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95화 (195/210)

# 195화.

FA 로이드(1)

-3억? 아니 4억도 가능하다.-

81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긴 시간 오랜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상대적으로 짧은 프로의 역사 속에서 초창기 NPB의 2군급 선수가 리그를 초토화하는 모습, 그리고 일본으로 진출했던 리그 최고의 선수들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 야구가 세계에 통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21세기. 한국야구는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당장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만 하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강진호 선수 아니겠는가. 현지 전문가들에게 작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그 어떤 팀에 가더라도 팀을 포스트시즌까지 올려놓았을 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정규시즌, 챔피언십 시리즈, 월드 시리즈 MVP를 동시에 석권한 기록은 1979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공과 함께 투수의 존엄을 날려버린’ 윌리 스타겔이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더욱이 윌리 스타겔의 경우 키스 에르난데스와 함께 정규시즌 MVP를 공동 수상했던 만큼 단독 수상으로 정규, CS, WS MVP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는 강진호밖에 없다.

시기 역시 적절하다. 이번 겨울 기습적으로 터졌던 대규모의 선수 자격 정지사건은 06시즌 대부분의 빅마켓 구단들이 페이 롤에 어마어마한 여유를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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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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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직전 시즌은 중요하다. 하지만 올 시즌 강진호가 시즌을 망친다고 해도 강진호의 계약에 3억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감히 예상해보건대 작년에 필적하는 활약이 올해에도 나온다면 어쩌면 우리는 최초의 3억을 넘어 4억의 계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4억?? 저거 4억 달러 말하는 거죠?>

<그러면 4억 원이겠냐? 총액기준이라고 해도 연 4천만 달러면 400억인데 05년 기준으로 KBO 모든 선수 연봉 총액이 400억 좀 안되는 걸로 아는데, 진짜 미쳤네.>

<혼자 우승을 만든 선수인데 그 정도는 받아야지. 당장 약동자가 받던 연봉이 얼마인데. 걔도 거의 3억 가깝게 받았잖아.>

<야구는 투수 놀음인데 아무리 메이저랑 KBO라지만 그게 될 리가 있냐? 게다가 강진호가 저렇게 날뛰는 건 앞뒤로 타자들이 받쳐주니깐 저게 되는 거지.>

<메이저 꼴찌 팀에 강진호 드랍하면 우승이라잖아. 하물며 메이저랑 KBO 차이인데.>

<그거야 결과론적인 WAR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지. 실제로 꼴찌팀 갔으면 거르고 거르고 걸러서 홈런이나 장타가 저만큼 안 나왔을 테고 결론적으로 저런 WAR 기록 절대 못 했을 거야.>

<뭐가 됐건 강진호 몸값이 KBO 선수 전체보다 높다는 거네?>

<이번에 메츠 구단주로 들어온 가수가 그렇게 부자라던데 돈 좀 풀지 않겠어? 지금 솔직히 메츠 엄청 잘나가는 거 전부 강진호 때문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연 4천만은 절대 불가능. 내가 보기엔 저거 가능한 거 양키스뿐이다.>

<그거야 이번 겨울 약쟁이들 다 자르기 전 이야기지. 이번에 페이롤 감축된 메가마켓들은 얼추 다 가능할걸? 보스턴, 시카고, LA, 그리고 짝퉁 LA까지 다 덤벼볼 만하다.>

<근데 강진호 잘하는 거랑 한국프로야구 위상이 무슨 상관? 강진호는 고졸로 미국 진출해서 미국 시스템으로 성장한 거잖아. 저런 말은 KBO 출신 선수가 포스팅이나 FA로 진출해서 저런 거 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 아니야?>

<고교 야구는 한국야구 아니냐? 글이 한국야구랑 한국 프로 야구 좀 섞어서 말하고 있긴 한데 기자가 멍청한 거니까 똑똑한 우리가 그냥 대충 알아들어 주자.>

***

2006년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단순히 겨울의 그 폭탄 선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쉬어야 하는 3월 초. 메이저리그의 이름값 높은 선수들이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1회 WBC

올림픽 위원회의 리그 선수 차출을 거부하던 사무국이 결국 축구의 월드컵에 해당하는 야구 국제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하지만 WBC는 월드컵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했다.

‘메이저리그를 제외한 모든 리그는 하위 리그에 불과하다.’

이것은 너무나도 오만한 이야기였지만 단순한 오만으로 취급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회의 가장 큰 수입원은 중계권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WBC의 경우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그 중계권에 관심을 두는 방송사가 없었다. 경쟁은커녕 단독으로조차 참여하는 방송사가 전무한 상황.

작년 가을 메츠를 넘겨받았던 제이지의 컨소시엄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인터넷 케이블 방송사 NYM Network가 WBC의 중계권 시장에 홀로 뛰어들었다.

“물론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케이블, 그것도 메이저급 케이블이 아닌 정말 마이너한 케이블 채널에서 변변한 중계권료도 챙기지 못하고 간신히 중계될 상황이잖습니까.”

“크흠,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지, NYM Network는 아직 제대로 된 망도 뚫지 못한 신생회사잖소. 게다가 인터넷을 위주로 방송이라니. 그거 아무리 최근 인터넷 공급률이 높아졌다곤 해도 야구를 즐겨보는 시청자층을 생각해보면······.”

