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윽…….”
몇백 번을 경험해도 낯선 통증.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오른팔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갔다.
“쉬, 힘을 빼렴. 피가 안 들어가지 않느냐.”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힘을 풀었다. 통증이 더 깊게 찾아왔다.
내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사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드워프의 뼈를 깎아 만든 주사기 안에는 파란 액체가 가득했다. 고대 마물인 고르곤의 피였다.
메두사의 머리에서 뽑혀 난 나였지만, 어릴 때에는 그 힘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힘은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왔고, 나는 힘을 통제하지 못했다.
까닭으로 아버지는 내게 메두사의 혈족인 고르곤의 피를 투여했다.
네 조상의 피이니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수십 년간 고르곤의 피를 투여해 온 결과 나는 강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약해지지 않았다.
“하아…….”
그가 주사기를 거두는 틈을 타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뚝, 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갈수록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구나. 네 피가 고르곤에 물들었다는 증거란다.”
내 하얗던 팔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진득하게 녹은 살이 흘러내리고 있을 뿐.
어차피 가만히 두면 가라앉을 것이다. 가만히 두면 원래의 살로 돌아올 것들이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겪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내가 도망칠 때까지, 물들어야 하는 현실.
“머리칼을 걷어 보려무나. 목에도 주사해야 하니.”
아버지는 주사기에 다시 고르곤의 피를 채우며 말했다.
기분이 좋은 듯, 그는 전에 없던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고통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히드라의 피를 가져왔단다. 네게도 주고 싶지만 양이 적어서, 아쉽게 되었구나.”
히드라라면 머리 아홉 개가 달린 용이다.
용의 피를 어찌 구해 왔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아비가 기분이 좋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렸다.
“그럼 누구의 것인가요?”
“샐러딘이지 누구겠느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숨이 가팔라졌지만 애써 갈무리했다.
천천히 원작을 되짚었다.
원작에서도 샐러딘에게 히드라의 피가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덕분에 샐러딘은 용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했지만, 상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았다.
용의 이능…….
나는 잠시 숨을 삼키며 천천히 생각을 이어 나갔다.
“제게 주세요, 그거.”
내 말에, 아버지의 손이 멈칫했다.
“설마.”
그는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샐러딘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냐?”
그의 텅 비어 있는 두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저 공허한 공간에 담겨 있을 감정을 추측할 수 있었기에, 나는 설핏 웃었다.
“아니요.”
걱정이라니. 그런 쉬운 감정을 내가 가질 리 없다.
샐러딘이 용의 이능을 갖게 되면 2차 각성이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내가 도망치기 전에, 즉 신마전쟁 전에 그가 각성을 하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난 그것을 원치 않았다.
“제가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내 말에, 그는 웃었다.
뼈는 감정을 드러내 주지 않았지만 웃음소리에는 감정의 농도가 짙었다.
그는 내게 다가왔다. 한 손에는 고르곤의 피를, 한 손에는 히드라의 피를 들고.
“욕심이 많구나, 카리나. 여기서 더 강해지고 싶다니 말이야.”
“자일을 넘어서고 싶으니까요.”
내 말에 그는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매우 흡족스럽다는 듯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구나, 카리나.”
그의 손길에 따라 머리칼이 어깨 너머로 내려갔다.
목덜미를 따라 고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참아 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이었다.
* * *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졌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이 뜯기는 것처럼 아파 왔으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괜찮은 것이냐?]
히론이 내 목덜미를 살피며 말했다.
[안 괜찮아 보이는군.]
쯧.
그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내 등에 얼굴을 묻었다. 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화가 나 있는 것이리라.
[넌 지금도 그 리치 새끼를 죽일 수 있지 않느냐?]
고개를 들어 히론을 바라보았다.
그의 새까만 눈에는 분노가 넘실거렸다.
지난 이십여 년간 내가 아버지에게 어떠한 학대를 받아 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한 분노일 터.
하지만 난 히론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분노하지 않고 있으니까.
화가 날 것도 없다.
애초에 아버지는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실험체’로 나를 만들었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버지가 내게 하는 행동들은 당연한 일들이었다.
잘잘못을 따진다면 애초에 인간이었지만 실험체로 환생해 버린 내 책임이 더 큰 게 아닐까.
난 우스운 생각을 저버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히론을 끌어안았다.
