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05화 (205/210)

# 205화.

그리하여 마침내(1)

-변신 성공? 강진호!! 놀라운 활약.-

-카트리나 에반스 FoxSports8 진행자 ‘그는 정말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15년이나 성공해온 방식을 고작 1년 실패했다고 손바닥 뒤집듯 뒤집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그가 해온 것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에요. 장담하건대 그가 부상 없이 그대로 3년만 더 뛸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야구의 신' 자리에 양키스의 베이브가 아닌 강진호의 이름을 새겨야 했을 겁니다. 그런 선수가 고작 몇 달 만에 자신이 하던 모든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저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위대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2할 7푼도 무너지다 갈수록 떨어지는 타율. 커리어 최악의 타율을 보여주고 있는 강진호-

-시즌 18호 19호 멀티 홈런을 쏘아 올린 강진호. 시즌 19개의 홈런을 기록 중인 지안 카를로 스탠튼과 마침내 홈런 동률!!-

<하, 지금 강진호를 보고 있으면 너무 슬프다. 이건 강진호가 아니야. 그냥 단순한 공갈포잖아. 그 아름답던 스탯이 뚝뚝 떨어지면서 망가지는 것 좀 보라고. 강진호는 발목 부상을 당했을 때 그냥 은퇴했어야 해. 그랬다면 21세기의 루스. 현대 야구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을 거야.>

<강진호 선수의 팬으로서 저도 조금 공감이 됩니다. 지금 강진호 선수 누적이 0.324/0.416/0.610인데 이게 시즌 시작되기 전에 0.326/0.419/0.613이었던 거 생각하면 역대급으로 예쁜 이 스탯이 너무 아깝네요.>

<숫자로만 야구 보는 머저리들이 또 설치기 시작하네. 내가 이래서 인터넷을 싫어하는 거야. 가끔은 볼파크로 나가서 진짜 공을 치고 뛰어다니는 선수를 좀 보라고. 24살의 강진호부터 38살의 강진호까지 꾸준히 지켜본 입장에서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는 정말 역겨워.>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어. 가장 좋을 때 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정말 어려운 일은 가장 나쁠 때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 난 대단한 선수가 대단한 순간에 그만두는 것보다 더 이상 대단하지 않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한다.>

<강진호 추해지기 전에 은퇴해야.>

<니들이 약쟁이들 말년까지 날아다니다 은퇴하는 것만 봐서 진짜 눈들이 맛이 갔구나.>

<스탯을 비율스탯만 볼 게 아님. 강진호가 지금 609홈런 487도루임. 이대로면 계약 기간 내로 700홈런 500도루도 가능함. 거기다가 안타도 2943안타로 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올해 내로 3천 안타 무조건 가능하고. 이런 선수를 은퇴하라고?>

<메츠 팬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연 4천만 달러를 받는 선수가 2할 6푼 치고 있는 거 보면 속 터지지. 근데 그게 강진호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얘가 지난 몇 년간 해준 걸 생각하면 남은 기간은 그냥 드러누워도 난 응원할 수 있다. 근데 솔직히 타율이 좀 낮을 뿐이지 홈런이나 타점 보면 여전히 잘해주고 있잖아. 수비 범위가 좀 좁아졌다고는 해도 중견수 수비도 심하게 아쉬운 수준은 아니고. 대체 뭐가 불만인 거야?>

몸을 불리고 파워를 높이는 것은 이야기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수많은 약물러들이 스테로이드를 빨아댈 이유 따윈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즌이 이어질수록 몸은 무겁게 느껴졌고 관절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7월 올스타 브레이크가 지나고 8월. 사람들은 매년 8월과 9월에 한층 더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던 나를 기대했다.

-마침내 2999안타!! 3천 안타까지 1안타만을 남겨 놓은 강진호!!-

-강진호 홈 경기 3천 안타를 위한 결장인가!! 휴스턴 원정 결장!!-

-무릎 문제로 병원을 방문한 강진호. 3천 안타를 하나 앞두고 DL행?-

-강진호 ‘누적된 피로 때문일 뿐. 남은 시즌을 치르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자, 조금 따끔할 겁니다.”

무릎에 찬 관절액을 주사기로 뽑아냈다.

