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99화 (199/210)

# 199화.

FA 로이드(5)

데뷔 시즌부터 센세이션한 성적을 거뒀던 푸홀스를 일컬어 몇몇 팬들은 장난과 애정을 담아 ‘발전 없는 타자.’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사실은 아니었다. 매년 꾸준히 자신의 약점을 공략하려는 투수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발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 자체로만 본다면 발전하지 않는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푸홀스가 매년 기록하고 있는 타격 성적은 일반적인 리그에서 타자가 기록할 수 있는 한계치에 근접해있었다. 그것은 만약 하위 리그에서 그런 성적을 기록한다면 바로 상위 리그로 콜업을 해야만 하는 압도적인 성적들이었다. 즉 푸홀스의 성적은 발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발전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2006년. 푸홀스는 여전히 발전할 수 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강진호, 알버트 푸홀스, 라이언 하워드, 랜스 버크만, 카를로스 벨트란, 미겔 카브레라. NL 치열한 MVP 경쟁!!-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역시 시즌 60홈런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라이언 하워드 선수라고 봅니다. 최근 어마어마한 홈런들이 쏟아지면서 60홈런이 조금 빛바랜 감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전부 약물로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청정타자의 60홈런은 굉장한 상징성을 갖는다고 봐야죠.”

“글쎄요, 전 라이언 하워드도 하워드지만 알버트 푸홀스 쪽이 조금 더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어요. 푸홀스 선수도 현재 50홈런 페이스로 커리어 통틀어 가장 좋은 분위기예요. 게다가 홈런을 제외한 다른 지표에서 모두 버크만 선수보다 좋거든요. 당장 장타율만 보더라도 홈런이 7개나 차이 나는데 푸홀스 선수가 1푼 넘게 더 높습니다. 더불어 데뷔 이후 꾸준히 최정상의 활약을 보였음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MVP를 타지 못할 만큼 불운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동정표를 끌어올 확률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1년 이후 2위만 무려 다섯 번에 3위가 한 번이에요.”

“잠깐만요. Kang은. Kang은 어떤가요? 지금 푸홀스 선수나 하워드 선수와 비교해 타격도 그리 부족하지 않고 심지어 두 선수는 수비 비중이 낮은 일루수인 데 반해서 Kang은 가장 도미넌트한 수비를 보여주는 중견수잖아요. 가장 유리한 거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죠. 그런데 이게 작년에는 성적과 임팩트를 다 챙겼다면 올해는 아무래도 좀 수수하죠?”

“음, 확실히 그런 면이 좀 있죠. 눈에 띄는 거라면 최다 볼넷 정도? 게다가 2년 연속 MVP라는게 보통 엇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있으면 잘 주지 않는 것이 전통인지라. 물론 제 기준에서 올해 가장 가치 있는 선수는 Kang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저희가 예상하는 건 MVP에 뽑힐 것 같은 선수니까요. 현장의 기자들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라서 말이죠.”

“물론 이건 7월 말 현재 기준의 예측입니다. 아직 시즌은 60경기 넘게 남았고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 벨트란이나 미기, 버크만 선수도 얼마든지 따라올 수 있는 차이입니다.”

***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난 시즌 막판에 강하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시즌 막판에 더 훌륭한 타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단 시즌 막판에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것보다 덜떨어진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가리비아의 헌신적인 관리였다. 물론 아무리 가리비아라도 FA를 앞두고 3월 국제대회에 참가한다는 나의 말에는 썩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부정

“뭐? 3월에 국제 대회를 치르고 시즌을 시작한다고? 이봐 진호, 너 올해가 FA인 건 알고 있지?”

분노

“젠장, 그렇게 웃지 말라고. 내가 무슨 지니도 아닌데 도무지 네 녀석은 정도란 걸 몰라!!”

협상

“3월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하듯 설렁설렁 뛰는 건 어때?”

우울

“넌 왜 매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나에게 가지고 오는 거야. 내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그리고 수용.

“비용은 아주 제대로 치러야 할 거야. 나도 이제 밑에 딸린 식구가 한 둘이 아니라고.”

