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06화 (206/210)

# 206화.

그리하여 마침내(2)

진호의 코너 외야수 컨버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중견수는 주력과 순발력이 코너 외야수에게는 타구판단과 강견이 더 중요한 재능으로 꼽힌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진호는 역대 최고의 외야수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외야수에게 필요한 타구판단, 순발력, 주력, 강견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외야수로 뛰기 힘든 주력과 나이를 먹고 느려진 순발력에도 불구하고 리그 평균 수준의 중견 수비를 보여주던 야수가 코너로 옮겨왔다. 물론 걸림돌은 있었다. 만 39세. 한국 나이로 41세. 새로운 것에 적응을 바라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198cm 111kg의 거구. 하지만 둔한 느낌은 없었다. 거대한 근육의 갑주로 무장한 거인.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쳐낸 타구가 높게 떠오른다. 선발 투수들의 속구 평균 구속이 3마일 이상 증가한 이 시대. 스테로이드의 힘으로 70홈런을 쳐대던 괴물들은 사라지고 고작 40개의 홈런이 홈런왕 자리를 차지하는 지금,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파워를 지닌 홈런타자로 각광 받고 있었다.

‘높아.’

타구각이 높았다. 너무 높았다.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당연하게 외야 플라이가 되어야 하는 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높은 동시에 너무 강했다. 공을 박살 낼 것 같았던 스탠튼의 기세가 고스란히 실린 그 공은 그 자리의 거의 모든 이들을 확신케 했다.

‘홈런이다!!’

[잡아당긴 타구!! 좌측 담장으로 넘어!! 넘어 갑······]

그리고 그 순간 진호는 달리고 있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몸 상태가 가장 좋던 순간에도, 몸 상태가 가장 나쁘던 순간에도 말이다. 몸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연골은 너덜너덜했고 인대는 전성기의 탄력을 잃어버렸다. 40대에 접어드는 근육은 젊은 시절의 힘을 품지 못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필드의 정중앙. 광활한 외야 대신 외야의 좌측. 이전에 비하면 협소하기 그지 없는 지역을 커버하면 된다는 점 뿐이었다.

‘반반?’

높게 뜬 타구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야수로 긴 시간 살아왔다. 몸은 너덜너덜했으나 긴 시간 갈고 닦은 감각은 녹슬지 않았다. 예측되는 낙구 지점과 타이밍. 진호가 달리던 힘 그대로 크게 발을 굴러 높게 뛰어올랐다. -부웅 날아오른 것 같은 몸놀림. 조금 이른 것 같았던 점프타이밍은 옳았다. 벽을 밟은채 찰나의 순간을 버텨낸 진호의 글러브가 담장을 넘어가려는 야구공을 낚아챘다.

[오 마이 갓!! 이건, 그러니까 강진호!! 강진호!! 강진호입니다!!]

터무니없는 수비. 해설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강진호라는 이름 세 글자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슈퍼플레이에 ‘강진호’라는 말 말고 대체 어떤 말이 어울린단 말인가.

글러브에서 공을 빼낸 진호가 머리 위로 공을 치켜들고는 자연스럽게 관중석을 향해 공을 던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해설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강진호 선수. 무릎과 발목이 상당히 안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하, 정말 대단한 장면이었습니다.]

[이건 뭐랄까, 강진호 선수다운 장면이 오래간만에 나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군요. 그나저나 저렇게 뛰었는데 무릎은 좀 괜찮을지 걱정되는군요.]

[아무래도 코너 외야수로 컨버전 한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체력적인 부분도 그렇고 아무래도 부담이 훨씬 덜한 포지션이긴 하니까요.]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진호를 향해 프레스톤이 물었다.

“괜찮아?”

“다리? 아직 시즌 초반이라 그런지 괜찮은 것 같아. 게다가 뭐 하루 종일 이렇게 뛰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뛰는 건데 뭘.”

“이 자식 이거 올해 끝으로 또 FA라고 아주 돈독이 올랐구만.”

“그래 돈독 올랐다. 41살 할배가 600만 달러나 받는데 그보단 더 받아야지.”

“누가 들으면 내가 어지간히 많이 받은 줄 알겠다? 나 이래 봬도 1,100만까지 부른 팀도 있었거든? 내가 진짜 정을 봐서 여기 남아준 거야.”

