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화
무도회의 후일담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것이..."
나이젤이 알려준 내 행각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발코니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던 와중에, 길버트 번스타인 자작이 그쪽으로 향하더니...조금 후 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고.
그때까지는 다들 만취한 번스타인 자작이 누군가와 조금 시비가 붙었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 케네스의 부상을 항의하러 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들?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데? 애초에 케네스가 누구야?"
"그...하샬르 님께서 예전에 중상을 입혀 자퇴시킨 마법사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듣고 보니 그런 녀석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나한테 야만인 운운하다가 머리가 깨질뻔한 녀석 아닌가?
"아, 그 녀석. 생각났어. 분명히 치료는 다 되었을 텐데 이제 와서 따지러 오다니.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나?"
"제가 듣기로는 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만 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고..."
"......"
따지러 올 만하기는 했네. 그쪽의 자업자득이긴 했지만.
나이젤이 말을 이어갔다.
발코니의 창문은 닫혀 있었고 연회장 내부 역시 환담소리로 가득했기에, 자세한 대화내용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못 가 목이 돌아간 자작의 시체가 발코니 아래로 추락했으니까.
황실에서 간신히 뒷수습한 덕분에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다들 알고 있으리라.
굳이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지.
나이젤이 말하기를, 일을 저지른 자가 내가 아니었다면 감히 황궁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상 즉각 붙들려 처형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나.
...뒷수습해준 황실에게 감사해야겠네.
날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훈장까지 내리며 상찬했던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 그랬다지만 말이야.
그렇게 연회가 잠시 중단된 사이, 대충 사태를 수습한 레오폴트 황자가 곯아떨어진 나를 프리데에게 맡겨 돌려보냈다고 한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듣기만 해도 두통이 이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니, 어떻게 와인 딱 한 잔에 그런 사고를 치냐? 믿을 수가 없네.
역시 술은 입에도 대지 말아야겠다...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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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결투장은 어쩌지?"
번스타인 가에서 보내온 서한을 내려놓으며 나이젤에게 물었다.
솔직히 받아주기 영 꺼림칙한 결투 선언이었다.
아무리 그 녀석의 자업자득이라지만...자식을 폐인으로 만든데다가, 이를 항의해온 아비를 죽이기까지 한 일은 역시 양심에 찔렸으니까.
"무시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실제로 벌어질 수 없는 결투입니다."
나이젤이 영문 모를 말을 꺼내왔다.
실제로 벌어질 일 없는 결투라고?
그럴 리가. 필체만 봐도 원한이 그득그득 묻어나오는데.
"그건 또 무슨 뜻인데?"
"하샬르 님과 결투가 성립하려면 최소 달인급 실력자가 필요할 터인데...번스타인 가가 그런 이를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구한다 할지라도 결투는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제국은 달인과 달인 간의 결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니까요. 둘 중 누가 이기더라도 인류는 달인이라는 귀중한 자원 하나를 상실하는 셈이니."
듣고 보니 확실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제국 기사단과 선제후들의 사병을 통틀어 오십 명 정도뿐인 달인을, 사적인 분쟁으로 잃어버리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겠지.
요즘처럼 세상이 뒤숭숭할 때는 더더욱.
"거기에 황실이 실족사로 발표한 일을 명분으로 삼은 것 자체가, 황실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역한 것이니...오히려 그쪽에서 최대한 빨리 결투 신청을 취소하고 사과를 전해와야 마땅한 일입니다."
"서한을 보면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던데. 취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나이젤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썩 듣기 좋은 결말은 아니라는 듯이.
"로얄 가드 몇 명이 비밀리에 번스타인 영지로 파견될 겁니다. 얼마 못 가, 가문에 닥친 불운을 견디지 못한 번스타인 일족이 저택을 불사르고 자결을 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겠죠."
조금 섬뜩한 이야기였다.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을 말하듯, 단정적인 어조였기에 더욱이.
그래. 아마 나이젤의 말대로 되겠지.
권력자의 의향에 반하는 짓을 행한 자가 자살당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으니.
황실의 입지가 예전보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그래도 자작가 따위와 비할 바는 아니니까.
자신의 모국, 대한 공화국의 총통 역시 그러했다.
붉은 연맹이나 통일유럽제국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게 올바른 일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조금 과한 응보 같은데.
자작이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결국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멸문당하는 셈이니까.
"글쎄요. 올바름이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 거기에 대원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황실 입장에선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 여기는 것이겠지요."
"네 기준으로는 어떤데?"
"바르지 않은 소행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허나, 옳은 일입니다. 일개 자작가조차 황실의 뜻을 무시할 정도로 황실의 권위가 낮아진다면...결국 제국에 혼란을 불러올 뿐이니."
