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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68화 (68/100)

제 68화

병실 침대와는 이제 안녕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내 고민 따위는 아랑곳없이.

병상에서 하염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병문안을 온 나이젤과 재회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인지 왼팔에 부목을 댄 모습이었다.

그래도 안색은 꽤 좋아져 있었다. 기쁜 일이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억이 습격 당일, 반쯤 시체가 되어 신음만 흘리던 모습이었으니까.

병실에 들어선 나이젤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사죄해왔다.

하긴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 성실한 성격이니까.

"하샬르 님. 호위로서의 책무를 끝까지 다하지 못한 점, 실로 면목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해준 거지. 나이젤 네가 보리스를 막아주지 못했으면 거기서 다 죽었을 테니까. 그러니 고개 들어."

수인의 대전사를 일대일로 상대하려면 최소한 달인급 실력자가 필요하니까.

아니면 실력이 뛰어난 기사 여럿이 합공을 가하던가.

그래서, 원래는 한 달 이상 더 단련시킨 데미안과 밀리아, 거기에 교관들의 힘까지 빌려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이쪽의 숫자가 더 적은 상태로 마주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오는 나이젤을 달래가며 겨우 분위기를 바꾸었다.

몸 상태를 물어보았더니, 팔이 아직 시리긴 하지만 다른 부위는 거의 완치되었다고 한다.

체력도 순조롭게 회복되어 나와 달리 일주일이면 전투도 가능할 거라고.

"그건 그렇고, 적의 대전사를 홀로 쓰러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업을 깨우치신 겁니까?

업이라. 확실히 이젠 쓸 수 있게 되었지.

지금 당장은 몸 상태가 이러니만큼 힘들겠지만.

실로 비약적인 성장이었다.

수인의 대전사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다니.

원래는 전력을 다하고도 달인 하나랑 간신히 동수를 이룰까말까 했었는데.

"그래. 네 말대로 싸우다 보니까 어느 순간 깨닫게 되더라."

"역시...! 달인에 도달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젠 저를 뛰어넘으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음...아마 그렇지 않을까?

무예는 약간 밀리더라도, 업의 힘까지 다루게 된 이상 이제 스펙은 수인의 대전사조차 능가할 테니까.

"그러려나. 팔 할쯤은 네 덕분이지 뭐. 내게 검술도 가르쳐주고, 훈련도 열심히 도와주었잖아?"

"제가 해 드린 일은 등을 밀어드리는 정도였습니다.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은 하샬르님께서 그동안 노력하신 결과이지요."

나이젤이 웃으며 고개를 내젓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의하듯 오른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 본분을 다하려면, 저 역시 앞으로 더욱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너도 아직 부상자니까, 무리하진 말고."

이렇게 말해도, 돌아가고 나면 다시 단련 삼매경에 빠져있을 것 같은데.

어쩌겠어. 말려서 통할 일이었으면 루드비히 후작이 진작 그렇게 했겠지.

후작이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그녀와 이야기해보았다.

나이젤도 루드비히 후작이 제도로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후작이 내게 말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일지는, 그녀 역시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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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후보는 주말마다 한 번씩 찾아왔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고, 그저 내 상태를 확인해본 뒤에 치유술을 걸고 돌아가기는 했지만.

나가기 전에 나를 항상 빤히 쳐다보던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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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과 밀리아는 몇 차례 더 병문안을 오고는 했다.

한 번은 라나도 같이 찾아왔었고.

다들 충격을 많이 떨쳐낸 것인지, 전보다는 밝은 분위기였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최연소로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던데. 대단하네."

"걱정 마라. 너도 될 때까지 단련시켜줄 테니까."

내 대답을 들은 데미안이 참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없이.

그래. 앞으로도 대련은 멈추지 않는단다, 데미안.

마음껏 고마워하렴. 내 훈련 덕분에 이번에도 살아남았잖아?

업의 힘이야 겪어보니 단련이 아닌 전투가 필요한 영역이라 좀 어렵겠지만, 최소한 달인 직전까지는 빠르게 성장해야지.

애초에 달인의 경지는 도달점이 아니라 중간지점에 지나지 않으니까.

따지자면 영웅이 되기 위한 출발선일 뿐.

...어째서인지 영웅의 경지에 대해서는 다들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말이야.

마치, 그런 경지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 이외에도 세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라나는 나름 유능한 치유사제이니만큼,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던가.

데미안과 밀리아 역시 황실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순혈 전사 하나와 혼혈 전사 둘을 쓰러트리고, 대전사를 상대로 시간을 끈 공로 덕분에.

잘됐네.

밀리아는 조금 부담스러워했지만.

"거의 데미안이 한 일인데,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밀리아가 활로 지원해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자격이 있지. 가슴을 펴도 돼."

데미안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밀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이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요즘 심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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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아카데미 역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야 결국 학생 중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생겼으니까.

그 시점에 학생들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판단이었기에, 딱히 책임론이 불거지진 않았지만.

