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01화 (201/210)

# 201화.

패배하지 않는다(2)

“좀 어떻습니까?”

“보시는 것 그대로입니다.”

질문을 건넨 프리드먼도 답을 하는 조 매든 감독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대로는 조금 힘들 것 같군요. 오른쪽이야 아직 윌슨이 2년 정도 더 해준다고 쳐도 왼쪽은 위태위태해요.”

“끄응.”

“구단에 여유는 없겠죠?”

“아무래도 시티 필드의 건설에 든 자금이 워낙 컸던지라······.”

지금까지 구단의 전력보강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아무리 강진호라는 역대급 선수가 있다고 해도 12년간 7번의 우승이라는 터무니없는 업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호의 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대비한다고 했지만 부족했어요.”

강진호라는 선수는 단순히 좋은 중견수, 최고 수준의 타자가 아니었다. 그가 존재함으로써 메츠는 수비가 매우 부족하지만, 타석에서는 강력한 효율적인 좌익수를 적당한 가격에 써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지명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내셔널리그에서 사실상 지명타자를 운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운용이었다.

“게다가 의료진의 판단에 의하면 수술을 했던 발목은 물론이고 무릎도 썩 좋지 않습니다. 아마 이전처럼 162경기를 전부 출장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후, 이것 참. 온통 나쁜 소식이로군요. 좋은 소식은 뭐가 있죠?”

프리드먼이 인상을 찌푸렸다.

“좋은 소식이라······. 글쎄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호가 여전히 중견수 수비는 가능하다는 점 정도겠군요.”

“그의 현재 기량은 어느 정도죠?”

“운동능력은 좀 떨어졌지만, 타구 판단이나 어깨는 여전합니다. 코너로 컨버전 한다면 여전히 골드 글러브급. 중견수로도 현재 우리 팀의 자원 중에는 최고입니다.”

“이번 윈터 시즌 최대한 보강을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우리 팀의 성적이 너무 꾸준히 좋았던지라 유망주 수급이 쉽지 않았던 터라······.”

“알고 있습니다.”

2013년 현재 메츠의 페이롤은 사치세 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고액의 FA를 데리고 오기에 조금 힘든 상황. 게다가 FA가 아닌 트레이드를 통한 영입 역시 힘들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둔 탓에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건지지 못한 것도, 못한 것이지만, 매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다툰 덕분에 팜 자체가 황폐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프리드먼을 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강진호라는 절대적인 카드가 전성기의 기량을 뽐내는 이상 메츠는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의 우승만을 바라보고 달릴 필요가 있었다.

“해밀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본이 우리 메츠가 아닌 클리블랜드를 선택할 줄은 몰랐습니다. 마이클 본만 데리고 왔더라도 진호에게 좌익을 맡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확실히 12시즌의 마이클 본 정도면 나쁘지 않았죠.”

진호의 타격과 수비를 한 단계씩 다운그레이드한 다음 반으로 나눈 것 같은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FA로 시장에 나왔던 외야수들이었다. 전자는 5년 연평균 2500만 달러. 후자는 4년 연평균 1200만 달러를 받았다.

“최대한 전력보강을 위해 힘써볼 테니 일단은 잘 부탁하네.”

“사실상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 같군요. 뭐 요 몇 년 선수 빨로 편하게 놀았으니 이제 고생할 때도 됐지요.”

***

-강진호 부진? 시범경기 3경기 연속 무안타.-

-강진호 부활? 시범경기 3타수 2안타 몰아치기!!-

-아직 완치되지 않은 발목? 시범경기 수비 에러. 강진호!!-

-강진호, 시범경기 2경기 연속 결장. 어딘가에 문제가?-

-부활의 신호탄? 강진호 홈런!!-

한 달 남짓한 시범경기 기간. 언론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난 일곱 번 정도 부활을 했다. 예수님도 살아생전 부활은 한번 밖에 안 하셨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개막전.

상대는 작년 내가 빠졌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를 제압했던 신흥 강호. 워싱턴 내셔널스였다.

