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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6화 (6/100)

제 6화

굿바이 야만 라이프

"아 이 좆망겜 진짜...!"

비좁고 어두침침한 4평짜리 원룸.

구석에 놓인 모니터만이 창백하게 빛나며 방 안을 비추었다.

사람의 집이 아니라 짐승의 우리에 가까운 모양새.

사방이 곰팡이와 쓰레기더미로 가득해 불쾌한 악취가 가득 배어났다.

가축들도 이렇게 살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사내는 마치 코가 없기라도 한 것 마냥, 점멸하는 화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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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겉모습은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 잘랐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저분하게 헝클어진 개털 같은 더벅머리.

핏발이 선 퀭한 눈 밑으로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고, 목 주변이 늘어난 반소매 티셔츠는 지독한 담배 냄새를 풍겼다.

맥주 얼룩이 묻은 츄리닝 반바지 너머로, 불균형한 다리가 슬쩍 엿보였다.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반만 남아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아예 허벅지만 남아있었다.

남자는 눈앞에서 반짝이는 모니터를 아니꼽게 노려보며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엔 타버린 꽁초가 가득했다.

'애미 없는 헤르셀라. 이걸 깨라고 만든거 맞냐.'

모니터에선 '전멸했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검은 머리 여자와 갈색 머리의 남자가 전투를 벌이는 리플레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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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헤르셀라의 마지막 싸움.

비명과 함께 타오르던 도시는 어느덧 음울한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서지고 찌그러진 판금 갑옷, 너덜너덜한 붉은 망토를 걸친 주인공이 거꾸로 쥔 금빛 대검을 땅에 박은 채 숨을 헐떡였다.

주인공의 주위엔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체들만이 남아있었다.

찢기고 베이고 뜯겨나가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조차 없게 변해버린 동료들.

긍지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찬란한 빛을 발하던 영광스러운 영웅들은 이곳에 이르러 마침내 추락했다.

"이게 끝이더냐?"

음산한 목소리가 주인공의 귓가를 찔렀다. 그는 고개를 들고 증오를 담아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 한복판, 시체들의 언덕 위에 서 있는 악마 같은 여자가 은빛 장검을 어깨에 걸친 채 그를 비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십만의 기병들을 이끌고 나타나 살육과 파괴를 흩뿌리며 세상을 불태운 광기의 학살자.

저주스러운 핏빛 악몽. 헤르셀라 아이샨기오르.

그가 최후로 맞이한 절망의 이름이었다.

격렬한 사투를 벌였음을 증명하듯, 두 사람 모두 갑옷 여기저기가 부서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성자의 축복이 깨져나간 주인공의 갑옷은 견갑과 흉갑만이 간신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헤르셀라의 미늘 갑옷은 불타고 찢겨나가 절반조차 채 남지 않았다.

그녀의 애마는 머리를 잃은 채 언덕 아래에 굴러떨어져 있었고, 그녀 역시 양다리에 검과 창이 한 자루씩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비통함에 일그러진 주인공의 얼굴과 달리, 헤르셀라는 여전히 붉게 물든 송곳니를 드러내며 열기 어린 희열감에 도취해 웃고 있었다.

이를 악문 주인공이 금이 간 성검을 거머쥐고 달려들었다.

발을 구를 때마다 대지가 터져나가 파편을 흩뿌리고 너덜너덜해진 망토가 붉은 선을 그렸다.

광분한 들소처럼 순식간에 헤르셀라의 눈앞까지 쇄도한 주인공이 부서져라 움켜쥔 성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낙뢰와 같은 황금빛 섬광이 그녀를 향해 내리꽂혔다.

"헤르셀라아아아아!"

"그래. 그래야지!"

헤르셀라는 입이 찢어져라 미소지으며 검을 치켜세우고 왼쪽 팔을 검신 뒤쪽에 받쳐 성검의 일격을 막아내었다.

-콰아아아앙-!!

금빛 성검과 은빛 장검이 충돌한 순간 폭음이 울려 퍼지며 주변의 시체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장검이 두 조각으로 부서져 헤르셀라의 뺨에 상처를 남기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성검의 일격은 헤르셀라의 검을 부수고 몸을 조금 휘청이게 했을 뿐, 결국 완벽하게 가로막힌 것이다.

"큭..!"

"자, 죽거라."

성검을 막아낸 헤르셀라가 활시위를 매기듯 왼손을 어깨 뒤로 당기고 손끝을 날카롭게 모았다.

공격을 이어가려던 주인공이 다급하게 뒤쪽으로 도약했다.

그 직후 공기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탄환처럼 쏘아진 헤르셀라의 왼손이 허공을 꿰뚫었다.

한 순간이라도 망설였다면 흉갑 채로 관통당했으리라.

수많은 기사들이 저 일격에 반응하지 못해 허무하게 절명했다.

"잘도 뛰는군. 그대로 도망이라도 쳐 보겠느냐?"

"웃기지 마라-!"

뒤로 날아가던 주인공이 허공을 향해 왼팔을 들어 올리자 소용돌이치는 불꽃이 팔을 감싸듯 피어올랐다.

손아귀에 모인 불꽃은 그대로 백열하는 화염의 창으로 변했다.

이미 고갈된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짜낸 마법이었다.

전력으로 내던진 화염의 창이 헤르셀라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어설프다!"

헤르셀라의 대응은 눈부시게 빨랐다.

부러진 장검을 바로 놓아버리고, 양쪽 다리를 관통한 무기들을 잡아뽑아 그대로 연달아 내던졌다.

