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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87화 (87/100)

제 87화

데미안은 개처럼 굴려야 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온 세상이 정적에 빠져들었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일시에 내게 집중되었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조금 당황스러워하던 학생들이, 이내 납득한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

"크흠...!"

칼라인 교수마저 헛기침을 내뱉으며 실소를 흘렸다.

데미안 저 배은망덕한 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돌봐줬는데, 이런 개망신을 줄 줄이야.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나온다더니 내가 왜 튀어나오는데.

"아니 저 자식이..."

"하, 하샬르? 그, 데미안도 딱히 악의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닐 거야. 훈련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던 거겠지...!"

밀리아가 애써 데미안을 변호했다.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일단 잘 지켜보도록. 달인의 전투를 구경할 좋은 기회일 테니."

교수의 말에 그제서야 학생들이 화면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당황한 듯 주춤대던 데미안이 이내 대검을 치켜들었다.

씨익 웃은 내 환상이 데미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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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인 교수의 말은 잘못되었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장검과 대검이 충돌한 순간 대검이 그대로 베여나갔다.

예리함이 아닌, 막강한 힘으로 파고들어 으깨듯이.

"윽...!"

뒤이어 왼손이 뻗어나간다. 불길함을 머금은 진홍빛 기운을 가득 휘감은 채.

데미안이 황급히 반토막 난 대검을 들어 막아내려 시도했다.

폭음과 함께 검신이 터져나간다.

열차에라도 들이받힌 것처럼, 데미안의 몸이 후방을 향해 발사되었다.

그 속도는 발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수십 미터를 날아간 데미안이 피를 토하며 격렬하게 바닥을 굴렀다.

산산조각난 금속 파편들이 초원 여기저기에 박혀 들었다.

...내가 직접 쳐 날려도 저 정도는 아니다.

저거 아무래도 살업의 힘을 써도 제대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약해! 버러지같이 약하구나!"

말도 하네.

내가 할 법한 대사는 아니긴 하지만.

"커헉...! 커흑...!"

데미안이 쓰러진 채 피를 토해냈다.

한 바가지는 될 법한 토혈이 바닥에 쏟아진다.

피 웅덩이 속에 내장 조각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수십 번 반복된 마물의 공격보다 저 일격의 데미지가 더 크겠는걸.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낸 데미안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그래봐야 대검은 이미 박살 나 손잡이만 남았지만.

"내장 몇 개는 터져나갔을 텐데 잘도 일어나네? 그건 마음에 드는걸. 그럼 어디, 언제까지 서 있을 수 있을지, 한번 확인해볼까!"

환상이 달려든다.

잔상과도 같은 안광을 남기면서.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그것도 상대가 쉽게 죽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한 선율과도 같은.

팔을 내뻗으면 똑같이 주먹으로 맞받아친다.

데미안의 손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가루처럼.

다리를 휘두르면 발끝으로 쳐낸다.

데미안의 다리뼈가 으스러졌다. 오른 다리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자, 자! 이제 팔다리가 한 짝씩 남았구나! 어쩔 테냐!"

내 환상은 연신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고양이가 먹잇감을 가지고 놀듯이, 상대를 천천히 괴롭히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고기 다지는 소리와 함께 데미안의 몸이 농구공처럼 튀어 다녔다.

잘한다, 진짜 하샬르...!

아니,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저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지. 환상이니까. 내가 진짜고.

그러면 가짜 진짜 하샬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저 배은망덕한 녀석을 나 대신 마음껏 두드려주렴.

"하샬르...?"

너무 신나게 관람하고 있었던 걸까, 밀리아가 슬쩍 내 쪽을 쳐다보았다.

"음, 역시 데미안이네. 근성이 아주 뛰어난걸, 안 그래 밀리아?"

"그, 그런가...?"

밀리아가 난감하게 웃으며 내 눈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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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 데미안이었던 물체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십여 분 정도일까.

버티다 못해 절명한 데미안을 내 환상이 즐겁게 내려다보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악몽이 끝을 맞이했다.

누워있던 데미안이 벌떡 일어나 헬멧을 벗었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으나, 공포에 질려 몸을 떨지는 않는 의연한 모습이었다.

정신력 하나는 역시 훌륭하네.

마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다시피 한 것처럼.

"...고생 많았다. 설 수 있겠나?"

칼라인 교수의 목소리에 안쓰러운 감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저런 목소리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나.

"네. 괜찮습니다..."

잠시 고개를 흔든 데미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괜찮아 데미안...?"

"그래...솔직히 힘들긴 했지만, 이젠 괜찮아."

데미안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밀리아가 손수건을 꺼내 데미안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연노랑색 천자락이 짙게 물들었다.

"뭐, 잘 싸우긴 하더라. 마지막에 내가 나온 부분은 아직도 납득이 안 가지만."

"하하..."

데미안이 멋쩍은 듯 얼버무리며 웃었다.

뭘 웃고 있어 이 자식아.

"소모전을 벌여 사령종 토벌에 성공한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실전이었다면 후퇴가 추천되는 상황이었지만...때로는 물러날 수 없는 전투도 있는 법이니. 다만, 목을 벤 후 한순간 방심했던 부분이 아쉽군. 기억해두도록. 사령종에게는 물리적인 급소가 없다."

칼라인이 담담하게 전투내용을 평가했다.

