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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16화 (16/100)

제 16화

제국의 수도를 향해서

"망명 문제는 이것으로 일단락되었으니, 그럼 이제 입학 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세나."

루드비히 후작이 느긋하게 연기를 내뱉었다.

희뿌연 연기가 집무실 안에 자욱했다.

볼 때마다 마력초가 입에서 떨어지는 날이 없던데, 저 정도면 진짜 중증의 마력초 중독 아닌가.

...따지고보면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괜히 머쓱해져서 쥐고 있던 마력초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반 정도 타들어 간 마력초가 손끝에 미묘한 열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마력초라, 익숙지 않은 발음이 새삼스레 혀끝을 굴러다녔다.

볼 때마다 생각한 건데 영 어감이 별로야.

애초에 딱히 마력을 가지고 있다던가 그런 식물도 아니고.

그냥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 때문에 마법사들이 애용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마력초라 불리게 되었다고 했던가.

그러면 그냥 담배라고 부르자.

나한테는 그쪽이 훨씬 익숙한 단어니까.

"그래서, 아카데미와 특례입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자세한 건 잘 몰라. 내가 아는 건 그때 말했던 것 정도야."

게임 덕에 대충은 알고 있지만, 그게 과연 정확한 정보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설정들은 꽤나 단편적이고 편중되어 있었기에.

뭐, 애초에 설정이나 세계관 설명에 그다지 친절한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몬스터만 해도 그런 뒷설정이 붙어있었을지 어찌 알았겠어.

"...그러면 설명에 시간이 좀 걸리겠군."

"괜찮겠어? 슬슬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뭘 준비해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아 이미 시종들에게 필요할 물건들을 채비해두라 하였네. 그들이 준비를 끝마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을 테니 그동안 설명해주겠네."

서비스가 확실하네.

역시 루드비히 후작을 만난 것이, 빙의 당한 이래로 가장 큰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란덴부르크 변경백, 베렝게리아 장벽의 관리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일지 모른다는 점이 내 계획에서 가장 큰 도박이었는데.

만약 카`하르가 눈에 띄기만 해도 다짜고짜 죽이려들 난폭한 작자였다면, 별수 없이 다 포기하고 어떻게든 도주해야 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루드비히 후작은 그야말로 전 재산을 건 도박에서 잭팟이 터진 셈이었다.

...왜 이렇게 내게 호의적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공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듯 거리를 둔 말투를 유지하면서도, 은연중에 놀려먹듯이 핀잔을 주거나 가볍게 농담을 걸지를 않나.

내 쓸모를 보이라는 듯 냉철하게 이용가치를 재는 것 같지만, 은근히 이것저것 책임지고 뒷배가 되어 돌봐주고.

처신 잘하라고 경고하는 말들도 사실 경고가 아니라 충고에 가까운 말이지.

누가 보면 딸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정작 후작의 자식들은 전부 카`하르에게 죽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그건 아니겠지만.

루드비히 후작이 마력초를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의혹을 머리 한 편으로 접어두고 후작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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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하샬르 님."

마부석에 앉은 나이젤이 고삐를 내리쳤다.

두 마리 말들이 깜짝 놀라 투레질하며 서서히 마차를 끌기 시작했다.

나이젤의 말이야 후작가에서 준비한 것이니 마차 정도는 익숙할 테지만, 내가 데려온 말은 아마 마차를 끄는 것은 처음이었을 테지.

그런데도 동부 말들의 긍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묵직한 마차의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대견하게도 순순히 움직여주고 있었다.

금속을 두른 딱딱한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며 마차를 위아래로 뒤흔들었다.

란덴부르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여행용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널찍한 도로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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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마차 내부는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푹신한 쿠션이 놓여있긴 했지만, 쿠션 따위가 이 정도로 완충효과가 좋지는 않을 텐데.

후작이나 되는 가문의 마차이니 아마 내가 모르는 마법적 처리라도 해 둔 것일까.

문명의 편안함에 몸을 맡기며 느긋한 평온함을 만끽했다.

역시 마법이 좋긴 좋다. 카`하르인들은 말이나 타고 살지 이런 안락함은 평생 모를 거야.

제도까지는 열흘 조금 넘게 걸린다고 했던가.그러면 그동안 제국어 공부라도 하면 되겠지.

나이젤이 선물해줬던 책을 꺼내 읽었다.

적어도 도착 전까지 문맹 정도는 극복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렘넌트 아카데미......년 전 초대 황제 카롤루스 대제가......군사기관...인재들을 육성......제국군에 배치..."

『 아카데미의 역사와 전통』이라는 책이었었나, 내용이 더럽게 지루했다.

게다가 대부분 설정으로 알고 있었거나 후작이 말해준 내용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으니 단어들을 해석하며 제국어를 연습하기에는 딱 좋은 책이긴 했지만.

졸음을 참고 책의 내용을 중얼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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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몸은 다 회복되신 것 같습니다."

닷새 후 아침, 매일 아침마다 내 부상의 상태를 확인하던 나이젤이 완치 선언을 내렸다.

확실히 어젯밤 즈음부터 몸에 활력이 넘치는 게, 슬슬 대련하기 전과 다름없는 몸 상태로 되돌아왔다는 체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제국 검술을 배워봐도 되려나?"

안그래도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선 안 되기에, 꼼짝없이 마차에 갇혀 나흘 밤낮을 지내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야 할 일이 생겼을 경우에는, 인적 드문 곳에 마차를 세우고 나이젤이 주변을 경계하는 사이 잠시 동안 바깥 공기를 쐬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나마 밤에는 지나다니는 여행객들이 거의 없었기에 좀 더 오래 나와 있을 수 있었지만.

혹여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작은 마을이나 도시조차 방문하지 않고 노숙하며, 숙식까지 마차 내에서 해결해야 했다.

