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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의 첫사랑을 타락시켜 버리면-18화 (18/135)

18화

본디 배반적인 일이야말로 가장 매혹적인 것이라 하였다.

르네거는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라템의 일원으로 태어난 이상, 그의 숙적은 아포칼리타였다.

지금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아포칼리타란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몸은 알지 못했다.

본능은 그의 이성을 밀어냈다. 르네거는 카리나를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카리나의 다디단 입술을 삼켰다. 그녀의 살과 피와 향을 끊임없이 더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가 탔다. 르네거는 그녀의 어깨를 바르쥐었다.

읏.

누구의 신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섞인 소리는 서로의 몸이 더 밀착되게 만들었다.

르네거는 입술을 떼어 냈다.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춘다.

카리나의 입술이 벌려졌다. 어떠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았으나, 르네거는 그 찰나를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카리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항상 목에 두르고 있던 천이 입술에 닿았다. 르네거는 그녀의 목을 물어뜯었다.

카리나는 손을 뻗어 르네거의 턱을 잡아당겼다. 다시 입을 맞춘다. 뜨거운 숨이 터져 나오며 섞였다.

윽.

르네거는 사붓 눈을 찡그렸다. 그녀가 입술을 깨무는 탓에 다시금 피가 터졌기 때문이다.

카리나는 흘러나온 피를 핥으며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그녀의 피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르네거는 거부할 새 없이 그녀를 받아들였다.

“하아…….”

카리나가 몸을 비틀었다. 르네거 역시 그녀에게 쏟아붓던 몸을 일으켰다.

피가 맺힌 입술을 손등으로 닦는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때아니게 번들거렸다.

“이제 됐어.”

카리나는 그런 르네거의 어깨를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진 치마를 내리며 일어선다.

잠시 힘이 풀려 휘청거리긴 했지만 탁자를 붙잡은 탓에 흉한 꼴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입술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았다.

“넌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 테지.”

카리나의 녹색 시선이 닿았다. 르네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간 욕망에 점철된 음성을 들켜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걸로 충분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맹약은 이걸로 충분한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르네거는 천천히 되물었다. 퍽 나른한 음성이었고, 그렇기에 어딘가 뇌쇄적이게 느껴졌다. 카리나는 사붓 눈을 찡그렸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이 본래의 색을 찾기 전에 계속해서 피를 섞어야 해. 넌 인간이고,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본디 피의 맹약은 3대 가문끼리의 신뢰를 확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이다.

영혼을 묶어 속박하는 주술이므로, 인간과 인간 사이처럼 어긋남이 없는 존재들은 한 번의 맹세로 맹약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종족 간의 맹약은 다르다.

서로 영혼의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혼은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어, 맹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매일매일 피를 섞어 맹약의 존재를 확인해 주어야만 했다.

맹약이 해제되기 전에 이 과정을 하지 않는다면 피가 몸속에서 발화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라템의 피를 먹은 카리나는 녹아 버릴 것이다. 르네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르네거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술을 더듬으며 말했다.

“매일 이렇게 입을 맞추며 피를 먹어야 한다는 뜻이로군요.”

손에 가려진 입술이 비틀린 것이 보였다. 웃고 있는 것인가? 카리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피를 뽑아서 주입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내가 싫어서.”

아직도 주사기만 보면 진저리를 치는 그녀였기에, 고려하지도 않은 방법이었다.

그런 고로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입맞춤이었다.

“욕망을 갖게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르네거는 카리나를 붙잡자마자 매료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피를 섞지 않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과 영혼의 교감이 멀어져.”

르네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카리나는 이제야 가라앉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짐승처럼 원초적인 욕구만을 탐하게 된다는 거지. 너나 나나, 모두 다.”

르네거의 눈매가 사붓 굳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핥았다. 붉은 입술과 젖은 혀는 꽤나 관능적인 형태였다.

원초적인 욕구. 그래.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르네거는 그녀의 향에 취했고, 살결에 빠졌으며 숨에 젖어 버렸다. 그녀가 중간에 멈추지만 않았다면 분명.

르네거는 눈을 찡그렸다. 다시금 달아오르려는 가슴을 내리며 현재에 집중한다.

이러한 것이 욕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이런 르네거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카리나는, 부러 친절한 얼굴을 표방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둘 중 한 명은 상대방의 능력을 흡수하겠지.”

르네거는 멈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붓 커다래진 눈이 보였다.

“왜 그런 놀란 눈이야?”

카리나는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죽음, 너는 생명. 융합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종족 간의 교합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을 줄 알았어?”

“…….”

“뭐,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능력을 빼앗기는 건 네 쪽이 되겠네.”

그녀는 르네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성력을 잃고 싶지 않다면 내 몸에 손댈 생각하지 마.”

