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51화 (51/100)

제 51화

약한 건 아닌데, 강한 것도 아닌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두 줄기의 벼락이 서로 충돌하는 것 같은 폭음이 연신 이어진다.

평평했던 지면이 파이고 쪼개지고 으깨져, 폐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솟구치는 흙더미가 파도처럼 흩뿌려지고,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데미안이 휘두르는 대검은 그 기세가 한층 맹렬해져, 이제는 굴착기와 같이 주변을 전부 갈아엎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파공음이 거인의 함성처럼 사납게 울려 퍼졌다.

여파를 피하려 멀찍이 물러선 학생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를 숨죽인 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들과의 수준 차이를 절감하면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데미안 쪽이 아니었다.

그 맞은편에, 장검 한 자루만으로 대검의 광풍을 장난치듯 압도하는 여자가 있었다.

----

- 쿠우웅!

비스듬이 흘려낸 데미안의 대검이 다시 한번 바닥에 처박혔다.

비산하는 흙더미가 갑옷을 툭툭 두드렸다.

장검을 어깨 위에 얹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 여유롭게 웃었다.

"여전하네. 여전히 어설퍼."

데미안의 전투방식은 이전과 그다지 변한 부분이 없었다.

대검의 무게와 원심력을 활용한 강격.

도약해 내려찍고, 몸을 회전하며 휘두르고, 돌진해 찔러오는 거칠고 과격한 몸놀림.

입학시험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수없이 많은 빈틈을 노출하고도, 대검의 기세로 그 빈틈을 메우는 전법.

확실히 비슷한 수준의 상대라면 그 빈틈을 찌르기 어려웠겠지.

강렬한 힘을 담은 대검을 맞받아치기는커녕, 막아내기도 힘겨웠을 테고.

머리를 노리는 대검을 가볍게 피하고, 연이은 참격을 장검의 날밑으로 밀어 궤도를 꺾어버린다.

허망하게 틀어진 검로가 허공을 갈랐다.

그저 약자만을 압도하기 위한 검술이다.

결국, 자기보다 강한 적을 만나면 이렇게나 쉽게 파훼되는 것이다.

하기야 검놀림이 이런 꼴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자기보다 강한 상대는 만나본 적 없을 테니까.

"우선, 동작이 너무 커. 어딜 노리는지 뻔히 보이고, 피하기도 쉽지."

허리를 노리는 회전베기를 드러눕듯이 피한다. 대검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거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감아, 달아오른 이마를 기분 좋게 식혀주었다.

"-반격하기도 쉽고 말이야."

상체를 튕기듯 일으키며 그대로 장검을 내지른다.

대검을 지나치게 크게 휘두른 탓에, 데미안의 몸통이 텅 비어 있었다.

관통해버리면 곤란하니 손끝에 힘을 뺀 채, 옆구리를 쿡 찌르고 물러났다.

뒤늦게 휘둘러진 대검이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데미안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그대로 도약하며 허공에서 수직으로 회전한다.

원심력을 머금은 대검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기세는 좋은데, 결국 기세뿐이지."

반응할 수 있는 신체능력만 있다면, 이런 뻔한 공격 따위.

옆으로 두 걸음만 걸어도 피해낼 수 있다.

약한 놈들이야 기세에 눌려 못 움직이겠지만.

대검과 충돌한 지면이 굉음을 토하며 터져나갔다.

지면만이.

"힘과 속도에 의존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그거야 너보다 약한 놈한테나 통하는 거고."

바닥을 파고든 대검을 그대로 짓밟았다.

검끝이 땅속 깊이 파묻히며, 데미안의 상체가 기울어졌다.

"상대가 너보다 힘이 세면, 아무것도 아니야."

힘으로 대검을 들어 올리려는 듯, 데미안의 양 팔이 부풀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대검은 들썩이지조차 않았다.

그야, 데미안의 두 팔보다, 내 다리 하나가 내리누르는 근력이 훨씬 강하니까.

