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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03화 (203/210)

# 203화.

패배하지 않는다(4)

문제가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BABIP의 감소를 말하며 불운, 혹은 주루의 감소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올해 나의 성적은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섣불리 무언가를 건드릴 수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점점 나빠지고 있는 나의 성적을 되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8월 중순. 마침내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힘들게 구했습니다.”

“고마워요.”

몇 년째 메츠의 구단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제이지가 있는 힘껏 생색을 냈다. 하지만 타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자료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구단주로서 쌓아 올린 인맥과 연예인으로서 방송계에 쌓아둔 인맥을 총동원한 결과물인 것이다.

스탯 캐스트.

2013년 현재. 아직 스탯 캐스트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자료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MLB 어드밴스드 미디어에서 새롭게 개발한 분석 툴. 지금까지 트랙맨에서 제공하던 레이더 기술에 옵티컬 카메라 기술이 결합된 이것은 기존의 HTS(Hit Tracking System)의 한계를 넘어 그라운드 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수치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것은 즉 올 시즌 나의 부진에서 상대 수비와 투수들의 기량 그리고 행운들을 배제한 순수한 문제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 번의 경기에 사용된 데이터양만 무려 7테라바이트. 그 방대한 데이터는 내가 고용한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손에 들어갔고 며칠의 시간 뒤 그들의 분석결과가 내 손에 들어왔다.

“너무 늦게까지 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95마일 이상 속구에 반응이 조금 늦고,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변화구에 대한 반응까지 늦어지고 있습니다.”

“부상 이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영상분석을 통해 확인했지만 분명 난 같은 타이밍으로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어. 게다가 타격 폼을 분석해봐도 부상 이전과 똑같은데 발목 부상이 그런 후유증을 남길 수는 없잖아!!”

배트 스피드는 느려지지 않았다. 선구안 역시 여전했다.

“그게······, 부상과 무관한 노쇠화에 따른 순발력 저하라고 판단됩니다.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타격에 들어가는 타이밍이 시즌 초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아주 조금이지만 늦어졌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체력적인 문제라고 보기에 다른 부분에서는 별반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부상으로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외의 부분에서만큼은 이전의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렇기에 느려진 발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많은 것들이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에 따른 협응력 저하는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나이, 나이라 이거군.”

2013시즌 하반기. 드디어 찾아낸 부진의 원인은 세월이었다.

분명 협응력의 저하. 노쇠화라는 최악의 답변은 절망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답변을 듣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절망이 아닌 시원함이었다. 문제없는 부진 속에서 어렵다고는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나타났다. 물론 답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문제였지만 말이다.

‘떨어진 협응력을 보완할 방법.’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가의 보도 가리비아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리비아는 인체 생리학에 관해 최고의 전문가였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야구선수들을 관리한 만큼 야구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트레이너 이상의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가리비아의 메뉴에는 협응력 저하를 막기 위한 메뉴가 포함되어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저하된 협응력을 이전으로 돌릴 수 없었다. 이건 가리비아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문제였다.

그렇다면 결국 답안은 하나였다.

타격폼.

하지만 간단하게 나온 답과 달리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간결하며 완벽하다.’ 나의 타격폼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의 평이었다. 그것을 뜯어고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 37세. 성적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중견수의 활약을 보일 수 있다. 이대로 서서히 연착륙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이미 한 번의 삶을 살았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가득할 때 하지 않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휴대전화를 열어 나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프!! 지금 당장 덕 래타를 찾아줘요.”

“누구요? 덕 래타? 대체 그게 누굽니까?”

“타격코치요.”

“덕 래타. 타격코치. O.K. 다른 정보는요?”

“캘리포니아에 살고 프로 경험은 없어요. 고등학교코치 생활이 전부일 겁니다.”

“그리고요?”

“그게 답니다.”

잠깐의 정적. 볼 수 없는 제프의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다.

“음, 그러니까 지금 인구 4천만의 캘리포니아에서 덕 래타라는 이름과 타격코치라는 것만 갖고 찾아오라 이 말이로군요. 힌트는 프로 경험은 없다는 거고요,”

“그게, 그러니까 메이저 선수 중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캘리포니아에서도 로스앤젤레스 인근 도시에 살고 있을 거예요.”

“하, 거 참 크게 도움이 되는 힌트로군요. 알겠습니다. 찾아내 보죠.”

덕 래타.

선수 생활이라고는 사회인 야구가 전부. 코치 생활 역시 고교야구코치 생활이 전부인 형편없는 커리어의 타격코치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런 형편없는 커리어의 코치가 그 어떤 코치보다도 더 필요했다.

***

프레스톤이 껄렁한 자세로 리키 헨더슨에게 말을 걸었다.

“코치님.”

“어?”

“가서 뭔가 좀 이야기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프레스톤을 향해 헨더슨이 어깨를 으쓱한다.

“니가 더 친하잖아. 이야기하더라도 니가 가서 해야지.”

“코치님은 코치잖아요. 난 선수고. 난 경기 뛰라고 돈 받고, 코치님은 그런 거 하라고 돈 받고. 가서 돈값 좀 해야죠.”

“요청도 안 했는데 가서 오지랖 부리라고 돈 받는 거 아니거든? 애초에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오지랖 부리는 건 코치가 아니라 친구가 할 일이지.”

9월 하반기, 올 한해 그럭저럭 유지되던 진호의 성적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미세하게 틀어진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유지되던 타격폼이 완전히 망가졌다.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평가받던 스윙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거칠어진 스윙에 맞춰 타율 역시 뚝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그 거칠어진 스윙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타격코치를 개인 코치랍시고 불러온 이후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쟤 괜찮을까요?”

“뭐 알아서 하겠지. 솔직히 타격에 관해서는 우리가 진호한테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잖아.”

