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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90화 (90/100)

제 90화

가자, 장미관으로

사흘 후 아침, 숙소 앞에 마차 한 대가 찾아왔다.

딱히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마차였다.

내부가 완전히 가려져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레오노르인가. 아무래도 남들 눈에 띌 일은 피해주려는 모양이지. 고마운 일이야.

창밖으로 마차를 내려다보며 슬쩍 웃었다.

이자벨라의 초대를 거절한 이상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겠지만...

레오노라가 그런 수작질을 벌일 성격은 아니고, 설령 정말 함정이라 해도 더 이상 문제 될 건 없었다.

해볼 테면 어디 한번 마음껏 해 보라지.

한 손으로 주물럭거리고 있던 장난감을 툭 내던졌다.

찰흙처럼 구겨진 단검이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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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과 흑철 장검을 갖춰 입고, 나이젤과 함께 마차로 향했다.

마부가 문을 열어주었다.

평범한 하인처럼 위장하고 있었지만, 묘한 기품이 배어있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는 사내였다. 드러난 피부 역시 말끔했고.

아마 레오노르의 측근 같은 녀석이겠지.

"그러면, 저는 마부석 쪽으로-"

"아닙니다. 두분 다 안으로 드시지요."

마부석으로 향하려는 나이젤을 사내가 가로막았다.

그야 당연하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위장까지 하고 왔는데, 마부석에 여기사 하나가 떡하니 앉아있으면 무슨 소용이야.

나이젤과 함께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이네?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야."

"이쪽이 본모습이라고 해야겠지. 그때 그건 병자의 몰골이고."

레오노르 황녀가 씨익 웃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승마복과 비슷한 차림새였다.

오늘의 대련을 꽤 기대한 것인지, 날 반기는 눈빛이 반짝거렸다.

"비텔스바흐에 무궁한 영예를. 란덴부르크의 기사, 나이젤이 예를 올립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녀 전하."

나이젤이 그녀에게 정중히 경례했다.

"말로만 듣던 변경백의 검이네. 황실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열 명이나 되는 달인들로 뭘 할 생각인지 다들 궁금해하던걸? 일단 너도 거기 앉도록 해."

"실례하겠습니다."

나이젤과 함께 황녀의 맞은편 좌석에 걸터앉았다. 쿠션이 제법 푹신했다.

마차의 문이 닫히고, 이내 조금씩 흔들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오노르 황녀의 개인 별장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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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몸은 다 회복된 건가? 기세가 천지차이긴 한데."

"그렇다고 봐도 되겠지. 평소에 느껴지던 탈력감이 싹 사라졌으니까."

근육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고, 감각도 멀쩡한데다...아까 시험해보니 업의 발동 역시 문제없었으니.

나탈리아와 싸울 때의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힘은 아무래도 나 자신의 힘뿐만이 아니라, 뒤랑달이 도와주었다던가 그런 거겠지.

주인의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무기라.

솔직히 맹세의 검이니, 뒤랑달이니 하는 이름값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 효능은 있을 법하잖아.

"다행이네. 연회 이후로는 이렇게 만나기 어려웠을 것 같았는데. 어머니의 초대장을 거절했다며."

"음..."

살짝 말을 흐렸다.

그야 나는 네 가족의 적이라고 확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으니까.

내 반응을 난감함의 표출이라 받아들인 것인지, 레오노르가 히죽 웃었다.

딱히 그거 가지고 비난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듯.

"현명한 선택이야. 모처럼 만난 기사다운 상대가, 창녀로 전락하는 꼴은 정말이지 역겹거든."

어라, 그녀도 알고 있었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거 아마 이자벨라의 치명적인 비밀일 텐데.

"무슨 의미인지...잘 모르겠는데. 초대에 응했다면 내 신변에 큰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뜻이 맞나?"

"그래. 아마 귀족들이 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 장난감이 되었겠지. '에른스트파의 결속을 위한 선물'쯤으로 말이야. 그것도 불만 없이 자진해서. 방법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이 특기거든."