“말년에 500만 달러에 다른 도시 가서 고생하는 게 싫었던 건 아니고?”

프레스톤이 웃었다. 진호도 함께 웃는다. 반평생을 함께 티격거리며 살아온 두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함께 시작한 두 사람이 마무리도 함께 하고 싶은 매한가지의 심정을 말이다.

“프레스톤. 우리가 지금 아홉 개지?”

“그래. 지겹게 우승 한것 같은데도 고작 아홉 번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 요기 베라 그 영감님이 대단하긴 대단하단 말이야. 열 개라니 말이지.”

“나도 네 연봉이 한 3천만이던지 네가 2012년부터 드러눕지만 않았으면 열 개는 됐을 거거든? 2012년이랑 13년은 중견수만 어떻게 보강했어도 되는 거였는데.”

프레스톤의 투덜거림에 진호가 발끈한다.

“애초에 내가 없었으면 아홉 개도 어림없었다고는 생각 안 하냐?”

“웃기시네. 08년에 드러누웠을 때도 내가 이끌어서 우승했던 걸 기억해야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난 2007년에 MVP급 활약했는데 네가 드러누워서 포스트시즌도 못 나갔던 거부터 이야기해야지.”

지나온 수많은 이야기가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프레스톤, 이제 우리 둘 남은 거지?”

“망할 놈이, 울컥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옥타비오가 은퇴할 때 덕아웃 구석에서 울던 걸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어야 되는데. 그랬으면 아마 광고료가 올해, 네 연봉만큼은 나왔을 텐데 말이지.”

“질질 짜기는 누가 짰다고 그래? 꽃가루 때문에 재채기가 좀 나왔던 거지.”

“10월에 꽃가루 같은 소리 한다.”

98년 메츠에서 데뷔했던 동료. 꿈꾸던 선발 투수로는 결국 자리 잡지 못 했지만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로 활약했던 동료의 마지막이 그려졌다. 강속구 투수들이 그러하듯 나이를 먹고 구속이 떨어지고 두들겨 맞는 일이 늘어났던 그 친구는 2011년 아직 여력이 남아있던 순간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했었다.

“그래도 막판에 1년 정도는 충분히 더 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 자식이야 원래 자존심이 강한 자식이었잖아. 돈이야 그만큼 벌었으면 벌만큼 벌었겠다 두들겨 맞는 건 싫었다. 이거지 뭐.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똑똑한 걸지도 모르지. 니가 2012년에 이렇게 될 거 미리 예상하고 내뺀걸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갑자기 내가 다친 건 왜 나오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 자식도 아홉 개라는 거라고.”

알뜰하게 메츠의 마지막 우승 보너스까지 챙겨 먹고 은퇴를 했던 옥타비오의 마지막 미소는 환했다.

“생각해보니 열 받네. 나중에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 자식 덕분에 우리가 반지 수집한 줄 알 거 아니야. 그 자식 은퇴하자마자 바로 우승 못 하는 팀 됐다고. 게다가 난 애초부터 그 자식을 우리랑 묶어서 메츠의 전성기를 연 선수들이라고 도매급 취급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두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프레스톤은 진호가 왜 아홉 번을 이야기했는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열 번째 반지.

비어있는 하나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진호와 프레스톤이 의지를 다졌다.

***

“나쁘지 않아.”

“좋은 건 아니란 소리네?”

“지금 좋길 바라면 도둑놈이지.”

가리비아의 퉁명스러운 핀잔에 진호가 항변했다.

“그래도 요새는 급하게 선회하는 것도 없고 나름대로 조절 했다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거야. 내가 장담하는데 넌 60살쯤 되면 무조건 휠체어 탄다. 지금 근육이 그나마 탄탄하게 받쳐줄 때 많이 즐겨두라고.”

“줄기세포 주사는 별 효과가 없었나?”

“내가 그런 사이비 믿지 말라고 했잖아. 뭐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지금은 거의 미신 수준이라니까.”

“그래도 한 20%는 효과 본다고 하지 않았나?”

“젠장. 그런 건 나도 하겠다. 내가 지금 침을 뱉어서 니 얼굴에 떨어질 확률이 한 20% 되는데 어때? 한번 뱉어 볼까?”

자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것을 보는 예술가의 심정이랄까? 진호의 몸이 이 모양이 된 이후 가리비아의 반응은 점점 더 까칠하게 변해갔다.

