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아무 가치없는 것(2)
-강진호 마침내 타이 콥을 넘어서다!! 41경기 연속 안타는 2차 대전 이후 피터 로즈 다음으로 긴 기록이며 라이브 볼 시대 역대 3위의 대기록이다.-
-충격!! 메츠의 구단주 제프 윌폰 10억 달러 규모의 소송에 휘말리다!!-
-뉴욕 메츠. 구단주 논란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 시즌 90승 돌파!!!-
한국의 평범한 팬들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진호의 안타 기록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조금 더 알고, 강진호를 조금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들은 진호의 신기록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시즌 초반 바비 발렌타인 이슈로 팀이 뒤숭숭할 때와 조 매든 감독이 부임한 이후 진호의 성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너무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을 제프 윌폰의 사기 연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되기는요. 메츠 쫄딱 망한 거지. 걔들 지금 구장도 오래돼서 신축구장 건립 계획 세우고 있었던 거로 아는데 그것도 완전 올스탑이죠. 중계권료 계약은 괜찮게 됐다지만 그것도 지금 규모 유지하는 게 한계에요. 새로운 수입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그 낡아빠진 구장으로는 좀 무리가 있죠. 거기 말이 4만 5천 석이지 자리도 불편하고 주차도 불편하고. 노답임.>
<그러면 우리 진호는 이제 어쩌죠?>
<어차피 팀 옵션 1년 남았는데, 메츠가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이건 무조건 실행한다고 봐야 하니까 올해 이대로 쭉 달려주고 내년까지 메츠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주면 되겠죠.>
<제 생각에는 메츠가 올겨울에 강진호 팔고 유망주들 쇼핑 좀 해오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메츠만한 팀이 98년부터 8년이나 연달아 달렸으면 달릴 만큼 달렸음. 이제 숨 좀 골라야죠. 어차피 강진호 잡지도 못할 텐데.>
<근데 메츠 마켓이 8년 달렸다고 쉬어야 할 만큼 작은 시장은 아님. 조금만 무리하면 강진호 충분히 잡을 수 있을걸요?>
<아무리 그래도 거긴 사치세까지 내면서 달릴 만한 시장은 아니죠. 지금 강진호 연 3천만은 깔고 갈 텐데 메츠 페이롤에 3천만 더하면 1억 6천만이 넘어감.>
<알 라이터 은퇴할 테고 피아자 내보내고 강진호 기존 연봉도 있으니 아슬아슬하게 페이롤에 걸치는 수준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강진호 하나 데리고 야구합니까? 알 라이터 나가면 대체할 선발 넣어야죠.>
<강진호는 영원한 메츠 맨입입니다. 다른 팀 못 줘요. 솔직히 99, 01, 02, 03 우승 전부 다 우리 진호 덕분인데 메츠 놈들도 뇌가 있으면 강진호는 절대 안 내놓죠.>
<강진호는 뇌가 없겠냐? 팀에 그렇게 망조가 들었는데 남을 리가 없지. 남은 커리어 생각하면 무조건 메츠 탈출이 정답.>
<근데 강진호 돈 엄청 많이 벌지 않았어? 그냥 메츠 사버리면 안 되나?>
<강진호 지금까지 번 연봉이 한 7천만 정도 되나? 세금 빼면 안 쓰고 모았어도 4천만 정도임. 근데 메츠 구단 가치는 못해도 10억 달러는 될걸? 게다가 설사 돈이 있어도 현역 선수가 구단 사는 건 좀 보기 그렇지. 잘하건 잘못하건 구설수 거리밖에 안 되잖아.>
<10억이 뭐야. 98년에 7억 달러 정도였는데 최근 8년 사이에 성적도 좋고 수익도 높아서 엄청나게 올라갔음. 지금 15억 달러가 넘어갈걸? 근데 그거랑 별개로 강진호 정도 되면 구단 구매해도 별소리는 안 나올걸? 뭐 성적이 안 되는데 팀에 꾸역꾸역 나온다든지 자기 위주로 팀이 운영되게 간섭한다든지 하는 이야기 나오기에 강진호는 너무 압도적이잖아. 어차피 구단 안 사도 강진호는 몇 경기 부진해도 출전해야 하고 팀도 강진호 위주로 꾸려지는 게 당연한 선수지. 막말로 시카고 불스 잘나갈 때 조던이 신발 판 돈으로 불스 구매한다고 욕할 팬은 없었을걸.>
<에이, 아무리 한국인 보정 넣어줘도 강진호가 조던급은 아니지. 루스까진 몰라도 테드 윌리엄스 정도는 찍고 와야 조던한테 비벼라도 보는 거 아니겠음?>
<강진호 28세 시즌까지 커리어 테드 윌리엄스 압도. 참전으로 커리어 빈 거 생각하면 누적에서 테드보다 못한 상태로 커리어 마감할 확률 엄청 낮음.>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메츠 사면 안 됨? 보니까 시애틀 매리너스는 거의 일본 자본이라고 그러던데.>
<왜? 아예 팀도 뉴욕 메츠에서 코리아 메츠로 바꾸자고 하지 그러냐?>