화염의 창과 충돌한 검이 창끝을 헤집으며 녹아내렸다.

뒤이어 다다른 투창에 불꽃이 완전히 일그러지며, 허공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폭음과 연기가 허공을 뒤덮고 반쯤 녹아내린 금속 파편들이 불똥을 튀기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제길...!"

폭연 때문에 헤르셀라의 모습을 놓친 주인공이 황급히 성검을 끌어당겨 방어태세를 취했다.

"-늦었어."

발 밑에서 들려온 살기 가득한 비웃음.

그것으로 주인공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가 뭘 해보기도 전에, 오른손으로 그의 발목을 붙잡은 헤르셀라가 손을 확 끌어당기며 왼발을 내질렀다.

-콰직

"크, 하악...!"

관자놀이를 노린 돌려차기가 주인공의 두개골을 과자처럼 으깨고, 연이어 내뻗은 왼손에 심장이 뜯겨나갔다.

터져나온 피가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윽고 힘을 잃은 몸뚱이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되었다.

[전멸했습니다!]

"씨발."

모니터에 떠오른 문구를 노려보던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게임을 꺼버렸다.

그러자 주변이 서서히 흐려지며 내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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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이네.

간이침상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며칠 전 헤르셀라가 쓰던 무구를 직접 봤었기 때문일까.

한창 폐인처럼 살던 시절의 꿈을 꾸었다.

그립진 않습니다.

고개를 돌려 선반 위에 놓인 서릿발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자태가 여전히 날 유혹하고 있었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완전 계륵이다 계륵.

어디 놔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입고 다닐 수도 없는.

은은한 냉기를 뿜어낸다는 설정. 이게 문제였다.

처음엔 공격하면 냉기데미지가 추가되어 적의 상처가 얼어붙는다든가, 그런 효과일 줄 알고 좋아했는데.

얼어붙긴 개뿔.

시험해보니 '은은한' 냉기답게 조금 차가워지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것뿐이라면 그냥 아쉽고 말았겠지.

문제는 이게 팔에 착용하는 방어구라는 점이다.

아무리 은은한 수준의 냉기라지만 몸에 계속 맞닿아있으니 얼음물 속에 팔을 담그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 시간쯤 끼고 있었더니 하샬르의 육체조차 견디지 못해 뼛속까지 시려오더라.

결국 이건 이 정도 냉기에는 아예 영향받지 않을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와중에 생긴 건 딱 봐도 엄청난 고급품이라 지나치게 눈에 띄고, 크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도 거추장스럽다.

진짜 좋다 말았지.

제멋대로 뻗은 머리를 대충 정리해 묶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새벽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이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초원의 새벽은 싸늘하다.

내뱉은 숨이 흰 연기가 되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오르한의 직인이 찍힌 표문을 받고 오르도스를 떠난 지도 어느덧 엿새.

제국과의 국경이 지척에 있었다.

원형으로 배치된 다섯 개의 천막 한가운데, 불침번들이 주저앉아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인기척을 눈치챈 듯 일어서 경례해왔다.

"아이샨기오르에 영광을. 기침하셨습니까 하샬르 공녀님."

"그래. 너희도 수고가 많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모닥불 쪽으로 걸어가 적당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공녀님?"

불침번들이 당황한 듯 날 쳐다보았다.

뭘 그리 쫄고 그래. 안 잡아먹어.

"메르신은 아직 자는 중인가 보지?"

"예. 공녀님께서 찾으신다 전하면 되겠습니까?"

친위대 대부분과 자한은 오르도스에 남았고, 메르신만이 귀환할 전사들의 지휘관 역할로 따라왔었다.

"아니, 됐다. 나중에 메르신이 깨어나면 부대를 이끌고 귀환하라 전해주거라."

"지금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날이 밝지 않았습니다만."

"그래. 제국의 국경까진 한나절 정도 걸릴 테니. 지금 출발하면 정오 전에 도착하겠지."

"알겠습니다. 보중하십시오. 공녀님."

불침번들의 인사를 일별하고 내 천막에 돌아와 짐을 챙겼다.

은빛 장검 한 자루와 짐승의 뿔로 만든 활.

간식거리와 이 애물단지 서릿발까지.

갑옷을 차려입고 서릿발을 가죽 천으로 감싸 허리춤에 매달았다.

이러면 적어도 잃어버리진 않겠지.

다른 짐들이야 뭐 메르신과 부하들이 알아서 챙겨 돌아갈 테고.

천막 옆에 묶여 있던 적갈색 말을 깨운 뒤, 활과 화살통을 말안장의 활주머니에 끼워 넣고 올라탔다.

"가자!"

"히히히힝!"

고삐를 쥐고 말 허리를 가볍게 차자 단잠에서 깨어난 말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맞바람이 기꺼워 미소 지었다.

다리를 잃고 기어 다녔던 예전 기억 때문일까.

말을 타고 달리는 건 빙의한 후 겪었던 일들 중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등 뒤의 천막들이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퍼져나오는 희열을 억누를 수 없어 고개를 쳐들고 홍소를 터트렸다.

하샬르는 이제 자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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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간 후.

수백 자루의 창끝이 나를 맞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샬르의 꿈을 빌미삼아 짧은 전투신을 써 보았는데, 이런 느낌으로 쓰면 괜찮을 것 같아요!

뭔가 프롤로그로 쓰면 어울릴 법한 장면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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