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FA 로이드(4)
“잘해라.”
“거 뭐,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이야기하고 그럽니까. 어차피 잠깐 쉬고 코치로 다시 올 거라면서.”
“그렇지? 하긴 이 천재 리키 헨더슨님이면 지도자로도 금방 올라올 거야.”
“어휴, 애들한테 슈우웅 오면 탁하고 치는 거다. 같은 소리나 하지 마요. 그거 내가 볼 땐 해고 사유니까.”
“뭐 인마?”
은퇴 이후 부인의 고향에서 쉬고 있던 리키가 뉴욕으로 잠시 올라왔다. 30년 가깝게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1년 정도는 푹 쉴 생각이라고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아무래도 야구 시즌이 시작됨과 동시에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1년을 푹 쉬기는커녕 내일이라도 당장 마이너로 달려가 애송이들의 엉덩이를 쥐어 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자는 좀 어때?”
“어떻기는요. 무섭게 방망이 돌리고 있죠. 그래도 좀 놀랐어요. 아메리칸리그팀들에서 제안이 제법 괜찮았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까지 디스카운트를 해주면서 남을 줄이야.”
“뭐 어차피 돈은 벌 만큼 벌었잖아. 그쯤 되면 그 정도 금액 차이보다는 출전 보장이랑 명예지.”
“하긴, 평생을 포수로 살았는데 대뜸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라는 건 좀 그렇긴 하죠.”
지난겨울 많은 고민 끝에 결국 피아자는 팀에 남았다. 계륵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작년 포수로 94경기 일루수로 21경기 지명타자로 13경기를 뛴 선수였다. 팀의 포수 상황을 생각하면 피아자를 잡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약한 어깨로 인해 전통적인 수비지표에서는 상당히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최근 PTS와 HTS로 인해 점차 대두되기 시작한 지표들에서 피아자의 수비는 생각보다는 훨씬 양호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빠진 자리를 메우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찌 됐건 최선을 다해 보라고. 여차하면 은퇴 번복하고 다시 뛰러 와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한국 나이로 48세. 50을 목전에 둔 나이라고 믿기 힘든 팔팔함을 간직한 채 리키 헨더슨이 물러났다. 그리고 우리의 06시즌이 시작됐다.
***
“NPB는 기대만큼인데 KBO가 기대 이상이더군요.”
“우리 선수들이랑 다르게 1달 일찍 몸을 끌어 올린 점도 고려해야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빅리그에서 충분히 시험해볼 만한 재능들이 있던 건 확실합니다.”
라예시의 이야기에 프리드먼이 고개를 저었다.
“선수들의 몸이 올라오지 않아서 그래 보인 걸 거야. 전체적으로 구속이 너무 좋지 않았어.”
“그래도 이 Oh라는 선수는 좀 괜찮지 않았습니까?”
“아, 그는 확실히 매력적이었지. 하지만 대졸 출신이라 어리지 않고 KBO의 경우 포스팅이랑 FA가 NPB보다 오히려 더 빡빡해. 게다가 작년 소화 이닝을 보면 그가 시장에 나올 때까지 이 매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뭐, 일단 체크만 해두는 거죠.”
“그보다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너무 아쉽군.”
“하긴 그렇죠? 1억 달러니 뭐니 해도 포스팅 비용이 절반은 들어갈 테니 페이롤 부담도 좀 덜할 테고, 하지만 별수 없죠. 진출 시점이 올 시즌 끝나고 인데요. 우린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진짜 큰 문제가 있으니까요.”
라예시의 이야기에 프리드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의 클럽 옵션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강진호. 팀의 중심이자 작년 활약을 통해 자신이 역사상 최고의 타자임을 증명해낸 최고의 야구 선수. 어지간한 수준의 타자라면 고민할 거리라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강진호만큼 돼버리면 이건 고민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메츠는 강진호라는 최고의 엔진을 껴안고 브레이크 없이 쭉 달려야 하는 기차가 돼버렸다. 이제 프리드먼의 몫은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그저 기차가 과열되지 않도록, 그리고 탈선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뿐이다.
