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에필로그
결혼하고 15년. 형석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좋아하는 야구도 일주일에 두 번밖에 보지 못했고 취미라고는 가끔 마시는 한잔의 캔맥주가 전부일 만큼 말이다. 물론 최선을 다한 것은 형석 혼자만은 아니었다. 그의 부인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 아이가 놀이방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경단녀라는 딱지를 안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팍팍하고 어려운 세상이었다. 두 부부가 그렇게 어렵게 살았음에도 아직 31평짜리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은 19년이 남았고 모아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뜻밖의 행운 앞에서도 형석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9월 19일 NYM vs COL’
그가 다니던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이벤트였다. 별생각 없이 응모했던 그 이벤트에 형석은 덜커덕 당첨되고 말았다. 뉴욕에서 열리는 경기의 티켓 한 장. 젊은 시절이었다면 노가다를 뛰어서라도 티켓값을 마련하고 미국에 다녀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에게는 14살 먹은 딸과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는 아내가 있었다.
“다녀와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아내가 그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건 또 무슨 통장이고?”
“당신 비상금 압수했던 거랑 내가 따로 모은 돈이에요. 원래는 가족여행 가려고 했던 돈이라 좀 부족하긴 할 텐데 나머지는 당신이 또 꼬불쳐둔 비상금 보태고요. 연애하던 시절부터 매일 노래를 불렀잖아요. 강진호 경기 직접 한 번 보는 게 꿈이라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는 먹먹함이 형석의 가슴을 메웠다. 그녀의 이야기처럼 통장에 든 금액은 많지 않았다. 연차를 쓰고, 베이징을 경유하는 27시간짜리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뉴욕의 허름한 호텔을 예약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모든 것이 좋았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미국. 그곳에는 그의 20대를 불태웠던 영웅이 20년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었다. 비록 젊은 시절의 그 찬란한 모습은 아니었다.
딱!!
[쳤습니다!! 강진호!! 강진호!!]
최대 30.7ft/s를 자랑하던 발은 이제 없었다. 뒤뚱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달리기. 올해 기준 23.74라는 처참한 속도를 기록한 발이었다. 현재 메이저에서 가장 느린 푸홀스와 1.5ft/s밖에 차이나지 않는 속도. 규정타석을 소화한 메이저리거를 기준으로 아래에서 14등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진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전성기의 그것을 찾아볼 수 없는 강진호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다 물러나는 스타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차피 돈도 잔뜩 벌었는데 마지막까지 저러는 것이 추하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형석은 저 모습이 더 좋았다. 한 번에 3시간씩 일 년 162번의 경기. 야구의 그 길고 긴 여정은 어쩌면 인생을 닮았다. 인생의 가장 힘든 길목에서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있는 형석이 생각했다.
‘진호야 네가 있어서 즐거웠다. 나도 너처럼 마지막까지 죽자사자 한 번 매달려볼란다.’
***
1836년 더블데이 장군이 야구를 만든 10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주 쿠퍼스 타운에 세워진 명예의 전당. 물론 더블데이 장군이 야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이곳 쿠퍼스 타운이 150년 야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들이 헌액된 장소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23년 11월. 월드 시리즈가 끝나고 모든 수상까지 끝나버린 한가한 시기. 전 세계 야구팬들의 시선이 바로 이곳 쿠퍼스 타운으로 모였다.
21세기 가장 가치 있는 선수. 아니 어쩌면 야구라는 스포츠가 시작된 이래 가장 뛰어났던 ‘야구선수’의 얼굴이 걸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강진호의 예상 득표율은?-
-2023년 명예의 전당 투표. 강진호의 가장 큰 경쟁자는?-
-입성은 당연!! 관건은 역대 최고 투표율인 켄 그리피 주니어의 99.32를 깰 수 있느냐 없느냐!!-
-머레이 체이슨 ‘나의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
-약물 시대를 관통한 선수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머레이 체이슨!! 과연 이 불합리한 기준은 강진호에게도 유효할 것인가.-
-이번에도 백지 투표? 켄 거닉의 선택은!!-
현시대, 많은 기자들은 약물 시대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물론 그 시대 명백하게 약물이 발각된 선수들은 커리어 자체가 부정당했다. 2008년과 2009년 커리어 통산 2번의 MVP를 받았던 푸홀스는 배리 본즈의 MVP가 박탈당하는 것으로 2002년의 MVP를 추가하며 통산 3회의 MVP로 기록됐다.
