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10화 (외전) (210/210)

# 210

외전. 프레스톤 이야기.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강진호 은퇴 경기 마지막 타석 커리어 3466호 안타 기록!!-

-결국, 데릭 지터를 넘어선 강진호-

-메츠 왕조의 제왕. 강진호의 은퇴. 메츠의 앞날은?-

-앤드루 프리드먼 ‘메츠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그 꼴찌조차 그가 더해지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리그의 지배자 강진호. 마침내 은퇴!!-

-조 필립 ‘21세기의 메이저리그는 1900년대의 메이저리그와 다르다. 메이저리그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더 박진감 넘치고 팽팽한 리그를 만드는 형태로 말이다. 과거 양키스는 자신의 왕조에 어울리는 왕들을 그 막강한 자금력으로 줄줄이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메이저리그는 단순히 더 많은 돈이 있다고 최강의 전력을 만들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물론 그 속에서 메츠는 일종의 변종이었다. 20년간 10번의 우승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이었다. 그렇기에 본 필자는 강진호라는 선수의 가치를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4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진호는 그 천문학적인 금액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공평하게 진행되게 만들어 둔 룰 자체를 뒤흔들어버리는 변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변종이 은퇴했다.

이제 메츠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데리고 있던 변종에서 메이저리그의 30개 구단 중 하나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긴 시간 강진호라는 변종을 데리고 있었던 팀이었던 만큼 그것 이하의 팀이 될지도 모른다.’-

제길, 아직도 마지막 순간이 눈앞에 선하다. 진호의 안타. 그리고 나의 멍청한 삼진. 우리의 마지막은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 끝났다. 아니 사실 내가 거기서 홈런을 쳤다고 해도 우리의 마지막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017년의 워싱턴은 너무 강했다. 155번째 경기에서 이미 지구 1위를 확정 지을 만큼 말이다.

“수고했다.”

“그래, 넌 계속 수고해라.”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계집애처럼 눈가가 촉촉해졌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더 슬펐던 것은 나의 말에 답하는 진호의 눈가에 아쉬움이 가득 했다는 점이었다. 퉁퉁 부어오른 무릎으로 마지막까지 뛰었던 녀석이다. 아마 몸만 허락했다면 결코 은퇴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진호는 괴물이었다. 애초에 몸의 어딘가가 망가졌다는 것은 절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무릎이 망가졌으니 주루만 문제가 된다? 멍청한 소리다. 타격은 매우 정교하고 복합적인 운동이고 몸의 어딘가가 망가졌다는 것은 그 정교한 톱니바퀴가 어긋난다는 의미다. 그것은 당장 진호와 함께 리그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푸홀스가 발바닥 부상으로 죽을 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괴물을 상대로 경쟁심을 불태웠던 머저리였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불태웠던 머저리가 아니라 여전히 불태우고 있는 상머저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미 은퇴해버린 녀석이지만 난 여전히 녀석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골라인을 지나간 1등을 앞지르려는 머저리 중에 상머저리지. 그래봐야 1등이 그 자식인 건 변하지 않는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선수 생활 내내 그랬다. 1996년 싱글 A에서 내가 중견수 자리를 뺏겼던 그 순간부터 그 자식은 나의 경쟁상대였다. 녀석에게 내가 경쟁상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본래 뒤따르는 멍청이는 앞선 놈의 등을 노려보는 법이지만 가장 앞선 놈은 그냥 냅다 골라인만을 보고 달리는 법이니 말이다.

뭐가 어찌됐 건 진호 자식은 이미 역대 최고의 홈런 숫자와 야구의 신에 필적하는 WAR을 쌓아 올린 채 골라인을 지나갔다. 남은 것은 43살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350만 달러에 재계약을 한 멍청한 늙은이뿐이다.

***

“프레스톤 씨.”

“왜.”

스프링 트레이닝. 자칭 강진호의 후계자라고 하는 호세 레예스 녀석이 슬쩍 다가왔다. 뭐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현시대에 진호 녀석이 쌓아 올린 성적에 그나마 근접할 가능성이 있는 녀석은 저기 에인절스의 트라웃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도 트라웃이 앞으로 40살까진 쭉 지금처럼 활약해줘야 가능할 일이다. 호세 레예스? 이 자식은 진호는커녕 트라웃 절반도 못 따라간다.

“몸은 좀 괜찮아요?”

“몸이야 항상 괜찮지. 이 괜찮은 게 언제까지 가느냐가 문제지.”

“우리 올해 괜찮을까요?”

“왜? 자신 없냐?”

“아니, 주변에 온통 힘들 거라는 이야기뿐이잖아요. 전력도 작년에 비해서 딱히 보강된 것도 아니고.”

