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걸 어쩐다.
나는 내 집, 내 방, 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어쩌지.
이마를 짚었다. 열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피가 솟구친 듯했다. 목덜미의 상처가 시큰거렸다.
[이 인간은 왜 데리고 온 것이냐?]
히론은 남자의 주변을 슥슥 움직이며 말했다. 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뱉었다.
“성검의 주인이야.”
[그렇군. ……뭐?]
히론은 고개를 세웠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면면을 살피는 듯 보였다.
나 역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찬란한 백금발과 투명할 만큼 새하얀 피부는 그의 성기사라는 직책을 잘 드러내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 마냥 선한 인상은 아니었다.
움푹 깊은 눈두덩이는 어딘가 그늘이 져 있었고, 눈을 감고 있어도 커다랗고 뚜렷한 눈매는 살짝 올라가 날카로운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가늘고 높은 코와 날렵한 턱선이 서늘한 느낌을 더했다.
그나마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건 끝이 올라간 입술뿐이랄까.
이렇듯 차가운 인상의 외모이기는 했지만, 잘생겼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마치 신이 빚은 것처럼 한 톨의 결함 없이 완벽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익숙했다. 이런 얼굴을 가진 인간을 내가 잊을 리 없으니까.
난 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멀리서나마, 이 남자를 지켜본 적이 있다.
‘1차 신마 전쟁 때.’
피를 뒤집어쓴 채 아포칼리타를 향해 달려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제 죽음을 겁내지 않고 오직 적들의 목을 베는 것만을 목표로 삼던 그 끔찍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해도 그때는 앳된 티를 벗지 못하는 청년의 느낌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커 버린 건지.
역시, 인간은 눈 깜짝할 새 자라 버린다. 아쉽게도.
[아니! 그럼 죽여야지! 왜 살리고 앉아 있느냐!]
히론의 외침에 남자의 피를 닦고 있던 언데드가 움찔거렸다. 그러곤 비어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휘저었다.
“복잡해서 그래. 계속 치료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이마를 꾹꾹 눌렀다.
[복잡하다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냐?]
히론은 남자를 관찰하던 것을 그만두고 내게 기어왔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대답했다.
“내 눈앞에서 죽어 버리면 날 쫓아올 사람이 있거든.”
[뭐?]
“죽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 죽어야 하는 놈이야, 이거.”
히론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나 나는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 봤자 알아듣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 인간은 성검의 주인이자, 원작 여자 주인공인 페넬로피 데이펜의 첫사랑이다.
그러나 원작이 시작함과 동시에 죽어 버리는 인물이다. 페넬로피의 각성을 위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페넬로피는 이 남자가 죽은 후 반쯤 미쳐 버린다. 그래서 힘을 각성하고 연합군과 함께 아포칼리타를 향해 맹공을 펼친다. 이게 바로 원작의 큰 줄기였다.
페넬로피는 전쟁의 여신을 어미로 둔 이였다.
잔혹하고 냉철한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는, 전쟁의 여신의 능력을 이용해 죽음을 추적할 수 있었다.
결과로 페넬로피는 제 첫사랑을 죽인 흑마법사를 찾아 죽기 직전까지 고문한 후 영혼까지 소멸시켜 버린다.
원작에서라면 자일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의 옆에 있던 게 나니까, 내가 됐겠지.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도 그럴 게, 원작의 여주인공은 미친 인간 중에 미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이 19금이라는 게 야해서 19금이 아니라 잔인해서 19금이었다는 걸 여주인공 덕분에 깨달았지…….
거기에 남자 인물들은 멀쩡한가. 아니, 그들도 다 하나같이 미친놈들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런고로, 나는 원작의 주인공들과 척을 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과는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 남자를 구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남자의 죽음에 엮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치료하는 건 방해하지 말고 있어. 어차피 치료하고 내보낼 생각이거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난 출근할게. 지금 가도 늦겠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집을 나가겠다는 말이냐?]
“그래. 그리고…….”
나는 벗어 두었던 외투를 집었다.
그리고 쌕쌕 숨을 몰아쉬고 있는 히론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인간이 정신을 차린다면 곁에 가지 마. 숨어 있어.”
[뭐?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 저런 어린 인간 같은 건 내가 단번에 삼킬 수 있다!]
히론은 몸을 부풀리며 말했다.
물론, 히론은 약한 마물이 절대 아니었다.
나의 살을 뜯고 나온 마물이었으니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래 보든가.”
나의 약점은 곧 히론의 약점.
나는 성력의 끝자락에만 닿아도 녹아내리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저 인간 피, 그냥 피 아냐.”
그러니 여주인공의 첫사랑과는 상극 중에 상극이었다.
“성력이 흐르는 피야.”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 * *
“후우.”
쿠히란 지역의 유일한 치료소의 원장, 시엘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부상자의 환부에 치유 마법을 걸어 두었으니,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기만 하면 되리라.
하지만 이미 자신의 두 손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터. 그는 제 옆에 서 있는 카리나를 향해 말했다.
“리나야. 붕대 좀 줄래?”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리나야?”
시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재차 그녀를 불렀지만, 역시나 대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미동 없이 앉아,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는 그녀를.
“리나야.”
그는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카리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눈을 여러 번 깜빡인다.
“부르셨어요?”
