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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의 첫사랑을 타락시켜 버리면-3화 (3/135)

3화

샐러딘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곧 사도들을 발견한 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응! 나만 믿어!”

그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내 뒤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무심히 팔짱을 끼며 그를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샐러딘.

샐러딘 아포칼리타.

아직 성장기를 겪지 않은 그의 몸은 열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한참 작았다.

그래서 그는 마물의 흔적도 숨기지 못했다.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그의 귀가 쫑긋하며 움직였다.

샐러딘은 지옥의 문지기라는 케르베로스의 혼종으로, 지옥의 불길을 빌려 올 수 있는 반인반수이다.

샐러딘이 만들어졌을 때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축하연을 열었다.

그 후에 샐러딘이 능력이 개화하지 못해 크게 노여워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샐러딘의 마나핵이 뽑혀 재활용 거리가 될 뻔했을 때에, 나는 그의 편을 들어 주었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그는 그때부터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샐러딘은 그때 죽지 않을 인물이었다.

재활용이 확정되어 검은 용암에 밀어 넣어질 때에 비로소 개화하여 살아남을 터.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나로서, 샐러딘을 구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일부러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미래를 위해서 샐러딘과 일정한 양의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가까워진 것 같기는 하지만.’

히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짧게 혀를 찼다.

“이게 끝이야?”

샐러딘은 쪼그려 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사도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네. 그, 그렇습니다.”

“너무 적은데. 아버지가 싫어할 거야.”

“하, 하지만 북쪽 지역은 사는 이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인간 남자의 말은 끝마쳐지지 못했다. 그대로 목이 잘려 버렸기 때문이다.

“아. 끝까지 듣고 죽일 걸 그랬나.”

샐러딘은 손에 묻은 피를 툴툴 털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서, 뭐라고? 다시 변명해 볼 인간?”

여섯 명이 된 사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달달 떨었다. 개중 와락 눈 물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다.

하아. 처리하라 했더니 정말 목숨을 처리해 버렸네.

죽은 사도의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힘.

저것은 공기를 타고 높이높이 날아가 아버지에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느린 한숨을 뱉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죽여 버리면 어떡하니.”

샐러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도는 일곱 명을 유지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이 있었잖아.”

“아…… 그러게. 깜빡했다.”

“다음부터는 생각을 하고 죽이렴. 귀찮은 일이 생겨 버리잖니.”

“알았어……. 미안해.”

샐러딘은 귀를 축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핀잔 한 번 들었다고 이렇게 풀이 죽어 버리다니.

개와 섞여서 그런지 성격도 개 같은 걸까.

나는 그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달달 떨고 있는 사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도 삼백 명을 더 채워 오렴.”

흠칫.

그들의 어깨가 떨리는 게 보였다.

“그래야 우리도 너희를 보호해 줄 실험체를 만들지 않겠니.”

인간의 생명 천 개가 있어야 실험체 하나가 완성되는 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포칼리타의 무한한 확장이었으므로,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카리나 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방금 전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그들은, 복종하듯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나는 품을 뒤져 꺼낸 작은 주머니를 그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이걸로 너희의 친우에게 애도를 표해 주렴.”

촤르륵.

주머니에서 금화 수십 개가 흘러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사도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금화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더 많은 신도를 모아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난 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들은 재빨리 몸을 일으킨 후 꾸벅 인사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

아, 피곤해.

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카리나는 너무 유해.”

샐러딘의 말이었다.

“착하단 말이야.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비죽거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사도들을 챙기는 것이 영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인간들이 불쌍해?”

그는 새까만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지극히도 어두웠기 때문에,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추어져 보였다.

검푸른 머리칼, 시체처럼 창백한 낯빛, 연두색 눈동자, 목을 감싸고 있는 뱀까지.

괴물 같은, 모습.

“아니.”

나는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정말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면, 그들에게 돈을 쥐여 주고 얌전히 보내지 않았을 테다.

영원한 안식을 위해 죽여 주었겠지.

현실이 지옥보다 더 끔찍하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우리가 제일 불쌍해.”

내가 인간이 아닌데 어떻게 인간을 안타까이 여길 수 있을까.