"네 번째 전투는...딱히 할 말이 없군. 그건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으니."

몇몇 학생들이 킥킥대며 조용히 웃었다.

그래...그야 웃기긴 하겠지.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가 나온다더니, 자주 붙어 다니는 친구가 나온 셈이니까.

턱을 괸 채 데미안을 흘겨보았다.

데미안이 은근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화 안 났으니 이쪽 봐라 데미안. 진짜 화 안 났다니까?

...결국 끝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더라.

밀리아만이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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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실습들은 특별할 것 없었다.

에드가는 나름대로 선전했다.

성기사 지망생이니만큼, 사령종의 수복을 막아버릴 수 있었으니.

희뿌연 성광이 어린 검이 마물의 몸을 연신 베어나갔다.

결국 근본적인 실력부족이 발목을 잡았지만.

데미안과 달리, 에드가는 아직 마물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낼 기량이 모자랐으니까.

촉수에 안면을 꿰뚫린 에드가가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졌다.

밀리아는 유감스럽게도 상성이 너무 나빴다.

차라리 첫 상대가 오거였다면 무리 없이 이겼으리라. 그러나 트롤은 무리였다.

활이나 세검같이 찌르는 무기는 상처부위가 작은 편이고, 출혈 역시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으니.

화살의 경우엔 특히나. 박힌 화살을 억지로 뽑아내지 않는 이상 피가 거의 흐르지도 않으니까.

내가 쓰는 활이라면 일순간 무력화시킬 수는 있겠지만...밀리아의 활 자체는 그렇게까지 강궁은 아니었고.

"크아아아아!"

수백 대의 화살이 박혀 고슴도치로 변한 트롤이, 그럼에도 여전히 날뛰는 모습에 밀리아가 신음했다.

재생한 살점에 밀려 빠져나온 화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밀리아가 패색이 짙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트롤의 공격 따위에 당할 정도로 둔한 몸은 아니었으니까.

꿈속이기 때문인지 화살이 바닥날 기색도 없었고.

상처 입지 않는 자와 상처 입어도 소용없는 자.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결국 체력의 차이였다.

"앗...!"

지쳐서 발을 헛디딘 밀리아를 향해 트롤의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그 뒤 벌어진 광경은...

음, 솔직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가 아닌 허리를 얻어맞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져버렸어..."

"상성이 워낙 나빴으니까 어쩔 수 없지. 고생했어 밀리아."

"트롤 상대로 활로 싸우려면 궁리를 좀 해야겠지. 결정타가 부족하니까."

데미안과 내가 시무룩해진 밀리아를 위로했다.

마법 걸린 활을 쓰거나...아니면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릴 거대 화살을 쏘거나 하면 되겠지 아마.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다음 차례는 오필리아였다.

오필리아는 트롤과 오거를 바람 칼날로 난도질해 해치우더니, 마물이 나오자마자 손가락 끝을 자기 가슴으로 향했다.

픽,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 뚫린 심장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래, 전력을 다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기도 싫고, 추하게 죽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다 이거구만.

칼라인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장에서 고상한 최후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명심하죠."

적당히 대답한 오필리아가 자리로 돌아갔다.

내 쪽에 시선을 한 차례 던지면서.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나 보지?

제 언니와 관련된 문제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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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것으로 강의를 마치겠다. 귀관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MT-V를 이용한 실습은 충분한 효율성이 증명된 것 같군. 마법학부에 감사를 표해야겠어."

아무래도 이 나만 못하는 수업방식이 정규 커리큘럼으로 정착되기라도 할 모양인데.

확실히 효과 자체는 뛰어나 보이니까.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면서도, 정신적 충격을 제외하면 상처 하나 없는 훈련.

예행연습으로 이만한 수단도 달리 없겠지.

칼라인 교수가 강의실을 떠나가자, 학생들 역시 제각기 모여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중에 봐 하샬르."

"그래. 밀리아도 식사 잘하고. 아, 그리고 데미안. 너는 앞으로 특훈이다. 이유는 알고 있겠지?"

"어..."

맥없이 대답한 데미안이 밀리아와 함께 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나를 찾아올 녀석이 있을 테니까.

"잠시 이야기 좀 괜찮을까?"

거 봐.

오필리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전에 비해 다소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안될 것 없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야."

"그리 길지는 않을 거야.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좀 따라와줬으면 하는데."

"그러지."

오필리아가 강의실을 나섰다.

나는 담배 한 대를 꺼내며 그녀를 뒤따라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공모전 본선기한이 종료되었습니다...! 과연......!

물론 연재는 계속됩니다!

상을 받든 떨어지든, 20일 이후에는 플러스로 가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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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개처럼 털렸습니다...!

그야 달인은커녕 아직 프리데급에도 오르지 못한 녀석이, 숙련된 달인을 상대로 전투가 성립할 리 없잖아요?

그의 각성 이벤트는 대체 언제쯤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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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원작 보스로 나오는 헤르셀라는 저 상태보다 월등히 강합니다.

6년 후인 데다가, 이미 달인을 넘어 영웅의 경지에 올라 있었으니까요!

그 시점의 주인공도 영웅급이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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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 이름이 수정되었습니다!

제국은 불어, 마도구는 라틴어를 썼으니 manipulate tantibus-visor, MT-V로 변경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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