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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10화 (10/100)

제 10화

여기사는 전차 세 대 분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흐음...내 수행원이란 말이지. 마음에 드는걸. 그래서, 뭐라고 불러주면 될까? 나이젤 경?"

"경은 제게 과분한 호칭입니다. 부디 나이젤이라 불러주십시오. 아이샨기오르 왕녀님."

"하샬르. 하샬르라 불러. 아이샨기오르는 서부인들이 듣기 불편한 성이잖아?"

사실 내가 듣기 싫어.

기껏 거기서 벗어났건만, 들을 때마다 아직도 그곳에 발이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라.

나이젤이 조금 곤란하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리 명하신다면...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하샬르 왕녀님."

"왕녀도 빼."

"......예. 하샬르 님."

그래야지.

서로 이름으로 부르게 되니 그녀와의 거리감이 조금 좁혀진 느낌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기껏 만난 동년배이니만큼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별실의 의자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절도 있는 자세로 걸어간 나이젤이 소리 없이 의자를 돌려 나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후작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동부어가 제법 능숙하네?"

"예전에 후작님께서 동부어를 배워 두면 좋을 것이라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래? 이유가 좀 궁금한걸."

나이젤이 입을 꾹 다물었다가 이내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갈색 눈동자가 내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었다.

"저...그게, 하샬르 님께서 들으시기엔 불쾌할지도 모르는 이유인지라......"

"상관없어. 말해봐."

팔짱을 끼며 그녀를 재촉했다.

"그...적의 언어를 알면 지휘관들이 뭐라 소리치는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 대처가 빨라지고, 적들의 문화를 이해하면 그 약점을 노릴 수 있으니 죽이기 편해진다고......"

아니 생각보다 훨씬 살벌한 이유인데.

"...확실히 난감한 이유이긴 하네. 다만, 그런 것치곤 정작 셰인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듣던데."

"셰인 경 말씀이십니까? 듣기로는 여태껏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머릿속에 가득 쌓아오셨기에, 뇌리에 동부어가 들어설 공간이 이미 차버렸다 하셨습니다."

그냥 늙어서 외국어를 배우기 힘들다는 소리 아닌가.

잘도 돌려 말했네 그 아저씨.

"또, '충분한 힘이 있다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도-"

"그래 알겠어. 셰인 경의 명예를 위해 여기까지 하자."

내 머릿속 셰인의 이미지가 근엄한 중년 기사에서 능글맞은 빡대가리 근육 아저씨로 변할 것 같으니까.

내 말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나이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는 자기가 지금 상관을 돌려 까고 있는 꼴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나 본데.

"그래서, 내 수행원 일은 언제까지 하는 건데? 앞으로 나흘간? 아니면 아카데미까지 계속 따라오는 건가?"

개인적으로는 계속 따라왔으면 좋겠는데.

수행원이 있으면 편하잖아. 모르는 건 물어보고, 귀찮은 건 떠넘기고.

거기에 생긴 것도 꽤 마음에 드니까.

"후작님께서 돌아오라 명하시지 않는 한, 하샬르님이 아카데미를 졸업하실 때까지 제가 계속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렘넌트 아카데미의 특례입학생은 호위 한 명을 동반하는 것이 허가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건 몰랐는데.

그래서 외국계 캐릭터들은 뒤에 병풍마냥 사람 한 명씩 달고 다녔던 거구나.

호위라. 어찌 보면 아카데미의 설립목적에 위배되는 일이긴 한데.

하긴 평화를 위해 맡아둔 볼모가 픽 죽어버리면 제국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질 테니까.

실제로 이를 이용해 분쟁을 일으키려던 놈들도 있었고.

"그러면 난 이제 뭘 하면 되지? 황실의 답신이 오려면 나흘이나 남았잖아?"

"후작님께서 명하시기를, 하샬르님이 거절하지 않으신다면 그동안 하샬르님께 제국의 상식과 언어를 알려 드리라 하셨습니다."

