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93화 (193/210)

# 193화.

다섯 번째(4)

-강진호 챔피언십 시리즈 5경기 17타수 6안타 2홈런 5볼넷 3도루-

-브루스 보치 ‘지난 경기를 아무리 분석해봐도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Kang Jin-ho.’-

-알버트 푸홀스 ‘가끔 훌륭한 선수들은 혼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 때도 있다. 하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이고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혼자 시리즈를 좌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궁금하다. 내가 지난 일주일간 했던 것이 진짜 야구였나?’-

브라이언 캐시맨이 이를 악물었다. 양키스는 결국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항상 들려오던 ‘이 말똥 같은 자식아!!’라는 호통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 호통을 듣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젠장.’

이틀 전 갑자기 쓰러진 보스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물론 병원에서는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보스였지만, 양키스라는 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승리에 대한 갈망만큼은 진짜였다.

‘보스, 조금만 더 버텨봐요.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

시애틀의 감독 마이크 하그로브는 매우 능력 있는 감독이었다. 91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99년까지 지구 우승만 다섯 번. 월드 시리즈 진출 역시 두 번을 달성했다. 올 시즌, 04시즌 압도적으로 지구 꼴찌를 달성했던 시애틀의 감독으로 부임한 마이크 하그로브는 많은 전문가의 예측을 비웃으며 와일드카드를 거쳐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이것은 피타고라스 승률에 따르자면 지구 3위에 불과했던 팀으로 만들어낸 성적이었기에 더 놀라운 결과였다. 가히 마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기록. 그런 하그로브 감독의 마법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프리드먼이 답했다.

“야구에서 감독의 영향력이요? 글쎄요, 아주 뛰어난 감독이라면 리그 평균 수준의 감독보다 1.5승 정도는 더 챙길 수 있지 않을까요? 클럽하우스를 관리하고 그때그때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기용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작년 68승 94패의 팀이 변변한 보강 없이 87승 75패로 뛰어올랐습니다. 게다가 올 시즌 피타고라스 승률로 계산했을 때 나오는 76승보다 무려 11승을 더 기록했고요.”

“음, 피타고라스 승률이라. 뭐 유용한 툴이죠. 하지만 이걸 감독의 역량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좀 구시대적인 이야기 같군요.”

“구시대적인 이야기요?”

“네, 뭐 단기적으로 피타고리안 승률과 팀의 성적이 어긋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걸 감독의 역량으로 보는 건 좀 그렇죠.”

“그렇다면 대체 어떤 요소가 피타고리안 승률과 실제 승률에 차이를 만든다고 보시는 건가요?”

“일단 가장 큰 건 뭐니 뭐니 해도 운빨이지만 이런 답변을 원하시지는 않을 테고, 음, 피타고리안 승률은 러프하게 본다면 결국 득실마진의 문제거든요. 즉 득점의 분포가 균일하던지 실점의 분포가 널뛰기를 한다면 빗나갈 확률이 높은 거죠.”

“호오.”

“올 시즌 시애틀을 보면 득점이야 그냥 다른 팀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만 역시 실점의 분포가 좀 널뛰기를 했잖아요. 그 투수의 등판일 같은 때 말이죠.”

***

부웅

“스트라잌!! 아웃!!”

[스윙 삼진!! 스윙 삼진입니다. 펠릭스 에르난데스 선수!! 월드 시리즈 1차전 메츠를 상대로 다섯 번째 삼진을 기록합니다.]

[지금 구속이 100마일이 찍혔습니다. 선발 투수가 3회에 100마일이라니. 와, 정말 터무니 없는 구속입니다.]

[이런 구속이 있으니 고작 19살의 나이에 월드 시리즈, 이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올 수 있는 거죠.]

14살의 나이에 94마일(151km)의 공을 던져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시선을 한몸에 모았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마운드에서 쓰게 웃었다.

16살 미만 선수의 계약이 금지돼있는 메이저리그 룰에 따라 16살의 나이에 시애틀에 입단한 이후 3년. 마이너를 차례차례 박살 내고 빅리그에 콜업된 그는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활약을 선보였다.

12경기 선발 등판 5승 3패 ERA 2.64. 비록 서비스 타임을 고려한 콜업 덕분에 시즌의 1/3밖에 뛰지 않았다곤 하지만 팀의 1선발로 뛰었던 제이미 모이어의 평균자책점이 4.18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터무니없는 성적이었다.

같은 나이의 선수들이 이제 막 드래프트 되어 루키리그, 특출난 이라고 해봐야 하위 싱글A에서 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9세에 빅리그에 데뷔한 페르난데스의 재능은 대단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3회 말 2아웃 상황. 타석에 강진호. 강진호 선수가 들어옵니다.]

메이저리그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에 도전할만한 재능. 그렇기에 고작 마이너리거에 불과했던 그에게 팬들은 경의를 담아 ‘킹’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하지만 역대 최고에 도전할만한 ‘재능’은 역대 최고를 기록한 선수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앞선 타석 펠릭스 에르난데스 선수의 두 번째 체인지업을 끌어당겨 솔로 홈런을 기록했던 강진호 선수. 오늘도 역시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이거든요. 이번 타석도 충분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걸맞게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었다. 최고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90마일의 체인지업은 강력했지만 원하는 곳에 펑펑 집어넣을 만큼 완숙하지 않았고 슬라이더와 커브는 메이저에서 위력을 발휘하기에 아직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만으로도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리그 최고 수준의 선발이었고 종종 들어가는 완벽하게 제구된 100마일 포심과 90마일 체인지업은 말 그대로 언터쳐블이었다. 그리고 바로 2이닝 전. 그는 프로에 입단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이 던진 완벽하게 제구된 체인지업이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경험했다. 펠릭스 에르난데스에게 실수가 아닌 자신의 100%가 박살나는 그것은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킹’ 펠릭스가 이를 악물었다. 노리는 것은 바깥쪽 낮은 코스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 완벽하게 제구된 100마일 속구가 존의 외곽을 파고들었다. 평균보다 2인치 이상 크게 변화하는 뛰어난 구위. 그야말로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속구였다.