“새로 온 구단주가 얼마나 내줄까요?”
“글쎄, 말하는 거로 봐서는 일단 강진호를 잡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말이지.”
“그것도 금액이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 봐야 이런 쪽 경험은 전혀 없는 할렘 출신의 가수인데 이걸 이해할까요?”
“일단 지금까지 이야기 나눠본 바에 의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어. 최소한 제프 그 머저리보다는 말이 통하는 상대였지. 게다가 지금 광고나 기타 후원 물어온 것 보면 어느 정도 기대해볼 만한 인물 같아. 방송 쪽 인맥도 대단해 보이고.”
라예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이거 진짜 팀의 선수가 너무 잘할까 봐 걱정이라니.”
“어차피 셀링 팀으로 돌아서지 못할 거면 잘해야지. 뭐 일단 우리는 성적 내는 것만 신경 쓰자고. 강진호의 FA에 관한 부분은 구단주가 특별히 더 신경 쓰기로 약속은 해놨으니 말이야.”
***
돌이켜보면 98년 데뷔 이후 언제나 팀에는 무언가 일이 있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개인만 하더라도 일 년 내내 별일 없이 순탄하기 힘든 것이 인생이거늘 메이저리그의 구단은 수백 명, 아니 그와 연관된 가족들까지 한다면 수천 명의 사람이 연관된 단체였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쪽이 오히려 이상했다.
-호세 레예스, 팀의 2연패 후 클럽에서 만취 상태로 난동.-
-데이비드 라이트 발목 부상!! 15일 DL-
-마이크 피아자 무릎 악화!! 15일 DL-
-뉴욕 메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벤치 클리어링!! 노마 가르시아파라 2경기 출전 정지!!!-
-신종운 4경기 연속 QS 실패!! WBC 출전 후유증?-
-부진의 늪에 빠진 신종운. WBC의 저주가 투수들을 덮친다!!-
기사로 뜨는 이런 문제들은 시즌 내내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06시즌의 그 모든 일은 지난 8년 가 내가 경험했던 많은 사건들에 비하자면 그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경험은 그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소화할 만큼 거대했다. 더욱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뭐? 빚보증?”
WBC로 급하게 몸을 끌어올린 것보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선 것이 더 치명적 문제였던 종운이를 위해 데이비드 라이트가 선수노조를 통한 대출을 주선했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굳이 숙지해두지 않는 자잘한 규율들을 꼼꼼히 점검해둔 모범생다운 해답이었다.
“야, 너 그렇게 처마시고 놀면 혼자 엄청나게 뒤떨어진다?”
“뒤떨어지긴 누가 뒤떨어져요. 그러는 윌슨 씨야말로 캡틴한테 한참 뒤떨어진 거 아니에요?”
“그래, 내가 아직 좀 뒤지지. 근데 걔가 술 처마시고 놀았으면 진작에 내가 따라잡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술 처마시고 그렇게 놀았으면 지금 여기 이러고 있지도 못했을 거고. 근데 내가 보기엔 슬슬 데이빗이나 제이슨이 너보다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앞으로 한 7년 후에 넌 어떨지 두고 보자고.”
재능에 비해 워크에씩이 부족한 호세 레예스가 어느 순간부터 훈련장에 더 자주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가리비아의 센터는 첨단의 기기들을 꾸준히 사들이며 점점 성장했고 제이지는 그가 가진 인맥과 언론 능력을 총동원해가며 구단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나는 작년의 활약이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강진호 4월 이달의 선수 수상!!-
-2경기 연속 홈런!! 뉴욕 메츠 시리즈 스윕!!-
-한 달간 21승 6패. 뉴욕 메츠 7할 8푼의 승률!!!-
-강진호 3번 타자로의 변신 대성공? 커리어 최다 타점 페이스!!-
그리고 5월 11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2차전
딱!!