“시청률, 그리고 광고판매야 사무국은 별다른 손해가 아니죠. 게다가 방송에 관해서는 팀장님보단 제가 전문이죠.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FOX SPORTS 2채널과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눈 상황이니까요. FOX도 그냥은 입찰에 참여 안 한 거 아시죠? 이거 저희가 웃돈에 인맥까지 동원해서 따오는 겁니다.”

“음,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또 좀 그런 것이 20년간의 단독 중계권이라는 것이 이게 참.”

“팀장님. 그거 TV 중계는 별도로 하고 인터넷 중계만 그 권리를 달라는 이야기잖습니까. 아니 사무국에서도 WBC의 흥행에 관해 부정적인 거야 공공연한 사실이고, 당장 5회나 대회가 열릴지도 불투명한 상황 아닙니까. 당장 저희도 1회의 중계에 관해서는 거의 적자를 각오하고 뛰어드는 겁니다. 인터넷망 공급률이 높은 한국 그리고 일본 쪽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그 적자를 메우겠다는 생각인 거죠. 뭐 이게 안 된다면 저희도 별수 없어요. 손 털고 일어나야지.”

“아니, 그거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마시고. 그 서로 간에 조율할 건 조율하고 하자는 이야기지 20년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가 건넨 제안은 최대치의 제안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거저 줘도 나서는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웃돈까지 건네주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하죠.”

협상을 하는 제이지의 태도가 완강했다. 사실 제이지는 이번 사업에 회의적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WBC는 답이 없었다. 치밀한 계획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어진 대회라도 성공할지 안 할지 확신할 수 없는데, 단순히 IOC와 다투고 ‘우리 따로 할 거야 빼애액!!’ 하면서 만든 대회다. 심지어 시즌을 며칠도 중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3월, 최악의 시기에 대회를 개최하다니. 이번 대회를 기획한 인간들의 머릿속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젠장, 그래도 뭐 최대주주가 원하는데 해드려야지. 이렇게 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게다가 품이 좀 들어서 그렇지 어찌어찌 잘 굴리면 손해는 안 볼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

“잘했어요.”

“거, 쩐주가 하라고 하시니, 하긴 했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본전치기도 힘들 겁니다.”

“어차피 NYM Network 직원 뽑아놓고 할 일도 없잖아요. FOX랑 메츠 중계권 계약 끝나려면 아직 시간도 좀 남았고, 인터넷 중계 대행으로 받아온 것도 할 일도 딱히 많은 것도 아니고요.”

“뭐,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거 제대로 하려면 사람들 추가로 제법 뽑아야 해요.”

“뭐 다 할 일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본전치기도 안 될 사업이면 제가 아무리 강권해도 안 들어갔을 거잖아요.”

“젠장, 내가 피똥 싸가면서 모은 돈 다 집어넣은 사업인데 당연하죠. 근데 사업이라는 게 본전만 쳐서 뭐 먹고 삽니까. 좀 남아야지.”

제이지의 솔직한 말에 진호가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방석에 앉게 해드릴 테니까.”

“아, 몰라요. 이번 꺼 망하면 홈디스카운트 많이 해야 할 겁니다.”

“그럴 일 없을 테니 걱정 마시고요. FOX랑은 시청률 단위로 계약한 거 맞죠?”

“네, 그렇긴 한데, 거기서 진짜 억수로 깨질 겁니다. 평균 시청자 50만은 넘어가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이에요. 광란의 3월이랑 겹치는 시기에 야구 국제대회라니. 이 머저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그래도 올스타급 선수들이 줄줄이 참가하니까 사람들이 제법 볼걸요.”

“미국이 이기는 게 당연한 경기인데 뭐 별일 있겠습니까? 아, 물론 진호 씨를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은 투수진이야 제법 대단하지만 타자 쪽에서 진호 씨 말고 마땅한 타자도 없잖아요.”

“뭐, 그야 지켜보면 알 일이죠.”

미국 방송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스포츠는 훌륭한 선수들이 나와서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면 축구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대회인 월드컵은 챔피언스리그는커녕 유로파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 마땅했다.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월드컵은 평소에 축구를 보지 않던 사람을 TV 앞으로 불러드리는 힘을 갖고 있다. WBC는 그와 흡사하다. 평소 야구를 보지 않던 이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평소 메이저리그의 화려한 야구에 미치지 못하는 졸전이라고 해도 말이다.

실제 1회 WBC는 ESPN의 케이블 중에서도 스페인어 케이블 방송인 ESPN Desports에서 중계권을 가지고 갔지만 생각지도 못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한 경기의 시청 인원이 무려 132만 명이 넘어가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것은 그해 ESPN Desports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스페인어 케이블에서조차 132만 명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조금 더 메이저한 채널에서 방영한다면?

‘게다가 중요한 건 지상파를 통해 손해를 보지 않는 것보다 NYM Network가 인터넷 방송 시장에 자리 잡는 일이지.’

현재 미국의 인터넷 공급률은 50%가 채 되지 못하는 상황. 닷컴 버블까지 꺼지면서 인터넷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상당히 사그라들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기회다. 몇 가지 힌트만 주면 알아서 움직이는 제이지라는 좋은 사업가를 손에 넣은 상황에서 길에 떨어져 있는 과실들을 줍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제1회 WBC.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 있을 몇 번의 대회와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스타들이 참여한 최초의 국제 야구 대회가 도쿄돔에서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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