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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20화 (20/100)

제 20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특례입학생은 그 구성원의 특성상, 일반 학생들과 전혀 다른 취급과 대우를 받는다.

일반 입학생들의 경우, 재능있는 제국 국민을 선발하여 우수한 전사로 육성한 뒤, 선후배 관계나 비싼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여 졸업 후 제국군으로 오도록 유도해 묶어버릴 수 있었다.

평민이라도 졸업만 하면 제국군 기사에 준하는 자격을 얻게 될 수 있는 만큼, 재학생들의 학습의욕 역시 매우 높은 편이었다.

반면, 특례입학생의 경우 자원해서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제국의 질서에 복종하겠다는 의미를 가진 일종의 볼모로서 보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들은 딱히 제국군 등을 목표로 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러니 굳이 강의를 들을 동기조차 마땅히 없었다.

그렇다고 학비로 묶어버리자니, 특례입학생들은 자국에서 밀려났다고는 하나 그래도 보통은 그 나라의 왕족에 준하는 핵심인물.

그런 인물이 거지꼴로 다닌다면 국가적 망신이나 다름없다보니, 각국에서 체면상 보내주는 생활비나 학비 덕분에 금전적 곤란함을 겪을 리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이들 특례생들은 가끔씩 적당히 흥미가 가는 강의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전부요, 보통은 아카데미 어딘가에서 멋대로 시간을 때우는 불량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임 상에서는 몇 턴에 한 번씩만 등장하고, 그때를 노려 호감을 쌓아놓지 못하면 영영 동료로 합류하지 않는 구조였지.

아예 캐릭터 대사나 설정상으로만 언급되는 캐릭터도 있었으니까.

그런 주제에, 각국의 왕족 및 대귀족의 자제들이다 보니 제국 입장에서 홀대할 수도 없었다.

제국의 귀족들이나 황족들이야 황제의 명에 복종하겠지만, 이들은 타국의 귀족들이니만큼 홀대한다면 그들의 본국에서 그걸 명분 삼아 제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해올 수도 있었기에.

그렇기에 제국은 이들 특례입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었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 자국의 복장을 입도록 허락해주었고, 시종 겸 호위를 동반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위한 개인실까지 제공해주었다.

어차피 몇 명 안 되는 숫자이니, 그냥 해달라는 걸 다 들어주고 한 곳에 몰아놓자는 생각에서였다.

모든 아카데미생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특례입학생들은 다른 생도들보다 더욱 평등했다.

...일반 재학생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자신들은 최소 2인 1실, 최대 4인 1실의 좁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기숙사 밖에선 항상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 학비나 진로 문제 때문에 성적에도 목멜 수밖에 없어서 빡빡한 아카데미 강의를 온 힘을 다해 수강해야 하고.

그런 그들이 보기에, 이래저래 유유자적하게 놀기만 하는데도 커다란 개인실에 자유로운 복장까지 허락되는 특례입학생은, 명백한 차별대우의 증거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레 이 두 계층 사이엔 상당한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또한 제국이 일부러 특례입학생들에게 차별적 혜택을 제공해주는 이유 중 하나였다.

특례입학생이라는 공통의 적이 생긴 덕분에, 일반 생도들은 서로의 신분이 다른데도 잘 융화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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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관람석으로 걸어가며 그들의 모습을 흝어보았다.

세 사람 다 서로에겐 별 관심이 없는지 각자 떨어져 앉아 있었다.

대머리 용인은 비늘이 잔뜩 돋은 팔로 팔짱을 낀 채, 연신 하품하며 나른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이나 팔에 잔뜩 돋아있는 비늘이, 그가 순혈에 가까운 고위 용인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간 한가운데에 두 줄로 돋은 네 개의 붉은 비늘이 돋보였다.

장식 하나 없이 단정한 회색 승복이, 터질 듯한 근육으로 부풀어 있었다.

칼릭스 테르반이었던가.

제국 북서부의 용왕국, 진에서 찾아온 용인이라는 설정이었지.

2학년 캐릭터였기에 파티로 받을 수 없어 싸우는 모습은 본 적 없었지만.

아무래도 신입생 중 쓸만한 녀석이 있나 확인하러 왔나 본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지루한 눈빛이었다.

용인의 맞은편에는 난쟁이 여자가 관람석에 앉아 땅에 닿지 않는 발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난쟁이답게 키는 사람의 명치 정도밖에 오지 않았지만, 탄탄한 갈색 피부에선 건강미가 흘러넘쳤다.

