속하는 프로 스포츠 리그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MLB는 그 많지 않은 리그 중 하나였고 특히 뉴욕 메츠는 지난 몇 년간의 어마어마한 성적을 바탕으로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팀이었다. 2만 6천여 명의 평균 관중이 3만 3천으로 불과 6년 만에 25% 이상의 관중 증가는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단순히 입장권 수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니폼 매출의 증가, 스타디움 내부 매점수익을 비롯한 각종 가게의 임대료 수익 증가와 경기장 내 광고단가의 상승까지.
“그런데 대체 왜 투자가 힘들다는 겁니까!!”
프리드먼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제프 윌폰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진짜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비즈니스만 20년 이상 해온 그가 보기에 이 프리드먼이라는 녀석은 능력 있는 단장이니 뭐니 해도 결국 숫자놀음만을 해온 20대 애송이에 불과했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제프 윌폰이 답했다.
“투자를 요구하는 사람치고는 목이 너무 뻣뻣한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소리에 프리드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 프리드먼이 윌폰에게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업에서 투자가를 끌어모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식적인 구단주가 지녀야 할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 애초에 지난 6년간 윌폰이 배당받아간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지금 추가 투자가 필요한 이유는 프로야구 구단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선수의 ‘현상 유지’를 위한 투자다. 하지만 제프 윌폰 저 머저리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하아, 오마야 단장님. 이런 개똥 같은 건 말씀해주신 적 없었잖아요.’
캘리포니아의 어느 시골로 내려간 전임 단장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대단합니다. 메츠!! 말 그대로 어메이징!! 대체 누가 이 팀을 왕좌에서 물러나고 있는 삐거덕거리는 팀이라고 한 건가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파죽의 7연승!! 이미 동부지구 2위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는 3승 차이. 시즌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달려나가던 내셔널리그 전체 1위 카디널스와도 이제 2경기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시즌 초반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기를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IF만 충족된다면 메츠는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지금 메츠를 보면 그 모든 IF가 다 충족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오히려 플러스알파가 더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IF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선 99년부터 꾸준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베테랑들의 노쇠화를 들 수 있습니다. 99년 메츠의 역사적인 우승 이후 벌써 6년이 지났단 말이죠. 뭐 메이저 최고령인 리키 헨더슨까지 가지 않더라도 팀의 중심타자이자 작년까지 주장을 맡았던 마이크 피아자 선수만 하더라도 벌써 올해 36살이거든요. 실제로 작년 같은 경우 포수로 뛴 경기가 전체의 7할이 채 되지 못했었고 말이죠. 게다가 투수진을 보게 되면 꾸준히 에이스로 활약했던 알 라이터도 벌써 서른아홉입니다.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들이죠. 하지만 지금까지만 본다면 세 선수 모두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출전 경기 숫자가 좀 줄어들고 미세한 내림세를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렇군요.]
[두 번째 IF를 이야기하자면 과감한 내야의 세대교체를 들 수 있습니다. 올 시즌 메츠의 주전 라인업을 보면 20대 초반의 루키들이 무려 셋이나 내야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내야의 핵심이던 에드가르도 알폰조를 트레이드로 내보내고 말이죠. 뭐 베테랑 내야수인 노마 가르시아파라 선수를 수혈하긴 했습니다만 우습게도 그가 지금까지 쭉 뛰어온 유격수가 아닌 일루수로 사용하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건 메츠에게 베테랑들의 분전보다 훨씬 좋은 소식이에요. 전자가 당장의 성적을 이야기한다면 이건 메츠의 밝은 앞날을 이야기해주는 거니까 말이죠.]
[밝은 앞날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니깐 확 와닿는 느낌입니다. 확실히 메츠의 평균연령은 작년보다 매우 젊어졌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역시. 아, 지금 오늘 경기 Top performers의 인터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피아자 선수, 오늘로 강진호 선수가 마침내 2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지난 1984년 허비 브룩스 선수와 99년 마이크 피아자 선수 본인이 세웠던 프랜차이즈 최다 안타 기록과 동률의 기록인데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우선 진호가 세운 기록에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리고 뉴욕 메츠라는 팀이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24경기 연속 안타는 너무 짧은 기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저는 안타깝게도 허비 브룩스의 24경기 연속 안타를 넘지 못했습니다만 여기 진호라면 24경기를 넘어 훨씬 위대한 기록도 진지하게 노려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진호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입니다.”
“훨씬 위대한 기록이라면?”
“글쎄요, 2차대전 당시에 세워진 기록들이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기엔 너무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불멸로 남아있는 기록을 언급하는 마이크 피아자의 거침없는 발언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캐스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내용이 어떻건 간에 이런 식의 자극적인 발언은 언제나 방송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법이다.
“오늘 참 뜻깊은 기록을 앞두고 기존 기록 보유자였던 마이크 피아자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러며 오늘 경기 가장 훌륭한 활약을 보여준 주인공이죠? 메츠의 Kang을 모셔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옆에서 피아자 선수의 인터뷰 다 들으셨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축하해준 것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이크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해볼 생각입니다.”
