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90화 (190/210)

# 190화.

다섯 번째(1)

“오 마이 갓.”

세상이 강진호의 성적에 열광하던 그 순간 션 스미스는 그보다 더 대단한 무언가에 집중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던 그가 결국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건 부정할 수 없어. 올해의 Jin-ho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야.”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션 스미스가 흥분에서 돌아온 것은 약 10여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였다. 다시 자리에 앉아 자신의 계산식을 검토하던 그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데드볼 시대의 그 변태적인 기록들을 제외하고 단일시즌 가장 높은 기록이야.”

BIS(Baseball Info Solutuions)에서 타구들에 대한 완벽한 자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였다. 덕분에 야구를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너드들은 그들이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던 선수들의 수비을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 많은 너드들이 선수들의 수비를 조금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수식에 열중할 때, 션 스미스는 조금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과거의 위대한 선수들은 얼마나 위대했는가. 그리고 그들과 현재의 선수들을 어떻게 줄 세울 수 있을까. 그는 현재 선수들의 클래식한 수비기록과 BIS를 통해 제공되는 디테일한 수비기록을 귀납적으로 분석하여 클래식한 수비기록을 통해 선수들의 수비기여도를 유추할 수 있는 수식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가 측정해낸 가장 위대한 기록은 베이브 루스의 1923년이었다. 무려 14.1이라는 WAR은 라이브볼 시대 역대 그 어떤 위대한 선수도 근접조차 하지 못했던 대기록이었다.

“14.3······.”

물론 행운이 따르기는 했다. 리그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선수들 상당수가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0.364/0.468/0.674에 OPS 1.142의 기록은 물론 대단한 기록이었지만 작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WRC 187 전후의 평범(?)한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올 시즌 약물러들의 몰락으로 인해 떨어진 리그의 평균성적 덕분에 진호의 WRC+는 무려 201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타자를 통틀어 공동 30위의 높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무려 231라는 높은 WRC+를 기록했던 루스의 1923년과 비교하면 제법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호의 WAR이 루스보다 높을 수 있었던 것은 무려 10.3이라는 높은 BSR(리그의 평균적인 주루와 비교된 득점). 그리고 중견수로는 역대급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dWAR덕분이었다. 기존 가장 높았던 중견수의 dWAR 기록인 진호 자신의 00년, 그리고 앤드루 존스의 98년 기록인 3.9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보다 0.1밖에 떨어지지 않은 3.8의 성적이 저 공격스탯에 더해지는 순간 05시즌의 강진호라는 역사상 가장 가치있는 시즌을 보낸 선수의 성적이 완성됐다.

-션 스미스 ‘강진호는 야구의 신을 넘어섰다.’-

-션 스미스 ‘몇 가지 행운이 있기는 했지만, 어찌 됐건 05시즌의 강진호는 팀에 14.3번의 승리를 더해 주었다. 이는 양대 리그 어떤 팀이건 강진호가 더해졌다면 최소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려볼만한 성적이었다는 의미다.’-

최근 TZ라는 과거 선수들의 수비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스탯을 개발한 덕분에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법 높은 이름을 얻고 있던 션 스미스의 발언에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오클랜드, 메츠등의 활약으로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학문의 유용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제 드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통이라는 것이 단단하게 확립된 야구판의 성향 자체를 확 바꾸는 것은 무리였고, 대부분의 야구인에게 클래식 스탯은 세이버 스탯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루스라니. 물론 Kang의 2005년이 대단하긴 했지만 당장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본즈의 기록보다 못하잖아.”

“맞아, 게다가 2005년이 직전해와 비교했을 때 투고타저 경향이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알버트 푸홀스만 하더라도 강진호의 타격성적과 거의 비슷했잖아. 그런데 알버트의 기록은 역대 150위 수준인데 Kang의 기록은 올타임 No. 1이라고?”

“뭐, 야구도 제대로 안 해본 책상물림이 앉아서 계산기나 돌리고 한 이야기인데 얼마나 설득력 있겠어?”

많은 관계자와 팬들이 션 스미스의 발언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몇몇 헤비팬, 그리고 세이버매트리션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들 역시 베이브 루스라는 절대적인 야구의 신이 만든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아시아에서 온 동양인 타자가, 그것도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던 배리 본즈의 성적에 비하면 한 단계는 낮아 보이는 성적을 기록한 타자가 깼다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객관적인 수식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진호의 2005년은 보수적으로 본다고 해도 1923년을 제외한 루스의 모든 기록을 뛰어넘는다고 말이다.

-빌 제임스 ‘보수적으로 측정한다고 해도 2005시즌 Jin-ho의 기록은 1923년의 루스의 역사적인 시즌과 비교할 만하다.’-

-존 드완 ‘타석에서는 루스보다 조금 부족했고, 베이스에서는 리키 헨더슨보다 조금 못했다. 글러브를 낀 상태에서는 오지 스미스보다 조금 모자랐다. 그렇기에 2005년의 강진호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야구 선수였다.’-

-키스 울너 ‘전성기 Say Hey Kid보다 잘 치고, 빨랐으며 잘 잡았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야구 선수 그 자체.’-

유명한 세이버매트리션들이 하나둘씩 션 스미스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그에 결정적으로 보탬이 된 것은 인터넷에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 양대 야구 사이트 중 하나에서 강진호의 05시즌 WAR을 14.3으로 책정한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들의 이야기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인터넷에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 양대 야구 사이트 중 다른 하나에서는 강진호의 2005년 WAR을 1923년 루스의 WAR보다 0.8 낮은 13.3으로 책정했다.