딱!!

[바깥쪽 초구!! 쳤습니다!! 강진호!! 잡아당긴 타구!! 우측 담장을!!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와, 강진호, 이런 공이 통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 거죠? 지금 강진호라면 정말 어떤 공을 던져도 존 안에만 들어오는 공이면 다 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야를 가볍게 도는 진호의 얼굴이 얄밉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펠릭스의 가슴에 분하다는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패배하고, 또 패배하는 경험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어찌나 분했는지 찔끔 눈물까지 나왔다.

“아 씨.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혹시 누군가 볼 새라 얼른 소매를 들어 얼굴을 닦았다. 19살. 시애틀의 어린 에이스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

프레스톤이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스트라잌!!”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슬쩍 빠져나가는 펠릭스의 90마일 체인지업이었다. 일반적인 투수들의 속구만큼이나 빠른 그 체인지업에만 벌써 2개의 삼진을 적립한 프레스톤. 그가 손을 들어 잠시 타석 밖으로 물러났다.

[아, 프레스톤 윌슨. 오늘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체인지업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프레스톤 윌슨 선수가 힘을 쓰지 못한다기보다 오늘 펠릭스 에르난데스 선수의 공이 워낙 좋다고 봐야겠죠. 6.1이닝 2실점. 무려 11개의 삼진을 잡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 투구 수가 94개째인데 구속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위도 오히려 점점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직전 이닝에는 연타석 홈런을 허용했던 강진호에게도 삼진을 뽑아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투수인 만큼 이렇게 큰 경기, 어려운 타자와 한타석, 한타석 승부를 할 때마다 기량이 상승한다는 느낌이에요.]

볼카운트는 1-2. 빌어먹을 체인지업과 빌어먹을 속구.

‘젠장,’

젊어서는 애틀랜타의 개자식들을 비롯한 영감탱이들이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그 영감들이 골골거린다 싶었더니 19살짜리 새파란 자식이 치고 올라오려고 한다. 이놈의 세상에는 뭐 이리 괴물들이 많은 것인지. 고교 시절 전미 최고의 유망주라고 자평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장갑을 조여 매고 헬멧을 고쳐 썼다. 그리고 목가를 간질거리는 가래를 긁어모아 바닥을 향해 침을 탁 뱉어냈다.

‘그래, 너 쫌 잘 던진다. 빌어먹을 천재 놈아.’

타석으로 들어서기 전 마운드에 서 있는 펠릭스를 한번 째려봐준다. 열아홉. 뽀송뽀송한 얼굴이 영 재수 없다. 프레스톤의 머릿속에 무언가 간질간질한 것이 떠오른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러니까 딱 던지면 슈웅하고 오는데 그건 슈우우웅하고 오잖아.’

‘헨더슨 씨의 말이 조금 어렵지? 음 그러니까 저게 무슨 이야기냐면 속구가 정박이라면 체인지업은 블루스랄까? 뭐 대충 그런 느낌이지.’

도움 따윈 전혀 되지 않았던 두 천재의 이야기. 마운드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0.35초. 혹은 0.4초. 프레스톤이 방망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슈웅인지 슈우우웅인지. 정박인지 블루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천재는 자신들만의 감각 속에서 야구를 하게 내버려 둔다. 메이저 8년 1억 2천만 달러를 16년에 나눠 지급 받는 호구 계약의 주인공 프레스톤 윌슨은 프레스톤 윌슨에게 어울리는 스윙을 하면 된다.

‘체인지 업!!’

50%의 확률. 프레스톤이 결정을 내렸다. 만약에 속구가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을 구분하면서 치는 기능따윈 애초에 달고 태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반반의 확률이라면 제법 괜찮은 확률이다. 뭐 그걸 찍어 맞췄다고 해서 항상 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나아 두우울 셋!!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손끝을 출발한 공이 슉 하고 존 바깥쪽으로 새어나간다. 체인지업이다. 남은 것은 그가 예측한 코스로 공이 들어오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다.

‘제발 앞서 본 것 만큼만 휘어 들어와라.’

두 번의 타석에서 두 번의 삼진을 먹여준 체인지업의 궤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평범한 투수들의 체인지업과 격이 다른 움직임. 그렇기에 너무나도 쌩뚱맞은 곳으로 향하는 것 같은 배트다. 하지만 수년간 쌓아온 스스로의 경험과 훈련을 믿는다. 프레스톤의 풀스윙에 망설임 따위는 한 줌도 들어있지 않았다.

딱!!

[쳤습니다!!]

타격의 순간 직감했다. 넘어가는 공이다. 하지만 진호가 종종 보여주는 여유로운 감상 따윈 없었다. 그런 것은 강진호라는 선수이기에 할 수 있는 특권이다. 프레스톤 윌슨에게 어울리는 것은 홈런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 전력 질주였다. 하늘을 가르는 시원한 타구 아래 방망이를 내려놓은 프레스톤이 1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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