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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엔딩은 죽음뿐-116화 (116/243)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116화

‘페넬로페가 달라고 한 보석이…… 이 새가 낳은 알?’

나는 생경한 눈으로 새를 바라보았다.

“삐요, 삐요오-.”

눈이 마주치자 새가 또 한 번 울며 날갯짓을 했다.

“그간 쥐 죽은 듯 있더니, 널 보자마자 퍼덕거리는 걸 보면 주인을 알아보았나 보군.”

“…….”

“그만 네 방으로 가져가라.”

“…….”

“원래 네게 주려 했던 거니까.”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얼떨떨한 얼굴로 데릭을 돌아보았다.

그는 내가 아닌 새장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읊조렸다.

“아직 알을 낳지 않은 개체라고 하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낳겠지.”

그러면 작년에 페넬로페가 원했다던 ‘포피뉴 다이아몬드’를 가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의 심경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뜸 속마음이 튀어 나갔다.

“……뭐?”

“제가 사치 부리는 걸 싫어하셨잖아요.”

“…….”

“저는 모르겠어요. 소공작님이 왜 자꾸 제게 이런 걸 주시는지.”

푸른 눈이 찰나, 일렁였다. 이번에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뭐, 재판 전에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먹고 떨어지라고?’

갈수록 삐딱해지는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딱딱하게 경직된 채 서 있기만 했다.

그러더니 한참 후.

“……그래. 싫어했지.”

불현듯 그는 굳은 표정을 풀고, 조금 허탈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너는 항상 나한테서 이유를 찾는군.”

“…….”

“사실 나도 몰라.”

그 대답에 당황한 것은 나였다. 멍하니 놈을 바라보는 중, 그가 묵묵히 입을 열었다.

“그저 걷다가 이걸 발견했고, 네가 가지고 싶다 했던 것이 떠올랐다.”

“…….”

“딱 한 마리뿐인 희귀종인지라 다른 이한테 뺏기기 싫었던 것도 같군.”

“…….”

“이제 이유가 설명이 됐나?”

하나도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왜 작년에 가지고 싶다 했던 말이 떠올랐냐고.’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어차피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저를 생각해서 잡아 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갖기 싫어요.”

나는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푸른 동공이 즉각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어째서지?”

“알을 낳을 때까지,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나는 말을 하고도 놈의 눈치를 기민하게 살폈다.

저번처럼 심기가 뒤틀린 놈이 그럼 버리라든지, 새를 죽이라든지 같은 소리를 할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기에.

“……그렇군.”

그러나 놀랍게도, 데릭 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했다.

“그러면 계속 내가 돌보지.”

‘이놈이 대체 왜 이럴까?’

휘둥그레진 눈으로 놈을 다시 보던 나는 곧 납득했다.

값비싼 보석을 낳는 새이니, 죽일 수는 없는 것이리라.

“대신 가끔 들여다보러는 와라. 영리한 새이니, 너를 또 찾을지도 모르니까.”

“삐요오-.”

마치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새가 한차례 울었다.

“그럴게요.”

나는 순순히 답했다. 곱상한 새가 퍽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네놈이 없을 때에 한해서라는 건 밝히지 않았다.

대답을 한 이후 한동안 집무실 안에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간헐적으로 우는 새를 구경하며, 이제 슬슬 돌아가 보겠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였다.

“……몇 년 내로 아버지께서 은퇴하시면 공작위를 내가 승계받게 된다.”

데릭 놈이 불쑥 정적을 깨트렸다.

“아무리 대비하고 또 대비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취약점이 생기기 마련이지.”

“…….”

“정적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파고들어 에카르트를 음해하려 들 것이다.”

무척이나 뜬금없는 맥락이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내 눈초리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준비해야 한다. 내가 지키고 책임져야 할 가문이니까.”

“…….”

“그 안에는 너 또한 포함되어 있다, 페넬로페 에카르트.”

불현듯 놈이 시선을 들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갑고, 냉철하고, 오만한 귀족의 모습으로, 그는 한 자 한 자 짓씹듯이 말했다.

“에카르트의 명성에 위해를 가하는 것들을 차단하기 위하여 일부 살을 내주는 것은 별거 아니야. 네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려던 게 아니라.”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가 지금, 재판 전날 감옥에서 나눴던 대화를 변명하고 있다는 것을.

“내 생각이 옳았다고 말하지 않겠다.”

“…….”

“하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또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

“그게, 가장 빠르게 네게 씌워진 귀족 시해범이란 모함을 벗겨 낼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푸른 눈에 알 수 없는 격정이 휘몰아쳤다.

재판장에서 홀로 알아서 진술하던 나를 바라보던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내가 성급했던 것을 인정한다. 앞으로는 먼저, 네 말을 들어보고 신중히 행동하도록 하지.”