‘그 시대의 부정확했던 약물검사와 무분별하게 만행했던 약물을 고려할 때 그것만으로 약물을 했던 선수와 안 했던 선수를 구분할 수는 없다. 나는 약물 시대를 지나온 선수들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겠다.’
머레이 체이슨으로 대표되는 몇몇 완고한 기자들은 90년대 중반부터 2004년까지 뛰었던 선수들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투수인 그레그 매덕스에게도 투표하기를 거부했다.
<어휴, 저 꼰대들 진짜. 아니 약물 시대에 약물 안 했으면 가점을 줘야지 왜 투표를 거부하고 있어?>
<약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는 거라잖아. 그리고 사실 강진호도 말년에 반등한 거 보면 좀 의심 가긴 함.>
<진짜 이건 밑도 끝도 없이. 저 기자들도 2005년 이후로 뛴 선수들은 의심 안 하는 데는 이유가 다 있거든? 강진호 비시즌 중에 비공개 훈련하는 곳까지 무작위로 찾아가서 똥 받아 갔는데 약물 의심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네.>
<근데 진짜 저 머레이 체이슨는 진짜 꼰대라서. 그렉 매덕스 투표 때도 투표지 백지로 냈잖아. 저 양반은 진짜 안할 듯.>
<442표 중에서 1표는 일단 백지 확정이라고 보면 맥시멈이 99.77%네. 그렇게만 해도 역대 1위 기록이긴 하다.>
<그렇게 나오겠냐? 야구판에 꼰대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시안에다가 약물 시대잖아. 98%대 본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보다 유리한 것도 있다고 본다. 메츠랑 제일 앙숙이 양키스인데. 양키스 담당 기자도 어쨌든 뉴욕 소속이잖아. 뉴욕 시민이면 양키스 팬이라고 해도 강진호는 인정 안 할 수가 없지.>
<뭐가 됐건 같은 아시안으로 진짜 자랑스럽다. 올해에는 강진호. 그리고 내년에는 스즈키 이치로까지.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선수들이야. 중국도 이번 기회에 축구 말고 야구에 더 투자해서 언젠가 이 선수들의 뒤를 잇는 선수를 내놨으면 한다.>
명예의 전당 투표는 비공개 투표가 아니었다. 그리고 1월 중순 헌액자 발표와 동시에 BBWAA의 홈페이지를 통해 기자들의 투표내역을 밝히는 형태의 공개투표인 만큼 투표를 인증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있지 않았다. 11월 말, 투표가 끝나고 하나둘씩 자신의 투표지를 인증하는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르르 올라온 40여 명의 투표지. 물론 진호를 찍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눈에 띄는 투표지라면 데이빗 오티즈를 찍은 몇 장의 표들과 카를로스 벨트란을 찍지 않은 몇 장의 표. 그리고 정말 특별한 한 장의 투표지였다. 40여 명의 이름이 쓰인 투표용지. 용지에 체크된 이름은 단 하나 Kang Jin-ho 뿐이었다. SNS를 통해 공개된 이 투표지는 순식간에 백만 단위로 리트윗되며 퍼졌다.
명예의 전당에 투표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는 10명. 하지만 여기서 10명은 최대의 인원을 의미했다. 이렇게 한 명을 투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화제가 되는 것은 조금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이 투표자의 이름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런 유난스러운 반응을 납득할 수 있었다.
‘머레이 체이슨.’