레오노르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이자벨라는 그런 여자니까.

미색이 뛰어나고 이용 가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편으로 두기에는 불안한, 그런 상대들을 초대해...망가트리지.

귀족가의 영애나, 젊은 여기사, 때로는 아카데미의 학생까지.

약물을 사용해 무력화하고 미약에 절인 뒤, 마약 등으로 자아를 뒤틀고 정신을 으깬다.

그 뒤에 세뇌 마법까지 걸어 자신에게 복종하는 인형으로 만들고는, 비밀 난교회를 열어 휘하귀족들의 접대부로 써먹는 거지.

본인은 그 꼴을 구경하는 것이 취미고.

에른스트파의 터부이자 잘 감춰온 비밀 중 하나였다.

레오노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황제조차 이미 망가트린 여자가, 자식만은 내버려 둔 건가.

"불쾌한 이야기이긴 한데, 그런 말을 내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 맞아? 당장 레오폴트 황자에게 달려가라는 뜻쯤으로 들리는데."

그래. 자기 어머니의 악행을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그 소리를 들은 여귀족이라면 누구라도 레오폴트파에 투신할 텐데.

에른스트와 이자벨라가 몰락한다면, 결국 레오노르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테고.

거기까지는 아예 생각하질 않은 건지...

아니면 자기 입장을 납득하고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자벨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알 게 뭐람. 어차피 우리 말고는 듣는 귀도 없잖아? 떠들고 다녀봐야 그런 걸 누가 믿겠어. 어머니도 모함이라고 일축하겠지. 거기에, 넌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고."

"그야...그렇긴 하지."

증거도 없는 이야기에, 말해봐야 내 처신이 변할 리도 없다 이건가.

"......"

나이젤은 침묵을 지켰다.

지독한 혐오감을 느낀 것인지 미간에 한가득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그 이상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변경백 본인도 아니고 그 휘하의 기사가 이런 대화에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자칫 주군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었다.

"일단 고맙다고 할게. 상상만 해도 오싹한 이야기였으니까."

"좋아. 그러면 구역질나는 화제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대련에 관한 이야기라도 할까. 일단, 대련장소는 교외에 세워놓은 내 별장이야."

레오노르가 다시 미소지었다.

"원래는 우리 애들이 훈련하는 장소지만...오늘은 대부분 비번이라 거의 비어있지. 거기라면 내 측근 말고는 보는 눈이 없으니 마음껏 싸워볼 수 있을걸? 내가 너와 대련했다는 소식 정도야 결국 알려지겠지만."

대련 이야기로 되돌아가니 목소리에 생기가 펄펄 넘치네.

눈밭에 뛰어드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

생김새나 이름은 개가 아니라 고양잇과지만.

"규칙은 어떻게 할 거지? 무장이나 승패 같은 것들 말이야."

"갑옷은 상관없지만, 무기는 목검을 써야 할 거야.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어. 서로 큰 상처라도 입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될 테니."

나는 전혀 유감이 아닌데.

그래. 역시 대련이라면 목검을 써야지. 다짜고짜 진검을 들이대던 나이젤이 이상한 거야.

갑옷은...딱히 필요 없으려나. 대련할 때는 벗어두어도 되겠지.

"승패는 뭐, 어차피 내가 이기기는 힘들 테고, 지도 대련에 가까우니 이쪽이 지칠 때까지 부탁해도 될까?"

"그 정도라면야. 좋은 조언도 해 주었으니까."

어차피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내게 이 정도 호의를 보였으니 나도 마땅히 돌려주어야겠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기대되는걸."

레오노르가 키득대며 웃었다.

나 역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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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사십 분쯤 지난 뒤였다.

"도착했습니다, 황녀님."

마부를 맡고 있던 사내가 마차의 벽을 두드렸다.

"그래. 수고 많았어 펠. 자, 나가자."

문이 열리고, 펠이라 불린 마부가 마차에서 내리는 황녀를 맞이했다.