칼 같은 대답이었다.
역시, 기사답네. 여러모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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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이 날아온 것은 번스타인 자작가만이 아니었다.
루드비히 후작은 '큰 사고를 일으키지는 말아 달라고 했네만, 정말 아슬아슬하게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일을 벌이더군.'이라며 가벼운 질책을 전해왔다.
레오폴트 황자는 뭘 착각한 것인지, 제국의 공식적인 결투 방법과 절차가 쭉 적혀있는 편지를 보내왔고.
이자벨라 황후에게서도 서한이 와 있었다.
이번 실족 사건으로 소란이 벌어진 일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과 연회장의 술은 취향에 맞았냐는, 비꼬는 것인지 뭔지 알기 힘든 내용이.
그리고 프리데가 찾아왔다.
"내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겠어?"
프리데가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음...고생 많았겠네?"
"사과를 하라고, 사과를...! 하아아아..."
발끈하던 프리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프리데도 고생하긴 했겠지.
자기랑 같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이 대형사고를 치고 뻗어버렸으니까.
"귀찮은 놈들 좀 피하려다가 이게 무슨 망신인지...앞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마."
"그야 나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이건 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니 말이지. 아무튼 데려다준 건 감사해야겠네."
"당연히 감사하셔야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프리데가 진저리 치며 말을 이었다.
"음? 그건 또 뭔 소리야? 누가 습격이라도 했었어?"
"네가 습격했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너 잘 때 옆 사람 끌어안는 버릇 있더라."
...그런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 세계에서나 저쪽 세상에서나, 항상 혼자 잠들었었으니까.
"몸을 빼는 게 한순간만 늦었어도 척추가 박살 날 뻔했어."
"세상에."
일반적으로는 귀여운 편에 속하는 잠버릇일 텐데.
이 몸으로 해 버리면 끔찍한 살해 기도가 되어버리는구나.
"아무래도 너는 정말 혼자 살아야겠네. 연인을 죽이는 게 취미가 아니라면."
"...그러게 말이야."
다행인 걸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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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이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나흘 후, 번스타인 가에서 보낸 새로운 서신이 도착했다.
실족사로 사망한 가주의 죽음을 내 책임으로 돌린 것을 사죄하며, 자신의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원한보다 현실을 택하여 남은 가족이라도 지키기로 한 걸까.
나는 조금 씁쓸한 감정에 잠겨든 채, 편지를 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결국 나이젤 네 말대로 되었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는 걸까...길버트 자작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진심이십니까...?"
나이젤이 경악했다.
아니 어째서?
"그야 당연히 진심인데? 자작은 몰라도 그 부인은 불쌍하긴 하잖아."
케네스는 자업자득이고 길버트도...아마 그렇겠지만, 자작부인은 아닐 테니까.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나이젤의 눈매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 그쪽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오해?"
나이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하샬르님이 애도를 표한다고 말씀하시면, 번스타인 가에선 당연히 끔찍한 조롱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생각해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원수에게 권력 문제로 항의조차 못 하는 상황에서, 그 원수가 애도를 표한다는 편지를 보냈다가는...
나 같아도 눈이 뒤집어지겠네.
내 실수였다.
아무래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처럼 느껴져서 그만.
"그러면 뭐라고 보내야 하지...?"
"굳이 답신을 보내신다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니 개의치 않는다-정도가 최선이겠지요."
나이젤의 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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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번스타인 가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과부가 된 자작부인은 3 황자파의 귀족 중 하나와 빠르게 재혼했다.
남편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그 재혼에 그녀의 의사가 반영되었을지는...관계자들만이 알고 있겠지.
케네스 번스타인은 정신병이 악화되어, 결국 발작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로 인해 번스타인 가가 가지고 있던 재산과 영지는 전부 자작부인의 새 남편에게 귀속되었고.
혼자 남은 그의 여동생은, 이자벨라가 '자비롭게' 자신의 시녀로 받아주었다던가.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이자벨라의 계획대로 진행된 셈이었다.
애매하게 줄타기하던 귀족가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고, 황실의 힘이 아직 건재함을 넌지시 알린 데다가...쓰다 버릴 도구도 하나 얻었으니까.
처신을 세 번 잘못한 것치고는 참혹한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드디어 100화가 되었습니다!!
100화라니...! 그러고도 초반부라니 이 무슨...!!!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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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샬르에겐 바로 옆에 누운 사람을 끌어안는 잠버릇이 있었답니다!
허나 결과는 로맨틱이 아닌 호러블...!
술버릇) 살인
잠버릇) 살인
참으로 무서운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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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ㅂㅇㅇㅇ님 후원 감사합니다!!! 플러스에 가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