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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34화 (34/100)

제 34화

역시 판타지라면 던전 한 번쯤은 들어가 봐야겠지?

모험가.

어중간한 무력, 애매한 소속감, 흐릿한 윤리의식을 가진 직업전사들을 칭하는 이름이다.

군에 소속되지 않았으니 병사가 아니요, 기사단에 소속되지 않았으니 기사조차 아닌.

제국이 언제 불순분자가 될지 모르는 이 이단아들을 용인한 것은, 제국의 자체의 힘만으로는 치안유지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군의 절반은 북부전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대부분 국경선과 수도 방위에 동원된다.

그렇기에, 정작 제국 영토 내에서 간간이 발생하는 소요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제국 역시 렘넌트 아카데미 등을 통하여 예비기사들을 양성해, 제국 내부의 치안 문제를 대처하고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많은 숫자는 아닌 데다가, 사소한 치안 문제까지 투입하기엔 과잉전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제국은 이 '모험가'들을 제국이 관리하는 길드에 소속시켜, 자율행동을 보장해주는 대신 사소한 치안 문제를 일임하였다.

말하자면 제국기사단의 하청의 하청이라고나 할까.

좋게 포장해 모험가라 불러줄 뿐, 그 실체는 기껏해야 준기사 내지 최하위 기사가 한계인 용역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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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정도 의뢰가 괜찮을 것 같군요."

길드에 도착한 나이젤이 한동안 접수원과 대화하더니, C급 용병패와 의뢰서 한 장을 가지고 왔다.

충분한 실적과 신용도가 증명되지 않은 이상,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은 C급까지라고.

"어디 줘 봐......헤벨의 숲에서 발견된 던전 토벌? 헤벨이 어디야?"

"제도에서 이틀쯤 마차를 달리면 나오는 남작령입니다. 이번에 새로 숲을 개척하던 중 던전으로 의심되는 지하건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던전이라...조사가 아니라 토벌이라는 건, 이미 조사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겠네."

의뢰서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헤벨 영지에서 발견된 던전 토벌.

의뢰주 : 헤벨 남작.

권장등급 : B3

의뢰내용 : 영지 서쪽 숲, 지하던전을 조사하고 출현하는 모든 적성체를 토벌할 것.

특이사항 : 조사 중 남작령 소속 기사 1인 사망. 트롤 확인. 소형 던전으로 추정.

보수 : 선수금 2골드, 토벌 개체당 추가보상 지급. 던전 부산물은 전부 헤벨 남작가의 소유.

"트롤?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기사가 죽을 정도인가?"

"같은 기사라도 각자 실력엔 꽤 큰 격차가 있으니까요. 최하위 수준이라면 트롤에게 죽을 수도 있긴 합니다."

그 말은 내가 당할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네.

하긴, 내가 못 이길 정도로 강한 몬스터라면 모험가 길드에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단 쪽에서 제대로 된 병력을 파견했겠지.

"이 B3이라는 건 뭐야?"

"B급 용병. 즉, 기사급 셋 이상이 모여 수행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C급인 나 혼자선 의뢰 수락 자체를 못 하는 거 아니야?"

나 같아도 B급 셋이 필요한 의뢰를 C급 신참 하나가 해 보겠다고 나서면 그냥 무시할 것 같은데.

"제가 보증했으니 문제없습니다. 도와드릴 생각은 없지만, 저쪽에서야 그 사실을 모르니까요."

나이젤이 자신의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하긴, 루드비히 후작가의 열 번째 검께서 여기 계시는데. 오히려 과잉전력이겠지.

"좋아, 이걸로 하자. 그래서, 이제 뭘 준비하면 돼?"

"일반적인 모험가들이라면 적당한 동업자들과 노숙할 도구들을 준비할 테지만...저희의 경우엔 길잡이 하나면 충분하겠군요."

"길잡이?"

그거 항상 무언가를 숨기고 다니는 녀석들 아닌가? 힘을 숨기든 악의를 숨기든.

"보급품을 준비하고, 던전까지 안내하고, 지도를 작성하고, 짐을 옮기고...뭐 그런 잡일들을 도맡는 자들입니다. 무력은 대단치 않지만요."

한마디로 짐꾼 겸 수색꾼이라 이거네.

강한 파티에 적당히 붙어 그 떡고물을 얻어가는.

"아하...그렇다면 여자 길잡이가 좋겠는데."

이건 무조건 여자로 받아야 한다.