진호 녀석이라면 멋지게 자기만 믿으라고 이야기했겠지. 아니 애초에 이런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으려나? 난 지금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애초에 팀을 추스르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런 건 자기 할 거 다 하면서 팀원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남았던 진호 같은 녀석에게 맡기는 거로 충분했다. 나의 몫은 오직 나의 플레이뿐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왠지 헨더슨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너랑 내가 머리 굴려봐야 답이 나오겠냐? 앤드루가 알아서 하겠지. 그 자식 똘똘하잖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뿐이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를 믿으라는 이야기. 방망이를 쥐고 BP존으로 걸어갔다. 이미 20대부터 뼈에 저리게 깨닫고 있다. 난 진호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것뿐이다.

***

원정 6연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비어있는 넓은 집이 나를 반겼다. 더럽지는 않았다. 나의 일정에 맞춰 준비해둔 출장 가정부 업체는 믿을만했다.

다음 날 아침 알람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지에 음식을 데웠다. 4인용 식탁에 음식으 내려놓는다. 약간의 외로움이 마음을 스쳤다. 괜찮다. 참을만했다.

19년 전의 진호. 그리고 17년 전의 나를 되돌아본다. 파멜라 앤더슨과 찐하게 연애하던 녀석은 긴 시간 동안 매우 아프게 헤어졌었다. 그리고 그해 녀석은 MVP를 받았던 직전 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쟈넷과의 연애가 망가졌던 17년 전의 나는 기억하기도 싫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사생활이 아무리 망가져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괴물과 그럴 수 없는 인간. 그렇다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괴물을 이기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던지, 사생활을 포기하던지.

그렇게 43살. 나는 여전히 홀로 살아가고 있다.

따듯하게 데워진 음식을 챙겨 먹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크고 투박하고 기름 잔뜩 먹는 허머 H1 알파가 나를 반긴다. 진호 자식은 마이너 시절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슈퍼카를 ‘수집’했다. 연봉 4천만 달러짜리 선수에게 그 정도야 사치라고 할 것도 없는 도락에 불과했다. 뭐 금전만 따진다면 나 역시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거 허세가 아니다. 비록 지금이야 연 2천만 이상의 선수가 30명을 넘어가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난 메이저 역사상 13번째. 외야수 중에서는 4번째로 거대한 규모의 계약을 따냈던 선수였다. 내가 이 구형 허머를 모는 것은 그냥 이 녀석이 가장 튼튼한 차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나왔던 계집애 같은 허머와 다른 진정한 남자의 허머. 실제로 9년 전 있었던 추돌사고에서 내 차를 박았던 볼보 v70은 반파됐지만, 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꼼꼼히 몸을 풀고 타격연습을 시작했다. 나이를 먹고 근육의 질이 떨어진 만큼 양을 늘렸다. 덕분에 몸은 작년보다 두꺼워졌고 나를 노려보는 가리비아의 인상은 더 더러워졌다. 두꺼워진 몸만큼 줄어든 관절의 가동범위. 덕분에 타격폼은 미세하게 변했다.

딱!!

높게 떠오른 공이 담장 밖을 벗어났다. 바뀐 폼은 나쁘지 않았다. 미세하게 배트를 움직이는 것이 더 힘들어진 만큼 컨택은 젠장 맞게 나빠졌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 병신같은 스윙이 내 몸에 더 맞는 느낌이다. 43살에 찾아낸 병신같은 스윙이 나의 베스트 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젠장 맞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사무국에서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작년부터 공이 훨씬 잘 뻗었다. 실제로 2015년에 비해 16년과 17년 리그 전체의 홈런 숫자와 장타율은 증가했다.

가장 넓고 좋은 라커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나의 바로 옆자리를 쓰는 데이빗이 선수들을 불러모은다. 작년 은퇴한 진호에게 캡틴 자리를 물려받은 녀석은 클럽하우스 리더로써 나쁘지 않았다. 성적이야 진호 녀석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클럽하우스 리더로써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역량은 진호보다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덕분에 피아자나 헨더슨이 진호를 도왔던 것과는 다르게 난 녀석을 도울 필요가 없었다.

‘뭐 진호 녀석은 20대에 대뜸 캡틴 자리를 맡았던 거고 데이빗은 진호에게 천천히 물려받았다는 차이는 있으니까.’

슬쩍 구석으로 물러나 데이빗을 바라봤다. 20살 탱탱하던 녀석은 어느새 33살의 노련한 모습으로 자신과 비슷하거나 어린 선수들을 독려했다. 확실히 선수들의 기세가 살아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현시점에서 우리 메츠의 성적은 43승 29패. 6할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작년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던 내셔널스 선발 투수들의 기세가 한풀 꺾인 덕분이었다. 물론 그들의 에이스 맥스 슈어저는 여전히 터무니 없었다. 하지만 에이스 싸움 만큼은 우리도 만만치 않았다.

