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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65화 (65/100)

제 65화

병문안

===[ㅁㅁㅁ ㅁㅁㅁ ㅁㅁ]===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집무실.

한 사람이 화려한 의자에 앉은 채, 책상 위에 놓인 수정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 안에 드리워진 어둠이 그의 외모를 가리고 있었다.

젊은이인지, 중년인인지, 아니면 노인인지. 알 수 없도록.

"그건 그렇고, 이번 일은 기대 이상이더군. 짐승들이 아주 잘해주었어."

수정구를 통해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이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경악했으리라.

거리에 구애받지 않은 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물의 존재에.

하늘의 전령.

옛 시대에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전설 속 유물이었다.

"그러게. 수인 몇 마리를 제도 지하로 보내줄 때까지만 해도, 고작해야 학생 백여 명이나 없애고 끝나리라 생각했었는데. 수인국이 그 정도로 크게 움직일 줄이야."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낮게 가라앉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전해지는 말엔 분명한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이것으로, 팔 년 만에 다시 성배가 차오른다. 첫 번째 잔이 넘치기까지, 앞으로 한 걸음뿐."

앉아 있던 인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기묘했다.

남자인지 여성인지, 노인인지 청년인지.

그 모든 목소리를 뒤섞은 것처럼, 특이한 울림을 지닌 음성이었다.

"마침내 시작이네."

"조금 아쉽군. 그 여자만 없었더라면 이번 일만으로 충분했을 터인데."

탁한 목소리가 투덜거렸다.

"그 카하르 여자? 그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행동에 일관성이 없어."

"확실히. 동부에서 학살을 저지르던 여자가 갑자기 제국으로 향한 것도 모자라, 이젠 뜬금없이 기사 행세라고? 목적도 의도도 이해가 가질 않아."

"삼 사도가 이를 갈고 있던데. 동부 쪽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렸다나?"

"ㅡ신경 쓸 것 없다. 결과적으로 성배는 차올랐고, 이미 변혁의 전조는 나타나고 있으니."

앉아 있던 인간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내었다.

쓸데없는 잡담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슬슬 다시 나가보아야 할 시간이었기에.

"모든 것은 진정한 신들을 위해."

그의 선언에, 목소리들이 화답한다.

"거짓 신들을 멸하고, 세계를 올바른 모습으로."

"마침내 우리는, 승천을 맞이하리라."

그리고 다시.

정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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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수인을 잡아먹는 내장 더미 마물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말문이 막히는 소문이었기에.

"...그러면 편지들은 여기 놓아둘 테니까, 나중에 읽어보도록 하세요."

내 침묵이 길어지자, 대답을 기다리던 레이시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들고 있던 편지들을 병상 옆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읽어보라니, 이 꼴로?"

황당한 말이었다.

움직이는 부위라고는 목 위뿐인데 무슨 수로?

"닷새 정도면 상반신 정도는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진 않겠지만 편지 정도는 읽을 수 있겠죠.

"그럴 바에야 그냥 네가 지금 읽어주면 안 되나?"

확인하기까지 닷새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너무나도 답답한 일이었다.

편지를 보내온 자들의 면면들을 보면 분명히 뭔가 중요한 내용일 것 같은데.

"그건 힘들겠네요. 황실이나 선제후들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멋대로 열어볼 수는 없으니까요. 심지어 그것이 성국의 사람이라면, 그 사실만으로 상당한 논란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랍니다."

고개를 저은 레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즉각적으로.

그래. 용건은 끝마쳤으니 이 이상 말을 나눌 시간은 없다 이건가.

역시나 기이할 정도로 사무적인 태도였다. 마치 응급실의 의사처럼.

하긴, 역할 자체는 그다지 다를 것도 없으니까.

"잠깐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무엇을요?"

"나이젤이라고, 알아? 내 호위로 온 여기사인데, 수인과 싸우다 중상을 입어서 치료를 부탁했었거든."

나이젤. 병실에서 깨어난 이후로, 가장 신경쓰이던 일이었다. 그녀 역시 보리스와 싸우다 죽을 뻔했으니.

치사량에 가까운 출혈에 막대한 체력소모, 심지어 아예 잘려 나갔던 왼팔.

아마 프리데가 없었다면 본관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그대로 목숨을 잃었겠지.

...그때는 정말이지, 숨이 멎을 정도로 절박한 기분이었다.