남자 짐꾼이라니, 여자에겐 흑인 유학생만큼이나 해로운 천재지변 같은 존재잖아.

"예. 알아보겠습니다. 소형 던전에 트롤이라면 길어도 이틀이면 충분할 테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런 부분까지 일임해도 될 정도면, 던전에서도 그냥 도와줘도 되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불편하고 번거로운 사안들은 대부분 해결해주겠다, 그 대신 전투경험만은 충실히 쌓아둬라 이건가.

아무래도 루드비히 후작은 내가 강해지길 바라는 모양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것까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동안은, 계속 내 뒷배가 되어주겠지.

나는 나이젤이 접수원에게 길잡이를 알선해달라고 대화하는 동안, 연기를 내뱉으며 길드 내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기 때문인지 그다지 많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제도에 위치한 본부 건물이라는 건지, 건물 자체는 꽤 널찍하고 깔끔했다.

내부는 마치 작은 은행을 연상시켰다.

벽 한쪽의 접수창구에 접수원 다섯이 나란히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있고, 그 바로 옆의 벽면에는 의뢰서들이 붙어있는 게시판이 걸려 있었다.

건물 안쪽엔 대여섯 개의 테이블과 의자, 낡은 소파가 놓여 있다.

너댓명의 모험가들이 의자에 걸터앉은 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내 쪽을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굳이 카`하르가 왜 여기에 있느냐며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은 없었다.

오히려 마주 노려봐주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우스웠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찾아온 데다가, 곁에는 실력 있어 보이는 여기사를 대동하고 왔기 때문이려나.

앞뒤 안 가리고 들이댈 얼간이들을 연상했는데, 의외로 눈치와 판단력이 있는 놈들이었다.

하긴 그런 눈치 없는 놈들이라면 모험가 짓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일찌감치 객사하거나 하겠지.

이야기를 마친 나이젤이 여자 하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하샬르 님. 길잡이를 데려왔습니다. 미네아 양이라 합니다. 미네아 양, 이분이 하샬르 님이십니다."

"어...안녕하세요...? D급 모험가 미네아입니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내 눈치를 신경 쓰는 듯, 상당히 주눅이 들어 보였다.

뭐 할 일만 잘하면 되겠지. 많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하샬르다. 잘 부탁하지."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아 악수하는 손이 호달달달 떨렸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내 정체를 모르는 듯한 사람들도 나만 보면 덜덜 떠는 것 같은데.

수면에 비친 모습이나 거울로 봤을 땐 눈매가 좀 사나워서 그렇지 그렇게까지 무서운 인상은 아니었는데.

적당히 인사한 뒤 무장을 챙기고 마차에 올라탔다.

미네아가 마차를 몰겠다고 자청했기에, 나이젤과 같이 마차 안쪽에 탔다.

저러다가 갑자기 습격당하거나 하면 위험할 텐데.

그래도 나랑 단둘이 마차 안에서 지내게 했다가는 울어버릴 듯한 모습이라 그냥 동의해줬다.

"그럼, 오가는 동안 낮에는 던전과 몬스터에 대해 제가 아는 지식들을 전해드리고, 저녁에는 검술 대련을 계속하겠습니다. 이제 카하르도 제국에 받아들여졌으니, 모습을 보여도 큰 문제는 없겠지요."

마차가 출발하자, 나와 마주앉은 나이젤이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해주었다.

음. 최소 닷새간은 강의를 듣지 못하겠지만, 나이젤의 수업이 하향 평준화 상태인 아카데미의 강의보다 오히려 나은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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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오후.

"던전에서 주의할 점은 크게 네 가지. 시야 확보, 함정, 기습, 위치파악입니다. 정찰 담당자의 책임이 막중하지요."

던전 탐색에 필요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해 받았다.

보통은 정찰에 특화된 인원을 모집해 해결하는 법이지만, 내 경우엔 감각이 엄청나게 뛰어난 만큼 혼자서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첫날 저녁.

나이젤과 함께 검술을 수련했다. 미네아는 옆에서 부지런히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했다.

"본능에 의존하는 전투방식 자체는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허나, 본능은 결국 본능일 뿐, 익숙해지면 오히려 대처하기 용이해집니다."

내 전투방식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처음에야 그 저돌성과 공격력에 당황하겠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결국 같은 상황에 같은 반응이 돌아오기에 간파하기 쉽다고 한다.