제이콥 디그롬.

데뷔 초부터 솔리드와 도미넌트를 넘나들던 멋진 자식이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정말 역사적인 시즌을 만들고 있다. 일찌감치 허리 부상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커쇼는 둘째치고 그 미친 슈어저 자식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 중이다. 삼진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대신 홈런을 슈어저 자식의 반도 되지 않게 쳐맞아준다. 녀석이 올라가는 날에는 2점만 내도 팀이 승리할 확률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게다가 이 자식 대학시절까지 유격수를 한 덕분인지 타격도 투수 같지 않다. 물론 미친 범가너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건지 배트와 함께 춤을 추는 건지 모르는 머저리들과는 다른 타격을 보여줬다.

긴장감 있게 외야에서 타석을 바라봤다. 이래 봬도 난 2009년에 골드 글러브까지 받아 본 남자다. 물론 20년 동안 13개나 받아가는 괴물이 바로 옆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기록이었지만, 어쨌거나 난 골글급 외야수다.

딱!!

타구가 날아든다. 멀다. 본능적으로 견적이 나왔다. 이건 잡을 수 없는 타구다. 안전하게 바닥을 튕긴 공을 처리한다. 이 나이 먹도록 우익수를 볼 수 있는 나의 강한 어깨가 빛을 발했다. 2루수 호세 레예스한테까지 다이렉트로 날아간 공. 레예스가 공을 받아 그대로 홈을 향해 송구했다. 제법 큰 타구임에도 2루 주자는 홈까지 달리지 않았다. 모두 이 몸의 처리가 완벽한 덕분이었다.

***

-뉴욕 메츠 아슬아슬한 지구 1위!!-

-메츠는 어떻게 강진호의 빈자리를 메워내고 있는가!-

-캡틴 데이비드 라이트. 메츠의 두 번째 왕조는 가능할까?-

-프레스톤 윌슨 커리어 2799번째 안타!!-

이번 시즌은 느낌이 좋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120경기 400타석 정도를 소화했는데 올해는 아직 시즌이 2/3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97경기 330타석을 소화했다. 언론에서는 내가 1년 혹은 2년 정도만 더 뛰면 3천 안타에 500홈런도 가능하다고 떠들어준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런 기록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엄청 신경 쓰인다. 마일스톤이라는 건 본래 그런 거다. 물론 언론에 나의 기록보다 팀의 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거짓이 아니다. 우승 반지가 갖고 싶다. 이미 열 손가락에 다 끼고 있지만, 엄지 발가락에도 하나 끼고 싶다. 이왕이면 양쪽 발의 엄지에 하나씩 해서 두 개 정도 더 끼고 싶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진호네 집을 방문하고 싶다.

딱!!

‘넘어가라!!’

힘껏 공을 쳐내고 1루를 향해 달리며 소원했다.

“아, 썅.”

알렉스 고든 개자식 같으니. 난 예전부터 저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저만큼 뛰어다니면 중견수로 뛰어야지 왜 좌익에 있단 말인가. 완전 잘 맞은 타구를 잡아내고 좋다고 히죽 웃고 있는 자식의 면상이 재수 없다.

-2800번째 안타에 대한 부담감? 프레스톤 윌슨 3경기 연속 무안타.-

***

쾅!! 하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다.

언제 들어도 호쾌한 포구음. 최근 디그롬의 활약에 밀려 조금 묻히는 감이 있는 ‘토르’ 노아 신더가드의 98마일 속구가 케빈의 미트를 두들겼다. 뭐 디그롬에게 조금 묻힌다고는 하지만 노아 신더가드의 포텐셜 만큼은 과거 랜디 영감에 필적한다고 생각한다. 6-6(198cm)의 거대한 키. 체인지업 구속이 90마일이 나오는 괴물이다. 서비스 타임도 아직 2년이나 남은 만큼 내가 메츠에 엉덩이 잘 뭉개고 있다면 나 은퇴할 때까지는 꾸준히 던져 줄 녀석이라 특별히 예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 부디 이대로 쭉 잘 던져다오.

오늘 경기는 제법 중요한 경기였다. 남은 경기는 여섯 경기. 우리의 매직넘버는 2. 슈어저 말고는 죄다 나가떨어져 버린 워싱턴은 진작에 나가리고 브레이브스 자식들이 아등바등 올라오곤 있지만, 오늘 우리가 승리하고 그 자식들이 패배한다면 우리의 지구우승이 확정된다. 뭐 남은 일정을 보면 그 자식들이 전승할 것 같지는 않으니 어찌 됐건 여유롭게 지구우승을 차지할 것 같긴 하다. 올해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은 컵스고 녀석들의 마지막 3연전이 바로 그 컵스와의 경기였으니 말이다.

