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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47화 (47/100)

제 47화

D-70...?

열흘이 지나서야, 전투가 가능할 수준까지 컨디션이 돌아왔다.

몸을 회복하는 것보다 갑옷이 수리되는 것이 더 빨랐다.

아카데미의 치유사제에게 신세 질 수는 없었다.

고작 그 정도 실습에서 내가 이런 부상을 입을 리 없다는 사실은,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치유사제를 불렀다가는 그 자체가 내가 무언가 저질렀다는 증거로 남아버린다.

갑옷 역시 나이젤을 시켜서 아카데미가 아니라 외부 대장장이에게 수리를 부탁했다.

...그 때문에 수리비가 좀 많이 들었고.

아샤가 만들어준다고 했던 정화장치는 나중에 부탁해야겠다.

지금은 냄새를 막아줄 장비 따위보다 무구 쪽이 더 급했으니.

원래는 성녀 후보인 레이시에게 치유를 부탁해보려고 했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교단의 구호소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레이시도 그렇고, 에비앙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아예 특별관에서 지내는 모습을 볼 수가 없네.

나는 그동안 내 방에서 지내며, 앞으로 두 달 조금 넘게 남은 다음 싸움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학기 3개월 차, 중간시험에서 벌어질 대규모 습격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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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하샬르? 강의에도 안 나오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길래, 걱정되어서 찾아왔어요."

방에서 요양하던 중간에 한 번, 아샤가 내 방에 찾아왔었다.

"그냥 좀 쉬느라. 아샤 넌 별일 없었고?"

"음, 하샬르와 크누트의 싸움을 구경 못 해서 아쉬운 것 말고는 딱히 없네요."

아샤가 슬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눈치채긴 했나.

하긴, 아샤는 크누트가 날 적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 역시 크누트를 꽤 경계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런 상황에 크누트는 죽고 난 방에 틀어박혀 침대에 앉아있으면,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 가긴 했을 테지.

특별관 학생들이 강의에 불참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샤는 나랑 같이 다녔으니까.

내가 그래도 몇몇 강의는 가급적 들어두려 한다는 것도 모를 리 없지.

아마 아샤 말고도 눈치 빠른 녀석들은 대충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증거가 없으니 굳이 추궁하지 않을 뿐이지. 제국도 그렇고.

순수한 제국인도 아니고, 고작 데인인 신입생 하나 때문에 나중에 써먹을 카`하르의 주요인물과 마찰을 빚을 생각은 없을 테니까.

애초에, 제국 입장에선 크누트 역시 상당히 수상한 인물이고.

입학식때는 딱 데미안급 능력만을 보여주었던 인물이, 나와 사투를 벌이며 그 정도로 싸울 수 있었다는 건, 결국 제국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 태반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니.

"일단 그거,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진 말고."

"그거야 당연하죠! 애초에 그런 잡담을 할 정도로 친한 사람도 딱히 없어요."

하긴 얘도 자기 연구에 바빠서 그다지 성실하게 출석하지는 않으니까.

대련수업의 첫인상이 워낙 강렬하기도 했고.

특례생들은 친구가 별로 없는 게 특징인가.

"그러면 됐어. 그것보다, 그. 정화장치는 벌써 만들었어?"

"아뇨? 아직 설계만 해 두었어요. 슬슬 만들어 볼까요?"

다행이네. 벌써 만들어 두었다면 곤란했는데.

설계만 해 둔 상태라면 그건 조금 미루어도 되겠지.

"아니, 그러면 그것보다 다른 걸 좀 부탁하고 싶은데. 검이라던가, 뭐 그런 거. 가능할까?"

"검이요? 상관은 없는데...검이라면 좋은 걸 하나 가지고 있잖아요? 진은 냄새가 가득 나는 걸로요."

아샤가 아이멜라의 검을 슬쩍 가리켰다.

이거 역시 진은으로 만든 검이었나. 어쩐지 성능이 엄청나게 좋더라니.

잘됐네. 진은이라면 마법사를 상대할 때도 편하겠고, 사령종의 마물들에게도 공격이 잘 통하겠지.

진은은 마력을 끊어내는 금속이니까.