옆머리와 뒷머리를 정수리 뒤쪽으로 모아 땋아내린 회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거렸고, 듬직함과 성숙함이 공존하는 얼굴에선 자신감과 장난기가 배어나와 독특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람석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반짝였다.

등에는 복잡한 형태의 기계장치를 메고 있었다.

어깨부터 시작해 팔 일부와 등 전체를 뒤덮는 복잡한 구조의 금속 가방.

톱니바퀴와 실린더가 쉴 새 없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철컥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짤막한 다리 역시 비슷한 느낌의 금속제 기계 부츠를 신고 있었다.

아샤.

난쟁이들의 공화국, 힘멜 출신의 신입생이었다.

게임상에선 도적 따위의 인간형 적들을 상대할 시, 유독 크리티컬 확률이 높아 애용되는 캐릭터였는데.

관중석 제일 뒤쪽엔 은발의 여자 한 명이 턱을 괸 채 무심하게 시험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례입학생임에도 일반 재학생과 다르지 않은 아카데미 제복 위에, 고급스러운 검은색 모피 코트 하나만을 걸치고 있는 서부인.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적갈색 눈이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캐릭터.

북부의 대공국, 페일룬의 공녀. 프리데 반 페일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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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관람석에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세 사람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 세 쌍이 나와 나이젤을 주시했다.

음. 어떻게 하지? 일단 인사라도 해야 하겠는데, 뭐라고 하지?

안녕? 아니, 이건 좀 너무 격식 없고 친한 척 하는 거 같고, 내 이미지에도 맞지 않아.

그러면 차라리, 뭘 보냐고 거칠게 나가는 편이 낫나?

그래도 같은 특례입학생끼리는 좀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칼릭스가 비어있는 좌석을 가리키며 고갯짓했다.

칼릭스와 아샤의 한가운데. 프리데의 앞쪽인 빈 좌석이었다.

일단 여기 앉아보라 이건가. 완전 삼면 포위인 셈이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그대로 가 자리에 앉았다. 나이젤이 내 바로 뒤쪽 자리에 시립했다.

"나이젤, 거기 서 있지 말고 너도 일단 앉아."

"흠...위협적인 요소는 없는 듯 하니 괜찮겠지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혼자만 서 있는 모습이 보기 민망하여 그냥 앉으라고 명령했다.

나이젤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위협적인 요소라면 내 오른쪽에 떡하니 있긴 한데.

반인반룡 근육 대머리가.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봤다가, 칼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긴 금빛 눈동자가 묘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흠...!"

내 얼굴과 갑옷을 훑어보던 칼릭스가 묘하게 흡족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늘 달린 승모근이 머리의 움직임을 따라 불끈거렸다.

뭔데, 뭐가 흠인데.

"신입생 소저분이로군.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소?"

칼릭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르렁대는 듯한 탁한 목소리였으나, 상상 이상으로 정중한 말투였다.

"...하샬르. 하샬르 아이샨기오르다."

"아이샨기오르...아아! 그 동부 분들이로군. 인간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들었소. 그럼, 소저가 바로 그 카`하르의 왕녀이시오? 소문이 자자하시던데."

칼릭스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비늘 돋은 굴강한 팔 끝, 팔꿈치 부위에 날카로운 뿔이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악수하자는 뜻이겠지...?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 마주 잡았다.

"소승은 진에서 찾아온 칼릭스 테르반이라 하오. 아카데미에 온 지는 올해로 2 년째라오. 아무튼 반갑소. 아이샨기오르 공이라 부르면 되겠소?"

내 손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칼릭스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찌나 힘이 강한 것인지, 어깨까지 위아래로 딸려갈 뻔했다.

"그냥 하샬르라 불러.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스스럼없이 구는걸. 나에 대해 들어봤다 하지 않았어?"

"다 같은 특례입학생 아니겠소? 일반 생도들은 우리를 탐탁잖아하는 편이니, 우리끼리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오."

칼릭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허허 웃어댔다.

호의 넘치는 태도가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손을 놓은 칼릭스가 뒤이어 내 미늘 갑옷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그 비늘. 용을 닮고자 하는 훌륭한 자세이니, 우리와 같소. 또한, 이곳에 왔다는 것은 타고난 분노를 다스리고 평온을 추구하겠다는 것. 이 또한 우리와 같소. 우리를 닮은 점이 둘씩이나 있으니 그대는 우리 동족이나 마찬가지라오. 용의 후예로서 어찌 호의를 감출 수 있겠소?"