친한 사람들이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일은, 언제나 끔찍한 경험이었으니까.

그 뒤에 본 제도의 상황도 참혹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지는 법이니.

절망감과 공포. 죄책감과 분노.

양쪽 모두 큰 충격이었지만, 그 방향성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이젤은 어떻게 되었을까. 치료는 늦지 않았을까?

잘린 팔을 다시 붙여 치유의 기적을 퍼붓는다고, 그 팔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는 하는 건가?

아니, 아마 되돌아오긴 하겠지. 터진 내장도 복구하는 기적들인데.

밀리아에겐 굳이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녀가 알 리가 없어서.

밀리아는 애초에 나이젤과 아무 접점이 없는 데다가, 회복이 빨랐을 뿐이지 나와 마찬가지로 환자 신세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묵혀두고 있던 질문이었다.

그래도 레이시라면, 밀리아와 달리 나이젤의 상태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 역시 딱히 나이젤과 접점이 있지는 않겠지만...성녀 후보라면 아마 이 구호소의 책임자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말을 꺼냈다.

"나이젤...? 나이젤이라...아, 그 란덴부르크의 여기사 말이군요. 그녀라면 요양 중이라 들었어요.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요."

요양 중이라. 그럼 치료 자체는 무사히 끝났다는 말이겠네.

"그, 팔은 괜찮은 거 맞지? 완전히 잘려 나갔었는데. 일단 붙여놓긴 했었지만."

"네. 아예 소실되었다면 조금 곤란하지만, 다시 이어 붙이는 것 정도는 다른 사제분들도 가능하니까요. 아마 이 주 정도면 완전히 회복되겠죠."

"그런가..."

다행이다.

전문가에게 확답을 듣고 나니, 이제 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더 할 말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치료해야 할 환자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요."

"그래, 수고하고."

내 대답을 들은 레이시가 한동안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없이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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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사제들에게 치유술을 받고, 누워서 하루를 보내다가, 피로감이 몰려오면 잠들기를 반복한다.

쳇바퀴 같은 하루하루였다.

그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

식사로 주어진 것은 아무 맛도 없는 묽은 수프뿐이었다.

아직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스스로 떠먹을 수는 없었고,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으면 간호원 역할을 담당하는 수습사제가 먹여주었다.

열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으려니,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진짜 부끄러운 일은 식사 과정이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 쪽이었지만.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그래, 투입이 있다면 산출 또한 발생하게 되는 법이다.

실로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붕대를 풀고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는 사제의 손길쯤은 견딜만했다.

수치심의 역치가 올라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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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여러 지인들이 내 병실을 찾아왔다.

밀리아와 데미안, 아샤.

파견에서 돌아온 칼릭스.

그리고 프리데가.

밀리아는 아카데미의 상황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아카데미는 일단 사태 수습이 끝날 때까지 휴교령이 떨어진 상태라고 한다.

건물 부지를 임시 구호소로 쓰고 있기에 어차피 강의가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고.

죽은 동기나 도시민들을 생각한 것일까, 그 말을 꺼내던 그녀의 낯빛은 조금 어두웠다.

데미안은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단련시켜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면서.

하긴, 나탈리아의 전투방식은 거짓말처럼 나랑 비슷했으니까.

솔직히 예상 못한 일이었지만.

아샤는 딱히 다친 곳은 없었다. 단지 재산의 반이 사라졌을 뿐.

그래서인지 조금 울상을 짓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은괴의 2할은 남아있다던가?

은 가격이 5배 이상 뛰기를 바라야겠네.

...그 정도면 경제 붕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선 별생각 없어 보였다. 결국 이런 부분이 종족 간의 차이라는 거겠지.

칼릭스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 상태에 대해 한번 묻더니, 대답을 듣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선재로다.'라는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프리데와는 꽤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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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닷새째가 되는 날의 오전이었다.

어느덧 상반신 정도는 일으킬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슬슬 편지를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프리데가 들어왔다. 노크도 없이 말이지.

"반쯤 살아났다길래 와 봤는데, 진짜네."

"뭐야, 프리데...?"

이 여자가 내 병문안을 올 줄이야.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거침없는 기세로 내게 다가온 프리데가 그대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보리스의 부하들과 싸울 때 입었던 부상은 완전히 나은 것인지, 실로 호쾌한 기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맛있는 식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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