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카리나가 이상하다.
벽에 기대 가파른 숨을 몰아쉬고 있던 르네거는 생각했다.
카리나의 전투를 보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르네거는 그녀가 싸울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웃음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웃고 있었을 것이다.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나른한 시선을 내비치고 상대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그러한 표정은 그녀의 여유로움에서, 그리고 확실한 자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르네거는 그러한 모습을 좋아했다. 빈틈없는 승리가 존경스러웠다.
한데.
한데 지금은.
웃고 있지 않다. 꽉 다물린 입술은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으며 바싹 힘이 들어간 눈매는 짐작하기 어려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쾅!
자행하는 공격은 어떠한가. 그녀는 본디 저렇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눈앞의 아포칼리타를 살육하겠다는 듯, 잘 벼려진 기운을 끊임없이 퍼붓고 있었다.
이상하다.
저런 건,
‘카리나가 아니야.’
르네거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카리나와 대치하고 있는 아멜에게로 뛰어간다.
카리나는 저자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온전한 의지인가? 과연 그녀가 바라는 것인가?
지금의 카리나는 마치,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이 같았다.
“크흑!”
르네거는 주저 없이 아멜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무방비 상태였던 아멜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의 몸이 천천히 쓰러지자, 우두커니 서 있던 카리나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카리나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야가 흐렸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은 그녀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르네거.”
그녀의 목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렸다. 고막이 터진 것인가. 귀가 멍했다.
“내가 끼어들라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새까맣게 맺힌 기운이 가냘픈 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걸 맞으면 죽겠지.
하지만 내가 죽으면 카리나 역시 죽는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저렇게 겁박을 하는 것인가.
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을 거부하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당신이.”
르네거는 천천히 카리나에게로 다가갔다.
“슬퍼하고 있어서.”
붙잡은 어깨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구겨질 종잇장처럼 연약했다.
“그리고 저자를 정말 죽이게 되면 더 슬퍼할 것 같아서.”
손에 닿은 뺨은 사막의 공기처럼 건조하기만 했다. 눈가에 묻은 핏자국은 처연하기만 했다.
왜일까. 왜 이렇게도 카리나가 약해 보일까. 방금 전의 그 엄청난 힘을 보았음에도 왜 이렇게 그녀가 한없이 무력해 보이는 것일까.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르네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리나는 웃었다.
왜 웃는 것입니까 차마 묻지 못했다. 그녀의 입에서 울음과도 비슷한 웃음소리가 꺽꺽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웃는 게 아니라면 우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왜 우는 것입니까 묻고자 했으나 차마 그러하지 못한다. 이유를 들을 수 없다.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르네거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카리나의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데도, 그녀의 손끝에 맺혀 있는 죽음의 기운만큼은 명료하게 보였다.
삶과 죽음.
그 위태로운 경계선에 서 있던 카리나는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어쩌면.
죽고 싶은 게 아닐까.
“안 됩니다.”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다.
그녀는 죽을 수 없다.
절대로.
* * *
쿨럭.
샐러딘은 이는 먼지바람을 손으로 저으며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카리나의 무자비한 공격에 휘말려 건물 잔해에 깔렸던 그였다. 어깨뼈가 부러진 것 같아. 그는 그리 생각하며 오른쪽 어깨를 짓눌렀다.
주변을 둘러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르네거가 보였다. 샐러딘은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카리나는?”
그의 질문에 르네거는 벽 쪽을 가리켰다. 카리나는 마치 죽은 듯 얌전히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샐러딘은 카리나에게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르네거의 만류가 먼저였다.
“깨우지 마십시오. 잠드셨습니다.”
“쓰러진 게 아니고?”
“잠을 자는 겁니다.”
그리 말을 하는 르네거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면 어떠한 굳건한 결심을 한 것처럼 또렷해 보이기도 했다. 샐러딘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었냐?”
“……아무 일도.”
대답이 늦었다. 샐러딘은 의뭉스럽다는 시선으로 르네거를 바라보았지만, 르네거는 그런 그를 무시했다. 그저 카리나만을 바라볼 뿐.
휘이잉.
재차 바람이 불어왔다.
한껏 밀려온 바람은 부유하던 먼지를 한꺼번에 흩날려 가게 만들었다. 샐러딘은 그제야 주변을 완전히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아씨, 깜짝이야.”
바로 옆쪽에 제이슨이 앉아 있었다. 샐러딘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제이슨은 샐러딘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샐러딘을 공격할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까닭이다.
그의 허벅지에는 아멜이 머리를 베고 누워 있다.
뜨고 있지만 텅 비어 있는 눈. 시체처럼 창백한 낯빛. 피로 물들어 버린 털은 더 이상 하얗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살아 있는 자의 것은 아니었다.
제이슨은 그런 아멜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고만 있다. 이미 친구의 죽음을 인정한 것처럼 보였다.
샐러딘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냐? 카리나를 만나러 오면서?”
그는 애써 날 선 말을 내뱉었다. 그제야 제이슨의 고개가 들려졌다. 흰자가 없는 검은 눈이 샐러딘에게로 향했다.
“거짓말. 자일이.”
그는 으득 이를 갈았다.
“약해졌다고. 분명. 괜찮다고.”
그들은 카리나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자일은 그들을 부추겼다.
카리나는 이미 약해져 있다고, 본래 힘에 절반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가 힘을 나눠 줄 테니 너희들은 충분히 카리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결과는 어떠한가?