오히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그저 황궁 습격에 끌려다닌 제국군과 기사단 쪽이 많은 비판을 받았지.

바뀐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기본 커리큘럼에서 이론 강의의 비중이 줄어들고, 대련 및 단체실습의 빈도가 보다 늘어난 것.

그리고 본래 이학년 이상만 실시했던 파견 업무에, 일학년도 보조 역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일학년들의 피해가 심각했던 가장 큰 원인을 실전경험 부족이라고 결론지었나 보네.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인원 역시 크게 확충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학기가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1학년이 백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이번 일 역시 인원이 훨씬 많았다면 피해가 보다 줄었을 거라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복구작업이 끝나면 대규모 추가모집을 실시할 예정이라 한다.

쓸 만한 녀석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못 본 원작 캐릭터들이 있긴 하니까. 그런 녀석들이 나오려나?

그리고.

나에 대한 소문은 결국 하나로 합쳐져 버렸다.

카`하르의 왕녀는 생긴 것은 마물을 닮았고, 수인과의 혼혈 출신이면서도 같은 수인을 잡아먹고 사는 여전사라고......

자기가 말하면서도 우스웠는지, 밀리아가 조금 웃었다.

나도 그냥 웃어주었다. 어이가 없어서.

여신의 기사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은 건가. 솔직히 모르겠다.

아마 평생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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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병실을 나서도 되겠네요."

삼 주째의 주말, 레이시가 퇴원 선고를 내렸다.

아직 전투가 가능한 상태는 아니지만, 거동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실제로 몸을 움직여보니 조금 비틀거리긴 해도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

혹시 병실에서 더 요양하고 싶냐길래, 그냥 나오겠다고 했다.

누워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슬슬 답답해 미칠 정도였으니.

내 퇴원 의사를 전해 들은 나이젤이 마차를 몰고 구호소로 찾아왔다.

부상은 거의 나은 것인지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마차를 모는 말은 한 마리밖에 없었다. 내 말은 그날 죽어버렸기 때문에.

좋은 말이었는데.

구운 말고기가 되다니. 슬픈 일이야.

마차 너머로 본 도시는 그래도 점차 복구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 시간까지 생각하면, 거의 한 달이 흘렀으니 당연한가.

그래도, 자세히 보면 아직 그때의 상흔이 좀 남아있긴 했지만.

구석에 쌓인 폐자재라든가, 완공되지 않아 뼈대가 드러난 건물들이라든가.

저 멀리 보이는 화장터의 연기 같은 것들이 말이지.

병사와 인부들을 제외하면,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 이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건물이야 복구할 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목숨과 사라진 활력은 되돌리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저 기억 속에만 담아두었다. 감정은 묻어두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특별관으로 돌아왔다.

그날 박살 났던 삼 층의 창문들은 어느새 전부 복구된 상태였다.

정원은 평탄화만 해 두었을 뿐, 잔디를 심을 여유까지는 없었는지 여전히 흙바닥인 상태였지만.

칼릭스와 아샤, 프리데가 날 맞이해주었다.

"음. 오랜만이오 하샬르 공, 건강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반갑소."

"반가워 칼릭스. 건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몸이 움직이기는 하는데, 이게 평소처럼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라서.

레이시 말대로라면 만전의 상태가 되려면 앞으로 몇주는 더 필요하다 했었지.

다행히 그 안에 싸워야 할 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확실히 아직 좀 피곤해 보이긴 하네요!"

"하긴 그렇구려.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소."

칼릭스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들어가서 씻고, 푹 자야겠지.

"그래. 특별관은 그동안 별일 없었지?"

"아무 일 없었소. 언제나와 마찬가지라오."

"아무 일 없기는 무슨. 돌아와 보니 내 방이 거의 박살이 났던데. 칼릭스 당신 방도 마찬가지 아니야?"

팔짱을 낀 프리데가 짜증스럽게 투덜댔다.

칼릭스는 난감한 듯 웃으며 빛나는 두피를 손톱으로 긁적였다.

아샤는 그저 웃었다.

...그때의 폭발이 삼 층 전체를 날려버렸었나 보네.

아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가 한 일은 아니겠고, 그러면 설마 페르네가 한 짓이었나?

"페르네 공도 악의가 있어서 저지른 일은...아마 아닐 것이오. 그러니 어쩌겠소? 방이야 다시 채우면 될 일이라오."

"하여간, 당신은 속도 좋네. 나는 남의 방을 불태워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여자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던데 말이야."

페르네가 한 짓이 맞네.

설마 그 주정뱅이 요정 여자가 도움이 될 줄이야. 술독에 빠져도 요정은 요정이라는 건가.

"사과를 들으려면 백 년은 기다려야 할걸요? 역사서들을 뒤져보면, 그래도 몇백년에 한 번씩은 요정이 사과를 하는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적혀 있거든요."

아샤의 말에 프리데가 대놓고 혀를 찼다.

아니, 사과를 할 때마다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라니. 요정이란 대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내일은 어린이날이네요! 다들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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