"이게 좋은 검은 맞긴 한데...너무 귀하다 보니까, 오히려 아무 때나 꺼내기 좀 까다로워서. 그렇다고 그냥 강철 검을 쓰자니 열 번 휘두르면 부서지고."

"흠...힘을 못 견디고 부러지는 게 문제라면, 흑철 합금으로 한 자루 만들면 되긴 하겠네요. 날은 잘 무뎌지지만 쉽게 부러지진 않을 거에요."

흑철이라. 크누트가 썼던 그 검은색 무기들도 아마 흑철이었겠지.

"그러면 그거랑, 이런 건틀릿도 만들어줄 수 있어?"

서릿발의 모양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진짜 서릿발은 목숨을 내다 버리는 무기나 다름없으니 도무지 쓸 수가 없다.

나중에 저주를 해결할 방법이라도 찾아봐야지.

성녀 후보랑 친해지고 나면 물어보기라도 할까.

"네. 흑철 장검 하나랑, 공격용 건틀릿이라. 20골드에 해 드릴게요."

"20골드인가......그래, 부탁해."

떨리는 손으로 금화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 많던 금화들이 어느새 거의 다 사라졌다.

확실히 엄청나게 할인해준 가격이긴 한데 여전히 비싸...

그래도, 한동안 돈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20골드 잘 받았어요! 모레까지 만들어 줄게요!"

아샤가 희희낙락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틀 후 받아본 장비들은, 20골드가 아깝지 않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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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얼추 회복한 뒤, 오랜만에 강의에 참석했다.

원래라면 패스했을 신학 강의였지만, 조원들과 데미안의 얼굴도 볼 겸 해서.

강의실의 분위기는 조금 변해 있었다.

기대감에 가득 차 웅성이던 이전의 모습은 흐려졌고, 다들 다소 침울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강의실 좌석들 역시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하긴, 14명이 사라졌다는 말은 결국 열 명 중 하나는 죽었다는 뜻이니까.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 넓은 숲을 혼자 헤집고 다니기도 무리였고, 여기서 죽을 사람은 다음 전투를 절대 버티지 못할 테니까.

살고 싶다면 그들 역시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그래도 4인 1조로 돌아다녔으니 희생자가 나와도 두셋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크누트를 제하더라도 열셋이나 죽을 줄이야.

"아, 하샬르 님! 안녕하세요!"

"그래. 너도 그동안 잘 지냈나 보네."

날 발견한 라나가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래도 얘는 그렇게까지 침울한 기색이 보이지는 않네. 다행히도.

한스는 자기 자리에 앉은 채, 내 쪽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나도 어깨만 한번 으쓱여 답해준 뒤 데미안과 밀리아 쪽으로 향했다.

"열흘이라. 생각보다 고생했나 봐?"

오필리아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이녀석도 눈치챘구나.

"글쎄."

짧게 대답하고 지나쳤다.

지금 시점의 오필리아와 깊게 엮이는 건 좋지 않으니까.

속으로 독기를 그득그득 쌓아둔 과부거미 같은 여자이니.

가까워질수록 이용당할 확률만 높아질 상대였다.

이전의 제안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이미 엮이긴 한 거지만...그 정도는 허용범위겠지. 일단은.

돌아선 등 뒤로, 오필리아가 조용히 웃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밀리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서 와, 하샬르. 열흘만이네."

그녀 역시, 이제는 내가 옆에 앉아도 놀라는 일 없이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인사해왔다.

내가 다쳤던 일을 밝히기 꺼린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부상이나 안부에 대해선 물어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라나도 그랬지. 다들 눈치가 좋네.

"그래. 간만이네. 밀리아, 그리고 데미안."

"한동안 바빴었나 봐? 아무튼, 밀리아와 실습 동안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

데미안이 상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많이 친해지긴 했지.

...친해진 게 맞겠지?

"응. 데미안 말대로 이야기해 봤으니까. 같이 지내기도 했고."

밀리아가 살짝 고개 숙이며 미소 지었다.

딱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첫날에는 불성실하게 굴고, 위협하고, 사람을 죽이고. 울었던 것 같고.

그 뒤로는 사흘간 짐짝처럼 실려 다니기만 했으니.