“다행히 아직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닙니다만 이대로라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전보다 증량된 몸으로 이전과 흡사하게 격렬한 동작을 취한 결과였다. 얼음으로 칭칭 감은 무릎을 보고 있자니 경기를 끝내고 아이스팩을 하는 투수들이 연상됐다. 의사의 협박에 씨익 웃었다. 휴식은 몇 달 뒤 시즌을 끝내고, 아니 몇 년 후 선수 생활을 끝내고 충분히 취할 수 있다. 아직은 삐걱거리는 몸에 채찍질을 하며 달려야 할 시간이었다.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홈 2차전. 마운드에 네이선 이발디가 서 있다. 다저스 팜 출신의 강속구 투수인 이발디는 그 또래의 파이어볼러들이 그렇듯 고질적인 제구 불안을 보여줬었는데 작년 그럭저럭 제구력을 가다듬는 데 성공하며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올해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이어오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 있게 96마일의 속구를 존안으로 때려 박는 유형으로 나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투수였다. 오늘 앞선 두 타석에서 나는 녀석에게 삼진 두 개를 선물받았다.

2999

저 멀리 외야석에 걸려있는 대형 걸개. 어제 1차전 경기부터 변하지 않는 2999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운드의 이발디가 양손을 높게 치켜든다. 야생에서 적을 만난 맹수들이 자신의 체구를 한껏 키우는 것처럼 위협적인 동작. 방망이를 쥔 나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높게 떠오른 작은 공.

[높게 떠오른 타구!! 3루 내야 관중석으로 떨어졌습니다.]

[6회 말 3:3 팽팽한 상황. 휴스턴 3연전에서 루징 시리즈. 어제 경기의 패배로 연패에 빠져있는 뉴욕 메츠!! 지금은 승리가 간절한 상황입니다.]

96마일이나 되는 구속에 더해진 더러운 테일링 무브먼트. 어린 투수의 속구가 매서웠다. 이런 무식한 속구를 던지는 선발투수가 리그 평범한 수준의 투수라니. 지난 십여 년 동안 선발투수들의 구속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혹은 내가 그만큼 늙었던지 말이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망이를 쥐었다. 녀석의 공은 빠르고 더러웠다. 하지만 과거 난 이보다 더 무서운 공들을 담장 밖으로 뻥뻥 날렸던 남자였다.

부웅

“스트라잌!!”

존 밖으로 빠져나가는 절묘한 공에 속았다. 볼카운트 0-2. 외야석에는 여전히 2999라는 걸개가 휘날린다.

[역시 기록이라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3천 안타까지 이제 단 1개!! 지금은 기록 달성을 위해서도!! 그리고 팀의 승리를 위해서도 강진호 선수가 뭔가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예요.]

랜디 존슨의 공은 이보다 빠르고 무서웠다. 그 아저씨의 공은 마치 나의 머리를 부숴버릴 것처럼 달려들었다. 맞건 말건 상관없이 몸쪽 승부를 걸어오던 그 당당함. 이 어린 투수의 구속은 그를 연상케 할 만큼 빨랐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과감함은 보이지 않았다. 존을 좁힌다. 빠르게 도망가는 그 공은 분명 바깥으로 들어온다.

뻐엉!!

볼카운트 0-2. 습관적이고 뻔한 볼 하나가 들어왔다. 이제 카운트는 1-2. 네 번째 공이 녀석의 손을 출발했다.

‘바깥쪽.’

딱!!

시원하게 배트를 돌렸다. 얼얼한 손바닥, 그리고 급격한 움직임으로 욱씬한 무릎의 통증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표정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짐짓 타구를 감상한다. 당장 달리기 힘든 무릎의 통증을 감추기 위한 잠깐에 기다림이었다.

가득 찬 관중석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셰이 스타디움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빅애플이 빼꼼히 얼굴을 드러냈고 수천 달러짜리 폭죽들이 쉴 새 없이 허공을 수놓았다. 마운드의 이발디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정면 전광판 멋지게 폼을 잡은 내 사진 아래 3000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강진호!! 역시 강진호입니다. 커리어 3천 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합니다.]