약물시대에 뛰었던 선수라면 그 누구라도 투표하지 않겠다 선언했던 완강한 꼰대. 2014년 그렉 매덕스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12명의 기자 중 가장 완강했던 사람이 바로 머레이 체이슨이었다. 심지어 이번 투표 직전 했던 인터뷰에서 ‘나의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선언하는 패기를 보였던 그의 투표지에는 오직 진호의 이름만이 체크되어 있었다.
<뭐야? 머레이가 진호에게 투표를 했다고? 마스터도, 빅유닛도 모두 걸렀던 그 머레이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거지? 이 인간 약물시대에 뛰었던 선수한테는 절대 투표 안한다고 그랬잖아.>
<맞아. 게다가 이 인간 벨트란도 청정타자인데 투표 안 했잖아. 대체 무슨 기준이야 이거.>
수많은 사람이 웅성거림을 뚫고 누군가가 머레이에게 직접 질문을 건넸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진호에게 투표를 한 겁니까?>
답은 간단했다.
-난 머저리가 아니다.-
야구라는 종목이 탄생한 이래 가장 완벽했던 5툴 플레이어. 세월의 흐름 속에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1루를 밟았던 야구의 화신. 약물 시대 자체를 부정한 이 늙은 기자조차도 강진호라는 선수가 말년까지 보여줬던 야구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가 세운 위대한 기록 그 자체는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평생동안 짝사랑했기에 부정한 것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머레이 체이슨이라는 기자의 양심이었다.
그의 멘트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약물 시대 자체를 부정하는 기자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선수. 이제 진호를 인정하지 않았던 기자는 머저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천천히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1월 21일. BBWAA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발표했다.
***
무릎이 욱신욱신했다. 재밌게도 분명 부상의 시작은 발목이었는데 지금 더 아픈 부위는 무릎이었다.
“괜찮아?”
“응, 뭐 내일 비라도 오려 나보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재키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제 42살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평소였다면 지팡이를 들만한 컨디션이었지만 오늘은 곤란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있더라도 두 다리로 서야 하는 날이다.
“젠장. 그러기에 내가 연장계약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50줄에 들어섰음에도 4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가리비아가 나의 무릎에 테이핑을 시작했다. 가리비아에게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눈으로 대충 보고 익힌 사이비와 세계 최고의 전문가는 다르다며 굳이 따라온 그에게 나의 무릎을 맡겼다. 지팡이를 짚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편안한 느낌이었다.
“가서 멋지게 한마디 하고 오라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대를 향해 걸었다. 수많은 기자가 2023년의 유일한 헌액자인 나를 바라본다. 넓은 단상 위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동판 하나를 건넸다. 실물보다는 많이 못생긴 얼굴. 하지만 나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Kang Jin-ho
“Mr Mets”
NEW YORK, N.L. 1998-2017
최고의 5툴 중견수. 뛰어난 장타력, 뛰어난 주루, 뛰어난 컨택트, 놀라운 어깨 그리고 위대한 수비. 오직 뉴욕 메츠에서 20년을 뛰었으며 커리어 통산 0.316의 타율을 기록했다. 758개의 메이저 최다홈런 기록. 역사상 유일한 500-500-3000안타. 커리어 7번의 30-30. 그 중 2번이 40-40이었으며 1번이 50-50이었다. 통산 18번의 올스타. 13개의 골드 글러브. 9개의 실버 슬러거. 그리고 3번의 챔피언십시리즈 MVP. 4번의 월드시리즈 MVP. 6번의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월드시리즈 우승횟수는 10회. 그는 최고의 야구선수다.
2914경기(15) 12747타석(8) 10955타수(12) 2225득점(1) 2302타점(1) 3466안타(6)(2루타 623개(14) 3루타 92개(202)) 758홈런(1) 503도루(40) 104도루실패(110) 1568볼넷(14) 97HBP(94) 117희생플라이(11) 10희생번트 0.316/0.406/0.598.
그리고 2명의 머저리를 제외한 99.54%의 최다득표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