그러니까 내 갑옷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네.

맥이 탁 풀렸다.

확실히, 용인들이 용을 숭배하며 용을 닮고자 수행한다는 설정은 본 적 있었지만. 그게 이런 의미였나.

"...일단 말해두겠는데, 나에 대한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야.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네?"

"어차피 인간 사이의 일이잖소?"

칼릭스가 오히려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인간들은 원래 곧잘 서로를 죽이며 은원을 맺더군. 허나 용인인 소승이 신경 쓸 바는 아니라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구나.

"다만, 사람을 먹지는 않는 편이 좋겠소. 고기는 심화를 돋구는 법이니, 채식을 하는 편이 좋다오."

"......그건 헛소문이야."

내가 사람을 뜯어먹는다는 헛소문은 진짜 대체 누가 퍼트린 거야.

비난을 할 거라면 사실만 가지고 비난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군! 하긴, 동족 포식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긴 하지. 그렇다면 되었소. 하샬르 공. 향후, 잘 부탁드리오."

칼릭스가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도드라져 있어 위협적으로 보이는 미소였지만, 그 나름대로 호의를 표하는 표정이겠지.

"그래. 뭐, 잘 부탁해."

생각보다 시작이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흥."

등 뒤쪽에서 날카로운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칼릭스 당신은 그게 문제야. 매사를 너무 좋게 보는 거. 아인종을 인간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짜증어린 경멸이 한가득 담겨있는,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등 뒤쪽에 앉아있는 북부의 공녀, 프리데 반 페일룬을 쳐다보았다.

냉철해보이던 미간이 금이 간 얼음처럼 혐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뭘 봐, 야만족."

모욕적이기까지 한 어조였다.

하기야 북부는 항상 수인들의 습격에 전쟁을 치르고 있다 했으니까, 수인이나 마찬가지인 짓들을 저지르는 카`하르도 곱게 보이지 않기는 하겠지.

그런데 그건 내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부분이고.

역시 일단 들이받아야 하려나?

"넌 뭐냐? 입은 꼬락서니는 나랑 별 차이도 없구만."

그녀의 옷차림을 비꼬아 이죽거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고급스러움이 다르기야 하지만, 털가죽 어깨 망토나 모피 코트나 본질적으론 별 차이 없잖아?

"입 조심해 야만족. 북부였다면 벌써 창자를 갈라버렸을 테니."

"아, 그래? 동부였으면 벌써 말 뒤쪽에 매달고 내달렸을 텐데 말이야."

분위기가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나이젤이 떨리는 눈으로 나와 프리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명목상 내 호위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후작가의 기사인 만큼, 내가 북부 공국의 공녀와 유혈사태를 벌이면 나이젤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지긴 하겠지.

망설이던 나이젤이 결국 프리데 쪽을 바라보며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난다면 결국 내 편을 들겠다는 건가.

그동안 친근하게 대한 보람이 있네.

왼쪽에 앉아 있던 난쟁이, 아샤는 어느새 흥미진진한 눈으로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며 빙글거리고 있었다.

"허허. 진정하시오, 하샬르 공. 프리데 공도 그만두고. 오늘은 축제일이지 않소? 불필요한 소란은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된다오."

칼릭스가 난처한 듯 웃으며 우리 둘을 말렸다.

소탈한 태도였지만, 꿈틀대는 대흉근은 전혀 소탈해 보이지 않았다.

나와 프리데는 사람의 머리통만 한 그 근육을 흘끗 쳐다보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서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안 싸우게요?"

한 차례 나지막하게 질문한 아샤는 우리가 대답하지 않자 흥미를 잃은 듯,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경기장 쪽을 쳐다보았다.

입학시험이 계속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이번화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이 보여주시는 꾸준한 관심이 제겐 가장 큰 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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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은 캐릭터들이 새로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좀 가벼워졌네요.

스팀펑크 드워프 여성, 하오체를 쓰는 근육 빡빡 용인, 성격 까칠한 북부대공녀까지.

원작이 게임이라는 설정이었으니, 캐릭터들 역시 개성적인 부분들이 도드라져야 하겠죠!

특례입학생들은 대체로 이런 분위기입니다. 다들 마이페이스죠.

모든 학생들이 주인공을 적대시하기만 하면 그냥 피폐물에 가까워질 테니까요.

조금 달라진 글 분위기를 독자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솔직히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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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여자에게 수염을 다는 것이 옳을까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수염 난 여자가 작중 주요인물로 계속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본 결과, 결국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캐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는건 그다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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