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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의 첫사랑을 타락시켜 버리면-2화 (2/135)

2화

이 몸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게 이름을 붙여 준 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흑마법으로 스스로를 몬스터로 만든, 리치였다.

그가 자신을 불사의 존재로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주신에게 버림받은 내가, 이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 된다면 어떨 것 같으냐?

그는 스스로가 신이 되길 원했다. 주신을 소멸시킨 후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길 원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이 아끼는 3개 가문의 성물을 빼앗아 오기로 결심했다. 성물을 모두 다 흡수하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 왜! 왜 저 인간들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냐!

신의 총애를 받는 3개 가문의 인간들은 강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그는 좌절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일어선 그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우리’를 만들었다. 고대 마물과 인간을 결합한 ‘우리’를.

우리는 강했다. 신의 은총을 받는 인간들 목숨 정도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 쉽게 죽일 수 있을 만큼.

이러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나를 지켜라. 너희가 죽는 순간까지.

그를 지키는 것뿐.

그의 염원은 곧 우리의 목표였기에, 우리는 착실히 그의 뒤를 따르며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게 된다.

이게 바로 내가 전생에 읽었던 소설, 〈덫에 걸린 새는 도망치지 못한다〉에 나오는 악역에 대한 내용이다.

결말은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 악역의 몰락이다.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아포칼리타였지만 딱 거기까지.

결국 주신의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에게 패배해 소멸되고 만다.

내가 환생한 ‘카리나’라는 인물은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죽는다.

물론 내가 이 몸에 들어와 있는 이상 쉽게 죽지는 않을 테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참 기구한 팔자였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고자 도망치다 계단에서 굴러 죽은 전생이 아닌가.

꽤 이른 나이에 죽은 나였지만, 죽는 순간에는 크게 슬프지 않았다. 이제야 그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데 웬걸. 환생하니 더 지옥 같은 삶이 펼쳐져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곳.

내가 겪고 있는 환경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다행인 건 전생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랄까.

그렇기에,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원작에서 아포칼리타는 멸망한다. 굳이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 멸망할 터.

얌전히 숨어 있다가 아포칼리타가 멸망하는 것만 지켜보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이것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로, 나는 힘을 키웠다.

도망치는 것도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나는 창조주인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대가로 그가 넘겨주는 힘을 받아 먹는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올려 떴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면면을 훑었다.

“사, 살려 줘!”

“괴물……!”

“도망쳐!”

내 머리칼이 뱀의 움직임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나의 목 뒤에서 고개를 내민 새하얀 뱀이 인간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쏴아아.

모래바람이 밀려와 그들을 덮쳤다. 내 몸의 일부인 뱀도 그들을 향해 포효했다.

“으아악!”

바람이 거두어진 후, 남은 것은 도망치는 모습 그대로 돌이 된 인간들뿐이었다.

아버지는 고대 마물과 인간을 결합한 실험체를 만들었다.

나는, 메두사와 결합한 괴물이었다.

* * *

휘이잉.

다시 한번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까끌까끌해진 눈을 깜빡였다.

역시 능력을 쓰면 눈이 아프다니까. 눈을 찡그리며 손을 뻗었다. 목덜미에 있던 뱀이 손끝까지 기어왔다.

새까만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이 하얀 비늘로 뒤덮인 뱀은 꼬리에 달린 방울을 빳빳하게 세우며 내 손목을 휘감았다.

[도망친 놈들이 있는데, 붙잡지 않을 것이냐?]

갈라진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그의 투명한 비늘을 무심히 쓰다듬었다.

“귀찮아.”

[쯧.]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양 소리를 냈다.

[그럴 거면 내가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든가. 저렇게 돌로 만들어 버리면 먹을 수가 없지 않느냐!]

그는 쐑쐑 화를 냈다.

누군가가 본다면 독사의 공격이라 생각해 겁을 먹을 테지만, 나는 자그마치 이십오 년을 보아 온 모습이다. 귀찮기만 했다.

“돌아가면 마물로 밥을 줄게.”

내 말에 그의 날름거림이 멈췄다.

[그리핀으로 다오.]

“그건 루나가 화를 낼 텐데.”

[흥. 그런 하급 마물과 섞인 것이 화를 내 봤자 무섭지도 않다.]

그 말이 어쩐지 우스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매끈한 비늘을 자랑하고 있는 그의 몸을 응시했다.

새삼스러웠다.

마물인 뱀과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 뱀과 무리 없이 대화하고 있는 내가, 히론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친근함을 쌓고 있는 우리가.

모든 게 다 새삼스러웠다.

히론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 외면할 수는 없었다. 외면한다 한들, 내가 인간이 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실력이 많이 좋아졌구나. 삼십 명이 넘는 인간들을 굳혀 버리다니.]