다행인 것은 98년 이후 성장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더 이른 시기 더 많은 자금이 확보된 가리비아는 전생의 미라클 가리비아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최신의 기기들과 유능한 스텝들. 가리비아 트레이닝 센터의 모든 역량이 나에게 최우선으로 집중됐다.

그리고 운도 따랐다. 7개월 162경기라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야구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세금과도 같았다. 하지만 06시즌. 특별히 조심하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년과 달리 자잘한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

“네, 쌩쌩합니다.”

“FA 직전 해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지금 넌 뭘 증명해야 하는 위치가 아니야.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위치라고.”

조 매든 감독이 진지하게 나를 걱정했다.

“정말 무리하는 거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외야수 중에서 가장 체력부담이 큰 중견수. 게다가 나의 경우에는 수비 레인지가 넓은 만큼 그 체력적인 부담이 한층 더 심했다. 하지만 극한까지 절제된 생활과 건강한 몸은 나에게 결장 없이 모든 경기를 출전할 힘을 안겨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보 왔어?”

“어, 왜 일어났어. 그냥 누워있지.”

“누워만 있다가 돼지 되라고?”

“돼지는 무슨. 그렇게 날씬한 돼지도 있나?”

“으, 입에 아주 설탕을 발랐다니까. 됐네요. 어차피 의사 선생님도 적당히 움직여 주는 쪽이 더 좋다고 하셨다고.”

결혼 후 석 달 만의 임신. 개인적으로 나는 한창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재키였기에 피임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배우 앤 해서웨이로서 커리어를 쌓는 것도 내 인생. Kang과 함께 살아가는 재키로 사는 삶도 내 인생. 둘 중 뭐가 더 중요하니 다른 걸 뒤로 미루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그리고 이젠 2, 3년 정도 쉰다고 배우 못할 만큼 내 입지가 약하지도 않다고요.”

임신한 부인 때문에 사생활에 신경 쓰느라 성적이 떨어지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재키의 임신은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타임 슬립 이전의 삶에서 이미 몇 명의 아이를 가져 보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게도 충실한 삶 속에서 나의 삶을 물려줄 후계자라는 느낌은 빈껍데기 같은 삶 속에서 욕망만을 추구하던 결과와는 그 느낌이 너무 달랐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더 훌륭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게다가 배가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재키는 나에게 충실했다.

게다가 재키의 임신이 나에게 득이 된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진짜 안 먹을 거야?”

“으음, 입맛이 좀 없어서.”

“아, 몰라!! 혼자 먹기 싫은데. 나도 안 먹을거야.”

꼭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통에 클러비에게 부탁해서 구매해 온 치즈 케이크 앞에서 픽 하고 토라져 버리는 재키. 그녀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나도 포크를 드는 것 밖에 없었다.

“아냐, 취소!! 최소!! 먹자. 음 이거 눅진한 것이 정말 맛있다.”

“그치!! 시카고를 가면 이 집 케이크는 꼭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

본래 입이 짧아 딱 정해진 양 외에는 절대 먹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음식을 잘 먹지 않으려는 그녀의 특이한 입덧이 나에게 음식을 강요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입 두입 섭취한 음식들이 쌓이고 쌓였다.

그 결과 8월 초. 보통 시즌 초에 비해 7kg정도 빠져있던 나의 몸무게는 3kg이나 더 유지돼 있었다.

딱!!

[너, 넘어갑니다!! 강진호 홈런!! 일주일 사이 벌써 세 개째 홈런입니다!! 8월 들어 무서운 기세를 유지 중인 강진호!! 어려운 일이기는 하겠습니다만 남은 시즌을 이번 달과 같은 페이스로 달려만 준다면 2001년 이후 커리어 두 번째 시즌 50홈런을 노려볼 만해요.]

[3번 타자로 타순을 변경해서인가요? 예년에 비해 몸이 한층 커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살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라고 했었는데 올해에는 체중을 아주 잘 유지하고 있어요.]

