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카리나.”
자일은 그 자리에서 무심하게 나를 응시했다. 히론은 때때로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담긴 욕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의 몸에서 태어난 그답게, 그는 나의 피를 탐했다.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내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을 테지.
하지만 저 고고한 성질은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니 나 역시 모르는 척을 하며 생긋 웃어 줄 뿐.
“이렇게 말도 없이 내 방에 침입하면 어떡하니, 자일.”
내 입술에 담긴 저의 이름이 그리웠던 것일까. 그는 눈에 띄게 얼굴을 굳혔다.
“내가 너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결계를 폈을 거야. 그럼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피식.
그는 헛웃음을 뱉었다. 네가 것이 펼치는 결계 따위, 제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두 다리를 침대 바깥으로 내디디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뒈지지 않았겠어?”
파앗-!
드래곤 피어를 발동시켰다. 펄펄 끓는 물이 부어진 것처럼 눈알이 뜨거워졌다.
아직 익숙지 않은지라 어쩔 수 없는 통증이었다. 그러나 나는 감내했다. 이 오만한 자식을 겁먹게 해 주기 위해서.
하지만.
“잔재주를 얻었군.”
자일은 전과 마찬가지인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 빌어먹을 최강자 설정.
나는 빠르게 기운을 거두며 미간을 좁혔다.
“할 말 없으면 꺼져. 네 얼굴은 잠시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세카이나에 다녀왔나?”
“꺼지라 말하지 않았니?”
“세카이나에 다녀왔냐고 물었다.”
꺼질 생각은 없나 보네.
혀를 차며 이마를 짚었다.
세카이나라면 오늘 샐러딘과 함께 갔던 신전이 있던 곳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다녀왔어.”
“그렇다면 명령은 침입한 데이펜의 일족을 처리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는 내 손목을 낚아챘다. 뜨거운 체온이 급작스레 밀려왔다.
“왜 멋대로 살려 둔 것이지?”
“함부로 내 손 잡지 마.”
나는 힘을 다해 그를 뿌리쳤다. 그리고 손목을 툴툴 털었다. 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대답해라. 왜 인간들을 살려 둔 것이냐?”
“알 게 뭐야. 쫓아가기 귀찮아서 그랬지.”
자일은 여전히 무심한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그러다,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톱은 허공을 저었고, 찢어진 공간은 새까만 아공간의 구역을 내비쳤다.
무엇을 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벌려진 공간의 틈은 꾸역꾸역 무언가를 토해 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죽어 있는, 인간들.
그들의 사지를 베자마자 아공간에 처넣은 것인지, 풍겨지는 피 냄새가 아득했다.
그들이 생생하게 흘리는 피가 밀려와 내 발치에 닿았다.
아, 오늘 아침에 청소한 방인데.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뭐. 이걸 보고 어쩌라는 거니?”
“네가 죽였어야 할 인간들이다. 하지만 너는 그러하지 않았지.”
“그래서 내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카리나.”
“쫓기 귀찮았다고 말했잖아. 더운데 모래바람까지 뚫고 날아가긴 싫었어.”
“정말 그 이유뿐인가?”
그의 붉은 눈이 나를 향했다. 그의 반들반들한 눈동자에는 내가 담겨 있다.
본래의 내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내가.
저놈은 대체 나에 대해 뭘 알고 싶은 걸까. 생각하던 나는 이내 의식의 흐름을 멈췄다.
자일이 어떤 생각을 하든 간에, 구태여 말을 덧붙이거나 정정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이유가 있다 한들, 네게 알려 줘야 할 의무는 없어.”
나는 내 앞으로 굴러온 인간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이런 건 히론에게 먹이로 주기도 저급해. 필요 없으니 내다 버리렴.”
그는 동요 없이 나를 응시했다.
왜 안 나가고 서 있는 거람. 싶던 나는 아차,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니면 네 식인 박쥐의 먹이로 주어도 좋고. 네 애완동물은 너를 닮아 저급하잖니.”
그의 손이 반발하듯 쥐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나는 낮은 조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려고 했다.
“이제는 여유를 부릴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붉은 입은, 내가 오랜 시간 염원하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입술이 번듯하게 치켜 올라갔다. 짜릿한 희열이 척추를 따라 기어 올라왔다. 손끝이 저릿했다.
“준비하도록.”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모습을 감췄다.
다시금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제1차 신마전쟁.
오랫동안 기다린 날이었다.
이 빌어먹을 탑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으니까.
* * *
극 중에서, 신마전쟁은 총 3번.
첫 전쟁은 신도가 늘어나는 우리를 경계하던 3대 가문이 느닷없이 일으킨 것이었고,
두 번째 전쟁은 맺었던 동맹이 어그러지며 발발되었고,
세 번째 전쟁은…….
