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Greatest Baseball Players of All Time(3)
-강진호 마침내 56경기 연속 안타-
-마침내 조 디마지오의 기록과 나란히 하다.-
-메이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록과 나란히 서다.-
-강진호 지난 56경기 동안의 성적은? 83개의 안타, 19번의 멀티 안타 경기. 16개의 홈런. 52번의 볼넷과 3개의 사구. 59득점과 53타점. 그리고 15개의 도루와 5개의 도루 실패. 0.399/0.523/0.726-
-가장 위대한 사나이. 양키스의 범선 조 디마지오의 기록과 나란히 선 남자 강진호!!-
“안녕하십니까.”
“물론이죠. 오늘도 Kang은 안타를 쳤는데 안녕하지 못할 리가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메츠의 팬임을 밝혀 온 유명 캐스터 카트리나 에반스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그런 카트리나를 삐딱하게 바라보던 줄무늬 양복의 중년 사내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거, 아무도 그 사람이 안타 쳤는지를 묻지 않았는데 굳이 이야기할 필요 있습니까? 우리 클리퍼야 신문에서도 묻고 전 미국인들이 다 물었다지만 지금 그 사람은 아니잖소,”
“그런가요? 그런 것 치고는 오늘 프로그램 제목이 너무 그런데요?”
카트리나가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힐끔 바라보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곳에는 The Hitting Streak라고 쓰인 글귀에서 The라는 정관사를 가로지르는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이제 더는 조 디마지오의 The hitting streak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는 노골적인 프로그램 제목에 3대에 걸쳐 양키스 팬이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줄무늬 양복의 중년 남자 마이클 코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자,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두 분의 논쟁이 거세군요. 양키스와 메츠를 대표하는 팬들답습니다.”
“어허, 양키스의 팬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진호 선수의 기록은 우리 조 디마지오의 기록에 비교하긴 좀 그렇다니까요. 당장 타석 숫자만 보더라도 강진호는 262타석이나 받은 데 반해서 조 디마지오는 고작 247타석이었죠. 게다가 그 적은 기회 속에서도 조 디마지오는 91안타인데 강진호는 83안타였나요? 그뿐만 아니라 삼진도 9개와 5개로 크게 차이납니다.”
마이클 코튼의 이야기에 카트리나 에반스가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것 참 자료를 자기 편한 대로 취사선택하시는 걸 보니 기도 차지 않는군요. 자 타석 숫자만 보면 262타석과 247타석이 맞습니다. 타석 말고 타수를 보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죠. 조 디마지오 선수는 223타수, 강진호 선수는 208타수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그거야 조 디마지오 선수는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렀고 강진호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 때문 아닙니까.”
“말 끊지 마시고 일단 끝까지 들어주시죠.”
“아니!! 거, 이 여자가!!”
불만에 가득 찬 마이클 코튼을 사회자가 제지했고 카트리나가 말을 이어갔다.
“네, 저 여자 맞으니까 굳이 강조 안 해주셔도 되고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강진호 선수는 2번 타자, 그리고 뒤로 장타율이 높은 선수들을 줄줄이 데리고 있는 리드오프입니다. 더 많은 타석을 제공받는 대신 안타가 될지 범타가 될지 모르는 타격에 올인하기 보다 확실한 출루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말이죠. 즉 앞서 말씀하신 부분들은 강진호 선수가 개인 기록보다 팀의 승리를 위해 더 헌신했다는 증거이지 그의 기록이 조 디마지오의 기록에 비교해 가치 없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마이클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여자가 야구를 알면 얼마나 알겠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야구 프로그램에 캐스터로 얼굴을 내민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여자들 대부분은 그저 꽃 병풍에 불과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더 편할지도 모르는 삶. 한참 타오르던 연인과의 사랑까지도 포기했던 여자였다.
“그, 그래도 시대 상황도 다르고, 전설적인 선수의 기록은 그 기록으로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61년 로저 매리스가 27년 루스의 60홈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하지만 루스는 최고의 홈런왕이고 20, 30년대를 지배한 위대한 야구 선수죠. 오늘 강진호 선수가 조 디마지오 선수의 56경기 연속 안타를 경신한다고 해서 더 클리퍼의 위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그 찬란한 영웅들의 이름 옆에 강진호라는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새겨지는 겁니다.”
카트리나가 양키스의 위대한 기록을 경신했던 양키스의 백인 선수를 예로 들었다. 전형적인 미국 백인 보수주의자 마이클 코튼의 입이 턱하고 막혀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이제 커리어 8년 차 선수인데 그런 위대한 선수들과 벌써 비교하는 것은······.”
“글쎄요. 전 조 디마지오 선수의 시대를 보지 못했고, 딱히 양키스의 팬도 아닌지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코튼 씨처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양키스의 범선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 위대한 선수라면 자신의 기록을 깬 후배를 질투하기보다는 웃으면서 65년은 너무 길었다고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깨지다니요!! 아직 타이기록입니다!!”
“그렇죠. ‘아직’ 타이기록이죠.”
때마침 스크린에 떠오르는 어제저녁 경기 진호의 홈런을 바라보며 카트리나가 환하게 웃었다. 저런 남자까지 포기하고 선택한 커리어다. 고작 이런 꼰대에게 밟히기에 그녀가 포기한 것은 너무 거대했다.