“…….”

“너 또한 더는 악을 쓰지 않고 충분히 네 뜻을 관철할 수 있게 된 것 같으니까.”

네가 변했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로 일단락 지으며 놈이 말을 마쳤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말마따나, 그는 곧 거대한 공작가를 이끌어갈 재목이었고, 매 순간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비록 안 그래도 욕을 들어 처먹는 양동생을 더더욱 나락으로 모는 일일지라도.

사과 한마디 없었지만, 나는 이게 철저한 대귀족으로 길러진 데릭 놈의 사과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자꾸만 마음이 삐딱해지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제 안 그러겠다고? X 까.’

나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악을 쓰는 진짜 페넬로페는 사라지고 없는데.

“저는 그때 말씀드렸던 것과 변함 없어요.”

필요 없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끝내 눌러 삼켰다.

마지막으로 본 놈의 호감도가 고작 32%에 불과했으므로.

“페넬로페.”

놈이 조급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제가 벌인 일은 앞으로도 제가 알아서 책임지고 싶어요. 기대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를 막아서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빙긋 웃었다.

“말씀드렸잖아요.”

내 말에 놈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새까만 머리 위 주황색 호감도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수치가 보이지 않아서 그것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알 턱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만 가 볼게요. 새를 잡아 주신 것은, 감사했어요.”

더 있다가는, 또 폭락을 야기시킬 듯하여 나는 허겁지겁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집무실 문으로 빠르게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광산에 관련해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발길을 붙들었다.

“항시 집사를 대리인으로 앞세워라.”

나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여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꾸역꾸역 내게 조언을 내뱉었다.

“어린 영애가 소유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시하는 족속들이나 달라붙는 파렴치한들이 있을 테니까.”

“…….”

“원한다면 가문 내의 마법사를 이용해도 돼.”

그가 이미 에메랄드 광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더는 보이지 않는 놈의 호감도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 * *

며칠 후 이른 아침, 집사가 찾아와 광산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아가씨의 지시대로 경매장에 가공하지 않은 최고급 원석들을 세 차례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데 세 번 모두 한 상단에서 마지막 경매가의 열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낙찰받아 갔습니다.”

“……뭐?”

나는 깜짝 놀랐다.

유통할 상단을 정하기 위해 임의로 경쟁을 조성했는데 이러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

“알아보니, 원래 보석을 취급하는 상단은 아닌 듯한데…….”

집사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답했다.

“흰 토끼 상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뭐, 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뷘터 베르단디가 운영하는 상단이었다.

‘그놈이 대체 왜?’

억만금 좀 만져 보나 했더니, 예상치 못한 전개에 실로 당황스러워졌다.

게임의 에피소드라고 여기기에도 석연찮았다.

그저 내 원석이 탐이 나 그랬다고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런 거라면 굳이 마지막 경매가의 열 배를 부르며 모조리 쓸어갈 이유가 없었다.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한 일인데, 그놈이 대체 내가 광산의 주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원석을 사들인단 말인가.

순식간에 심각해진 내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시는 곳입니까, 아가씨?”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재빨리 부정했다.

“그럼 그쪽과 접촉을 해 볼까요?”

“일단…… 잠시 보류해 둬.”

“보류요?”

“응. 생각 좀 해 봐야 하니까.”

집사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몰빵 남주의 호감도 100%를 앞둔 상태에선 다른 남주들을 만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게다가 광산 관련해서 그는 내 대리인이나 다름없었다.

혹여 내가 놈에게 몰래 의뢰했던, 은밀하게 외간 남자를 찾았다는 것을 집사가 알게 되면 큰일이다.

‘안 돼!’

끔찍한 가정에 몸서리를 치던 나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할 말은 그게 끝이야?”

“아, 그리고…….”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집사가 덧붙였다.

“얼마 전 견습 기사 숙소에서 마주쳤던, 네 명의 사내들을 기억하십니까?”

혹여나 불쾌한 기억을 되새길까 배려했는지 집사는 극도로 말을 생략했다.

나는 선선히 대답했다.

“응. 왜?”

“엊저녁에 모조리 기사단에서 파면되었습니다.”

“파면?”

의외의 소식이었다. 분명 내버려 두라 했는데 굳이 번거롭게 내쫓았나 보다.

“뭐, 잘됐네.”

나는 비죽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이렇게 빠르게 진행된 것이 의외긴 했지만, 아예 예상치 못한 범위는 아니었다.

내쫓길 때 놈들의 면상들을 구경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낄 때였다.

“또한 소공작님께서 그들을 귀족 모독죄로 재판에 회부하셨습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말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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