[강진호. 메이저 29번째 3천 안타!! 98년 데뷔 이후 17시즌만의 3천 안타입니다!!]

[시즌 34호 홈런!! 오늘 이 홈런으로 다시 스탠튼 선수를 따돌리며 단독 홈런왕 자리에 올라왔어요. 9월이 막판이 되면 타격감이 점점 올라오는 강진호 선수의 패턴을 생각해보면 이대로 쭉쭉 치고 올라가면서 홈런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9월 확장 로스터. 쌩쌩한 루키들이 올라오는 것이 반갑다던 베테랑들의 이야기가 이해됐다. 특히 긴 경기를 치른 다음 날 자고 일어난 이후가 괴로웠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신음성에 아침 일과로 나에게 찜질팩을 얹어주는 재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여보 괜찮아?”

“어? 어. 별거 아니야.”

“그래. 자기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표정의 재키가 나를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나의 뺨을 간지럽힌다.

“고마워.”

8월 나의 무릎이 부푼 이후 제법 괜찮은 촬영 하나를 캔슬하고 내 곁을 지켜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내가 고마우면 안타 치고 힘들게 뛰지 말고 매일매일 홈런만 빵빵 치고 편하게 걸어 다니라고!!”

“알았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무릎과 발목은 좋지 않지만 오래된 부부에게는 그 나름의 방법이 있는 법. 그녀가 나의 신호를 알아들었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그녀의 온도. 그 순간 문밖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스파이크!! 세 번째 서랍이라며”

일요일의 늦은 아침. 스포츠클럽을 나가는 아들 녀석이 스파이크를 찾지 못해 제 엄마를 찾는 목소리였다. 달아오르던 그녀의 온도가 싸하게 식었다. 내 뺨에 부드럽게 뽀뽀를 해준 재키가 문밖으로 소리치며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찾아줄게.”

망할 일요일 같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교는 주 7일제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시즌.

146경기 547타수 148안타(이루타 21개 삼루타 1개) 40홈런 5도루 1도루 실패 41볼넷 0.263/0.318/0.525. (올스타, 실버 슬러거. 홈런왕)

***

데뷔 이후 겨울 시즌에 게을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2014년의 겨울은 과거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혹독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혹독함이 아니었다. 육체적인 어려움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몸을 완전히 개조하는 것에 가까웠던 2013년의 겨울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부어오른 관절을 치료하고 그 치료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운동을 반복했다. 줄기세포 주사라는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주사를 관절에 맞아가며 몸이 회복되길 기도했고 나날이 성능이 떨어지는 몸을 추슬렀다.

'내년 과연 나는 여전히 빅리그급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정신적 괴로움이 나를 덮쳐왔다.' 그것은 20대 초반, 과연 내가 빅리그에 올라갈 수 있을까 했던 고민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2014년의 겨울. 메츠는 또 한 번 중견수 자원들을 긁어모았다. 대형 FA라고 할만한 영입은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입이었다. 하지만 스프링트레이닝이 지나고 2015년에도 역시 주전 중견수는 나의 몫이었다. 이를 악물고 2015년을 버텼다. 그랬다. 나의 2015년은 활약했다는 말보다는 ‘버텼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2015년의 겨울이 찾아왔다. 10년 4억 달러 계약의 마지막 해를 앞둔 겨울. 여전히 괴로움으로 가득한 그 겨울 속에서 프레스톤은 단년 600만 달러의 재계약을 체결했고 프리드먼은 큰일을 해냈다.

-뉴욕 메츠 토론토의 케빈 필라 영입!!-

<맙소사. 0.267/0.295/0.397치는 타자를 토미닉이랑 게빈을 주고 데리고 온다고? 미쳤군. 얘 작년 WAR가 –0.3이야>

수비는 현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지만 타격으로 그 최고수준의 수비를 죄다 깎아 먹는 토론토의 중견수 케빈 필라의 영입이 바로 그것이었다.

“케빈 필라 선수의 툴에 따른 발전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발전 가능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강진호 선수의 수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타격에 조금 더 집중하게 해주고 그를 통해 팀이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2016년. 10년 계약의 마지막이자 나의 커리어 첫 풀타임 좌익수 시즌이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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