마운드의 리치 힐이 가볍게 숨을 내쉰다. 저 자식을 보고 있자면 전성기가 조금 늦게 찾아왔다는 점에서 과거 사람 좋던 알 라이터가 생각난다. 물론 생긴 것부터 커리어까지 어딜 봐도 알 라이터쪽의 압승이었다.

딱!!

그에 더해 말년의 구위까지도.

[쳤습니다!! 프레스톤!! 프레스톤 윌슨!! 홈런, 홈런입니다.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 시즌 17호!! 커리어 481번째 홈런입니다.]

[이 선수도 정말 꾸준합니다. 강진호와 푸홀스라는 이레귤러들과 전성기가 겹친 덕분에 상복이 좀 없긴 합니다만 21년 차에 커리어 2841안타 481홈런이면 손에 꼽을만한 성적입니다.]

[올해로 43살인데 133경기 451타석을 소화했거든요. 재작년과 작년 점점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해는 반등을 해버렸어요. 정말 대단한 노익장이라는 말 밖에는 안 나옵니다.]

[타자 계의 랜디 존슨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

결국, 와 버렸다. 마지막 공을 받아낸 2루의 머저리도 얼떨떨한 얼굴이다.

“이게 되네요?”

“그러게 말이다.”

작년과 비교해 딱히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꾸역꾸역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때만 해도 좀 이상했다. 그리고 우리의 디비전시리즈 상대인 동부지구 1위 팀이 시즌 중에 더럽게 강했던 다저스가 아닌 로키스라는 점도 이상했다. 아 물론 로키스 자식들도 디비전에 올라올만한 자격은 있었다. 다만 올 시즌 우리의 상대전적은 다저스를 상대로는 6전 2승 4패. 그리고 로키스를 상대로는 6전 5승 1패였다는 점은 중요했다.

우리가 디비전 시리즈를 가볍게 3연승으로 끝냈을 때 승률 1위 컵스는 와일드 카드를 거치고 올라온 밀워키를 상대로 5경기 중 3경기나 연장 혈투를 벌였다. 게다가 컵스에게 더 고마웠던 것은 그렇게 연장 혈투를 벌인 주제에 결국 패배해 줬다는 점이었다.

참고로 밀워키가 중부지구 1위를 하지 못한 것은 컵스가 강한 것도 강한 것이었지만 우리와의 시리즈 2번을 전부 스윕 당하며 승점 자판기 역할을 해줬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상한 대우주의 기운을 타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뉴욕 메츠!! 압도적!! 포스트 시즌 쾌조의 7연승!!-

그리고 월드 시리즈.

상대는 보스턴 레드삭스.

언론에서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11시즌 메츠에 필적하는 보스턴 프랜차이즈 사상 최강의 팀.’

올시즌 성적만으로 한정짓는다면 진호의 커리어 평균 이상의 외야수인 무키 베츠를 필두로 세일, 마르티네즈, 프라이스의 1~3선발은 죄다 사이 영 컨텐더급에 4선발인 로드리게스 역시 올스타급. 불펜진 역시 리그 최강. 과거의 몇 년을 긁어 모으고, 그로 모자라 미래의 몇 년까지 당겨온 2018년 최강의 팀이었다.

반면 우리 팀의 경우 앤드루가 입으로는 진호는 은퇴했지만, 메츠는 여전히 우승을 노린다고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하는 짓을 봐서는 대충 지구 우승을 다툴만한 전력을 유지하면서 힘을 끌어모아 몇 년 후를 기약한다는 꼬라지가 뻔히 보였다. 지금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것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영혼을 끌어모은 행운 덕분이었다. 아마 20경기 정도 리그전을 치른다면 3할 5푼? 그 정도가 우리의 한계였을 것이다. 보스턴과 우리 메츠의 전력 차이는 명백했다.

20경기를 치른다면 7경기 정도를 이길 수 있는 전력 차이.

월드 시리즈 5차전. 우리가 7번 중에서 4번을 선지급으로 당겨 받았다.

[윌슨!! 프레스톤 윌슨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 맙소사. 메츠!! 메츠가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

“어때, 이게 바로 토우 링 이라는 거야. 발가락에 끼는 반지지. 기나긴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오직 위대하고 찬란하고 명예로운 프레스톤 윌슨. 바로 이 몸 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링이라 이 말씀이지.”

“야, 프레스톤. 오늘 내가 전당에 이름표 새긴 거 기념하는 날인데, 이런 날까지 꼭 그걸 끼고. 정장에 슬리퍼까지 신고 와서 그렇게 자랑해야겠냐? 심지어 너 행사에도 지각해서 내가 소감발표 하는것도 제대로 안 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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