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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74화 (74/100)

제 74화

이 편지는 황실에서 시작되어...

"다음은, 마법사가 마법사를 상대할 경우 유효한 전략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경우에는 어떤 마법을 연계하느냐가-"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 뒤로는 딱히 내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녀석들에겐 도움이 되겠지.

제식 마법에 대한 내용은 아는 부분이었다.

군에서 사용하기 위해 절차와 형태를 간략화해 규격화한 기본 마법들.

불화살이나 바람 칼날, 얼음 창과 같은 단순한 투사 마법부터 속박과 방벽까지.

다 한 번씩 겪어본 것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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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난 뒤, 점심식사 전에 세 사람과 짧은 잡담을 나누었다.

주된 화제는 바뀐 커리큘럼에 대해서였지만.

1학년들 역시 외부 파견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도록 바뀐 일이라던가.

"저는 아마 교단의 지시에 따라 치유술이 필요한 곳으로 배치될 것 같아요!"

"하긴 라나는 치유사제니까 그렇겠네. 나나 밀리아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하샬르 넌 어쩌게?"

"글쎄. 나도 일단 아직 생각해보는 중인데."

애초에 아직은 내가 파견을 가야 할 정도로 급한 곳이 없을 테고.

다른 1학년들이야 끽해봐야 트롤이나 코볼트 잡는 일에나 불려 다니겠지.

재수가 없는 녀석들은 북부로 끌려가려나?

그 추운 곳에서 좀 구르다 보면 어엿한 기사로 자라기는 하겠지.

그래봐야 일단 마물들의 창궐이 일어나고 나면, 다들 마물 토벌로 바빠지겠지만.

마물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긴 하지만...수인 습격도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났으니까.

결국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

대비하려 해도 세계 전체가 바뀌는 걸 무슨 수로 대비해.

인재가 아니라 천재, 자연현상에 가까운 일일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충분히 강해져서 데미안과 함께 마물들 중 위협적인 놈들을 없애는 정도겠지.

적당히 이야기를 마치고 특별관으로 도망쳐왔다.

그곳에는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어서.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갈 생각도 안 하고 나를 힐끔거리기 바빴으니까.

내 질린 표정을 본 프리데가 그럴 줄 알았다는 것마냥 웃어댔다.

"어지간히 시달리고 왔나 봐? 표정이 아주 죽을상인데...그러고 있으니 아주 가련해 보이네. 인기 많겠어?"

"젠장할...너는 뭐, 구애하는 남자나 약혼자 같은 거 없냐?"

프리데의 약혼자에 대해 듣게 된다면 그걸 빌미로 놀려 볼 생각이었다.

어째서 나만 남자 관심 문제로 놀림당해야 하느냐.

"없어. 페일룬의 딸이 굳이 정략결혼을 할 필요도 없는 데다가, 아직 내 조건을 만족하는 사내가 나오지 않았거든."

"조건?"

"수인 대전사 일곱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전사. 그 정도는 되어야 페일룬의 데릴사위가 될 자격이 있지 않겠어?"

프리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대전사 일곱이라. 이 시점에 그게 가능한 남자가 있기는 한가?

아, 하나 있긴 하겠네 아마.

"...우리 아버지 소개시켜줄까?"

"중년 유부남에 야만인은 좀..."

프리데가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도 하샬르 너에게 어머니 소리를 듣는 것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

프리데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마치 평생 친구 하나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친해진 동년배와 이야기하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그래...친구가 많은 내가 이해해줘야겠지.....

입을 가리고 웃는 프리데를 모성 어린 따스한 눈길로 쳐다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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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하샬르 님. 아카데미 강의는 어떠셨습니까?"

"악몽이었어."

힘빠진 대답에 나이젤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건 유감이군요. 그러면 오후 강의는..."

"잘 거야."

흑철 장검을 대충 풀어놓고 침대에 털썩 엎드렸다.

푹신한 쿠션감이 지친 몸을 감싸 안는다. 이중으로.

침대의 쿠션은 하나뿐일 텐데 어째서 푹신함이 이중이냐고? 그야 엎드렸으니까 그렇지.

제기랄, 이젠 하나하나가 다 신경 쓰이네.

몸을 돌려 드러누웠다.

깨달았다.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겪어보니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겠어.

내 표정을 살피던 나이젤이 슬쩍 인사하고 물러갔다.

정말이지, 만취할 때까지 술을 들이붓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취했다가 내 몸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대로 대참사가 벌어질 테니까, 빙의한 이후로 술은 입에 댄 적이 없었지만.

그야 그렇잖아.

취한 하샬르가 술주정을 부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다음날 백여 구의 시체를 치우고 있겠지.

깨어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아마 도산검림이거나 지하감옥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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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의 아이돌이 된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대강당에서 춤추며 신나는 공연을 펼쳤다.

수많은 학생들이 형광봉 대신 검을 흔들며 환성을 질렀다.

무대 뒤편에 선 오필리아가 쏘아낸 마법이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나이젤과 밀리아가 양 사이드에서 연신 몸을 회전시킨다.

라나가 폴짝 뛰어올랐다.

레이시는 모두의 한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했다.