“알고 있지만, 그러지 못해.”
[왜 못 한다는 말이냐! 죽여 버리고 도망을 치면 되지 않느냐!]
“그랬다간 세계의 끝을 벗어나기도 전에 붙잡힐걸.”
[하지만!]
히론은 소리쳤지만,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쌕, 쐐액.
가파른 숨소리만이 들렸다.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으니 저러는 것일 테지.
히론의 말대로, 지금의 나는 아버지를 단번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나뿐 아니라 탑의 다른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형제들 역시, 아버지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는 우리를 만든 창조주였으므로.
그렇기에 그를 존중하며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친다고? 형제들에게 붙잡혀 사지가 뜯길 것이 분명했다.
[네 이런 꼴을 대체 언제까지 봐야 한다는 말이냐!]
히론은 소리쳤다.
[더 이상은 못 보겠다. 나 혼자서라도 리치 새끼를 죽이든가 해야……!]
“히론.”
나는 그의 몸을 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파르르 떨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난 아버지를 지금 죽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거야.”
[나중에, 나중에! 그 말만 몇 년째 듣고 있는지 아느냐?]
“하지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걸.”
나는 이 세월을 허투루 보낸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쥐어짜 내서 수백, 수천 번 원작의 내용을 복기한 나는 이곳의 모든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곧. 내가 원하는 미래가 올 것이다.
“어차피 이 아포칼리타는 멸망할 테니까.”
나는 부드러이 웃으며 히론과 눈을 마주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뭘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뱀 새끼의 피를 넣은 건 알고 있다.]
“히드라는 뱀이 아니야. 용에 가깝지. 더군다나 이건 자그마치 오백 년이나 산 히드라의 피라고.”
내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해 있는 상태였으니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온몸에 퍼져 있는 힘을 끌어모아 두 눈에 집중했다.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눈꺼풀이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을 떴을 때는.
“그래서 이런 걸 얻게 됐어.”
파앗-
시야가 확장되었다. 눈을 굴리지 않아도 내 옆, 더 나아가 뒤에 있는 것들 모두가 보였다. 모든 공간의 모든 것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느껴졌다. 뜨겁고, 동시에 차가운 힘. 이것은 필시.
[……드래곤 피어(Dragon fear)로군.]
용의 일종인 드래곤의 권능을 이용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원작에서 샐러딘이 가질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 것이 되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때? 무섭지?”
[흥. 내가 그깟 것에 겁먹을 줄 아느냐.]
“그런 것치고는 꼬리가 달달 떨리는데.”
[추워서 그렇다.]
“뱀은 추위를 안 탈 텐데?”
[시끄럽다!]
히론은 빽 소리를 지르곤 내 품으로 고개를 숨겼다.
나와 더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해, 나는 빠르게 능력을 갈 무리했다. 히론을 겁에 질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려움이 가라앉은 듯, 히론은 다시금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좋은 능력이긴 하구나. 네게 함부로 덤비는 이들에게 써먹으면 유용하겠어.]
그의 말이 맞았다. 히론이 겁을 먹을 정도면 웬만한 인간들은 조금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
흐음.
잠시 비음을 내던 나는, 히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자일에게도 먹힐까?”
[그놈은 논외다.]
“뭐 그렇게 단호하게.”
[아서라. 지금의 너는 그놈을 이기지 못해.]
피, 나는 입을 비죽이며 다시금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실, 히론의 말이 맞았다.
이 아포칼리타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오직 자일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도 세계 최강자로 설정되어 있던 악역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에서 날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때였다.
방의 커다란 창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악마의 형상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덜컹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쿵, 쿵, 쿵.
소름끼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젠장. 나는 눕혔던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휘잉.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눈앞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사람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소용돌이는 바닥을 파헤칠 듯 회오리치다, 일순간 소멸했다.
붉은 날개로 몸을 가리고 있는 이가 보였다.
촤악-!
그의 날개가 퍼덕거리며 펼쳐졌다.
방 내부를 휩쓸던 바람이 휘발되었다.
나타난 그의 얼굴은 변함없이 냉정했고, 변함없이 차가웠다.
피를 탐하는 그처럼, 피를 닮은 붉은 눈동자가 느리게 움직였다.
뱀파이어의 혼종.
세계의 최강자.
진정한 악역.
“……자일 아포칼리타.”
제 말 하니까 오네.
나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