<야, 저거 Kang이 어떻게 13.3밖에 안되는 거지? 물론 션 스미스의 말처럼 14.3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의 수식대로 해도 13.7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 셰이 스타디움 파크팩터가 좀 이상한 거 같던데? 그리고 주루에 가중치도 좀 이상하고. 올 시즌 리그 평균치가 좀 격동하긴 했는데 그걸 기반으로 상수들이 좀 조정된 듯.>

<13.3이라고 해도 역대 2위 성적 아니야? 저 보수적인 자식들이 저만큼이나 책정한 거 보면 Kang의 05시즌이 진짜 대단하긴 대단했나보네. 그냥 보기에는 푸홀스랑 좀 차이 나는 수준인데 말이야.>

<골드 글러브급 1루 수비랑 평균 이하 주루의 푸홀스. 역대 최고의 중견수 수비에 리그 최고 수준의 주루 강진호의 차이지. 기본적으로 일루수랑 중견수랑 수비기여도 차이도 있고.>

<내가 보기엔 이건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한 점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저런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역대 2위의 WAR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예전 잽머니처럼 차이니즈들이 미국 채권을 열심히 사들인다던데 그것 때문에 알아서 기는 것 같다.>

<멍청아. 애초에 강진호는 중국인도 아닐뿐더러 내가 보기엔 저 13.3도 너무 낮거든? 장기적으로 저 13.3의 스탯은 조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올해의 상수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이상하게 책정돼있어. 빌어먹을 약쟁이 놈들 같으니라고. 마지막까지 아주 물을 더럽게 흐려놓고 있다니까.>

***

“최근 Kang의 올 시즌 성적에 대한 이야기들로 뜨거운데, Kang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이번 시즌이 1923년 베이브의 기록보다 낫다느니 부족하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군요.”

카트리나의 얼굴에 짓궂음이 떠올랐다. 악의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생방송도 아니고 나의 대답이 이상하다면 알아서 편집해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잠깐의 망설임. 어차피 겸손하고 성실한 동양인 선수 이미지는 이미 흐려진 상황이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언론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는 리그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야구 선수에 걸맞았다. 야구 선수로서는 절정의 나이. 과거의 전설을 최대한 존중하되 굳이 겸손만으로 똘똘 뭉칠 필요는 없었다.

“그의 기록은 존중받을만한 기록입니다. 야구의 기록측정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기록을 1:1로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굳이 그런 걸로 논쟁을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다만?”

내가 잠시 물컵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카트리나의 표정이 뜨거웠다. 여기까지가 전통을 존중하는 올드스쿨들을 위한 립 서비스. 그리고 이제 뉴욕 메츠를 그리고 강진호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나의 속마음을 밝힐 차례였다.

“루스 선수의 기록은 1923년이 가장 위대했던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났지만 전 이제 29살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진호 ‘나는 고작 29세.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역대급 페이스의 강진호. 데뷔 8년 차 1511안타 294홈런 345도루 948득점 814타점.-

***

딱!!

[강진호 쳤습니다!! 높게 뜬 타구!! 높게 뜬 타구!! 아, 아쉽습니다. 폴대 우측으로 살짝 빗나갑니다.]

[9회 말 3:2 원아웃 1, 2루의 상황. 펫코 파크를 가득 메운 4만 2천여 파드리스의 팬들에게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파드리스는 98년 이후 무려 7년 만의 디비전시리즈거든요. 이렇게 끝낼 수는 없을 겁니다.]

[반면 메츠에게는 매우 아쉬운 순간이였어요. 사실 다른 구장이었다면 충분히 넘어갈 만한 공이었거든요. 넓은 외야, 그리고 강한 바닷바람만 아니었어도 지금 이걸로 경기가 끝날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만이 한숨을 돌렸다. 언제 상대해도 정말 터무니없는 타자였다. 물론 호프만을 상대하는 진호 역시 마운드에 선 호프만의 공에 혀를 내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속구랑 구속이 비슷한 체인지업이라니. 이게 무슨 체인지업이야.’

그것이야말로 평균 80마일 중후반의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트레버 호프만이 리그 최고의 마무리 자리를 무려 12년째 유지하고 있는 이유였다. 무려 15마일을 오가는 그의 체인지업은 가장 빠르게 던질 경우 자신의 포심 구속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공이 들어오는 높이는 포심과 무려 공 하나 반 차이를 보였다.

[볼카운트 2-2. 트레버 호프만 제 5구.]

같은 내셔널리그 소속으로 매년 2, 3차례 정도는 꼬박꼬박 만나온 투수였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투수 중 하나인 트레버 호프만. 그리고 그에게 가장 어려운 타자 중 하나인 강진호.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존재했다.

그것은 93년 데뷔 이후 37세. 98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만 37세의 호프만과 달리 얼마 전 생일이 지나 만 29세가 된 강진호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의 정점이라는 점이었다.

딱!!

디비전 시리즈 3차전. 진호의 석 점 포가 메츠의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딱!!

디비전 시리즈 3차전. 진호의 석 점 포가 메츠의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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