밀어친 타구가 쿠어스 필드의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오!! 맙소사. 강진호!! 강진호 선수 홈런입니다!!]
[커리어 300번째 홈런을 이곳 쿠어스 필드에서 마침내 기록합니다.]
[데뷔 9년차 300 홈런!!! 메이저 역사상 여섯 번째 300-300클럽 가입자의 탄생입니다.]
[만 21세 데뷔였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역사상 가장 빠른 300-300 가입이에요. 종전 기록인 배리 본즈 선수의 만 30세 10개월을 1년 이상 단축하며 만 29세 8개월의 나이에 300-300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강진호 데뷔 9년 차!! 마침내 커리어 300홈런 돌파!!!-
-역시 아낌없이 주는 쿠어스 필드!!! 강진호 시즌 6호, 7호 올 시즌 첫 멀티 홈런!!-
-29세 8개월. 300-300클럽 가입. 이제 300-300-2000까지는 남은 것은 471안타뿐. 종전 300-300-2000의 최소 가입자는 배리 본즈의 34세 2개월. 앞으로 부상만 없다면 강진호 선수의 기록 갱신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는 메이저의 기록들!! 강진호의 기록 파괴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강진호 5월 이달의 선수 수상!!-
-강진호 커리어 최초 3개월 연속 이달의 선수 수상!!-
***
올스타전 덕아웃. 치퍼 존스가 내 옆자리로 슬쩍 엉덩이를 밀고 들어왔다.
“요즘 너무 잘나가는 거 아니야? 몸값 무서워서 이젠 우리 팀으로 오라고 장난도 못 치겠네.”
“어? 그거 장난이었어요? 난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으, 생각은 무슨. 고민한 적도 없으면서 능글맞아 진 것 좀 봐. 예전에는 이런 말 하면 그래도 빠짝 얼어주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야 그땐 치퍼가 좀 이상하게 말을 걸었잖아요. 무슨 게이도 아니고.”
메츠와 브레이브스의 라이벌리와는 무관하게 치퍼 존스와의 관계는 여전했다. 물론 경기에서 만났을 때는 조금 더 날카롭긴 했지만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같은 팀으로 뛸 때만큼은 우린 제법 합이 잘 맞는 동료였다.
“어쨌거나 우린 이게 딱 좋은 것 같아요. 일 년에 하루 정도 같은 팀이 되는 거.”
“매일 이기는 너야 그렇지. 어휴, 난 이러다가 은퇴할 때까지 반지라고는 95년에 그거 하나만 끼고 은퇴하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고.”
“그러면 연봉 좀 깎고 우리 메츠로 오던지요.”
“내가 진짜 반지 하나도 없었으면 솔깃했을 만한 제안이기는 하네.”
애틀랜타의 영원한 대장 치퍼 존스가 다가오는 자신의 타석을 위해 헬멧을 뒤집어썼다.
“근데 역시 너랑은 덕아웃에서 떠드는 것보다 그라운드에서 떠드는 쪽이 더 재밌는 것 같단 말이지.”
-미드서머 클래식 NL 2회 연속 승리!!-
-2타수 2안타 1홈런 치퍼 존스 올스타전 MVP 선정!!-
-치퍼 존스 ‘이번 승리가 메츠를 위한 승리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몇 명의 새로운 선수들이 수혈됐다. 67승 26패. 7할을 넘어가는 압도적인 승률 속에서 프리드먼의 선택은 최상급 불펜 투수들이었다.
선발을 뛸 기량이 안되는 팀 내 6번째부터 10번째 선수까지를 불펜으로 활용하는 최근의 트렌드를 생각한다면 유망주를 지불하고 데리고 오기엔 조금 아까운 선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앤드루 프리드먼 ‘메츠는 단순히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팀이 아니다. 우리는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해야 하는 팀이다. 팀의 승리를 확정지어 줄 불펜의 보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생각한다.’-
-BK ‘셰이 스타디움에 원정을 올 때마다 시설이 참 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설마 여기서 뛰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