따악!!

[3번 타자 데이비드 라이트의 낮게 깔린 타구. 라이언 짐머맨이 처리하면서 이닝 종료됩니다.]

[스트라스버그 선수의 삼자범퇴!! 오늘 공이 정말 좋습니다. 지금 1회인데 97마일까지 나왔죠?]

[작년 9월 시즌 아웃을 하면서 걱정을 모았던 선수인데 건강하게 복귀한 것 같습니다. 뭐 건강한 스트라스버그 선수라면 걱정할 게 없죠. 괜히 최소 사이영 컨텐더라고 불리는 게 아닙니다.]

대학 시절부터 전미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무려 90년대 4대 투수에 필적할만한 커리어를 쌓아 올릴 재능이라 평가받았던 녀석답게 던지는 공들은 제법 날카로웠다. 몇 년의 시간 동안 탱킹으로 유망주를 끌어모았던 워싱턴 놈들이 마침내 달려들 각오를 하게 만든 투수 답다고 해야 할까?

[1회 말 워싱턴 내셔널스의 공격 차례. 그라운드에 강진호 선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와, 강진호 선수를 향한 시티 필드 팬들의 반응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지금 메츠 팬들은 작년 강진호 선수가 시즌 아웃 된 이후 팀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너무 잘 기억하고 있거든요. 솔직히 지난 몇 년간 강진호 선수가 보여준 활약은 상식을 넘어선 활약이었죠. WAR이라는 기준에 따르자면 팀에 평균 12.4승을 보태준 활약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번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사실 36살 7개월이라는 나이는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니거든요.]

마운드에 07년 2라운드로 지목받았던 맷 하비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4년이라는 고졸 치고는 비교적 짧은 담금질 끝에 작년 빅리그로 콜업됐던 녀석은 암울했던 메츠에 한줄기 빛과 같은 활약을 선보였었다. 작년을 끝으로 토론토에 트레이드됐던 R.A. 디키를 대신 해 올해 메츠의 에이스로 낙점된 녀석의 공이 매서웠다.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97마일 가량의 공을 뿌리는 스트라스버그와는 조금 다른 유형의 강속구가 트래비스 다노의 미트를 호쾌하게 꿰뚫었다.

뻐엉!!

98마일의 빠른 공. 그리고 91마일의 슬라이더와 88마일의 체인지업 85마일의 커브까지. 비슷한 폼에서 튀어나오는 네 가지 공들이 상대 타자를 농락했다. 삼진 그리고 내야땅볼로 투아웃. 타석에 워싱턴의 또 다른 기둥이 올라왔다.

2012년의 신인왕. 개성적인 헤어 스타일과 톡톡 튀는 언행으로 젊은 야구팬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역대 최고의 재능. 브라이스 하퍼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부웅!!

뒷다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힘찬 스윙이 위협적이었다. 마치 그레이트 양키스의 시작. 루스의 타격폼을 연상케 하는 과감한 스윙이었다. 걸리기만 하면 넘겨버리겠다는 그 위협에 맷 하비가 맞불을 놓았다.

딱!!

과감하게 존을 공략하는 맷 하비의 슬라이더. 슬쩍 파울 라인을 벗어나는 타구가 큼지막했다. 볼카운트는 0-2. 하지만 여전히 공을 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하퍼를 향해 맷 하비가 공을 뿌렸다.

딱!!

살짝 빗맞은 타구. 하지만 타구 방향이 너무 좋았다.

‘저기야!!’

좌중간 살짝 얕은 곳. 하지만 유격수의 키는 확실하게 넘기는 타구였다. 어려운 타구지만 나라면 처리할 수 있다. 배트 끝에서 공이 출발하는 순간 이미 나의 몸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개막전. 최선을 다해 다듬은 나의 몸이 쭉쭉 뻗어 나갔다.

‘벌써?’

하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아니, 나의 몸이 생각보다 더 늦었다. 세 걸음이 부족했다.