"제국의 상식과 언어라, 좋아."

"예. 후작님께서도 반기실 겁니다."

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네. 내가 알지 못했던 내용도 꽤 많을 테니까.

제국어는 아예 하나도 모르고.

"아, 그리고 하샬르님이 이에 동의하신다면 이 선물을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선물?"

나이젤이 슬며시 꺼낸 것은 자줏빛 보석이 박힌 둥근 목걸이였다.

"예. 삼 개월 정도 유지되는 통역 마법을 새긴 목걸이입니다. 제국어를 익히시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통역 마법? 그거 머리가 상당히 어지러워지는 게 영 불쾌하던데."

내 말에 놀란 듯, 나이젤이 눈을 크게 치떴다.

"항마력,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아, 그 어지럼증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구나.

통역 마법이 동반하는 부작용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보다, 내가 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 목걸이를 줄 생각도 없었다 이거지?

꽤 노골적인 경고인걸.

제대로 된 지원을 받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제국에 동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란 건가.

"-실례했습니다. 통역 마법에 거부반응이 일어나신다면, 아쉽지만 이 목걸이를 사용하길 권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통역 마법 없이 제국어를 배우는 데는 보통 얼마나 걸리지?"

"어...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던 모양이네.

"음. 그러니까, 보자 그게 대충......한 아홉 달 쯤...?"

나이젤이 손가락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툭툭 두들기며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달. 예. 일반적으로 9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9개월이라.

"통역 마법을 사용하면?"

"보름이면 충분합니다."

"그냥 쓰자."

9개월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야만인으로 사느니 까짓 거 내가 좀 참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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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이 건네준 목걸이를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나?"

"아닙니다. 오늘은 교재도 준비해오지 못했고, 다른 일정이 있기에 제국어를 알려 드리는 건 내일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다른 일정?"

뭔가 할 일이 남아있었나?

나이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별한 건 아니고, 저와 대련 한 번 하시면 됩니다."

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날 패겠다고?

"대련이라니, 좀 갑작스러운데."

"이 역시 후작님의 명령입니다. 아무리 특례입학이라 하여도 렘넌트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일단 그에 걸맞은 실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루드비히 후작도 내 행적을 들어본 적 있던 것 같던데. 굳이 검증이 필요해?"

나 악명 높을 거 아니야.

아직 제국을 건드린 적도 없건만 셰인 역시 내 이름을 듣고 경악하던데.

카`하르의 창녀라 했던가. 꽤 불쾌한 별명이 붙어 있었지.

"...후작님의 뜻이니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넌 대체 내 부하냐 아니면 후작의 부하냐?

아 후작의 부하 맞지 참.

별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얹혀사는 처지이니 어쩔 수 없네. 그래, 싸우러 가자.

"예. 연무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이젤이 가볍게 묵례한 뒤 앞장서 걸어갔다.

거침없는 발걸음에 등 뒤로 코트 자락이 휘날렸다.

너 뭔가 좀 신나 보인다?

내 착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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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로 향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나이젤이 안내한 곳은 성 안쪽의 널찍한 공간이었다.

내 키의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높은 벽이 사방을 둘러쌌고, 뻥 뚫린 천장 너머로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벽 한쪽에 비치된 무기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성 안인데도 여기 바닥은 그냥 흙바닥이네."

"돌로 만든 바닥은 대련하다 보면 쉽게 부서지기 마련이니, 차라리 흙을 깔아두는 편이 낫습니다."

나이젤과 함께 연무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연무실이라 말한 것치곤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일부러 비워둔 건가?"

"아닙니다. 이곳은 본래 란덴부르크 가문의 전용 연무실, 가주님과 그 후계자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기사들은 아마 성 맞은편의 야외 연무장에서 훈련하고 있을 겁니다."

가주와 후계자 전용 공간이라고?

아니 그런 곳이면 좀 많이 부담스러운데.