카리나는 약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일전에는 없었던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쓰고, 더 짙어진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었으니까.
자일. 자일. 자일!
제이슨은 찢어진 가슴을 줴뜯으며 외쳤다. 그러나 이런다 한들 죽은 아멜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제이슨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그놈을 믿은 네가 등신이지.”
“다물어라. 입.”
“뭘 그렇게 슬퍼해? 어차피 죽을 각오로 덤빈 거 아니었어? 모든 전투는 죽을 걸 예상하고 달려드는 거야. 슬퍼할 게 뭐가 있다고.”
“닥쳐!”
제이슨의 촉수가 순식간에 샐러딘에게로 날아왔다. 하지만 샐러딘 역시 2차 각성을 마친 실력자였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이런 공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챙!
샐러딘은 아주 가볍게 제이슨의 공격을 튕겨 냈다.
“야. 내가 만만하냐?”
그는 어느새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번뜩이며 제이슨을 내려다보았다.
“너희들은 자일의 힘이 없었으면 나한테 뒈졌어. 자일 덕분에 지금까지 버틴 거라는 걸 알아야지.”
맞는 말이다.
아멜이 죽은 마물을 부활시키지만 않았어도 진즉에 끝날 싸움이었지 않은가.
제이슨의 눈이 위로 치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죽어 있는 아멜을 바라본다. 부릅떠 있는 그의 눈 위에 손을 올린다. 눈을 감겨 준다.
“죽어, 그냥. 원망은 자일에게 하고.”
샐러딘은 손을 뻗었다.
손끝에 지옥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바늘처럼 날카로워진 불은 수십 개가 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제이슨을 겨눈다.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마나핵을 과녁 삼는다.
하지만.
“왜?”
제이슨의 젖은 목소리가 샐러딘의 힘을 멈추게 만들었다.
“왜 죽이는가. 우리를? 형제인데. 같은.”
바둑알을 박은 것처럼 새까만 눈이다. 축축하다. 하지만 제이슨은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신체였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울고 있었다. 습해져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길을 잃고 방황했다.
“카리나 때문. 모두 다.”
그는 축 처져 있는 아멜을 끌어안았다.
“도망만 치지 않았어도. 카리나가. 죽이지 않았고 죽지 않았을 것. 우리는.”
아멜의 머리는 힘없이 뒤로 젖혀졌다. 널브러져 있는 팔과 다리는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시체보다 괴기하고 끔찍했다.
“살았을 텐데. 함께. 잘.”
허공에 떠 있던 불길이 일순간 소멸했다. 샐러딘에게서 머뭇거림이 묻어났다.
형제.
미우나 고우나 저들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이들이었다. 경쟁하고, 경계하고, 미워하고, 혐오했지만 그러해도 함께 살아온 나날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형제를,
죽일 수 있을까?
그런 형제를,
죽이려 한 카리나의 마음은 어떠할까.
샐러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카리나를 돌아보았다. 마치 동면에 빠진 것처럼 깊은 회복에 들어가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이때였다.
챙!
제이슨의 촉수가 샐러딘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자칫했다면 저것에 관통당했으리라. 샐러딘은 어느새 다가와 촉수를 잘라 버린 르네거를 보며 생각했다.
“또 제게 빚지신 겁니다.”
르네거는 그런 샐러딘을 돌아보며 슬쩍 웃었다. 그러곤 곧장 제이슨에게로 달려들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말릴 마음이 있었나, 싶었지만 어찌 됐든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아주 찰나에 르네거는 제이슨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흑!”
제이슨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양 반항하지 않았다.
체념한 듯, 몸에 힘을 풀었다. 아멜의 옆으로 풀썩 쓰러진다.
“아포칼리타들은.”
그런 제이슨의 몸에서 검을 빼 든 르네거는 조용하게 읊조렸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의 눈을 하는군요.”
그는 제이슨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떠진 눈에 손을 올린다. 눈을 감겨 준다.
방금 전까지 들끓게 싸웠던 것이 거짓이라는 듯 그의 살은 지극히도 차가웠다.
이게 바로 죽음의 온도일까. 르네거는 손을 되돌리며 생각했다.
“왜 네가 죽였냐?”
샐러딘의 외침이다. 그러나 르네게는 무시했다. 카리나에게 다가간다.
“야! 대답해! 왜 네가 죽였냐고!”
샐러딘은 그런 르네거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가! 내가 죽이려 했는데! 네가 왜!”
마치, 왜 죽였느냐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대체 왜 죽였어, 죽이지 않아도 됐었잖아. 그리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심중이 짐작되어, 그리고 이해가 되어, 르네거는 샐러딘을 돌아보았다. 그와 마주 선다.
“제가 라템의 신관을 죽이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리 라템과 척을 졌다 한들 함께했던 동료를 죽이게 되면.”
숨을 크게 들이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일어나게 될 일.
그 미래를 눈앞에 펼쳐 보며 말해 본다.
“그가 원망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탓하게 될 것 같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할 것이고, 신념이 흔들릴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
“정말 슬플 것 같아서.”
샐러딘은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끼이익 고개가 돌아갔다. 죽어 있는 아멜과 제이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제가 죽였습니다.”
르네거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슬플 것 같은 게 아니었다.
이런 건, 기껍지 않은 감정이었다.
7장 좁혀 오는 추적