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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73화 (73/100)

제 73화

날 바라보는 시선이...

기껏해야 백여 미터를 걷는 것뿐인데, 마치 열 시간쯤 행군한 듯이 맹렬한 피로감이 덮쳐든다.

정말이지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여태까지 내 발걸음을 되돌린 자가 단 하나도 없었건만, 그 어려운 일을 이놈들이 달성할지도 모를 정도로.

하아...그래.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강의를 듣기는 해야겠지?

이 시선을 참는 것 역시 나중을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자.

그나마 학생들이라 이 정도지, 본격적인 귀족들의 시선은 훨씬 음습할 테니까.

제국의 구더기들.

마음을 다잡고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본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웅성대며 자기들끼리 떠들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확 조용해진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보고 주절거리고. 내용이야 뭐 뻔하지.

찔러오는...아니, 훑어오는 시선들을 억지로 무시한 채 당당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간다.

나아갈 때마다, 눈앞의 학생들이 좌우로 갈라진다.

예전에도 내가 걸어가면 이렇게 갈라지긴 했었지만...

내 이미지를 언젠가 개선할 생각이긴 했는데, 이런 방향은 바라지 않았다.

등 뒤로 시선들이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 계속 신경 쓰인다.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감각이 조금 원망스러울 정도로.

뒷목과 등허리, 그리고 엉덩이 쪽이 연신 간지러웠다.

"저기...처음 보는 분인데, 제복도 없고. 혹시 외부에서 오신 건가요?"

갑자기 사내새끼 한 놈이 말을 걸어왔다.

훤칠한 키에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었다.

순진하게 생긴 얼굴에 신사적인 태도였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살짝 올라간 비열한 입꼬리, 먹잇감을 노리는 듯 욕망에 찬 눈동자.

은근슬쩍 내 얼굴이 아닌 그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까지.

무해한 척 여자를 유혹해, 마음을 놓은 순간 본색을 드러내는 변태 놈이 틀림없다.

확신할 수 있다. 페일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여기는 아카데미생들만 들어올 수 있답니다. 혹시 길을 잃으신 거라면 제가 안내해드릴까 하는데..."

심지어 멋대로 내 손을 잡으려고 슬쩍 손을 뻗기까지.

간이 부었네.

"꺼져."

"네?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건 그렇고, 목소리도 참 좋으시네요."

정말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못 알아들은 척을 하는 건지, 꽤 끈질겼다.

못 들었다면서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또 무슨 헛소리야.

"꺼지라고. 좀."

그 면상에 담배 연기를 뿜어버렸다.

졸지에 박하 향으로 세수를 한 남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이게 무슨...!"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랄 때 가라 그냥. 내 분투가 회의감이 느껴지게 만들지 말고.

화를 내려는지 어깨를 꿈틀거리던 남자가 주위의 시선들을 보고 멈칫했다.

그래. 그림이 좋지는 않겠지.

내 태도와는 별개로, 건장한 사내가 병약해 보이는 여자에게 손찌검을 했다가는 평판이 나락으로 처박힐 테니.

"재수가 없으려니 진짜..."

망설이던 남자가 결국 몸을 돌렸다.

잘못 알고 있네. 재수가 없는 건 네가 아니라 나란다. 넌 오히려 재수가 좋은 거지.

거기서 손을 놀렸다가는 다리 사이랑 그 손이 뭉개졌을 텐데.

조상님이 돌보셨으니 가서 제사라도 올리지 그러냐.

그 이후, 대놓고 앞을 가로막으며 추파를 걸어오는 놈은 더 이상 없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하긴. 머릿속에 제대로 된 뇌가 들어있기만 하다면, 내 태도나 외모를 보고 얼추 짐작했을 테니까.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뒷감당이 불가능한 지체 높은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그들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만일 대놓고 들이대는 놈이 더 나왔다가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비통한 신음과 함께 한 가문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겠지? 아샤가 했던 것처럼.

차라리 그래 버렸으면 이런 시선들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니, 오히려 그쪽이 나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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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샬르! 이제 퇴원한 거야?"

"하샬르 님!"

강의실에 들어서자, 밀리아와 라나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등 뒤의 웅성거림이 잠시 잦아들더니, 경악으로 변했다.

단 한 놈도 날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샬르...? 아니, 진짜?'

'수인 포식자가, 저런 미녀였다고?'

수인 포식자?

내 소문의 최종 완성형이 그거야?

솔직히 소문만 들어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어감은 또 뭔가 좀 멋진 것 같아서 미묘한 기분이었다.

학생들의 잡담이 계속 귓가를 울린다.

'그게 말이 돼? 식인 호랑이 같던 여자가...'

식인 호랑이라.

글쎄, 자한이나 오르한을 보고 나면 나 정도는 고양이처럼 보일걸.

진짜 고양이처럼 보라는 말은 아니지만.

'원래는 찢어죽일 듯한 눈빛 때문에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는데. 저건 오히려 레이시 님 보다도...'

'너 그런 불경한 소리나 하다가 나중에 벼락이라도 맞는 거 아니냐.'

'샤울리테께서 막아주실 거야.'

'퍽이나 그러시겠다.'

엘피넬 님, 저놈에게 벼락을 내려주시면 앞으로 대천신교에 귀의하겠습니다.

지금은 대천신교가 아니라 그냥 엘피넬 교단이던가. 어쨌든.

'좀 아파 보이는데, 부상이 아직 낫지 않은 걸까? 하긴 수인들이랑 그렇게 싸웠으니.'