르네거는 제 뺨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낱낱이 들켜 버린 것 같았다.

“하…….”

그는 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웃기니?”

그런 그를 바라보던 카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 그렇게 웃기니?”

카리나는 손을 뻗어 르네거의 팔을 더듬었다. 어깨까지 올라온 그녀의 손은 르네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개 같은 맹약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면…….”

카리나는 르네거의 뒷목을 붙잡았다.

“세계의 악인 내게 달려든 네 자신이?”

카리나는 양껏 조소를 흘렸다.

“사실 난 후자가 더 웃기긴 해.”

그녀는 턱을 들어 르네거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습잖니. 고고한 성기사께서 아포칼리타의 주축이었던 내게 달려드는 게.”

“카리나 님.”

르네거는 그런 카리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눈높이를 맞춘다.

눈앞의 여자는 지독하게도 매혹적이다. 그렇기에 자칫하단 그녀의 말에 이끌려 수렁에 빠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르네거는 여기까지 와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저를 골린다 한들 맹약은 해제되지 않습니다.”

“쳇.”

카리나는 입을 비죽였다.

“나와 맹약을 맺은 걸 라템이 알게 되면 안 되지 않아?”

“제가 살기 위해서 한 선택이니 신께서도 용서하실 겁니다.”

르네거는 방금 전까지 기도를 올렸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와 입을 맞추는 행위도?”

그녀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이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네 자신도? 용서가 된다고?”

르네거는 사붓 미간을 좁혔다. 아니, 감정을 털어 낸다.

“그것보다야 중요한 건 제가 무사히 라템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카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며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르네거는 그런 카리나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제 열기가 아직 남아 있을, 그녀의 입술을 바라본다.

“그리고.”

르네거는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그러며 잠시 허공을 바라본다.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카리나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카리나와 눈을 마주했다.

궁지에 몰려 이 맹약을 선택한 그였다.

그에 따른 결과로 평생의 적인 아포칼리타와 욕망을 공유해야 할 줄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배덕감이 들었다.

마치 먹으면 안 되는 금단의 과실을 깨물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한데 왜일까.

왜.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실은 왜 이렇게도 달콤한 것인지.

어그러진 도덕이 왜 이다지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 * *

새하얀 구름이 얼기설기 맺혀 있는 하늘이었다.

찬란한 푸른빛은 구름 너머에 갇혀 있었지만, 사이사이에서 고개를 내밀며 색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러한 푸른빛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는 누군가가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기껏해야 인간의 나이로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하늘을 꼭 닮은 하늘색을 띠고 있는 머리칼을 곱게 땋아 내린 아이는, 얇은 나뭇가지에 앉아 발을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흐응.”

아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콧노래를 불렀다.

쾌청한 바람을 마음껏 만끽하며, 즐거운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때였다.

꿰에엑!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는 그리핀의 울음이었기에, 아이는 콧노래를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몸집의 세 배는 될 법한 그리핀이 날아왔다.

쏜살같이 하늘을 가로지른 그리핀은 아이의 앞에 와 날개를 퍼덕거렸다.

아이는 훌쩍 팔을 내밀었다. 그리핀은 작은 팔 위에 거대한 발을 얹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아이는 그리핀의 날개를 긁어 주며 말했다.

꿰에엑!

그리핀은 다시 한번 괴성을 울부짖었다. 아이의 눈매가 사붓 굳었다.

“그래서, 살아온 게 너밖에 없다고?”

그리핀은 퍼덕거리며 몇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커다란 울음소리를 더듬던 아이는, 이내 야트막한 웃음을 터뜨리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흐응.”

그러며 다시 콧노래를 부른다. 끊기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며 아이는 몸을 일으켰다.

허공에 손을 뻗는다. 동시에 공간이 찢어졌다.

찢긴 공간 너머, 그리핀이 죽어 간 풍경이 보였다.

“돌이 되었네?”

아이의 입술이 비틀렸다. 아이는 기분이 좋다는 양 아랫입술을 깨물며 양껏 웃음을 터뜨렸다.

“내 아이들을 이렇게 돌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인데. 그렇지?”

말에 동의한다는 듯, 그리핀은 날개를 펼친 후 날아올랐다. 아이의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돌았다.

“도망친 쥐새끼는 어디 숨어 있을까요.”

찢어진 공간이 분리되었다. 여러 개로 펼쳐진 공간은 각기의 지역을 보여 주었다.

“알아맞혀 봅시다.”

그리핀이 돌이 되어 죽은 곳과 가장 근접한 곳.

“여기 있네!”

쿠히란.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번뜩였다.

“복수하러 가자!”

아이의 이름은 루나.

카리나를 애타게 찾던 아포칼리타의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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