"크으읏...!"

"애쓴다."

그대로 데미안을 걷어찼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데미안이 외마디 신음을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어디, 네 문제점이 뭔지 이제 좀 알겠냐?"

자기보다 약한 상대는 압도할 수 있었을 테지.

자기와 신체능력이 비슷한 상대 역시 나름 박빙으로 싸울 수 있었을 테고.

입학시험때도 그렇다.

크누트가 축복 없이 싸웠으니 그럭저럭 무승부에 가까운 결말이 난 것이다.

칼라인 교수가 그랬던가. 검사가 성기사랑 무예실력이 비슷한 수준이면 그냥 죽으라고.

데미안이 딱 그런 상태였다.

"아직이야!"

이를 악문 데미안이 다시 달려들었다.

말버릇은 밀리아랑 똑같네. 조금 기분 나쁘게.

장검을 치켜들었다.

데미안이 폭풍처럼 대검을 휘둘렀다.

믹서기에 집어넣은 과일처럼, 바닥이 비명을 토하며 세차게 갈려나갔다.

흙과 자갈 조각들이 폭포수처럼 비산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연속 공격이라.

내가 나이젤이랑 싸울 때 이랬던 것 같은데.

"하아아아아!"

"그래, 차라리 이건 좀 낫네!"

장검을 휘두른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대검을 흘려내고, 막아내고, 때로는 받아치며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전부 대응한다.

- 카가가가가강!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충돌음이 하나로 합쳐지며, 커다란 소음으로 변해갔다.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확실히 무기에 돈을 좀 들이길 잘했네.

새삼 장검의 성능에 감탄했다. 기존의 아카데미산 강철검이었다면 벌써 산산조각났을 텐데.

아샤가 만들어준 흑철 장검은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도 금조차 가지 않고 있었다.

날은 다 뭉개져 버리긴 했지만.

오히려 평범한 강철인 데미안의 대검 쪽이 먼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금이 가기 시작한 대검의 검신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장검을 거세게 움켜쥐고, 힘을 더했다.

"카아앗!"

금이 간 부위를 정확하게 노리고 휘두른 참격.

채앵, 소리와 함께 데미안의 대검이 그대로 쪼개졌다.

튕겨나간 앞부분이 구경하던 학생들 쪽으로 날아간다.

갑작스러운 봉변에, 경악한 학생들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큭..!"

"여기까지네."

명치를 노리고 내지르는 주먹질을, 데미안이 반 토막 난 대검을 방패처럼 들어 가로막는다.

글쎄, 그걸로는 못 막을걸?

- 콰차앙!

대검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내 주먹이 그대로 데미안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크하아악...!"

데미안이 수평으로 십여 미터쯤 날아갔다.

설마 이걸로 내장이 터지거나 하진 않았겠지? 병실로 보낼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장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손가락을 뚜둑이며 그에게 다가간다.

데미안이 신음하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입가에 피가 좀 흐르긴 하는데, 거하게 토혈하거나 하지는 않는 걸 보니 괜찮은 거겠지.

두 주먹을 움켜쥐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매타작 시간이다.

----

그 뒤로는, 거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데미안의 격투 실력은 형편없었다.

내지르는 주먹을, 발길질을 제대로 막지도 흘려내지도 못하며, 팔다리를 어설프게 휘두른다.

반격은 꿈도 꾸지 못하고, 급소를 노리는 공격들만 간신히 반응해 다른 부위로 받아내는 모양새였다.

날 상대로는 의미 없는 짓이지.

"크악! 자, 잠깐만 하샬르!"

"피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막아? 거긴 뭐 네 몸 아니냐?"

목덜미를 노린 손날을 어깨로 받아낸다고, 안 아픈 건 아니잖아?

데미안의 고개가 연신 돌아갔다.

공기가 들어가 춤추는 풍선인형처럼, 맞을 때마다 전신이 이리저리 휘청인다.

어, 이거 조금 재밌는데.