이는 한국의 팬들이 뉴욕 메츠의 강진호를 응원한다기보다 강진호가 뛰는 뉴욕 메츠를 응원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진호가 팀을 옮긴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바꿀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진호의 경기를 통해 뉴욕메츠 자체에 매료된 사람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강진호가 디스카운트 조금 해주더라도 메츠에 남았으면 좋겠음. 뉴욕의 다른 팀처럼 메츠도 원 클럽 맨으로 남을 프랜차이즈 하나 정도는 가질 때가 됐다고 생각함.>
<같은 뉴욕??? 어디서 메츠 따위를 양키스에 가져다 대는 건지. 난 양키스가 강진호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양키스 지금 페이롤 폭발하려고 하는데 무슨 헛소리임. 지금 30개 구단 중에서 강진호 데리고 갈 확률 제일 낮은 팀이 양키스임. 강진호도 양키스는 안 갈걸? 메츠가 그냥 생활하수라면 지금 양키스는 완전 공장폐수임.>
<어이구? 그러셔요? 양키스는 그 폭발하는 페이롤 다 감당해줄 구단주님이 계시는데 이를 어쩌나? 어느, 어느 팀의 사기꾼 구단주 놈처럼 팀에 마이너스는 아니거든.>
<이왕 갈 거면 텍사스 가서 박찬화 강진호 콤비 보고 싶다. 진짜 야구 볼 맛 날 듯.>
<텍사스는 지금 강진호가 아니라 강진호 할아버지가 가도 회생 불가.>
<그래도 헨더슨, 강진호, 피아자, 프레스톤의 라인업 보는 맛이 있었는데, 다른 팀 가게 되면 진짜 아쉬울 듯.>
<어차피 헨덧슨이랑 피아자도 이번 시즌 끝으로 메츠에서 나갈 테니 강진호 아니더라도 그 라인업은 끝임.>
<매일 당연하게 보던 라인 업이 이제 없어진다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네. 근데 생각해보면 진짜 시간이 흐르긴 흐른 듯. 내가 고3 때 새벽부터 0교시까지 몰래몰래 강진호 경기 중계 듣곤 했는데 내가 벌써 군대까지 다녀와서 대학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으니까.>
<난 군대에서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 딸딸이 아빠임.>
<어쩔 수 없지. 세상이라는 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니까. 우리 진호도 다음 걸음을 내디딜 시간이 된 거야.>
***
구단주의 소송 소식이 뉴욕을 시끄럽게 달궜지만 의외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시즌 초반 이미 바비 발렌타인이라는 사상 최악의 재앙을 감당했다는 점. 그리고 그를 대신하는 조 매든이 상당히 유능한 감독이라는 점. 구단주의 삽질이 올해의 메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가 98년부터 이어 온 두 번째 ‘어메이징 메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선수 대부분이 실감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였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
어차피 메이저리그의 선수에게 팀이란 고향이라기보다 직장이었다. 우연이 마음에 맞는 동료들을 만나 오랜 시간 함께 뛴 직장. 좋은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 작품의 마지막 시리즈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작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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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관중석. 큼지막한 플랜카드가 눈에 띄었다. 조 디마지오의 The hitting streak까지 남은 숫자였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최근 메츠와의 이별 확률이 점점 높아질수록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나의 심장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메츠는 참으로 사랑하며 동시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팀이었다. 전생에서 그토록 애를 썼음에도 결국 데뷔하지 못했던 메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족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팬들이 가득한 곳 역시 메츠였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20대를 모두 송두리째 바쳤다. 그리고 보상받지 못했던 첫 번째 삶의 몫까지 아주 제대로 보상받은 셈이다.
