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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81화 (81/100)

제 81화

포상 수여식 (2)

"카하르는 확실히 지난 수백 년간 제국의 동부를 위협하는 적이었소. 그러나, 마침내 그들 역시 평화를 선언하며 제국과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진보일 것이오."

황제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이샨기오르 왕녀는 생명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투쟁으로 이를 증명해 보였소. 수인의 삼 할을 몸소 토벌하고 그들의 대전사들마저 쓰러트리는, 믿어지지 않는 업적으로서. 왕녀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수만의 신민들이 더욱 희생되었을 것이니, 그야말로 제도를 구한 영웅이나 다름없소."

대전사를 쓰러트렸다는 소문을 황제가 공식적으로 확언하자, 사람들의 시선에 경탄이 섞였다.

내가 활약했다는 이야기야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대전사를 토벌했다는 정보는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왕녀에게는 제국의 기사직위와 1급 무공 훈장, 거기에 달인의 칭호를 하사하겠소. 수인의 대전사를 단독으로 토벌한 것으로 새로운 달인의 탄생을 증명하였으니. 이는 인류의 전력이 가일층 진보한 쾌거이자, 신들께서 제국에게 내린 축복이오."

"감사합니다."

제국의 축복이라. 모여있는 이들에겐 의아할 이야기였다.

카`하르에 달인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카`하르들에게 내린 축복이지 딱히 제국의 축복은 아니니까.

"이 자리를 빌려, 금일부로 제국 황실은 아이샨기오르 왕녀를 명실상부한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음을 선포하겠소. 그것은, 왕녀의 업적에 대한 감사의 뜻만이 아니라, 그 혈통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내린 결정이오."

사람들의 의문을 느낀 것인지, 황제가 해명하듯 말을 이었다.

"왕녀의 혈통 절반은, 제국 귀족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삽시간에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하기야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그것도 제국인과의 혼혈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지 못했을 테니까.

내 외모는 혼혈답게 보통의 카`하르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지만...아마 카`하르는 다 이렇게 생긴 줄로만 알았겠지?

동부라면 모를까 제도 사람들이야 카`하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시피 하니.

"왕녀의 어머니는 본래 제국의 귀족, 메디안 가의 영애였소. 지금은 안타깝게도 몰락해버린 제국의 남작가, 메디안 가의 마지막 후계자... 따라서, 짐은 하샬르 아이샨기오르 왕녀에게, 메디안의 성과 남작의 작위를 되돌려주고자 하오. 그러니 이에 반대하는 이는 없으리라 믿겠소."

대중들의 반발은 없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야 뭐, 황제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대놓고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높은 작위도 아니고 그저 남작위 정도를 가지고 말이지.

"그렇다면 다들 박수로 환대해주시오. 제국의 피를 이은, 쉰두 번째 달인의 탄생을."

황제가 나를 일으키더니, 대중의 눈앞을 향해 내세웠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가급적 호의적으로 보이도록 웃었다.

돌아오는 눈빛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경탄. 안도. 감사. 동경. 애욕. 의혹. 당황. 불신. 기대.

영웅을 보듯이 동경 어린 아이들의 시선. 여전한 적의를 애써 억누르는 데인 출신들의 눈동자.

내 외모에 감탄하는 여성들의 찬사와. 음습한 욕구가 담긴 몇몇 사내들의 게슴츠레한 눈매까지.

끈적한 애욕만 빼면 나머지는 감내할만한 것들이었다.

충성 서약은 없었다.

명예 귀족 작위를 받는 것과 황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바치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니까.

후자는 타국의 왕녀 신분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수여식이 마무리되었다.

황제의 마무리 연설을 끝으로, 모든 공식 행사가 막을 내렸다.

광장 앞에 모여 있던 이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삼삼오오 흩어졌다.

그 뒤로 이어질 것은 오직 귀족들만의 회담이었기에.

연회는 아니었다.

장례 미사가 끝나자마자 연회 같은 것을 열었다가는 민심이 시궁창에 처박힐 테니까.

그저 대성당 안에 들어선 몇몇 귀족들끼리 서로 모여서, 현안에 대한 논의를 하거나 새로운 얼굴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제도 귀족들 전체가 모이는 무도회가 열리긴 할 계획이라지만, 그건 오늘이 아닌 나중에 있을 일이라 한다.

제도의 완전한 회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기념일에 맞출 계획이라던가.

지금은 일단 뒷수습만 마무리한 상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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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회담에 초대되어 대성당 내부로 안내되었다.

성당의 내부는 화려함을 넘어서 찬란하기까지 했다.

팔각 구조의 바닥마다 아치 형태의 벽이 솟아올라 천장의 돔을 지탱했다.