"크으으으..."

손도 발도 못 내밀고 작신작신 얻어맞은 데미안이 결국 나가떨어졌다.

산뜻하던 얼굴이 여기저기 부어 있었다.

"역시나, 체술은 제대로 익혀두지도 않았구만?"

대검 하나만 죽자고 휘두를 때 알아봤다.

자고로, 한우물만 파는 놈치고 전투에서 오래 살아남는 놈이 없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싸움인데, 수단은 이것저것 갖춰둬야지.

"재능이 아깝다, 아까워. 너 이러다 대검 놓치면 밀리아에게도 지는 거 아니냐?"

설마 진짜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신체능력이 있으니.

확실한 건, 이 실력 가지고는 용사 짓을 하며 살아남긴 글렀다는 것이다.

"안 되겠다. 넌 앞으로 대련 때마다 무조건 나랑 특훈이다, 알겠냐?"

"......"

대답이 없는 것은 동의한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용사답게 고난 앞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구나.

마음가짐 하나는 훌륭하네. 데미안.

"저기, 하샬르...?"

"응? 밀리아?"

등 뒤에서, 밀리아가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격하게 떨리는 눈동자에 당황스러움과 난감함이 가득했다.

역시 동경하는 남자가 맥없이 두들겨 맞는 모습은 충격이 좀 컸나...

"데미안...기절한 것 같은데."

그 말에 데미안 쪽을 다시 쳐다보았다.

축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진짜 기절했네. 방금 전 까진 그래도 꿈틀거렸었는데.

뼈가 으스러진 것도 아닌데 기절이라니, 정신력도 단련시켜야겠네...

결국 데미안은 의무실로 실려갔다.

밀리아가 날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양심에 찔렸다.

뭐, 어디 크게 다친 건 아니고 그냥 전신타박상에 몇 군데 금 간 정도였지만.

"하아아아아..."

답답한 마음에 연기를 내뿜었다.

미래의 용사님이 너무 약하다.

객관적으로 저 나이에 저 실력이면 약한 게 아니라 오히려 뛰어난 실력이 맞긴 한데.

앞으로를 생각하면 그저 뛰어난 수준으론 어림도 없으니.

1학년인 이상 어쩔 수 없나.

제대로 키우려 해도 움직일 자유가 있어야 뭘 시키든가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떠먹여 주는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대련이라도 계속해봐야겠다.

두 달 동안 두들기면 수인 습격 때도 활약할 정도까지는 성장시킬 수 있겠지.

----

밀리아와도 자유대련을 하긴 했다.

나와 대련하자는 말을 듣고는 한참을 고민하긴 하더라.

두들겨 팬 건 아니고, 그녀의 세검을 막고 흘려내며 문제점만을 지적해주었다.

전반적으로 검세 자체는 예리하긴 한데, 센스가 치명적으로 부족했다.

"집중력은 괜찮은 편인데, 시야 밖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대응하질 못해."

그래서 적이 여럿이거나 몸놀림이 빠르면 허둥대다 당하기 쉽다.

코볼트까지야 괜찮겠지만, 그 이상이면 힘들겠네.

"체력이 부족해서 길게 싸우기도 힘들고."

3분 이상 싸우면 확연하게 검놀림이 둔해지기 시작하니.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야."

찌르기가 직선공격이긴 한데, 그래도 어딜 노리는지는 모르게 해야지.

노리는 곳이 보이면 그냥 피해버리면 그만이니.

"그래도 틈을 노려 찌르는 몸놀림은 괜찮네."

괜히 의기소침해질까 봐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련이 끝난 밀리아도 고맙다며 웃었으니 잘 된 거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오늘도 안녕하세요!

날씨가 추워졌다 더워졌다, 참 제멋대로네요 요즘은.

======

하샬르는 데미안의 하드카운터입니다!

힘과 기세로 압도해 넘쳐나는 빈틈을 메꾸는 검술인데, 그 힘과 기세 모두 상대가 월등하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