“60살에 휠체어 탄다는 이야기는 59살까지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네?”

“미친 소리 그만하시고. 너도 이제 몇 달 후면 마흔이다. 슬슬 양복 입고 헛기침 하면서 사업이나 하라고. 돈도 엄청 많이 모았잖아. 올해 끝으로 은퇴나 하라고.”

“사업 그거 나랑 좀 안 맞아.”

“맞고 안 맞고는 일단 해보고 결정하고. 나도 나랑 안 맞을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엄청 잘 맞더라. 땀 뻘뻘 흘리면서 선수들 운동 돕는 것보다 양복 딱 차려입고 서류에 멋지게 싸인만 하는 게 내 천직이더라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트레이닝복 입고 내 운동 돕는 게 별로야? 그러면 뭐 부하직원 보내던지.”

“빌어먹을 자식이. 젠장 내가 말을 말아야지. 2분 다 돼 가네. 빨리 와서 이거나 또 잡아.”

가리비아가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할 일은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다. 한 세트의 근력운동이 끝나고 또 다시 진호가 입을 연다.

“그래서 좀 어때?”

“어떻기는. 그냥 나쁘지 않다니까?”

“작년을 기준으로 보면?”

“그땐 네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려서 기절시키면 이제 은퇴하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했었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뛸 수 있을 것 같아?”

“글쎄다. 지금 같아선 내가 니 턱주가리에 이 오른 주먹을 날리기 전까진 뛸 수 있겠지.”

진호의 질문에 농담으로 답하는 가리비아. 그런 가리비아를 향해 진호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내 턱에 어퍼컷을 넣는 그 날이 언젠데?”

“잠깐만. 진호 너 이 자식. 설마?”

***

-강진호 회춘? 일곱 경기 연속 안타!!-

-코너 외야수 전환 대성공.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좌익수!!-

-강진호 생애 첫 좌익수 올스타 선정!! 커리어 통산 열일곱 번째 올스타 출전!!-

-지안카를로 스탠튼 올스타전 홈런더비 괴력의 61홈런!! 강진호 아쉬운 홈런왕 실패!!-

올스타전. 내셔널리그의 덕아웃. 한층 더 현란해진 헤어스타일의 젊은 스타. 메이저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브라이스 하퍼가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껄렁한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공손함이다. 그를 아는 이들이라면 모두 깜짝 놀랄만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지난 몇 년간 봐왔던 나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올해 엄청 좋던데요.”

“그렇지. 뭐.”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자신의 드림팀은 메츠이며 훗날 FA 자격을 얻게 될경우 워싱턴을 떠나 메츠로 올 것이라고 떠드는 녀석을 바라보며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20년 가깝게 메이저 생활을 하는 동안 쌓인 약간의 팁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하퍼는 고개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자세로 나의 말에 호응했다.

딱!!

그라운드 높게 떠오른 공이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마이크 트라웃의 선제 홈런포!! 1회 초 아메리칸리그 대표팀이 2점을 앞서나갑니다.]

[작년 커리어 두 번째 MVP를 수상한 마이크 트라웃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일부에서는 벌써 푸홀스 선수와 강진호 선수를 넘어 21세기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요. 실제로 같은 나이대의 푸홀스 선수나 강진호 선수와 비교하면 트라웃 선수 쪽의 성적이 더 좋습니다.]

[글쎄요. 그거야 트라웃 선수의 데뷔가 강진호 선수보다 3년이나 빨랐으니 당연한 일이죠. 순수하게 성적으로 비교한다면 트라웃 선수가 강진호 선수의 커리어 평균보다 좋았던 시즌은 아직 세 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것도 강진호 선수가 2012년 이후 커리어 평균을 엄청나게 깎아 먹었는데도 말이죠.]

[맞습니다. 푸홀스 선수를 보면 아시다시피 에이징커브라는 것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거거든요. 사실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만 39세의 나이에 저만큼 반등을 해낸 강진호 선수만큼 트라웃 선수가 긴 기간 활약할 수 있다고 보긴 힘들죠.]

-마이크 트라웃 괴력의 2홈런!! 올스타전 MVP 선정-

-브라이스 하퍼 ‘트라웃의 기량이 현역 최고? 우선 강진호 선수의 전성기 13년 평균 성적을 1년이라도 넘고 온 다음에나 꺼내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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