그리고 검은 머리의 여자가 앞으로 걸어 나와 격렬하게 춤추며 랩 파트를 열창했다.

학생들의 찬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제발...차라리 망자들이 나오는 악몽을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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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의 가냘픈 여성에 대한 소문은 아카데미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정체와 누군가가 말했던 수선화 여신이라는 발언까지.

그녀의 본래 모습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그러나, 하샬르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들은 이미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야말로 자신들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기에.

그렇기에 소문의 내용은 서서히,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그래도 여신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지나치게 불경한 일이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수선화라는 단어만 남았지만.

바깥의 소문은 마물을 닮은 수인 포식자, 아카데미 내의 소문으로는 수선화 왕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상반된 별명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일주일을 칩거했다.

그 고자새끼 만나면 죽여버리겠다.

프리데는 아예 공녀로서의 체면마저 잊어버린 채 폭소했고, 칼릭스마저 피식피식 웃었다.

아샤는 농담까지 하더라. '갑옷에 수선화 무늬를 새겨도 될까요?' 하고 말이지.

진짜 그랬다가는 그대로 반품하겠다고 했더니, 그냥 해 본 말이라면서 넘어가긴 했지만.

...밀리아와 데미안은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으려나.

만나지 못한 지도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사이 딱히 비약적으로 성장할 일은 없었겠지.

두 사람 다 슬슬 단순한 훈련이 아닌 제대로 된 실전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일주일을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푹 쉬었던 덕분인지 서서히 기력이 돌아오기는 했다.

그래봐야 아직 애매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 속도라면 수여식을 할 때쯤엔 꽤나 회복되어 있겠는걸.

시한부 환자 같았던 외모도 조금 나아졌다.

푹 파였던 뺨에 다시 생기가 돌아와 있었고, 어두웠던 눈매 역시 꽤 밝아졌다. 딱 그 정도가 끝이었지만.

병약한 미녀에서 지쳐 보이는 미녀 수준으로 올라왔으니 이걸 기뻐해야 하려나.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결국 황실에서 새로운 초대장이 도착해버렸다. 그것도 두 장이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운 초대장 겉면에, 각각 레오폴트와 에른스트의 이름이 유려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결국 와버린 건가...그래도, 만나보긴 해야 하니까.

원작 스토리는 첫 단추부터 뒤틀렸고, 이렇게 된 이상 직접 겪어나갈 수밖에 없으니.

봉투를 뜯고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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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샬르 아이샨기오르 왕녀.귀하가 제국을 위해 보여준 헌신적인 분투에 나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소.

서면 보고만을 읽었음에도 귀녀의 용기와 강인한 정신이 내게까지 전해지더군.

그날 귀하가 보여준 용맹스러운 자태와 영웅과도 같은 위업을 떠올릴 때마다, 체통을 잊은 가슴이 철없이 울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오.

그 후유증으로 병석에 들었다는 보고를 전해 듣고 침통함을 금치 못했소.

란덴부르크 변경백이 전하기를, 그래도 한창 건재함을 되찾고 있다 하였으니 이 또한 제국의 홍복이자 천신의 도우심이오.

제국은 귀하의 공로를 영원토록 잊지 않을 것이오. 나 역시 그러하고.

가능하다면 돌아오는 7일, 새로이 탄생한 인류의 달인을 축하하며 귀하와 함께 그때의 일을 논하고 싶소만.

귀하의 답신을 기꺼운 마음으로 기대하겠소.

ㅡ  레오폴트 비텔스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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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샨기오르 왕녀.

수인들과의 전투에서 활약했다고 들었네. 제국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지.

그 논공행상에 대해서, 귀하와 회담을 나눌 필요가 있겠더군.

이유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네. 내 서신의 의미 또한 짐작하겠지.

귀하 역시 동의한다면, 금월 7일 황실에 방문해 나를 찾아오게.

ㅡ 에른스트 비텔스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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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극과 극인 편지들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놓은 레오폴트의 편지와 용건만 짤막하게 적어 무례해 보이기까지 하는 에른스트.

거기에 대놓고 같은 날에 초대하는 건가. 노골적이기 짝이 없네.

누구를 먼저 찾아가는지 지켜보겠다 이건가.

솔직히 어투만 보면 에른스트 쪽이 오히려 나와 성격이 맞을 것 같기는 한데...

1 황자 쪽은 뭔가 나를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기분나빴으니까.

...그래도 일단 레오폴트부터 찾아가 봐야겠지.

애초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레오폴트를 선택할 생각이기도 했고, 연장자 쪽을 먼저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니.

1 황자와 3 황자가 동시에 초대했는데 3 황자를 먼저 만나는 것은, 내가 이미 에른스트를 지지하고 있다는 암시로 보일지도 모르고.

내 의도와는 달리 말이지.

레오폴트 말고 다른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아마도.

에른스트는 모르겠지만 그 어미 이자벨라는 확실히...문제가 아주 많은 여자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아쉽지만 병약 미소녀 하샬르는 여기까지...! 이젠 지친 미소녀 하샬르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괴상한 악몽들도 이제 끝낼 때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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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황족들이 슬슬 등장하겠네요.

이름은 합스부르크 쪽에서 따왔는데 성은 비텔스바흐인 혼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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