“최대한 부응이라고 한다면, Kang 선수도 마이크 피아자 선수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원하는 대답이 너무 뻔히 드러나는 캐스터의 질문에 진호가 잠시 망설였다. 과연 어떤 대답이 더 좋을까? 지금까지 진호는 아시안 치고는 인터뷰가 제법 과감한 편이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동양권 선수들보다 조금 과감한 수준에 불과했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며 위대한 전통들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젊은이.’ 이것은 강진호라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메츠라는 팀의 캡틴. 우승을 향해 달려나가는 뉴욕 메츠의 중심이자 선봉장이었다. 진호가 마음을 굳혔다.
“네.”
“그러니까 저 위대한 양키스의 범선이 세운 기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 저도 헤밍웨이를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가 나온 지도 벌써 5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뉴욕은 새로운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이기는 팀에서 나오는 것이 옳겠죠.”
누구보다 예의 발랐고, 빈말과 과장이 없던 선수였기에 진호의 발언이 가져온 여파는 거대했다. 메이저리그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에 대한 도전. 그것은 1940년대에 비해 구장들의 크기가 줄어든 현대야구에서는 설사 조 디마지오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 평가받는 위대한 기록이었다. 게다가 진호가 세운 연속 안타 기록은 고작 24경기. 아직 그 위대한 기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다.
<그 녀석 괜찮은 타자인 건 알고 있지만, 아직 커리어 말년 스탯 까먹기도 안 한 타자가 통산 타율이 3할 2푼도 안 되잖아. 그런데 그런 녀석이 조 디마지오의 기록에 도전한다고? 내가 최근 들어본 농담 중 가장 웃긴 농담이군>
<그 녀석 조 디마지오와 조 고든을 헷갈린 거 아니야? 상식적으로 이제 고작 24경기 연속 안타를 친 녀석이 56경기 연속 안타를 입에 담는 건 웃긴 이야기잖아. 내가 보기엔 조 고든의 29경기 연속 안타와 헷갈린 게 분명해.>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진호의 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진호의 말을 허풍으로 취급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팬들과 전문가들은 진호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 가능성을 점쳤다.
<최근 Kang의 발언은 그저 허풍으로만 취급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Kang은 단순히 안타의 숫자보다 장타율, 그리고 발군의 수비능력이 조합된 완성형의 ‘야구 선수’로서 더 유명한 선수이기는 합니다만 98년 풀타임 데뷔 이후 데뷔 연도를 제외하면 항상 3할 이상의 높은 타율을 유지해온 선수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99년부터 04년까지 6년 내내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한 선수는 강진호 선수를 제외하면 오직 미네소타의 섀넌 스튜어트 선수뿐입니다. 연속 안타는 물론 타율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전 그것만큼이나 꾸준함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수가 2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거든요. 중요한 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혹은 에이스 투수를 만나는 날 어떻게든 안타를 하나라도 쳐내는 능력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 Kang은 믿을만한 타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현역 선수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선수인 Kang이 아니면 대체 누가 저런 기록에 도전이나 해볼 수 있겠습니까.>
<올 시즌 강진호는 약혼 이전과 이후로 나눠 봐야 할 만큼 다른 타자입니다. 켄자스 시티 로얄스와의 경기 이전까지 강진호의 성적은 0.324/0.407/0.588. 그리고 그 이후는 0.418/0.525/0.857입니다. 뭐 감독이 바뀐 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신혼 파워로 다음 FA 때 한몫 땡기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한 달 동안 강진호를 보면 진짜 미쳤어요. 물론 중간에 진호가 언제나 스탯 세탁하는 쿠어스 경기가 4경기나 끼어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미친 거거든요. 게다가 단순히 몰아치기도 아닌 것이 켄자스 시티 로얄스와의 1차전 이후로 2경기 빼고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쳤어요. 우리 진호가 그냥 두루두루 잘하는 선수라서 성적에 비해서 뭔가 특별한 기록의 임팩트가 좀 부족했는데 올해 사이클링 홈런부터 해서 진짜 일 하나 제대로 치를 기세입니다. 전 충분히 연속 안타 기록 경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야구라는 스포츠의 위대함의 상당 부분은 그 깊은 역사에 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인 수많은 기록이야말로 야구의 상징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50-50. 그리고 사이클링 홈런이라는 메이저 역사에 없었던 위대한 기록을 수립한 진호였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다시 있기 힘든 위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야구라는 종목에서 조 디마지오라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그 상징성을 대표하는 연속 안타는 그 느낌이 달랐다. 50-50과 사이클링 홈런이 강진호라는 새로운 전설의 등장이라면 연속 안타를 갱신하겠다는 것은 조 디마지오라는 위대한 타자, 그리고 그 위대함 위에 쌓인 역사를 뛰어넘겠다는 이야기였다.
커미셔너의 단호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약물 파동 이후 조금 시들해졌던 야구의 인기에 자그마한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그 불씨가 타오르기에 24경기 연속 안타는 너무 적었다.
“언론사에 관련 자료 돌리고 전국방송 일정 조정해봐.”
하지만 그 위에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커미셔너라는 이름의 기름이 부어지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미의 시선이 메츠의 경기에 집중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