원래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여행용 마차였기에, 천막치고 노숙하던 카`하르 시절보다는 훨씬 편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덕분에 나나 나이젤이나 깔끔한 행색으로 출발했을 때와는 달리, 꽤 지저분해져 있었다.

가끔씩 인적 드문 숲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 밤 사이 시냇물 따위로 몸을 씻기는 했다.

하지만 평소엔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는 게 전부였으니.

옷은 아예 빨 엄두도 못 냈고.

...어째 빙의 당한 이후로 위생이란 단어와는 영 인연이 없어진 것 같은데.

나이젤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슬슬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땀을 흘리면 곤란하니, 일단은 밤중에 틈틈이 검술 이론과 기본적인 자세들만을 가볍게 연습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흐음. 그래, 그거 좋네. 그렇게 하자. 나 검술은 전혀 모르니까. 기본부터 배우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겠지."

아카데미에도 아마 검술 강의 정도야 있을 것 같긴 한데, 기본을 알고 가는 것과 아예 모르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일 테니까.

"검술을 모른다 하셨습니까? 그러면 그때 그 싸움은 대체...?"

나이젤이 조금 놀란 듯 말을 흐렸다.

하긴, 그때 내가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게 검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겠지.

그런데 그건 정말로 검술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본능적인 반응속도에 의지해 피할 건 피하고, 틈이 보이면 공격하며 힘과 속도로 맹렬하게 밀어붙이는 전투 방법이지.

검술이 아니라 싸움법. 조금 격식 있게 말하자면 무예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때 손에 들고 있던 것이 검이기 때문에 검술로 보였을 뿐,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더라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무기가 없었다면 격투술 정도로 보였게지.

"그건 그냥 본능과 신체능력에 의존해 몸 가는 대로 싸운 거야. 검 자체는 제대로 쥐는 법조차 모르는걸.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녁엔 검을 제대로 쥐는 법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부탁해."

나이젤을 마부석으로 돌려보낸 후, 다시 책을 꺼내 읽었다.

"특례입학 제도가 확립된 이후, 이들 문화의 상대성을 존중해야 하는지 논의가 계속되었다......제국은 고심 끝에 그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기로...그렇기에 특례입학생들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그들 종족 고유의 복식을 유지하며..."

두통을 참아가며 통역 마법이 걸린 목걸이를 계속 사용해온 덕분인지, 어느덧 제국어가 그럭저럭 익숙해져 있었다.

통역 마법의 효과로 뇌리에 주입된 단어들이, 마법이 해제된 뒤에도 잔재처럼 남아 학습효율을 높여준다고 했던가.

문맹을 단 보름 만에 원어민처럼 바꾸어놓는 학습법.

그야말로 마법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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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밤마다 나이젤에게 검술에 대해 배웠다.

나이젤이 말한 대로 땀을 많이 흘리면 곤란하니만큼, 이론 부분과 자세 교정 정도만 배우고 연습은 나중으로 미루어졌지만.

"예. 기본적으론 그렇게 쥐시면 됩니다. 만약 적의 갑옷을 정확히 찌르려 한다면 한 손으로 칼날 부분을 쥐고..."

검을 쥐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상황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바꿔 쥘 필요가 있다며, 나이젤이 각 파지법을 쓸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검은 그렇게 휘두르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휘두르니까 얼마 못 가 부러지는 겁니다!"

검을 휘두르고 찌르는 기본적인 자세들을 배웠다.

비틀림 없는 깔끔한 선을 그리듯, 검의 경로와 칼날의 기울임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고 한다.

내 경우엔 힘만 믿고 무작정 휘둘러 검로가 어긋나다 보니, 검신에 무리한 힘이 가해져 쉽게 부러지는 것이라고.

"제국 검술의 요체는 크로스가드, 그러니까 날밑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겁니다. 저번에 보여 드렸듯이..."

제국 검술의 기본 원리에 대해 배웠다.

지렛대의 원리라고 하던가, 방어할 때는 칼자루에 가까운 날밑 쪽으로 상대의 검 끝 부분을 받아내라 하였다.

날밑과 칼자루 역시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 왼팔이나 머리를 칼자루 끝으로 노려댔었지.

"검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이용한 체술 역시 중요합니다. 왼팔을 방어와 타격에 사용하시는 것 같던데, 보조로 쓸 무기가 있으면 유용할 겁니다. 가령 단검이라던가..."

지근거리에서 검 대신 팔다리로 공격하는 체술의 기본을 배웠다.

서릿발은 평소엔 함부로 쓰기 애매해 보이는 물건이니, 확실히 단검 한 자루를 마련해두면 편할 것 같았다.

"제국 검술은 기본적으로 대인용 검술입니다. 사람이 아닌 적을 상대하려면......그 경우엔 그냥 본래 방식대로 싸우시면 됩니다."

사람이 아닌 적에겐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공격을 흘려내려 해 봐야 힘의 차이가 워낙 커 한계가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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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 후, 마침내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세 겹의 성벽이, 드리운 저녁노을에 물들어 적금색으로 빛나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었다.

칼 로스 제국의 수도, 엑스라샤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왔다...이제 진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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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기 전 까지가 너무 길다 보니,

사실 그동안 아카데미물이라는 정체성이 희박한 내용이었죠.

그러다보니 정작 아카데미에 도착한 뒤,

이전과는 조금 바뀔 분위기가 그동안 제 소설을 읽어주시던 분들께도 흡족하게 다가올 수 있을지

그 부분이 조금 고민이 되긴 하네요.

지금까지는 대역 느낌을 반 스푼 섞은 설득물? 비슷한 작품이었지만

앞으론는 보다 일반적인 판타지물에 가까워질 듯 합니다.

어찌보면 이것도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겠네요.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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