‘아직이야.’

떨어지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날아오르는 몸. 쭉 뻗은 글러브. 그리고 툭

[아!! 강진호 달려 보지만 조금 늦습니다!! 유격수의 키를 넘기는 좌중간 안타!!]

바닥을 찍은 공이 몇 번을 튕기고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움켜쥐고 그대로 2루의 호세 레예스를 향해 공을 뿌렸다

뻐엉!!

“세이프!!”

[브라이스 하퍼!! 이루타!! 개막전 첫 타석 브라이스 하퍼가 트래비스 다노를 상대로 이루타를 기록합니다.]

[타구의 코스가 정말 좋았습니다. 강진호 선수가 따라붙어 봤지만 아슬아슬하게 부족했어요. 방금 거의 글러브 끝을 스쳤죠?]

[네, 강진호 선수 걱정했는데 몸놀림을 보니 올 시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뒤에서 원바운드된 공을 처리했다면 2루까지는 허용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건 좀 아쉽네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방금 공이 조금 어려운 타구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본래 강진호 선수라면 점프 없이 그냥 와서 잡을 수 있는 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이면 조금 많은 나이이기는 합니다만 이건 역시 발목부상의 여파가 아직 조금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아, 방금 브라이스 하퍼의 안타가 이루타가 아닌 1안타 1에러로 기록되네요. 데뷔 ,이후 부상당했던 해를 제외하고 커리어 내내 골드 글러브를 받아왔던 강진호 선수. 커리어 최초의 개막전 에러입니다.]

[하지만 강진호 선수 위축될 필요 없습니다. 사실 방금 타구를 노바운드로 잡으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수준급 중견수라는 증거거든요. 사실 좋은 수비를 하려다 보면 가끔 이런 실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전의 그 말도 안 되는 수비 쪽이 오히려 이상한 거였죠.]

아쉬운 실책. 하지만 머릿속에 남기지 않았다. 나의 몸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비골근 위주로 단련을 해주고 적절한 테이핑만 이뤄진다면 이전에 가까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어.”

“무릎은?”

“거기도 충분히 보강해야지.”

부상 이전 나의 몸 상태는 가리비아가 만들어낸 최적의 상태였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최적의 상태. 하지만 손상된 인대와 연골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주변 근육의 증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근육의 증가는 모든 면에서 득이 된다고 보긴 힘들었다. 관절 가동범위가 줄어들고 유연성이 떨어졌다. 몸은 무거워졌고 그 무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섭취해야 하는 음식의 양도 늘었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은 덤이었다.

부웅

“좋았어. 타격폼은 완벽해. 전체적으로 몸이 조금 두꺼워지긴 했지만, 이전과 다를 것 없어.”

하지만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사실 이번 시즌 나는 중견수를 담당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역대 가장 훌륭한 중견 수비라는 것은 나에게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리키 헨더슨이 30홈런이 가능한 역대 최고의 리드 오프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리드 오프라는 단어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출루 그리고 주루에 집중했던 것처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견수 강진호가 아닌 타자 강진호였기 때문이다.

[자, 2회 초. 타석에 강진호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이번 시범경기에서 타격감이 조금 널뛰기를 했었는데요, 그래도 최종적인 시범경기 성적은 0.296/0.390/0.521로 매우 뛰어납니다.]

[워낙에 대단한 선수니까요. 건강만 확보된다면 성적이야 당연히 따라오는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복귀전 상대가 나쁘지 않아요.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선수면 대단한 에이스이기는 합니다만 강진호 선수가 상대전적이 나쁘지 않아요.]

[하하,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죠. 전 미국인의 기대를 받았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선수의 데뷔전에서 Welcome to MLB 포를 선물했었잖습니까.]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이를 악문 채 나를 노려본다. 지난 몇 번의 경기에서 좀 심하게 두들긴 감이 없잖아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나도 양보하기 힘드네.’

나보다 12살이나 어린 에이스와의 유치한 눈싸움. 마운드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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