결국 그때 내 몸이 보여줬던 움직임을, 멀쩡한 정신상태로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본능에 몸을 맡기되,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시면 될 겁니다...다만 지금 대련으로 할 만한 일은 아니겠군요."

그야, 그러다가는 여기서 또 엄청나게 날뛰게 될 테니까.

나이젤도 그 사실을 직감한 것인지 차선책을 택했다.

"일단은 본능에 의존하지 않는 지금 전투방식의 수준을 높이는 쪽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두 방식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본능을 제어하는 일도 아마 좀 더 능숙해지겠지요."

일단은 문제점만 알아두기로 하고, 밤새도록 나이젤과 대련하며 검술을 연마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이 육신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이튿날 오전

"트롤은 회색 피부에 2~3m 정도 되는 덩치를 지닌 괴물입니다. 덩치에 걸맞게 인간보다 훨씬 강한-"

나이젤이 말을 하다 말고 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일반적인 인간들보다 훨씬 강한 근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내 근력은 트롤급 이상이라는 건가.

"회복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흘린 피 자체를 보충하지는 못하니, 많은 피를 흘리게 하거나 불로 태워 사냥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법입니다. 또, 뇌전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편이니, 마법사가 있다면 상대하기 무척 편해지는 편이지요."

"맞지 않고 피하면서 빈혈이 올 때까지 갈기갈기 찢으면 된다 이거지?"

"...예. 그러시면 됩니다."

간단하네.

"간혹 트롤 영역에서 오거가 같이 출몰하는 경우가 있는데...이 경우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냥 트롤보다 좀 더 신체능력이 강한 대신, 회복력은 약한 괴물이라 여기시면 됩니다."

"설명이 너무 대충대충이지 않아?"

"하샬르님 실력에 오거나 트롤에게 당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수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과거에 비해 몰락할대로 몰락한 종족들이니까요."

하긴, 원래부터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초반부 잡몹이긴 했지.

수인이나 마물, 다른 이종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약한 적들이었으니까.

저녁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이젤과 대련하며 검술을 수련했다.

평소에 연습하던 기교 위주의 제국 검술이 아닌, 힘과 속도에 의존하며 사람이 아닌 적과 싸우는 방법으로.

다음날 아침, 헤벨 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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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주성으로 찾아가 모험가 길드에 한 의뢰를 받고 찾아왔다고 전해주었다.

영주성의 집사는 기껏 찾아온 것이 C급 모험가라는 정보를 전해 듣고는 시큰둥한 태도였으나, 직접 우리의 모습을 본 뒤로는 꽤 공손해졌다.

그래, 카`하르인과 여기사의 조합이라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겠지.

내가 누군지까지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겉으로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워 보였는지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이었다.

집사로부터 던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약 두 시간 거리이고, 지하유적으로 보이는 소규모의 폐허 안에 대여섯 마리의 트롤들만이 배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지의 기사가 목숨을 잃은 것도 트롤들의 협공 때문이었다고.

"트롤 여섯이라. 일제히 덤벼오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가급적 각개격파를 노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이젤이 담담히 한마디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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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입구는 싱크홀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한창 개간 중이었는지 나무가 뽑혀나가고 흙이 파헤쳐져 진한 속살을 드러낸 가운데, 직경 3m쯤 되어 보이는 검은 구멍이 땅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꽤 깊은 곳까지 뚫려 있는지, 내 눈으로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런 식이라면 빠져나오기 힘드니 많은 숫자를 투입하기도 어려웠겠네.

그래서 소수 정예로 던전을 정리해줄 사람을 찾던 거고.

구멍 주위엔 나무기둥에 밧줄을 엮은 간이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구멍 옆에는 아래로 향하는 줄사다리가 늘어뜨려져 있었다.

아마 구멍 옆에 서서 감시하고 있는 병사들이 설치해놓은 거겠지.

문득, 불안감과 비슷한 의구심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내려간 다음에, 저들이 저 줄사다리를 끊거나 하면 꼼짝없이 고립되는 거 아닌가?

...아니, 지나친 생각이겠지.

영주는 우리가 누군지도 모를 테니 딱히 원한도 없을 텐데,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

그리고 만약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까짓 거 벽에 손가락을 박아가며 기어 올라가면 그만이다.

병사들에게 영주의 의뢰서를 확인받고, 줄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줄사다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였다.

솟아오르는 바람은 썩은 흙냄새와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오늘도 안녕하세요.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네요.

다들 식사 맛있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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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이 너무 유능해서 아카데미 1학년 강의가 쓸모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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