이층 높이의 벽면에 평범한 유리창 대신 색을 입힌 유리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성화들이 현란한 빛을 발했다.

드높은 천장의 돔에는 카롤루스 대제와 열두 기사들의 업적에 관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본래라면 두 줄로 늘어서 있었을 긴 의자들은 임시로 치워버린 것인지, 중앙 공간은 비어 있었다.

다양한 귀족들이 제각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제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두 황자만이 남아 있었다.

두 파벌의 귀족들이 각각의 황자 곁에 모여들었다.

루드비히 후작과 비엔 공작은 대주교 둘과 함께 성당의 한쪽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는 귀족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제후 넷이 대체 무슨 환담을 나누는지 다들 궁금하기야 하겠지만, 감히 저들 사이에 끼어드는 만용 따위는 부릴 수 없을 테니까.

프리데는 구석에 서서 와인을 홀짝였다.

다른 귀족들의 파벌 문제에는 관여하기 싫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기에 굳이 그녀에게 접근하는 이도 없었다.

페일룬은 그저 중립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기에.

아샤는 신흥 귀족들에게 가 자신의 사업 계획 따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좋은 선택이네. 저들은 자본의 힘으로 새롭게 귀족 직위에 오른 자들이니만큼, 돈이 될 만한 이야기에 민감한 이들이니까.

에드가는 교단 소속의 인원들에게 향했다.

레이시의 연설에 감동받았다나 뭐라나. 종교쟁이들의 감성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나는 데미안과 밀리아를 데리고 성당을 구경했다.

내버려 두면 이상한 귀족 놈들이 이 둘을 노리고 꼬여 들지도 모르니까. 특히 밀리아를.

다행히 노골적으로 접근해오는 이는 아직 없었다.

내가 말 걸지 말라는 인상을 팍팍 풍기고 있었던 덕분일까.

무도회라면 춤이라도 추자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놈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은 그런 장소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여전히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놈들이 있기는 했다.

"온통 반짝반짝하네...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밀리아는 이 자리가 영 어색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옷자락을 고치거나 연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솔직히 꽤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른 세상이 맞기는 하지. 성국에 있는 총 교구를 제외하면, 이곳보다 화려한 성당은 아마 어딜 가도 없을걸."

설정상으로 말이야.

"그래...? 의외로 잘 아네?"

"...책에서 봤어."

적당한 변명을 주워섬겼다.

책 읽는 야만족이라니, 오크 발레리나만큼이나 희귀한 존재겠지만.

그러고 보면 오크는 이미 멸종한 세계였던가.

"화려하긴 하네."

데미안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 역시 이런 장소는 그다지 익숙지 않을 텐데도.

참 특이한 성격이야.

나중에 토벌 파견 임무들이 늘어나게 되면 같이 다닐 생각이었으니, 그때가 되면 성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기회도 늘어나겠지.

지금에야 마땅한 적이 없어서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데미안을 성장시키는 것은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과업이었다.

먼 훗날을 생각한다면 성검이 반드시 필요해질 텐데...정작 성검을 쓸 수 있는 건 용사로 선택받은 자밖에 없으니.

다시 말해서, 데미안 말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뒤랑달 하나 믿고서 나 혼자 헤쳐 나갈 정도로 만만한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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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구경하고 있었을까, 하필 레오폴트가 나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제국의 새로운 달인을 모두에게 소개하겠다면서.

...그래. 확실히 적당히 친한 척을 해달라고 했었지.

에른스트가 옆에 떡하니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날 부르는 건 좀 노골적이긴 하지만.

에른스트 쪽을 흘끗 쳐다보니 '그러면 그렇지'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뭐. 저쪽도 이미 짐작 정도는 했을 테니 상관없겠지.

"프리데, 이 두 사람 좀 잠시 맡긴다. 날파리들이 들러붙지 않도록."

"어? 뭐? 야, 잠깐만. 지금 나한테 뭘-"

"그럼 부탁해-!"

당황해하는 프리데를 재빠르게 지나치며 레오폴트에게 향했다.

일단 저렇게 붙여 놓으면 데미안이 적당히 알아서 처신하겠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까.

레오폴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 얼굴을 가까이서 목도한 주변의 귀족들이 경탄했다.

"공식적으로 제국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하오. 하샬르 메디안 아이샨기오르 왕녀."

"전하의 환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를 부르신 연유를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야만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유창한 존대어에 귀족들이 놀란 듯 움찔거렸다.

"공적인 자리라고는 하나, 그리 격식을 차릴 필요까지는 없소. 왕녀는 내 친우이니. 편히 말씀하셔도 좋소. ...너무 편하게는 말고."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주변 귀족들이 크게 웃었다.

아마 진담일 텐데 저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셨다면 기쁘겠네요!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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