그저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 떨어져 버린 내가 안타까울 뿐이지.

“돌아가자. 너무 피곤해.”

나는 곧장 날개를 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탑으로 돌아온다 한들 피곤함이 사라질까.

나는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공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탑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암흑이었으며, 그렇기에 퀴퀴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 있는 공간이었다.

사방에 걸려 있는 마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모여 떨어지는 피를 받아먹고 있는 하급 실험체들을 응시했다.

지겹다.

나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발을 재촉했다.

벽에 걸린 등불이 한쪽으로 몸을 뉘이며 빛을 흔들었다.

탑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

고요한 탑.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휘이잉, 하는 바깥바람 소리가 들렸다.

휘이잉, 휘잉, 휘이이잉…….

저 바람은 이 탑에 들어오지 못하는 원혼들 같았다.

누구보다도 이 탑에서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끝내 용암에 떠밀려 밑바닥에 가라앉지도 못하고 녹아 사라져 버린 형제들.

개중에는 나와 가까이 지냈던 이들도 있었다. 언니, 오라비, 그리고 언니들, 오라비들.

-카리나, 이리 와.

-내가 지켜 줄게. 아버지 말은 무시해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들은 나의 우상이었고, 동시에 희망이었다.

오직 그들 때문에, 그들 덕분에 나는 스스로 생을 끊고자 몇 번이고 시도했던 행동들을 포기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버텼다.

그들과 함께 있을 미래를 생각하면 아무리 처참할지언정 나름대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죽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재활용 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보이지 못한 실험체였으니까.

아버지는 용암 속에서 녹은 그들의 마나핵을 내 몸에 주입했다.

깎아지르는 고통과 가늠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내 몸을 무너뜨렸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한 개, 두 개…… 열세 개.

열세 명의 형제들을 내 몸에 집어 넣은 순간, 나 역시 죽었다.

인간으로서 죽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실험체, 만들어진 존재였을 뿐.

나는 그들의 죽음을 딛고 살아가는 이였다. 그들의 죽음을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였다.

그래서, 스스로 죽을 수도 없었다.

그들의 혼을 가지고 살면서 떳떳하지 못한 죽음을 만날 수 없었으니까.

휘이잉.

바람 소리가 한층 더 괴기하게 들렸다. 그를 애써 무시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괜찮으냐?]

내 몸과 연결되어 있는 히론은, 누구보다도 내 감정에 민감했다. 그는 전음으로 내게 말을 전달했다.

‘뭘 말하는지 모르겠네.’

[불안해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한가.

내가 정말 불안해하고 있었나.

가만히 시선을 내려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떨림이 보였다. 빠르게 손을 갈무리했다.

[네 형제들이 죽은 것은 네 탓이 아니다.]

난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아랫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기에, 더 신물이 치달았다.

알고 있으므로, 내가 딛고 있는 이 탑이 경멸스러웠다.

모든 것을 끝낼 때.

그때가 머지않아 오리라.

나는 요동친 마음을 갈무리하며 발을 재우쳤다. 이때였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삐거덕거리는 걸음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 발광하는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니, 눈은 아니었다. 텅 비어 있는 해골 안의 번뜩이는 안광이 나를 향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검은 로브가 흩날렸다.

삐거덕거리는 관절의 소리와 덜컹거리는 뼈의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괴기했다.

뚜벅뚜벅 내디디는 발걸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나는 뼈만 남은 그의 발목을 응시하며, 숨을 천천히 골랐다.

“아버지.”

그를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그는 내게로 걸어왔다.

내가 만들어졌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반쯤은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리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해골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힘을 낭비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의 두개골 안에 있는 마나핵을 보며 생각했다.

“샐러딘은 어디 있느냐?”

그는 턱뼈를 움직이며 말했다. 마치 쇠가 부딪치는 것처럼 거칠고 날이 선 음성이었다.

“글쎄요.”

“너는 어디로 갈 생각이냐?”

그는 그러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 눈이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께 가는 중이었어요.”

그는 웃었다.

해골 주제에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 하겠지만 어찌 됐든 그는 웃으며 앞서 걸어갔다.

나는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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