‘여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해 일어났었지.’
그리고 졸속완결.
완결까지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한동안 멍하니 마지막 마침표를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휘이잉.
뺨을 때리는 바람이 사나웠다. 꺼끌꺼끌한 모래가 눈알을 헤집었다.
하지만 난 눈을 감지 않았다. 똑똑히 시선을 둔 채, 눈앞의 수많은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1차 신마전쟁이 발발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광야에 가득했다.
저 중에 몇 명이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절망적인 미래를 예측하며 나는 조소했다.
“나는 먼저 땅으로 내려가는 게 좋겠지?”
샐러딘의 말이었다.
지옥의 개와 융합된 그답게, 그는 날개가 없었다. 그래서 지하를 이용했다. 그는 지반을 무너뜨려 인간들을 낙사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그럼 나는 지금 내려갈게!”
하지만 그는 말과는 달리 내 옆에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깜빡, 깜빡.
그를 보며 몇 번 눈을 깜빡인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와.”
“응! 카리나도! 다치지 말고!”
그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장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내던졌다.
지평선 끝까지, 인간들이 빼곡했다.
아포칼리타와 대적하는 3대 가문, 라템, 데이펜, 캄바이트 가문의 병력들이었다.
차례대로 성력, 정령, 마력을 이용하는 그들은 양껏 능력을 발휘하며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쾅!
어디선가 불기둥이 치솟았다.
쿠웅!
어디선가 땅이 무너졌다.
그들의 사기는 점점 올라갔다. 나는 그제야 자일과 눈을 마주쳤다.
“할 수 있겠나?”
“동쪽을 맡을게.”
자일은 대답 대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새빨간 눈동자는 나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내 목덜미에 고정되어 있을 뿐.
평소 같으면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유달리 불쾌했다. 곧 끝을 본다는 자만심 때문일 수 있었다.
나는 날개를 펴려는 자일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이런 때까지 그런 더러운 눈을 봐야 할까?”
자일은 이제야 점점이 시선을 돌려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보란 듯이 입술을 비틀었다.
“내 피를 원하는 거 알아.”
그는 답하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나를 직시할 뿐.
그 단단한 벽이 결국엔 스스로의 나약함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조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꺼져.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에게는 안 줄 거니까.”
나는 말을 마치며 날아올랐다. 내 그림자를 쫓는 그를 보는 게 어딘가 고소했다. 킥킥 웃음이 나왔다.
[내가 도와줄 것이 있느냐?]
어느새 튀어나온 히론이 말했다. 나는 그의 이마를 꾹 누르며 대답했다.
“필요 없어.”
동쪽의 둔덕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라템의 신관들이 가득했다. 치유술과 검술을 주로 하는 이들이니만큼 나의 능력이 더 크게 먹히리라.
그렇게 도약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점처럼 작지만 나무만큼 커다랗게 보이는 인간이었다.
‘쟤는 분명…….’
고작 해 봐야 열아홉 정도로 보일까. 아직 앳된 티를 벗지 않은 신관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저 찬란한 백금발이며 새하얀 얼굴이며 신관답지 않은 차가운 표정이.
‘아.’
나는 기억 속에서 원작을 꺼냈다.
원작에서 백금발로 묘사된 신관은 단 한 명이었다.
여주인공의 첫사랑이자 성검의 원래 주인.
그는 성검의 주인답게 출중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도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길마다 마물들이 포효하며 쓰러졌고, 그가 도약하는 하늘마다 아포칼리타의 신자들의 목숨이 바스라졌다.
그의 주변에는 어떠한 어둠도 없었다. 정말, 신이 재림해 신관이 된 것처럼 그렇게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아포칼리타를 위해서라면 저자를 반드시 죽여야겠지만, 나는 저자가 더 살아 있기를 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자리에서 그가 죽어 내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저곳은 피해서 싸워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틀 때였다.
휘이잉-
돌풍이 불었다. 순간 날개가 접혀 몸이 휘청거렸다. 공중제비를 돌아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다. 그 순간.
“…….”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이곳에서 바다라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만, 내가 기억하는 바다를 꼭 닮은 새파란 눈동자였다.
바다처럼 맑고 해저처럼 깊은.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내 뒤에서 인간들의 비명이 끝없이 들리는데도, 자일의 무자비한 폭격 소리가 들리는데도, 샐러딘이 지대를 무너뜨리는 굉음이 들리는데도,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해의 깊은 어둠은 나를 붙잡았다.
해변가의 얕은 햇살은 나를 옥죄었다.
생명의 탄생이 내 모든 것을 사로잡았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섰다.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
얽혀서는 안 된다는 강한 직감이 나를 일깨웠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옭아매듯 강한 시선이 내 발을 붙들었지만, 억지로라도 그를 뿌리치고 빠르게 도약해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