“아니, 그야 그렇지만. 워낙 잘나가기만 하다가 이러니까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어서 그런 거죠. 덕 래타라니.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코치 하나 데리고 와서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속도 터지고요.”

“글쎄다. 내가 그 코치랑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일단 이론 자체는 제법 그럴싸하던데?”

“어휴, 어디 야구가 이론 가지고 하는 건가요? 그 사람, 선수는 물론이고 코치로도 프로 생활 못 해본 사람이잖아요. 대체 진호는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아온 건지.”

“글쎄다. 근데 진호가 사람 보는 눈은 있잖냐. 가리비아만 하더라도 맥시코에서 그저 그런 학부 졸업생이었다며.”

“그야 그렇지만.”

프레스톤은 불안했다. 항상 최고를 달려오던 사람이 그 자리를 뺏겼을 때 얼마나 힘든지 너무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오직 진호라는 라이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2년짜리 다년 계약을 따낼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저 절대적인 라이벌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스톤은 저 위대한 라이벌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1996년 싱글A 캐피탈 시티 봄버스에서 포지션을 뺏긴 이후 무려 17년. 원하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진 최초의 승리 속에서 프레스톤 윌슨이 라이벌의 재기를 기도했다.

-2013시즌 강진호 143경기 497타수 136안타(2루타 11개 3루타 2개) 17홈런 94득점 98타점 4도루 2도루실패 57볼넷 0.274/0.351/0.406-

***

2014년 3월. 스프링 트레이닝 시즌. 언제나처럼 메츠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선수는 진호였다.

-자기 관리 실패?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 나타난 강진호!!-

-후덕한 모습의 강진호. 강진호는 작년 최악의 9월을 보내며 커리어 로우의 성적을 기록했다.-

-3년이나 남은 연 4천만 달러 선수의 체중조절실패. 뉴욕 메츠 재앙을 맞이하다.-

-달라진 스윙폼!! 발전인가, 포기인가.-

-강진호 3타수 무안타 3삼진.-

-강진호 3타수 1안타 2삼진.-

-선구안 실종? 강진호 스프링 트레이닝 팀 내 최다 삼진 기록!!-

-둔한 몸놀림. 담장 직격 안타에도 불구하고 1루에서 멈춰 선 강진호.-

<미쳤네. 강진호. 남은 계약 기간 그냥 날로 먹겠다는 건가? 완전 돼지가 돼서 나타났네.>

<발목 부상 때문에 런닝 같은 거 못해서 그런 거 아닐까? 근데 살 잘 안 찌는 체질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운동선수가 제대로 못 뛰면 찔 수밖에 없는 거구나.>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 봐라. 지금 선구안도 엉망이고. 스윙도 엉망이고. 이건 그냥 자기 관리 실패다.>

<야, 아무리 그래도 저거 강진호야. 16년 동안 2881안타 592홈런 484도루. 커리어 통산 0.326/0.419/0.613.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강진호. 고작 스프링 트레이닝 조금 부진했다고 그러기엔 강진호가 보여준 게 너무 많지 않냐? 좀 믿고 기다려보자.>

<믿고 기다리는 소리 하고 있네. 강진호 작년 9월 성적 보고 그런 말이 나오냐?>

-스프링 트레이닝 부진에도 불구하고 강진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조 매든 감독. 강진호 개막전 4번 타자 낙점!!-

<와, 돌매든 미쳤네. 시범경기 2할 1푼 타자를 4번으로 쓴다고?>

시티 필드에서 열린 개막전.

비록 2년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곤 하지만 뉴욕 메츠는 21세기를 지배한 최강의 팀이었다. 긴 시간 동안 쌓인 팬들은 2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한 기대감을 안은 채 시티 필드를 찾았다.

뻥!!!

“스트라잌!!”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위대한 메츠 대신 21세기 가장 강력한 투수의 삼진 퍼레이드를 목격했다.

[커쇼!!! 대단합니다. 3타자 연속 삼진!! 2011년 사이 영 위너 클레이튼 커쇼!! 흠잡을 곳이 없이 완벽합니다.]

1회 말 10구 3삼진 삼자범퇴. 그 압도적인 투수의 피칭을 바라보며 메츠의 오랜 팬들의 머릿속에 지난날 그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90년대의 압도적인 투수들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 남자를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위대한 투수들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메츠를 승리로 이끌었던 그 남자를 말이다.

“괜찮아. 그래도 우리 다음 이닝 선두 타자가 진호잖아.”

“그래, 진호라면 한 방 쳐줄 거야. 매덕스도 글래빈도 존슨도 페드로까지도 모두 진호한테는 손도 못 썼잖아.”

“지금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강진호 이번 시범경기 하는 거 못 봤어? 2할 1푼 치는 거. 망할. 개막전부터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누군가의 부정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2회 말 한층 거대해진 몸의 그가 타석에 올라오는 장면을 말이다.

[2회 말, 타석에 강진호. 강진호 선수가 올라옵니다.]

[와, 몸이 정말 많이 불었어요. 거의 20파운드가 늘었습니다.]

[시범경기 조금 부진했던 강진호. 과연 개막전에서는 그 부진을 씻어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마운드의 클레이튼 커쇼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특유의 더러운 디셉션. 앞선 메츠의 타자들을 모조리 삼진으로 돌려세운 그 강력한 95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자신있게 날아들었다.

이미 강진호는 완벽하게 분석됐다. 작년 그는 95마일 이상 속구에 강한 타구를 만들어낸 경우가 많지 않았다. 강한 타구가 나오지 못하는 가져다 대는 것에 급급한 타격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딱!!

‘어?’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큼지막한 레그킥. 그리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 호쾌한 스윙. 무지막지한 파괴력의 배트가 클레이튼 커쇼의 95마일 속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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