그래도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일단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것보다, 데미안 너희 조는 트롤을 세 마리나 잡았다던데. 역시 상대할 만했지?"

"어. 확실히 그 재생력은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번거로우면 안 되는데. 그냥 겸손이겠지?

입학식 때 실력 정도면 트롤 쯤은 아마 바로바로 목을 쳐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하샬르 네가 신학 강의에 찾아온 건 처음이네. 이쪽 종교에 호기심이라도 생겼어?"

"약간은."

확실히 조금 관심이 생기긴 했다.

게임상에선 그저 사제들의 특성을 구분하는 배경설정에 불과했지만, 여기선 아무래도 그 정도가 아닌 듯했으니.

적어도, 뵐베르크와 샤울리테는 내게 관심을 보여왔다고 하니까.

다른 신들에 대해서도 혹시 모르니 들어둘 만하겠지.

신학 강사는 엘피넬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강의는 더럽게 지루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11개의 교단이 모여, 하나로 화합한 것이 지금의 11주신교입니다. 다른 종족들은 여전히 그들의 전통적인 종족신을 숭배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인간이 섬기는 열하나의 주신.

이종족들이 섬기는 네 명의 종족신.

기록으로 전해지는 4대 악신.

기록조차 잊힌 옛 고대신들까지.

오늘 강의는 그 중 11주신과 각 교단의 역사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적당히 흘려듣고, 몰랐던 부분들만 기억해두며 시간을 때웠다.

악신과 고대신에 관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하려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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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나이젤과 단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열흘 넘게 쉬는 동안 감이 둔해졌을지도 모르니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실력이 늘었다.

나이젤의 검에, 이제 완벽히 대처할 수 있었다.

여전히 업의 활용법은 감을 잡지 못했지만.

"업을 활용하는 법 말입니까? 그건...말로 설명하긴 어렵군요......"

나이젤에게 물어보아도,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걷는 것처럼.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활용법을 깨닫게 되는 그런 감각입니다."

결국 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네. 어려운걸.

싸우다 보면 언젠가 깨닫게 될까?

"오히려 그렇게 많은 업을 쌓은 상태인 하샬르님이,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군요."

그야 이것들은 내가 쌓은 것이 아니라, 헤르셀라가 쌓아온 것이니까.

내가 그 활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도 당연하긴 하지.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지만.

결국 업의 활용법을 익히는 일은 미뤄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되겠지. 언젠가는.

내친김에 수인을 상대하는 법도 물어보았다.

다음으로 상대해야 할 적들은, 제국에 숨어든 수인들이었으니.

"수인 말입니까...? 동부에선 볼 일이 없는 상대군요. 하나하나가 강인한 적들이긴 합니다만..."

"약점이나, 주의해야 할 점 같은 건 자세히 모르나 봐?"

"저는 그들과 직접 싸운 적은 없어서...개별적인 약점을 찾으시는 거라면, 차라리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전문가?

아, 한 명 있긴 했지. 위층에.

친구 없는 여자 하나가.

...가볼까.

프리데를 찾아가 방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은색 머리카락이 튀어나왔다.

"뭐야, 누구..."

날 발견한 프리데의 얼굴이 트롤처럼 찌푸려졌다.

"꺼져."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어찌나 세게 닫은 것인지, 복도가 웅웅 진동할 정도였다.

아니 이 여자가 진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자고 일어났더니 11시...저는 침대의 안락함에 패배했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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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은총의 엘피넬]

카롤루스 대제를 지원했던 대천신교의 신.

11주신교의 확립 이후에도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다.

은총의 신답게, 주로 사람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권능을 내린다.

상징하는 성표는 한가운데에 원이 달린 십자가.

[태양과 생명의 샤울리테]

태양을 섬기던 교단의 여신

태양의 기적은 사령들을 상대로 효과가 뛰어나며, 치유의 기적 역시 독보적인 효과를 자랑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샤울리테를 섬긴다.

상징하는 성표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반원이 합쳐진 모습.

[영광과 전사의 뵐베르크]

전사들의 신. 특히, 데인 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전사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영광스럽게 죽은 전사들을 자신의 천상궁전으로 인도한다.

그의 축복은 오로지 전투를 위한 권능에만 특화되어 있다.

상징하는 성표는 까마귀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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