"그래서. 여기가 바로 내 별장, 일명 장미관이야. 어때?"

레오노르가 뒤쪽에 자리한 건물을 자랑하듯 가리켰다.

솔직히 말해서 창녀촌 같은 이름인데.

...그렇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고.

"생각보다 크네."

"그야 기사단이 훈련하려면 이 정도 공간은 필요하니까."

별장보다는 차라리 훈련소나 막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장소였다.

마주 보듯 세워진 두 채의 건물 사이에, 드넓은 연병장이 마련되어 있다.

한 채는 여기사들을 위한 것인지,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의 이층 건물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세련되어 보이는 디자인.

벽 한쪽에 나란히 늘어선 창문 역시 별다른 장식 없이 담백한 형태였다.

반면, 맞은편 저택은 레오노르 황녀를 위한 것인지 꽤 화려했다.

대리석 벽은 장밋빛으로 칠해져 있었고, 지붕의 첨탑들과 아치형의 기둥들이 조형미를 뽐냈다.

옆에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핀 자그마한 정원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레오노르의 장담대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멀찍이서 이쪽을 향해 경례를 건네는 여기사 둘. 아마 애칭이겠지만 펠이라 불리던 남자.

그리고...저택 안의 인기척이 넷. 시종들이려나.

남자의 안내에 따라 저택 안으로 향했다.

"대련은 저택 안의 개인 단련실에서 진행해도 되겠지?"

"좁은 곳이라면 좀 부서질지도 모르는데."

돌벽 따위야 일격이면 부스러질 테니까.

"흐음. 그건 괜찮을 거야. 별장을 만들 때부터 지하 전체를 파서 단련실로 만들었으니까."

"그 정도 넓이면 괜찮겠네."

한 층짜리 지하실이라니.

아예 토대 자체를 땅속 깊이 파묻은 상태로 지어 올린 건물이라는 뜻이네.

그렇다면 이 별장은 반지하라고 할 수 있겠군.

제국에서 가장 비싼 반지하 건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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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실은 의외로 쾌적했다.

지하실 특유의 습한 공기나 꿉꿉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마법이란 참 유용하구나.

백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

사방의 벽과 천장은 화강암으로 도배한 것인지 흰 암석에 검은 무늬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 정도면 파손을 염려할 필요는 없겠네.

이곳까지 들어온 것은 나와 나이젤, 레오노르뿐이었다.

레오노르의 명령에 펠인가 하는 남자는 돌아갔고, 다른 이들의 출입도 그녀가 금지했으니까.

나이젤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한 역할이었다.

"바로 시작해도 되겠지?"

레오노르가 장검을 풀어 벽에 기대어 놓고, 나무로 만든 장검 두 자루를 집어 들었다.

갑옷은 입지 않을 생각인지 승마복 차림 그대로.

나 역시 벽 한쪽에 검과 갑옷을 풀어놓았다. 장갑과 정강이받이까지.

천 상의와 가죽 바지만 남기고 전부 다.

저쪽이 갑옷 하나 없는 맨몸인데, 내가 갑옷을 둘둘 말고 있으면 웃기잖아.

"그래. 준비 끝났어."

레오노르에게 건네받은 목검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때의 나이젤처럼.

이게 기사의 예라고 했던가.

"메디안 가의 주인, 하샬르 아이샨기오르다."

그래.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멋있었거든.

그 뭐냐, 남자의 로망 같은 거지.

레오노르가 동일한 예를 표하며 화답했다.

"장미십자기사단의 기사단장. 레오노르 비텔스바흐. 부디, 잘 부탁한다고!"

말을 마친 레오노르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내일은 일요일이에요!

일요일...

벌써 일요일...!

일주일이 참 빠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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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악행 중 일부가 밝혀졌네요!

무서운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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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처음에 문장간격 수정하느라 비공개회차로 올렸다가 원래대로 고치지 않은 것을 10분이나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어쩐지 댓글이 하나도 없더라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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