‘참 재밌는 우연이란 말이지.’
첫 번째 삶에서 야구선수로의 삶을 포기했던 것이 2006년. 나의 첫 장기계약이 종료되는 해였다. 그때 메츠가 나의 열렬한 사랑에 해준 답변이 방출이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 저들의 사랑에 내줄 답변이 이적이라면 전생이건, 이번 생이건 참으로 얄궂은 운명인 셈이다.
[최근 상당히 안 좋은 소식이 메츠를 덮친 가운데 이곳 셰이 스타디움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주말보다 훨씬 많은 관중이 찼습니다.]
[최근 이어진 연승도 연승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경기장을 찾는 것이 선수들을 격려해주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메츠의 선수단 역시 그런 팬들의 성원에 훌륭하게 보답하고 있어요. 사실 야구는 멘탈이 정말 중요한 스포츠거든요. 지금처럼 안 좋은 소식이 팀을 뒤흔드는 가운데 최근 10경기에서 무려 8승 2패의 성적을 거뒀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메츠를 상대하는 팀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전통의 강호 휴스턴인데요. 그런데 이 팀 올해 성적은 썩 좋지 못합니다.]
[몇몇 고액 연봉자들의 부진이 조금 심각해요. 문제는 그런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는 루키들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휴스턴은 고액연봉자들이 되살아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 휴스턴의 선발은 로저 클레멘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사이 영상을 받은 최고의 투수입니다. 작년까지 무려 일곱 번의 사이 영상을 받았어요. 특히 작년에는 무려 만 42세 2개월의 나이로 양대리그 최고령 사이 영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로저 클레멘스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올 시즌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강진호 선수도 평소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충분히 연속 안타 기록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마운드에 로저 클레멘스가 올라왔다. 올 시즌 강화된 약물검사로 인해 성적이 폭락한 대표적인 투수. 앤디 페티트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백하다며 법정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남자였다.
물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싸늘했다. 성적이라도 잘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작년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던 그의 올해 그리 좋지 못했다. 시즌의 3/4이 지난 상황에서 17경기 98.1이닝 5.69의 평균자책점은 2천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받아먹는 선발투수의 성적이라기엔 너무 처참한 성적이었다.
[자 타석에 선두 타자 호세 레예스가 올라갑니다. 손가락 부상으로 DL에 등록되고 오늘 복귀전을 갖는 호세 레예스 선수입니다.]
따악!!
[호세 레예스!! 로저 클레멘스의 몸쪽 초구를 그대로 밀어쳐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부상에서 막 복귀한 선수라고 걱정했습니다만 타격감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네요.]
[자, 이제 타석에 강진호 선수가 들어옵니다.]
1루에 호세 레예스가 보호장구를 벗어 1루 코치에게 건네고 푸른빛의 장갑을 받아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 호세 레예스 선수. 도루 장갑!! 도루 장갑을 받아드네요.]
[이전 경기 도루 중에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저 장갑이 오븐 장갑처럼 좀 못생기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선수에게 부상을 방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거든요. 강진호 선수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사용하는 선수가 상당히 늘었습니다만 그래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선수들이 제법 됐는데, 호세 레예스 선수를 마지막으로 메츠의 선수들은 모두 저 장갑을 사용하게 됐네요.]
타석에 들어가 그라운드를 쭉 훑었다. 이제 제법 선선해진 날씨. 하지만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팬들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눈을 돌려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 마운드를 바라본다. 약물이 빠져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투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메이저를 호령하던 거인이 아니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이미 끝난 싸움을 억지로 이어가는 작고 왜소한 겁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