히론의 말에 따라 나는 다시 시선을 올렸다. 광야에 쓰러져 있는 돌더미를 바라보았다.

말대로, 나는 삼십 명이 넘는 인간을 죽였다.

하지만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까닭으로 나는 인간이건 마물이건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나는 그저 살고자 행하는 일인데 죄라 한다면 내 목숨은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나는 그렇게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더 강해져야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아직 부족해.”

나는 히론의 콧잔등을 쭉 밀며 대꾸했다.

“자일을 죽일 정도까진 돼야지 않겠어?”

나는 읊조리듯 자문하며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나를 우러러보고 있는 일곱 명의 사도들을 향해 착지했다.

“카리나 님!”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은 반색하며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이들은 나의 가문, 아포칼리타를 모시고 있는 이들로서 아버지가 임명한 사도들이었다.

7사도.

그들은 각기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를 상징했으며, 그에 걸맞는 힘을 부여받았다.

힘을 받은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인간이나 인간이 아닌 힘을 가진 자들.

그렇기에 그들은 신자들을 모으기에 최적화된 존재였다.

-죽음은 곧 탄생이요, 죽음에 가까운 아포칼리타야말로 신에 필적하는 존재다!

7사도들은 이와 같은 교리를 설파하며 신자들을 모았다.

그 결과 소수였던 신자들은 다수가 되었고 다수는 곧 군중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주신의 신자에 비견할 만큼 많은 수의 인간을 데리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인간들이 우리를 진정 ‘신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신자가 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다 위선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그저,

“이번 달에 입적한 신자들의 정보입니다. 그 옆의 이름은 아포칼리타를 위해 바치는 제물로써…….”

스스로의 복수를 위해 우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제물. 각자의 철천지원수의 목숨.

우리는 신자들을 대신해 복수를 해 주고, 대가로 그들의 생명력을 일정량 넘겨받는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거래인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인간들이란 빌어먹게도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내게 양피지를 내미는 그들의 손을 밀었다.

“샐러딘이 올 테니 그 아이에게 넘기렴. 나는 이런 일에 손을 쓰지 않는 걸 알잖니.”

“아……! 아, 알겠습니다!”

인간들은 저마다 붉어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며 힐끗힐끗 나를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며 파르르 떠는 게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바다의 신을 홀딱 반하게 했다는 메두사의 피를 이어받은 만큼, 내 얼굴은 지나치게 아름다우니까.

사도들이 칭송하기를,

나의 검푸른 머리칼은 밤의 신에 비견한다 하였고,

나의 연녹색 눈동자는 대지의 신에 와 닿는다 하였고,

나의 눈과 코와 입은 미의 신조차 질투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나를 찬양하는 노래가 신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노라고. 그들은 내게 귀띔을 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얼굴은 꽤 유용했다. 슬쩍 웃어 주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 무릎을 꿇고 복종을 맹세하니 말이다.

덕분에 귀찮은 날파리들이 꼬이기는 한다만…….

-쿵!

이때, 지면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뿌연 먼지가 솟구쳤다.

콜록. 나는 히론의 몸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난 네 손수건이 아니다.]

“목이 아파서.”

[그럼 날아오르면 되지 않으냐!]

“그건 또 귀찮아서.”

[너는 정말……!]

히론의 떽떽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곧 튀어나올 날파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카리나!”

역시나, 예상한 대로다.

나보다 한참은 늦게 창조된 실험체, 샐러딘은 뾰족하게 튀어나온 귀를 쫑긋거리며 내게로 뛰어왔다.

“미안해. 내가 늦었지. 바로 오려고 했는데…….”

히히, 그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거추장스러운 게 붙어 버려서. 처리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

샐러딘의 옷에는 찐득한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직 채 굳지도 않은 핏방울에서는 비린 냄새가 가득했다.

“라템의 인간들이었어. 아, 걱정하지 마! 다치진 않았으니까!”

펄떡거리는 죽음의 흔적을 잔뜩 묻히고 있었지만, 그의 웃음은 지나치게 밝기만 했다. 마치 죽음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것처럼.

역겨워.

하지만 나도 방금 전 인간들을 죽였는걸.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네.”

나는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며 샐러딘의 정수리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카리나가 걱정해 줄 때가 제일 좋아.”

샐러딘은 내게로 몸을 기대며 킥킥 웃었다.

가장 뜨거운 불의 색이 그러하듯, 새하얀 머리칼이 무겁게 흘러내렸다.

지옥의 색이 그러하듯,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해 다정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모두 다,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이제는 살아 있지 않을 인간들의 피가.

‘후우.’

나는 들끓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표정을 정돈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인간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건 네가 처리할래?”

샐러딘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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