-카트리나 에반스 ‘강진호는 Greatest Baseball Players of All Time에 꼽힐 자격이 충분하다.’-
<코튼의 말처럼 클리퍼의 기록과 비교하기에 Kang의 기록은 좀 부족하지 않아? 타점도 적고 안타 개수도 적고, 운이 좀 좋아서 56경기 타이기록을 이루기는 했지만 말이지.>
<애초에 연속 경기 안타라는 것 자체가 운빨 기록인데 무슨 헛소리야. 게다가 니들 말처럼 생산성만으로 따진다면 조정 OPS가 훨씬 높은 쪽은 Jin-ho거든?>
<그보다 저년은 예전에 저 노랭이랑 붙어먹던 년 아니야? 대체 Fox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년을 계속 써먹는 거야?>
<위에 저 자식 제정신이야? 옐로우라니. 와우.>
<난 저 녀석을 이해한다. 완벽한 패배자 인생에 남은 거라고는 ‘난 백인이다!!’밖에 없는 인생인데 저딴 사고방식이라도 안 가지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겠어.>
<여기서 너희가 아무리 싸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 게다가 조 디마지오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가 있지만 Kang의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이딴 걸로 싸우느니 그냥 우리 보스가 후년 FA에서 Kang을 사오기를 기대하자고. 메츠 어차피 다 망했잖아.>
<근데 최근 메츠를 인수하려는 그룹이 있다는 소문이 있음.>
<사기꾼 자식들이 소송전에 휘말리긴 했지만 저런 알짜 자산을 내놓겠냐?>
<그야 모르지. 솔직히 쟤들 이제 구단에 돈 쓸 상황도 아니고 그러면 Kang 못 잡는 것도 확정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이 메츠 구단 가치의 정점일 수도 있음.>
<그런 건 모르겠고, 카트리나 진짜 예쁘다.>
<메츠 홈에서 필리스랑 3연전인데 강진호 최근 3년 동안 필리스 상대로 34경기에서 안타 못 친 경기가 아홉 경기밖에 안 됨. 완전 필리스 킬러야. 장담하는데 신기록은 기본이고 59경기 연속 안타까지는 무조건 간다고 본다.>
***
65년이라는 긴 세월을 깨트린 그것은 그리 극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담담함 속에서 진호의 배트는 돌아갔고 그 배트에 얻어맞은 공이 떠올랐다. 이루수의 키를 넘기는 우전안타. 데뷔 이후 진호가 가장 많이 기록했던 모습의 안타였다. 1회와 3회. 진호의 범타를 숨죽여 지켜봤던 해설자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루수의 키를 넘기는 우전안타!! 바비 어브레유 달려 보지만 늦습니다!!]
[강진호!! 안타!! 안타입니다!! 6회 말, 강진호의 안타!! 65년!! 무려 65년 만의 신기록입니다.]
[메이저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손꼽히던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를 우리 강진호!! 대한민국의 강진호 선수가 깼습니다!!]
[1941년 7월 16일 이후 무려 23,430일 만의 기록입니다.]
최근 쪼들리는 메츠의 사정을 말해주듯 홈경기였음에도 보통 대기록에 따라오는 대규모의 폭죽은 없었다. 평소 홈런을 친 것 보다 고작 몇 개 더해진 규모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하지만 그런 불꽃놀이의 규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불꽃놀이보다 훨씬 성대한 환영이 진호를 향해 쏟아졌다. 평일 경기였음에도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기립박수. 1루 베이스를 밟고 선 진호가 모자를 벗어 팬들을 향해 고개 숙였다.
덕아웃에 있던 동료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진호를 둘러쌌다. 올 시즌 신인왕이 유력한 필리스의 일루수 라이언 하워드도 해맑게 웃으며 메츠의 선수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시 경기 중단됩니다. 선수들의 축하가 이어지고 있어요.]
[당연한 일입니다. 무려 65년 만의 기록 아닙니까.]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신기록은 최근 몇 가지 문제로 복잡한 메츠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겁니다.]
비록 시합 중인 상대 팀이었지만 존중받아 마땅한 위대한 선수의 위대한 기록이었다. 필리스의 선수들 역시 덕아웃에서 걸어 나와 진호를 향해 박수를 보내왔다. 메츠의 덕아웃에서 달려 나왔던 선수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필리스의 우익수 바비 어브레유가 진호의 안타 볼을 들고 걸어왔다.
“축하해. Kang.”
“고마워.”
같은 지구 소속으로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을 진호와 함께했던 어브레유였다. 항상 냉정해 보이던 진호였지만 이런 의미 있는 대기록에 흥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처음 보는 진호의 그런 모습에 어브레유가 짓궂게 물었다.
“이제 기록 경신도 했겠다 나중에 나올 선수가 또 경신할 수 있도록 슬슬 그만 쳐줘야 하지 않겠어?”
“글쎄, 그보다 기록 경신은 역시 험난할수록 도전하는 맛이 있잖아. 그러니까 도전하는 맛이 아주 충만하게 해주는 쪽이 후배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일 것 같은데?”
“너무 높은 산은 도전하기 전에 겁에 질릴 것 같은데?”
“고작 그 정도에 겁먹고 주춤거리는 녀석이라면 내 쪽에서 사양하고 싶네.”
“그래, 아주 쭈욱 더 해 먹어라.”
“노력해보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진호. 어브레유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어브레유를 바라보며 진호가 오른팔을 가볍게 주물렀다.
‘아직이야.’
05년 9월 6일. 시즌의 종료까지는 아직 충분히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제 질문할 필요조차 없는 일상? 강진호 안타 또 안타!!-
-59경기 연속!! 과연 연속 안타 경기 기록의 끝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