'그러고 보니 달인이라는 소문이...'

'설마. 달인이라면 뭐 하러 강의에 나오겠어.'

그러게. 내가 뭐 하러 나왔을까.

이 꼴을 보려고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발걸음에 힘이 풀린다. 터벅터벅 걸어가 밀리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데미안이 내 안부를 물어왔다.

"몸은 좀 괜찮아? 아직 기력이 전부 돌아오지는 않은 모양인데."

"몸보다는 마음이 꺾일 것 같다..."

칠 할쯤 진심이 섞인 너스레를 떨며 물고 있던 담배를 꺼버렸다.

원래는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끌 생각이었는데, 정신적인 피로감 때문에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기에.

"저 친구들은 지금 네 모습을 처음 봐서 그렇겠지. 차차 나아질 거야."

"그래 하샬르. 기운 내."

데미안과 밀리아가 어설프게 위로를 건네온다.

글쎄...이미 이미지가 박혀버렸는데 눈매가 회복된다고 다시 꺼릴지는 모르겠다.

정작 너희들도 나와 친해진 이후로는, 내 기세가 멀쩡할 때도 딱히 무서워하지 않았잖아.

"전 지금 모습도 좋아요!"

"나는 아냐..."

아카데미 아이돌 같은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고.

얼굴을 붉혀오는 사내놈들을 볼 때마다 내 자존심에 실금이 그어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여자들도 가끔 그러기는 하던데.

아카데미 학생들이 저번 참사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것 자체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게 내 얼굴에 대한 가십 덕분이길 바란 적은 없었는데.

역시 최대한 빨리 기력을 회복해야겠다.

다른 짓은 하지 말고 먹고 쉬기를 반복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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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칼라인 교수가 들어왔다.

"다들 정숙하도록. 바로 강의를 시작하겠다."

학생들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날 보며 속닥이던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칼라인 교수만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도 마음가짐 자체는 나아진 모양이네.

그거면 됐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으니.

"금일 강의내용은 대마법전과 주의해야 할 제식 마법들에 관한 내용이다. 귀관들이 마법사와 싸울 일은 드물겠지만, 이 또한 모를 일이니 새겨두도록."

교탁으로 걸어간 칼라인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조용해진 강의실 안에 칼라인 교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우선은 근접직에 대해서 이야기할까...기사들에게 마법사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화력은 기사의 갑옷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고, 기사의 검이 닿지 않는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부어오니 말이다. 속박 계통이나 정신에 작용하는 마법들은 대항하기조차 어렵고."

하긴. 난 항마력 덕분에 그런 마법은 오히려 상대하기 편하지만, 다른 녀석들에겐 쉽지 않겠지.

속박에 걸린 상태로 공격 마법이 날아오면 그걸로 인생 끝이고.

"그렇기에 기사들은 항상 마법에 대항할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장비가 없다는 가정하에 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잘 피하면 되지 않을까요?"

학생 하나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떻게든 마법을 피해내며 다가가 접근전을 벌이는 것이다. 허나, 상대와의 거리가 멀다면 그냥 도주하는 편이 낫겠지. 어지간히 재빠르지 않은 이상 그 거리를 좁히는 것 역시 쉽지 않을 테니, 얼간이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나도 그때 마법사 상대로 거리를 줄이느라 고생했었으니까. 일부러 힘을 감춘 상태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 마법사 이름이 뭐였더라...? 케 어쩌구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두 번째 방법은 투척 무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저쪽의 아이샨기오르 왕녀가 첫날 대련에서 보여주었듯이......어?"

그제서야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칼라인 교수가 당혹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 교수 당신까지 그러면 어쩌자고.

"크흠. 그때와 같이 투척 무기를 던져 그 기세로 마법 자체를 흐트러트리는 방식이지. 다만 이 경우 역시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 상대와의 실력 차가 크다면 문제없겠지만, 동수 이상이라면 마법이 투척 무기를 삼켜버리며 그대로 날아올 테니까."

정석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이다.

거기에 단검으로는 상쇄에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장검이나 창을 던져 없애자니 그 뒤로는 맨손으로 싸워야 할 테니.

"날아오는 마법에 던질 단검이 있다면, 차라리 마법사에게 집어던져라. 아마 방벽으로 막아내겠지만, 그러면 그동안 접근하면 될 일이니."

새겨두어야 할 조언이었다.

"그러니 귀관들에게 추천할 방법은 세 번째 대응책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전자의 정신을 교란해라."

칼라인 교수가 강조하듯 교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법은 손잡이 없는 칼을 쥐고 휘두르는 것과 같다. 강력한 힘이지만, 동시에 시전자 자신에게도 항시 위험부담이 따르지. 그러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마법사를 자극하여 시전 중이던 마력의 제어를 실패하게 만들면, 역류한 마력이 그대로 그자를 공격할 것이다."

마법사를 당황시킬 방법이라. 추상적인 방책이기는 한데.

하긴 마법사마다 성격과 반응이 다를 텐데 구체적인 방식이 존재할 리가 없나.

"기억해라. 당황한 마법사는 순식간에 죽는다."

무거운 정적 속에서, 사각거리는 필기 소리만이 이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오늘도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아카데미다운 내용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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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적인 충격은 많이 극복한 모습인 듯 하네요!

역시 사람 죽는 모습에 익숙해진 판타지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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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기생오라비는 3대 독자였다고 합니다.

정말 조상님의 도우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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