“몇 번이나 불렀어. 붕대 좀 줄래?”
“죄송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요.”
“그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별 건 아니에요.”
선을 긋는 대답에, 시엘은 낮게 침음을 흘렸다.
카리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마치 이곳의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 초연하고 무심한 태도를 유지했다.
시키는 일은 곧잘 하지만 항상 그뿐. 더 이상의 행동도 하지 않으며 더 이상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흐린 발자취를 가지고 있었다. 자칫하면 사라질 것처럼. 그래서 더 붙잡아야 하는 것처럼.
시엘은 카리나가 건네주는 붕대로 환부를 동여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털어놓아도 돼. 우린 일 년이나 함께한 사이잖아. 이제는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의 말에, 카리나는 빤히 시엘을 응시했다.
고작 일 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잘 알게 되었다’고 말을 하다니.
참 멍청하다 해야 하는 건지, 순진하다 해야 하는 건지. 카리나는 낮게 조소했다.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지도 어언 일 년.
쓰러져 있던 어린 인간을 치료해 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 어린 인간은 치료소에 가 시엘에게 카리나의 이야기를 전달했고, 시엘은 감사 표시를 하며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다.
할 일 없이 집에서 누워 쉬기만 했던 카리나에게는 흥미로운 제안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뀔 동안.
‘다시 생각해도 우습단 말이지.’
눈 한 번 깜빡여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그녀가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출신과 행적을 두고 본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임에 분명했다.
그렇게 자조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 직업을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환자인 인간들에게 감사하다 말을 들을 때면, 세상을 멸망시키는 실험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한 생명체로서 ‘나’가 된 것만 같았다.
감사의 인사는 마약과 같았고, 죽음의 눈물은 독약과 같았다.
무엇을 먹어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만 카리나는 기쁘게 죽는 것을 더 원했다.
더 이상, 살육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리나야?”
대답 없는 그녀를 향해 시엘이 재차 말문을 텄다.
“정말 괜찮아요.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집에 누워 언데드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을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으니 멍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카리나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좁혔다.
이때.
열린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가뿐하게 몸을 내민 바람은 치료소의 환자들을 한 번 훑은 후 그녀에게로 밀려갔다.
그녀의 검푸른 머리칼이 바람결에 실려 흩날렸다. 쨍한 향기가 물밀듯이 퍼졌다.
시엘뿐 아니라, 치료소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사방으로 퍼지는 머리칼이 성가시다는 양 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가녀린 턱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어긋난 흔적이 이상하리만큼 유혹적이라, 시엘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다시금 그녀를 좋게 만들었다.
햇볕을 받아 푸른빛을 띤 머리칼은 새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핏줄이 보일 만큼 얇고 건조한 피부는 마치 꽃을 품고 있는 투명한 유리구슬 같았다. 손을 댈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깊은 쌍꺼풀이 져 있는 커다란 눈이 느리게 움직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기다란 속눈썹이 요요하게 움직였다.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보석처럼 영롱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매정하리만큼 무심한 시선과 단조로운 음성은 그녀의 존재를 더 고귀하게 포장해 주었다.
그러므로 난폭한 환자들도 그녀의 앞에서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었다.
깐깐한 경비병들도 그녀의 앞에서는 한 마리의 순한 개가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의 달라지는 태도에 오만하게 굴 법도 한데, 그녀는 일절 그러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이들을 똑같이, 감정 없는 눈과 행동으로 대할 뿐.
그렇기에 시엘은 묘한 우월감을 품었다.
이곳에서 일하게 만든 자신에게만 큼은 카리나가 유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시엘은 애써 뛰는 마음을 정리하며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신전에서 또 전쟁이 있었대.”
카리나는 움찔거렸다.
“네, 들었어요.”
“그래서 부상자가 좀 있어.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치료가 끝나면 일찍 퇴근해도 좋아.”
“알았어요.”
카리나는 주억이며 붕대와 약 등을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평소에는 하루에 환자 열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지만, 오늘은 그의 말대로 환자들이 꽤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모두 다 경상 정도로,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모두 다 신전 밖에서 어쩌다 튄 불똥에 맞은 이들일 테니까.
아포칼리타의 공격 범위 내에 있었다면 필시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카리나는 신음을 흘리는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능숙한 손길로 환자의 상처 부위를 소독한 후, 붕대를 감았다.
“맞아. 경비병이 말해 준 게 있어.”
옆에서 치료 마법을 쓰고 있던 시엘이 입을 열었다.
“요즈음 아포칼리타에 관해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하더라고.”
카리나는 붕대를 감던 손을 그대로 멈추고 시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정면을 보며 상처에 마법을 주입하고 있었다.
“소문이라니요?”
“그들이 연합군을 공격하는 게, 마치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대.”
카리나의 손이 사붓 떨렸다. 그녀는 빠르게 손을 갈무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붕대를 감았다.
“그들에게 이유가 있을 리가요.”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가 봐.”
“다르다니요?”
시엘은 치료가 끝난 상처에 약을 바르며 대답했다.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나.”
툭.
카리나는 쥐고 있던 붕대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가느다란 동공이 뚜렷하게 찢어졌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신고하라고 당부하더라. 리나 너도 꼭 그렇게 해야 돼. 괜히 얽히면 안 되니까.”
그 이상한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카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