"그런 곳을 우리가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후작님이 내리신 배려입니다. 야외 연무장은 여러모로 이목이 끌리지 않겠습니까."

그런건가?

뭐 그러면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겠네.

"그러고 보니 후계자분이라 했었지. 루드비히 후작의 자식들은 어떤 사람이야? 이곳에 와서 마주친 적은 없는데."

"후작님께선 자녀분이 없으십니다."

그건 또 의외네. 보통 귀족들은 아내나 자식을 여럿 두지 않던가?

후작쯤 되는 대귀족이면 특히나 더.

"그건 이상하지 않나? 그 나이면 보통 자식 한둘쯤은 있어야지. 가문을 이어가야 하잖아."

"두 분 모두 전사하셨습니다."

시발.

분위기가 싸해졌다.

햇볓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어...그, 그건 유감이네. 그래도 그 뭐냐,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는 말도 있잖아? 후작 부인이랑-"

"부인께선 자진하셨습니다."

아니 나한테 왜 그래.

힐끔 쳐다본 나이젤의 눈동자는 이미 전시된 화석처럼 단단히 굳어있었다.

괜히 물어봤네. 이대로 대련했다간 공룡마냥 땅속에 파묻힐 것 같은데.

난감해하는 내 기색을 느낀 것인지 나이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하샬르님께선 모르셨을 테니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후작님 앞에서는 그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듣기로, 공자님들을 죽인 건 카하르였으니까요."

열 배는 더 신경 쓰이는데.

후작가를 아주 박살을 내놓은 게 우리 부족이라고?

나 혹시 자다가 숨진 채 발견되거나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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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실 끝으로 걸어간 나이젤이 벽에 비치된 목검을 두 자루 집어들었다.

"목검?"

다행이다. 그래도 목검이면 크게 다치지는 않겠네.

"아! 이런 실례를.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나이젤이 갑자기 목검을 다시 내려놓더니 그 옆으로 향했다.

어 잠깐만, 뭐가 실례인데.

뭔지 모르겠지만 시정하지 마.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이내 나이젤이 장검 두 자루를 뽑아들었다. 시퍼렇게 세워진 칼날이 예리하게 빛났다.

역시 날 죽일 생각이었구나!

"카하르는 아이들조차 검을 휘두르는 전사의 민족. 목검 따위를 건네는 것은 상대를 갓난아이 취급하는 모욕이라 배웠습니다. 제 무례를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빌어먹을 카`하르. 여기서까지 내 발목을 붙잡는 거냐.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이 된 심정으로 나이젤이 내민 장검을 건네받았다.

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너만 믿는다 하샬르의 몸!

이윽고 서너 걸음 물러난 나이젤이, 두 손으로 쥔 장검을 눈앞으로 갖다 대며 기사의 예를 표했다.

...그래. 멋지긴 하네.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대충 검을 거머쥔 채 나이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도 대련이라 했으니 설마 죽기야 하겠어.

안일한 생각이었다.

"제국의 방패, 란덴부르크의 열 번째 검. 나이젤."

갑작스럽게 그녀의 기세가 일변했다.

적의를 담아 치켜뜬 눈동자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몸을 옆으로 틀며 수평으로 들어올린 검이 내 목을 겨누었다.

"ㅡ간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섬뜩한 살기가 소용돌이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패드립의 대가는 죽음으로 돌아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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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마력]

마력을 파훼하는 희소한 재능.

자신에게 간섭해오는 대부분의 마법을 무력화하고, 무력화하지 못하더라도 그 효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다만 강화마법의 효과 역시 격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본질적으론 축복의 일종에 속하며, 단련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계통의 능력이 아니다.

자질 자체는 혈통에 따라 계승되지만 유효한 수준으로 발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항마력의 최대강도는 발현과 동시에 확정되지만, 의식적으로 강도를 낮추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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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가끔 나오는 위와 같은 문구들은 원작 게임의 설명문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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