[몸이 커진 것도 커진 것이지만 스윙 자체도 조금 더 과감해졌다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삼진이 71개인데 이대로라면 99년의 87삼진을 넘어서 커리어 최다 삼진을 기록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출루율은 작년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어요 장타율의 경우 작년보다 오히려 낫고요. 이런 변화라면 삼진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도 환영해야죠.]

-8월 11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괴력을 발휘한 강진호.-

-강진호 8월 이달의 선수 선정 06시즌 네 번째 이달의 선수 수상!!-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라이언 하워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3연전 싹쓸이!!-

-필라델피아 필리스 포스트 시즌 진출 적신호가 의미하는 것은?-

-필리스 포스트 시즌 진출 불투명!! 강진호와 알버트 푸홀스 이인 구도로 좁혀진 내셔널리그 MVP 경쟁-

-알버트 푸홀스 밀워키전 43호 홈런!! 시즌 50홈런까지 이제 일곱 걸음!!-

-강진호!! 말린스와의 3연전에서 시즌 38, 39, 40호 홈런!! 내셔널리그 홈런 2위 푸홀스와는 3개 차이!!-

시즌 막판. 라이언 하워드의 활약 아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2위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와일드카드를 경쟁하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7월, 모아둔 유망주를 아낌없이 내놓으며 보강했던 선수들이 줄줄이 터져나간 덕분이었다. 덕분에 푸홀스 그리고 나와 함께 MVP자리를 경쟁하던 라이언 하워드가 자연스럽게 한걸음 뒤로 밀려났다. 물론 9월도 되기 전에 50개의 홈런을 친 괴력은 무서웠다. 하지만 나나 푸홀스의 성적이 포스트 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한 타자에게 MVP를 양보할 만큼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남은 것은 푸홀스와 나의 경쟁뿐. 수비와 주루를 포함한 지표에서는 나의 성적 쪽이 압도적이었지만 푸홀스는 빼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간 꾸준히 2위 혹은 3위를 해왔다는 스토리와 나에게 뒤지지 않는 타격 그리고 조금 더 훌륭한 홈런이 있었다. 게다가 MVP 투표권을 행사하는 기자들은 백투백 MVP는 리그를 압도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경쟁자조차 없는 무결함을 원했기에 나에게는 더욱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강진호 ‘MVP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백투백 MVP가 아니라 백투백 우승이다.’-

-컵스와의 3연전 4개의 홈런을 몰아친 알버트 푸홀스!! 자신의 커리어 최다 홈런 갱신-

그리고 시즌 막판 또 한 번의 보약이 나를 찾아왔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 만큼은 아니었지만, 랜디 존슨, 커트 실링 등이 팀을 떠난 이후 그에 못지않은 타자 구장으로 밝혀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 체이스 필드에서 열린 원정 4연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홈런, 홈런 그리고 홈런 또 홈런. 9월 나는 마치 홈런을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홈런을 몰아쳤다. 물론 그에 못지않은 삼진이 따라오기는 했다. 커리어 최초의 100삼진 돌파. 하지만 그를 대신하는 보상이 나를 찾아왔다.

알버트 푸홀스

143경기 535타수 177안타(2루타 33개 3루타 2개) 49홈런 119득점 137타점 7도루 2 도루실패 0.331/0.431/0.671

강진호

162경기 597타수 207안타(2루타 41개 3루타 8개) 51홈런 143득점 158타점 28도루 6도루실패 0.347/0.466/0.698

-강진호 NL 백투백 MVP. 2위 푸홀스와는 7점 차이!!-

-푸홀스 이번에도 아쉬운 고배!! 내셔널 리그 MVP 2위!!-

-MVP 투표에 참가한 50대 익명의 기자 ‘에브리 타임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한 꾸준한 출전, 그리고 중심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타점. 슬러거의 상징인 홈런과 장타까지. 올시즌 강진호는 명백하게 푸홀스보다 뛰어난 타자였다.’-

-MVP 투표에 참가한 30대 익명의 기자 ‘준수한 일루수인 푸홀스. 역대급 중견수인 강진호. 20 이상 차이나는 BsR 어떤 면을 살펴봐도 올해의 MVP는 강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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